합신 신학위 보고서 결론 부분에 대한 반박 1

(이 글은 합신 신학위 보고서의 결론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반박이다. 이미 보고서의 1,2항에 대한 반박이 이루어졌는데, 결론에 대한 반박을 먼저 한 후 계속 3항에 대한 반박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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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신학위의 결론>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 교리는 개혁교회의 정통교리이므로 이를 주장하는 목사나 신학자들은 개혁신학에 충실한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정이철 목사가 ... 신학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도덕적으로 무례하고, 심히 경솔할뿐더러 명예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행위는 교회에 큰 상처를 주고, 바른 교리에서 이탈하게 하여 실족시키는 악한 일입니다.”(합신 신학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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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신학위의 보고서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를 주장하다 정이철 목사에게 크게 비판 받은 합신의 김병훈 교수와 노승수 목사를 정통교리를 믿는 사람들이라 옹호하였다. 반대로 정이철 목사는 경솔하고 무례하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며, 많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문제의 인물이라고 매도했다. 과연 합신 신학위의 결론은 성경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김병훈 교수와 노승수 목사의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주장이 왜 복음에 대한 왜곡인지 다시 설명하고자 한다.
 

능동순종 주장자들의 뜸들이기

처음부터 발톱을 드러내는 거짓 선생들은 없다. 거짓 교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올바른 내용을 먼저 말하는 일종의 뜸들이기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비성경적인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주장자들도 처음에는 그리스도에 대해 올바른 말을 한다. 김병훈 교수의 글, 합신의 <기독교개혁신보>에 기고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2016.4.12)을 다시 살펴보자.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연적 인간들과는 달리 영생을 얻기 위하여 율법을 순종하여야 할 필요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일이 ‘위격적 연합’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자 하나님의 위격이 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이러한 위격적 연합의 사실은 그리스도께서는 출생할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분으로 나셨기 때문에 율법의 의의 보상을 통해 자신의 영생을 얻고자 하실 필요가 없으시다는 것을 말합니다.”(김병훈 교수)

그리스도는 죄없이 창조된 특별한 사람과 성자 하나님의 위격이 연합되신 분이므로 영생을 얻기 위해 율법에 순종할 필요가 없다는 정상적인 진술이다. 지금 김병훈 교수 측은 이 부분을 제시하며 자신이 억울한 이단 시비를 받고 있다고 할 것이다. 만일 김병훈 교수가 이렇게 말한 후 대략 다음과 같이 구원과 그리스도에 관해 설명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반역죄를 범하여 죽은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 창조주 하나님이 친히 무죄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오셨다. 범죄하여 죽은 자기 백성 아담의 죗값을 하나님이 대신 지불하여 그를 되살리기로 작정하셨다. 아담의 반역죄로 훼손된 창조경륜, 즉 자기를 경배하는 백성과 나라를 가지시려는 창조의 목적을 자기의 희생으로 복구하시려고 작정하셨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율법이 지시하는 완전한 거룩과 의로움이 이루어진 사람으로 오셨다.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모든 뜻에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아담의 반역죄로 인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만족을 드리셨다. 우리의 죄에 대한 배상으로 자기의 몸과 영혼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셨다. 그리스도의 배상을 하나님이 만족하게 받으시니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의 장벽이 무너졌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기에게로 받아주셨다. 죄용서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것으로 인정되게 만드셨다.”

김병훈 교수가 이런 방식으로 구원을 설명했다면 전혀 문제 삼을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죄없는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속죄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다르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그런데 김병훈 교수는 갑자기 성경과 다른 구원론을 주장하였다. 뜸들이기를 한 후에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에 순종하여 '율법의 의', '영생의 권리'를 얻어야만 했고,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해야만 했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율법의 순종과 관련하여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의 율법의 순종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순종으로 얻으신 율법의 의와 영생의 권리가 죄인들에게 전가하여 주시는 데에 그 의미가 있음을 기억해 두는 일입니다.”(김병훈 교수)

김병훈 교수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가 율법 순종으로 얻으신 신 '율법의 의'라는 것은 기독교에 없다. 율법과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1)율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의 효력을 소급적용 받아 구원받은 구약 백성들이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도록 만들려고 왔고,

2)율법은 장차 오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즉 율법이 지시하는 의로움과 거룩함이 완전하게 이루어진 사람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예고하는 특별계시였고, 

3)율법은 율법의 정신과 지시가 다 이루어진 거룩하신 분이 율법의 의로운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 대신 저주받고 죽으심으로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제시한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이루어짐으로 구원이 임한다는 진리를 드러낸 특별계시였다. 
 


칼빈도 율법을 이와 같이 이해하고 가르쳤다.

“율법은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논하게 될 때 더 명백하게 볼 수 있겠지만 그 유용성이 다양할지라도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목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롬 10:4)이라고 부른 것은 여기서 기인된 것이다.” (칼빈, <기독교강요>, 1.6.2.)

 

지옥가지 않게 하는 은혜와 천국가게 하는 은혜

김병훈 교수가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구원을 위한 '율법 순종의 의'를 주장하는 이유가 그의 다음의 말에서 나타난다. 

"지옥 형벌에서 벗어나는 것과 천국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이 구별이 되고, 형벌을 받는 것과 상급을 받는 것이 동일한 것이 아니며, 사망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는 것과 영생의 영광을 얻는 것이 서로 구별이 되는 것이 마땅하므로, 그리스도의 순종을 공로적 측면의 능동적 순종과 공의를 만족케 하여 죗값을 치루는 수동적 측면으로 구별하여, 전자를 통해 영생을 얻고 후자를 통해 심판을 면하는 것으로 구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김병훈 교수)

김병훈 교수는 구원을 주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두가지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지옥에 가지 않게 하는 은혜와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은혜가 다른 근원에서 온다고 하였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구원론이다. 성경 어디에도 지옥에 가지 않게 하는 은혜와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은혜가 다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김병훈 교수가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의 의'가 필요하다는 비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이유는 십자가의 은혜로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괴이한 사변을 추종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효력으로는 지옥에 가지 않을 뿐이고,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의 의가 있어야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릴 자격이 생긴다는 이상한 사변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변적인 주장은 놀랍게도 능동순종 교리를 가르쳤던 유명한 청교도들이 동일하게 가르쳤던 것이다.  존 오웬은 그리스도가 일찍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었으나,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 더 오래살면서 율법을 지키셨다고 주장했다(John Owen, 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 151).

조나단 에드워즈도 우리가 형벌을 받지 않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셨고, 천국의 상급을 받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가 율법에 순종했다고 가르쳤다. 에드워즈는 그리스도가 고난(십자가)으로 얻으신 소극적인 의로는 우리가 천국의 상급을 얻을 수 없으므로 죽으시기 전에 율법을 지켜 얻으신 적극적인 의로 우리에게 천국의 상급을 주었다고 가르쳤다(신호섭, 개혁주의 전가교리, 122-123).

로이드 존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얻는 죄용서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죽으시기 전에 오래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의로 우리에게 천국의 영생을 주었다고 가르쳤다(신호섭, 개혁주의 전가교리, 130).

이처럼 죄용서와 칭의가 동일한 것이고, 모두 십자가로부터 나온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로이드 존스와 거의 모든 청교도들이 부정했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가 주신 죄용서와 신자의 칭의가 같은 것이고, 모두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에서 나온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서철원 박사도 그리스도의 죄용서가 곧 신자의 칭의라고 성경대로 가르친다. 

"의롭다 하심은 예수 믿음에 근거해서 죄를 용서하여 무죄하다고 선언하심이다. 믿음고백에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이 온다. 칭의는 단지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무죄 선언이다. 따라서 법정적 선언이지 도덕적 칭의일 수 없다."(서철원, 구원론, 29)
 

칼빈도 그리스도의 죄용서가 곧 신자의 칭의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의롭게 한다.’는 뜻은 고소를 당한 사람에 대해서, 마치 그의 무죄가 확정된 것같이, 그 죄책이 없다고 무죄 석방을 선고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 여기에 보면 죄의 용서를 말한 후에,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말을 한다.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분명히 죄의 사면으로 해석하며, 의롭다함을 율법의 행위에서 분리시키고 있다.(기독교강요, 3.11.3)
 

그러나 김병훈 교수는 죄용서와 칭의가 동일한 그리스도의 속죄에서 나온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적인 신학을 구성하지 않고 청교도들의 전통을 따라 지옥에 가지 않게 만드는 것은 십자가의 효력(수동순종, 소극적인 의)이고,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율법 준수의 의(능동순종, 적극적인 의)라는 거짓 신학을 주장한다. 그 결과 성경이 말하지 않는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의 의를 가르치는 것이다.  
 

율법 순종의 의를 요구하는 행위언약

김병훈 교수가 그리스도가 율법에 순종하여 ‘율법의 의’ 또는 ‘영생의 권리’를 얻어야 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해야 했다고 가르치는 더 정확한 이유를 합신의 노승수 목사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칭의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의 전가이며, 둘째 칭의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입니다. 이것은 행위언약의 교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로서 그가 이루신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 곧 행위언약에 대한 성취인 것이죠.”(노 목사, 강남성도교회 싸이트, 2017.12.15. 노 목사의 페이스 북(2017년 12월 14일)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는 구세주가 되기 위해 행위언약을 성취해야 했기 때문에 율법에 순종하여 율법의 의를 얻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행위언약의 성취자가 되어야 우리의 구세주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병훈 교수는 서두에서 율법을 지켜 영생을 얻을 필요가 없는 분이지만, 우리 구원을 위해 스스로 자원하여 율법을 지켜 율법의 의(영생의 권리)를 얻어야 하는 분이 되었다고 전개했다. 그리스도 자신에 필요하지 않으나 우리를 위해 자원하여 했다는 의미로 능동적 순종(Active Obedience)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체 행위언약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곧 죽을 아담을 창조하셨고, 아담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 구원의 자격을 가지면, 하나님이 그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조건적 약속 주셨다고 하면서, 그것을 행위언약이라고 한다.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고, 하나님의 창조와 타락과 구원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이다.

행위언약을 처음 본격적으로 청교도 운동 속으로 도입한 사람은 국교회 청교도 윌리엄 퍼킨스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국교회를 장로교회로 바꾸려는 개혁운동이 완전히 좌절되자 국교회 청교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반응이 일어났다. 

1) 일부는 국교회에서 떨어져 나가 청교도 회중교회를 세웠고,

2)다수는 여전히 가슴에 장로교회 사상을 품고 남아서 때를 기다렸고,

3)소수는 국교회를 떠나지도 않고 장로교회 사상을 추구하지도 않으며 새로운 방향의 청교도 개혁운동을 시작했다.

그 새로운 방향을 개척한 선구자가 퍼킨스였는데, 그는 국교회 체제와 시스탬에 도전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국교회 신자들의 삶과 신앙 자세를 내부로부터 바꾸는 전략을 택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합당한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이 필요했다. 칼빈의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와 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퍼킨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 사람이 적극적인 자세로 동참하고 헌신함으로, 즉 하나님이 제시하는 조건과 합당하게 자신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구원이 주어진다는 쌍방적 개념의 언약 신학, 행위언약을 도입했다.

1591년에 퍼킨스가 자신의 책 <황금사슬>에서 공식적으로 행위언약을 청교도 운동 속으로 도입했다.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기 위해 사람에게 헌신과 충성과 조건과 의무와 역할을 요구했다는 행위언약 개념은 그렇게 청교도 운동 속으로 들어섰다.

하나님이 곧 죽을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율법을 잘 지키면 그 공로를 따라 구원을 주신다는 행위언약 사상은 국교회 신자들에게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태어나면서 자동적으로 국교회 신자가 되어 자동적으로 구원을 얻는 줄 알고 살았던 사람들이었는데, 행위언약 사상으로 각성되니 달라졌다. 신앙의 자세와 의식에 변화가 일어났다. 행위언약 신앙으로 깨어난 사람들에 의해 1640년대에 청교도혁명이 일어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만들어졌다. 당연히 웨신서에도 행위언약 개념이 수용되었다. 

문제는 행위언약 사상은 성경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위언약 개념에 의하면, 아담의 원죄는 기껏해야 영생의 자격인 율법 순종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 율법이 무슨 내용이었고, 어떤 방법으로 아담에게 주어졌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아담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성경적 근거가 없다.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이 영생의 자격을 얻지 못해 그대로 죽게 되었는데, 그게 왜 원죄인가? 이미 죽은 자를 하나님이 더 확실히 저주했다는 것이 타당한 논리인가?

성경은 아담의 죄가 하나님에 대한 ‘반역’(호 6:7)이라고 한다. 반역이란 모든 사랑과 은혜를 받았고, 서로 인격을 걸고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으로 영원히 살자는 언약이 먼저 있었음을 전제한다. 아담이 그것을 파괴했을 때 성립되는 것이 '반역죄'이다.

아담과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 백성으로 창조된 아담이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도 영원히 아담의 하나님이 되기로 약속한 언약으로 다시 개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담을 비록 반역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자기의 인격을 걸고 약속한 언약을 스스로 이루시기로 하셨다. 스스로 사람이 되시어 아담 대신 죽고 언약을 복구하신 것이다.

퍼킨스의 행위언약 개념으로 청교도운동은 큰 재미를 보았다. 구원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헌신하고, 요구되는 조건을 수행해야 구원에 이른다고 하나님이 정하셨다고 하니, 모두가 노력하여 구원을 얻으려고 발광했다. 지금도 행위구원 사상이 유포되는 교회의 목회는 신자들을 발광하게 한다. 그래서 행위구원 사상은 목회자들에게 영원한 유혹이다.

행위언약 신학에 바탕을 둔 청교도운동이 크게 성공한 것만큼, 그리스도의 복음이 망가졌다. 하나님의 구원자가 행위언약의 완성자로 와야 하기 때문이다. 곧 죽을 아담에게 율법을 지키면 영생을 준다고 하신 하나님의 기대에 맞게 예수 그리스도를 짜맞추는 방향으로 기독교가 Reset되었다. 참으로 엄청난 Great Reset이 일어났다.

그래서 청교도들에 의해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율법을 철저하게 실천하여 구원의 자격, 즉 의로움을 가장 먼저 얻는 구원의 선구자로 등판되었다.  거대한 신학적 리셋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청교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들에 의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을 향한 죄악이 완성되었다.

1)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예언하지 않은 다른복음의 길이 열렸다.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원자가 율법을 완전하게 실천하여 영생의 의를 얻으셔야 하다는 가르침이 한 줄이라도 있는지 찾아보라. 그것은 전적으로 다른 복음이므로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2) 하나님이 창세기 때부터 준비하신 그리스도가 청교도들의 거짓 교리에 의해 각색되었다.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이 만드신 적이 없는 행위언약을 성취하라고 강요하게 되었다. 율법의 수여자이시고 율법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행위언약을 완성하는 사명을 부여 받았고, 그리스도에게 "만일 당신이 율법을 완전하게 실천하지 못하면 함께 죽는거야!"라며 율법의 멍에를 쓰라고 강요하였다.
 

율법을 지켜 영생을 얻으신 그리스도

들은 그리스도가 행위언약이 요구하는 율법을 실천하지 못했다면, 그리스도 자신도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라고 망령되이 말한다. 이들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얻으신 율법 순종의 의로 그 자신부터 영생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율법에 불순종하는 일을 행하신다면 속죄를 위한 희생제물의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은 분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일이 있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대리속죄를 위한 희생제물로서의 자격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영생의 권리도 상실하게 되고 맙니다.”(김병훈 교수)

“첫째 칭의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의 전가이며, 둘째 칭의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입니다. 이것은 행위언약의 교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로서 그가 이루신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 곧 행위언약에 대한 성취인 것이죠.”(노승수 목사, 강남성도교회 싸이트, 2017.12.15. 노승수 목사의 페이스 북, 2017년 12월 14일)

“그리스도는 죄의 용서를 확보하기 위하여 전체 율법에 소극적(수동적)으로 순종하셨을 뿐 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전체 율법에 적극적(능동적)으로 순종하셨다.” (신호섭 교수, <개혁주의 전가교리>, 187)


김병훈 교수가 서두에게 그리스도는 영생을 위해 율법을 지키실 필요가 없는 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능동순종이라는 거짓 칭의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뜸들이기 사변일 뿐이다. 거짓 이론들은 늘 그런 식으로 전개된다. 뒤에 가서 교묘하게 성경과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끌어온다. 

그리스도는 의로움을 얻기 위해 율법을 실천하도록 요구받을 수 없는 분이다. 구원을 위한 율법 순종의 의라는 것도 기독교에 없다. 성경에 나오지도 않은 행위언약을 완성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달라고 그리스도에게 강요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이론적으로 그리스도라도 율법을 못 지켰으면 영생을 누리지 못했다는 망령된 말은 결코 가벼이 지니칠 수 없다.  
 

청교도들의 영원하신 율법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었다면, 율법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리스도가 대신 잘 지켰으므로 율법의 정죄에서는 벗어났다. 그러나 율법이 구원의 기준이니, 구원 받은 자라도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와 명령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구원의 증거로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청교도들의 삶을 그토록 아름답게(?) 만든 율법주의이다.

왜 성경이 말하지 않는 율법 타령으로 그리스도를 성경과 다르게 만들어 자기들의 기호대로 영웅시하는 것인가? 성경대로만 믿고 의지해야 옳다.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도 모르겠다면, 다시 요약하겠다.

1)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새로운 구원론 체계를 만들어 가르치는 것은 거짓 선생들의 이단사상이다. 

2) 원래 그리스도는 영생을 위해 율법을 지키실 필요가 없었으나, 행위언약 성취자로 오신 그리스도는 율법을 지켜 자신의 영생의 권리를 얻어야 했고, 자기를 구원받게 했어야 했다는 주장은 성경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는 거짓 신학이다. 

3) 구원에 필요한 율법 순종의 의라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없는 것을 만들어 성경과 무관하게 그리스도를 영웅시하는 것이 이단사상이다. 

4) 능동순종 잘 한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청교도들이 믿었다고 우리도 믿어야 하는가? 
 

다시 합신 신학위 보고서의 결론을 보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 교리는 개혁교회의 정통교리이므로 이를 주장하는 목사나 신학자들은 개혁신학에 충실한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정이철 목사가 ... 명예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행위는 교회에 큰 상처를 주고, 바른 교리에서 이탈하게 하여 실족시키는 악한 일입니다.”(합신 신학위 보고서)

아직도 합신의 교수들은 창피함을 못 느끼는가? 또 다른 보고서를 만들어서 정이철 목사를 이단이라고 해 보고, 교류금지한다고 해 볼 작정인가? 더 큰 진리의 횃불이 타오르게 만드는 기름이 될 뿐이다. 겸손히 진리 앞에 승복하고 엎드리면 모두가 산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계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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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