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8 10:17 (화)
합신 교수님(신학위)들의 신앙고백서 오.남용이 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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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교수님(신학위)들의 신앙고백서 오.남용이 심합니다
  • 정이철
  • 승인 2021.02.26 05:2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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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신학위 보고서 3항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두 번째 반박입니다.

 

이 글은 합신 신학위 보고서의 3항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두 번째 반박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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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 주장>
“이런 사상은 윌리엄 퍼킨스가 처음 도입해서 1600년대 초에 확산되었으며 회중파 청교도 신학자들의 영향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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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가 개신교 신학으로 도입되게 만든 처음의 사람이 청교도 신학의 아버지이고, 행위언약 사상의 입안자인 윌리엄 퍼킨스라고 많이 설명했다. 능동순종 거짓 신학은 성경에서 그 실체를 규명할 수 없는 ‘행위언약’이라는 거짓 사상에 수반되는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 영생을 얻지 못했다는 거짓 사상이 청교도 운동과 기독교 속으로 도입되지 않았으면,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율법을 지켜 영생의 자격(권리, 의로움)을 얻었다는 능동순종 거짓 신학이 생겼을 이유가 없다.

능동순종은 퍼킨스의 행위언약 사상을 따라 청교도 운동과 개신교 신학으로 도입되었다. 행위언약-능동순종은 이후 잉글랜드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에게 전파되었다. 북쪽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 신학자들에도 전파되었다. 그리하여 1640년대 웨민총회 때에 홈즈 롤스턴(Homes Rolston Ⅲ) 등이 행위언약 개념이 개신교회를 칼빈의 신학으로부터 이탈시켜 율법주의로 회귀하게 만든다고 격렬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미 다수의 장로교회주의자들이 이미  거짓 행위언약 사상에 오염되었으므로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웨신서보다 1년 늦게 완성되어 채택된 '대요리문답'은 행위언약 개념과 다른 '생명언약' 개념을 채택했다. 행위언약과 생명언약은 단순 용어의 차이를 넘어, 죄의 전가와 아담의 태초의 상태에 대해 상당히 다른 내용을 말하는 언약 사상이다.

1년 차이로 완성되어 개신교 신앙을 대변하게 된 중요한 두 문서들 속에 상이한 내용의 언약 개념들이 기술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웨민총회 당시 청교도들에게 언약신학에 대한 논의는 막 시작되는 단계였지 완성되어진 단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꼭체유스, 바빙크 등에 의해 행위언약이 개신교 정통신학으로 굳어져버렸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퍼킨스의 후예들, 독립파 청교도들의 핵심 신학인 능동순종에 대한 다른 청교도들의 저항은 매우 극렬했다. 다른 청교도들의 능동순종에 대한 저항은 행위언약에 대한 저항보다 더 컸다. 제임스 1세는 1603년에 등극하여 1625년에 사망했다. 그의 재임 시기와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의 행위언약-능동순종 신학이 시작되어 발전되었던 시기가 거의 일치하였다. 몰리나이우스와 틸레누스가 능동순종에 대해 논쟁을 벌이자, 제임스 1세는 공교회의 어떤 공의회에서도 능동순종을 가르친 적이 없고, 어떤 교부도 능동순종에 대해 말한 적이 없으므로 자신이 다스리는 영토에서 다시는 능동순종에 대한 언급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의 핵심신학 능동순종을 반대하는 웨민총회의 다른 청교도들은 제임스 1세의 그 명령을 낭독하면서 능동순종 사상이 웨신서에 삽입되는 것을 반대했다. 결국 행위언약 개념과 달리 능동순종 개념은 회중주의 청교도들이 원하는 만큼 분명하게 기술되지 못했다. 그래서 종교개혁 교회들에게 미치는 웨신서의 부작용이 조금 작아지게 되었다. 

합신 신학위는 이러한 내막을 알지 못하고 단지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이 많이 동의했으므로 행위언약-능동순종이 장로교회의 신학이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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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신학위 반박>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는 회중파 청교도에서 기원했거나 그 영향 아래 작성된 것이 아닙니다. 이를 테면 능동적 순종을 지지한 윌리엄 가우지, 조지 워커, 죠수아 호일, 허버트 파머, 데니엘 피틀리 등은 회중파 청교도가 아니며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영향력을 주었던 사무엘 러더포드는 스코틀랜드 장로교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교리는 웨스트민스터 총회 이전이나 이후나 개혁 교회가 보편적으로 인정한 교리입니다.”(합신 신학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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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교수님들은 이어서 다양한 신앙고백서들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사상을 기술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합신 신학위가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이 정당한 교리라고 주장하기 위해 인용한 신앙고백서들의 내용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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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합신 신학위 반박 - 벨직신앙고백서
“자신의 모든 공로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성취하신 많은 거룩한 사역들은 우리에게 전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이다”(벨직 신앙고백서 22항, 15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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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눈에는 이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가 전 생애에 걸쳐서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는 대속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하셨다는 의미로 보인다. 여기에 그리스도가 율법 순종으로 자신과 우리의 영생에 필요한 의를 획득했다는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행여 이 내용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를 지지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경 위에 서 있지 교회가 만든 신앙고백서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가 만든 신앙고백서는 오직 성경과 일치할 때에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을 그렇게 해석한다면, 더불어서 성경의 근거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벨직신앙고백서의 이 내용에 그리스도가 우리를 십자가로 지옥에서 건졌고, 율법준수하여 얻은 의로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는 청교도의 능동순종-수동순종 교리의 근거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합신 교수님들은 자신들의 거짓 신학을 보강하는데 도움이 될 내용을 찾느라 눈이 충혈되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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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합신 신학위 반박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0문
“하나님은 나의 모든 공로가 전혀 없이, 순전히 은혜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만족과 의와 거룩을 내게 선사하시고 마치 내가 전혀 죄를 범한 적이 없고 죄가 전혀 없는 것처럼 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모든 순종을 나 자신이 성취한 것처럼 여겨 주십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60문, 15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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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교수님들은 ‘순종’이라는 말만 나오면 능동순종 교리로 연결시키는 습관이 고착화되어 버렸다. 위 하.교.리 60문의 내용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실천하여 자신과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게 만드는 적극적인 의를 얻었다는 내용이 아니다. 그런 암시도 없다.

위 하.교.리 60문의 내용은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죄 용서를 위해 친히 사람이 되시었고, 죄를 속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완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고,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죗값을 완전히 대신 배상하시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마치 우리가 한 일처럼 여겨주신다는 내용이다. 위 내용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자신과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게 만드는 적극적인 의를 획득했다는 가르침이 없다.
 

정이철 목사
정이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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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합신 신학위 반박 - 스위스일치신조 15항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택함 받은 자들을 대신하여 그의 죽으심의 순종으로 성부를 만족시키셨는데, 곧 그가 대신 이루신 의와 순종을 생각할 때 전 생애를 통하여 의의 종으로서 행하심으로써 또 당하심으로써 율법에 대해 이루신 모든 것이 순종이라 불려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의 증언(빌 2:8)을 따르면 그리스도의 생애는 자신을 계속해서 낮추시고, 비우시고, 비라하신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니, 그는 계속해서 가장 낮은 데까지 즉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내려가셨다. 하나님의 영이 분명히 선언하는 바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해서 그의 가장 거룩한 생으로 율법과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고 그의 고난만이 아니라 율법에 일치한 그의 전 생애로도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하시는 대속물을 이루셨다. 또한 우리의 구속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피에 돌리는 것은 구속이 고난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의미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또한 가장 마지막 가장 고귀한 행위 없이는 우리의 구원이 불가능하며 이 행위는 모든 능력을 가장 선명하게 반영하는데, 이 마지막 행위로부터 그 이름을 부를 때 앞에 있던 생애를 죽음으로부터 분리하는 방식으로는 전혀 아니다”(스위스일치신조 15항, 16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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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교수님들이 왜 이 내용을 인용했는지 모르겠다. 그리스도는 성육신으로부터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모든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다는 지극히 일반적인 내용일 뿐이다. 필자는 여기에 대해 아무 이의가 없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누가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고 했는가? 누가 그리스도가 순종을 모르는 날건달처럼 살다가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구원했다고 주장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사람이 되어 오실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하심을 죄인들에게 율법을 보내어서 미리 설명하시었다. 때가 이루자 율법을 통해 계시하신 대로, 완전히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오시었다.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율법을 지켰느니 안 지켰느니 하는 논쟁은 신성모독적인 것이다. 율법의 요구와 정신이 다 이루어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오신 분이 과연 율법에 위배되는 일을 하나라도 하셨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

율법의 모든 지시와 정신이 다 이루어진 완전하고 거룩하신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율법의 지시와 요구에 이르지 못하는 죄인들이 받아야 할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았다. 그리하여 죄인들을 향한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성취되었으므로 죄인이 더 이상 죄인이 아니게 되었다. 죄에서 벗어나 의인이 되게 만드신 것이다.

합신 교수님들이 인용한 스위스일치신조 15장은 단지 이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사람 대신 준수하여 영생의 의를 얻어 전가하셨다는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 혹시 그럴지라도 성경의 근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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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합신 신학위 반박 - 스위스 일치신조 16항
“그들은 그리스도가 능동적 의는 자신의 것으로 돌리고 수동적 의는 택함 받은 자들에게 선사하시고 전가하신다고 주장함으로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의와 수동적 의와 수동적 의를 분리한다. 이 모든 주장들과 이와 유사한 모든 주장들은 분명한 성경과 그리스도의 영광에 반대된다.”(스위스일치신조 16항, 16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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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합신 교수님들이 인용한 스위스일치신조의 이 내용에 해당 사항이 없다. 필자는 능동이니 수동이니 구별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타락한 죄인을 구하시기 위해 창조주 하나님이 친히 죄 없고 의로운 사람으로 오셨다. 하나님의 속죄의 어린양이 되신 그리스도는 성육신으로부터 십자가의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모든 뜻과 율법 앞에 흠이 없으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율법의 모든 정신과 요구가 다 완전하게 이루어진 거룩하시고 의로운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평생 순종의 삶을 사셨다. 그리고 우리의 죗값을 완전하게 배상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받아야 할 저주를 그리스도가 대신 받으심을 보시고 만족하셨다. 영생을 위한 율법의 의로운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더 이상 율법의 요구가 남지 않다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렇게 선언하셨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정죄하는 율법의 저주를 친히 대신 받으심으로 죄인에게 ‘율법의 마침’(롬 10:4)이 되시었다.

필자는 능동이니 수동이니 하는 이론을 따르지 않고 이렇게 간단하게 믿는 사람이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최근 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Ph.D)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고,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2021년 5월 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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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2021-02-26 13:40:18
맞습니다. 그들은 몽학선생-율법을 구원 받기 전에 지금도 작용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복음을 알기 전에 율법을 가르치고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율법과 복음을 개인의 구원서정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 속으로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율법이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구원 받지 못한 사람과 율법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지금 율법은 구원 받은 사람에게 남아있는 죄를 알게 하는 일만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2021-02-26 13:33:25
노승수 목사가 쓴 '율법의 용도' 중 일부입니다. https://lewisnoh.tistory.com/1588


율법의 용도에 대해 성경의 석의를 통해 합의한 바는 4가지 정도며 루터파와 칼뱅파의 이해에는 서로 다른 구분으로 3가지 용도를 이해하고 전개했다.

1. 첫째 정치적 또는 시민법의 용도(usus politicus sive civillis)로 죄를 억제하는 용도로 세상에 죄가 관영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라 할 수 있다. 죄를 지은 자에게 형벌을 줌으로 세상에 구현되는 세상 법 안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하며 이는 택자와 비택자에게 차이가 있다. 로마서 1장에서 보듯이 자연에서 신성, 영광이 드러나며 여기에 비추인 율법이며 택자나 불택자 모두 양심으로 반응하지만 불택자는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그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 두기를 싫어하게 된다. 하나님 두기를 싫어함이란 그의 통치 아래 살기를 싫어함을 의미하며 자연히 이것은 율법을 전제하는 표현으로 석의된다.

2. 둘째 정죄의 용도(usus elenchticus)로 율법이 우리 죄를 정죄하고 깨닫게 하는 용도를 의미한다. 율법이 정죄할 때, 불택자는 완고해지며 택자의 경우 통상적으로 개혁파가 말하는 제3용도로 이끌어 간다.

3. 셋째 몽학선생의 용도(usus paedagogicus)로 이는 택자에게만 해당하며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도록 간접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compulsus indirectus ad Christum)을 의미한다.

4. 넷째 교훈적 규범적 용도(usus didaticus sive normativus) 통상 적인 개혁파가 말하는 율법의 제3용도며 이 율법은 그 수준, 의도, 용도, 범위는 자연법의 규범성의 의미와는 차이가 많이 난다. 예컨대, 산상수훈에서 그리스도께서 해석하신 율법의 내면적 적용이 여기에 해당하며 이것의 실행 가능성은 중생자에게만 주어진다.

루터파는 1-3을 강하게 인정했으며 4는 약하게나마 동의를 했다. 이에 비해 개혁파는 1-4 모두를 인정하고 강하게 동의했다.
개혁파는 이 4가지 용도를 1을 율법의 제1용도로 2-3을 율법의 제2용도로 4를 율법의 제3용도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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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몽학선생의 용도가 구원 받기 전의 택자를 이끌어 구원 받게 하는 "회심준비론"의 근거로 쓰이면 이것도 손봐야 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에게 "성화"의 과정 중에 사용되면 몰라도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의 몽학선생 역할이면 말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2021-02-26 12:05:39
율법이 말하는 바는 죄 있는 헬라인은 물론이고 율법을 맡은 하나님의 백성 된 유대인도 죄 아래에 있음을 선포하여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입니다(롬3:9~19).

율법을 맡은 하나님의 백성 된 유대인도 행위에 치우쳐 부딪힐 돌에 부딪혔는데(롬9:32)
율법을 맡은 적도 없고(엡2:12) 후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모든 인류는 피 흘려 죄 값을 갚으라"는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이루어진 유럽의 신학자들과 그 후예들도,
잘못된 근거로 행위(율법준수)를 강조하다 실제로는 결국 복음을 역행하는, 스스로 부딪힐 돌에 부딪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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