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설립하는데 활용된 특별한-계시적 은사

그렇다면 성경에 나타난 방언은 어떤 은사였을까? 성경의 방언의 특징은 무엇일까? 성경의 방언은 전혀 배우지 않는 외국어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즉시 구사하면서 복음을 설명하는 은사였다. 옹알거림을 옹호하는 어떤 사람은 “배우면 되는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 무슨 성령의 특별한 은사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런 말은 교묘하게 본질을 왜곡하는 간교한 말이다. 전혀 배운적 없는 외국어를 어떤 필요한 상황에서 즉시로 완전하게 구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한다는 것이 어디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래서 성경의 방언은 성령의 이적이었다.

성경의 방언은 실제 외국어였으므로 그 나라에서 살거나 살았던 사람들은 다 알아들었다. 이런 현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죽은 자를 살리고, 태어나면서 소경, 앉은뱅이였던 환자를 고치는 것과 같은 이적이다. 그래서 방언 이적이 나타나는 곳에 불신 유대인들의 회개가 많았다. 이와 같은 성경의 방언 속에는 크게 세 가지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었다.
 

A. 십자가 구원계시를 증거

성경의 방언은 구약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했던 악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복음선포의 이적이었다. 사도들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될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친히 세상에 보냈음을 증거

하는 특별한 이적을 행하였다. 즉,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사실을 특별한 이적으로서 친히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들에 의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일어서고, 흉악한 귀신이 쫓겨나고,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이 시력을 가지게 되는 등의 성경의 이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한 번도 배운적이 없는 다른 민족들의 실제 언어를 성령의 역사를 따라 저절로 구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설명하는 성경의 방언 이적도 그 차원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방종교에서 유래하여 교회 속에 널리 퍼진 뜻없는 옹알거리는 소리를 성경의 방언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인 마가복은 16장의 마지막 내용에서 오늘 날의 옹알거리는 소리의 성경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믿는 자들에게서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8,19)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방언이 현대의 옹알거림을 뜻한다면, 동시에 여기서 말하는 대로 독사를 맨 손으로 잡아도 거뜬하고, 농약을 콜라처럼 마셔도 무탈하게 잘 사는 옹알거림에 능숙한 은사주의자들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4년 2월, 옹알거리는 소리가 마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의 방언이라고 믿는 미국인 제이미 쿠츠라는 목사가 이 말씀대로 시험하다가 비참하게 죽었다. 그는 독사를 맨 손으로 잡았고, 뱀은 그의 손을 물었다. 그는 성경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의사의 치료를 거부하고 집으로 갔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죽었다. 2012년 6월, 미국 버지니아 주의 울포드 목사도 성도들 앞에서 같은 실험을 하다가 죽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옹알거리는 소리를 성경의 방언이라고 신봉하던 그의 아버지도 39세의 젊은 나이에 동일한 실험을 하다가 죽었다.

정말 예수님은 자신이 승천하고 난 후 제자들이 세상에 나아가 십자가 복음이 전파하기 시작할 때, 옹알거림 현상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일까? 그렇다면 2,000년 동안 잠잠하다가 왜 하필 이단들에 의해 1,906년부터 그것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을까? 그리고 왜 다른 종교들에서도 같은 옹알거림이 나타나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방언은 결코 그런 옹알거림이 아니다. 전혀 배우지 않은 외국 이방인들의 실제 언어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저절로 구사되면서 십자가 복음이 보충 설명되어지는 이적이 나타날 것임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행 2:6-11)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령이 강림하시는 날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방언이 실제로 나타났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강림하며 교회가 설립되던 날 제자들에게서 배우지 않은 외국어를 구사하며 복음을 설명하는 이적이 나타났다. 배우지 않은 외국어가 저절로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놀라운 이적이다.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적극 지지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큰 사건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여 죽인 악한 유대인들이 지극히 존경하고 복종하였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특별이적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죽은 사람을 살리고,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을 고치고,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게 만드는 이적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일인데, 성경의 방언도 그 차원에서 나타났던 이적이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타락하여 죽게된 인간에게 재창조의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것을 뜻하는 이적 중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성경의 방언의 목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완악한 유대들이 방언을 보고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방언이 있는 곳에는 유대인들의 회개가 많았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최초의 방언이 나타나던 날 완악한 유대인 심천명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기록되었다. 성경의 방언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B. 이방인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증거

사도행전의 방언이 실제 이방인들의 외국어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는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사도행전의 방언과 달리 ‘영의 언어’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 21절에서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방언에 대해 설명한 내용은 고린도 교회의 방언도 외국어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바울은 구약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고린도 교회의 방언을 설명하였다.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찌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행 14:21,22)

이사야 선지자는 그 시대의 완악한 구약의 유대인들을 책망하고 회개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외국말하는 이방인들을 동원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내용은 훗날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략함으로 성취되어진다. 고린도 교회의 방언을 설명할 때 바울이 이사야의 그 예언을 인용하였다는 무엇을 뜻하는가? 고린도 교회의 방언도 예루살렘을 침략한 이방인들의 언어와 같은 실제 외국어였다는 것이다. 생소한 말을 구사하는 외국인들이 구약의 교만한 유대인들을 회개시키는 도구가 되었던 것처럼, 신약시대 초기에도 끝내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이 심판을 받아 꺾이고, 대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복하는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음을 배운적 없는 외국어가 완전하게 구사도는 방언 이적으로 증거하신 것이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고린도 교회의 방언에 대해 설명할 수는 없다. 초대교회의 방언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들어야 할 사람들은 완악한 유대인들이었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러한 역사를 행하실지라도 유대인들은 여전히 교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지금 우리 주변의 일반 불신자들이 아니다. 초대교회 당시 끝까지 예수님을 배척하는 완악한 유대인들을 뜻한다.
 

C. 복음을 보충했던 계시의 보조수단

성경의 방언은 복음계시(성경)가 사도들을 통해 완성되어 교회에 주어지기 전에 복음계시를 보충하였던 임시적인 계시은사였다. 그래서 성경의 방언은 반드시 교회에서 통역하는 사람이 있을 때 활용되어야 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고전 14:27,28)

개인이 은밀하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비밀의 방언이라고 할 분명한 증거가 없다. 반드시 방언 은사를 받은 사람이 현장에 있어야 했고, 방언의 내용을 모두 알아듣도록 통역되어야 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므로 공손하고 질서있게 모두가 경청해야 했다. 통역도 없이 혼자서 신령한체하면서 주절거리는 방언은 아무 소용없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바울은 가르쳤다(고전 14:6,8-13).

그러므로 오늘 날 방언을 하려면 통역하여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명료한 말씀을 얻을 수 있는 방언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방언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주변의 사람들이 그에게 공개적으로 방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즉석의(직통의) 말씀을 받게 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과연 어디에서 이런 방언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혹 그런 방언이 나타난다면 그 다음에는 더욱 엄청난 신학적 고민에 빠지게 된다. 완성된 성경 외에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으로 오는 말씀계시를 받는 것이 정통 기독교에서 가능하지 않다. 직통계시자는 반드시 이단이다.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일방적으로 주절거리고, 통역한답시고 눈을 내리뜨고 느낌대로 주절거리면서 뜻을 푸는 행위도 배격해야 한다. 그 소리를 녹음하여 다른 통역한다는 사람에게 들려주면 전혀 엉뚱한 다른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녹음된 같은 옹알거림을 비슷하게 통역하는 두 사람을 지구상에서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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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