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합신 신학위 보고서 4항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반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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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의 주장>
“장로교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경과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권위에 미치지 못한다. 성경과 칼빈이 부정하는 이런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합신 신학위 반박>
“칼빈을 인용하며 웨스트민스터의 표준문서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 주장이 아닙니다. 정이철 목사는 자신의 왜곡된 이해에 근거하여 칼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칼빈의 신학을 온전하게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신학자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와 달리 일방적인 해석에 근거하여 교회의 표준문서를 폄하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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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신학위는 개혁신학에서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보다 더 중요하고 권위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의 요지는 쉽고 간단하다. 핵심은 무엇이 성경을 더 잘 이해하고 설명하여 개혁교회들을 성경 위에 세우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생각할 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누가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참석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을 크게 구분하면 세 그룹이었다. 1)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의 신학자들과 평신도들, 2)잉글랜드 장로교회파 청교도들, 3)잉글랜드 독립파 청교도들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다룬 모든 중대사들을 최종적 결정권은 잉글랜드 의회의 소관이었는데, 신앙고백서 등의 실질적인 작업은 이 세 그룹에 의해 진행되었다. 다른 소수의 그룹들도 있었으나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토마스 굿윈을 비롯한 독립파 청교도들 12명은 국교회 청교도 윌리엄 퍼킨스에 의해 시작된 행위언약-능동순종 등의 신학과 헨리 제이콥스에게서 발전된 회중주의 교회관으로 무장된 청교도들이었다. 1562년에 프랑스의 개혁교회가 이미 회중주의를 이단으로 규정했으므로 회중주의를 고집했던 독립파 청교도들은 칼빈의 개혁신학을 물려받은 다수의 다른 청교도들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혐오스러운 자들이었다(양신혜, <베자, 교회를 위해 길 위에 서다> (익투스, 2020), 324).

독립파 청교도들의 신학은 칼빈주의와는 조금 다른 퍼킨스로부터 시작된 청교도주의 신학이라고 보아야 맞다. 퍼킨스는 칼빈의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에서 벗어나 사람과 하나님의 쌍방간의 조건과 역할에 의해 구원이 발생한다는 행위언약을 도입하여 청교도 개혁운동의 새 방향을 수립하였다. 국교회를 장로교회 체제로 전환시려는 개혁안이 좌절되자 국교회의 외적인 체제를 바꾸는 것을 포기하고 국교회의 신자들의 신앙자세와 의식을 바꾸어 궁극적으로 국교회를 무너뜨리는 다른 모습의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였다. 

국교회는 소수의 고위 감독들 중심의 종교였다. 일반 신자들과 하위 계급의 성직자들은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매사에 수동적인 자세로 신앙생활하였다. 퍼킨스는 국교회의 신자들의 그러한 피동적인 자세와 의식을 깨우기 위해 구원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능동적 참여와 조건 이행으로 이루어진다는 행위언약을 도입하였다. 행위언약이라는 신학적 패러다임 안에서 신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경건한 삶을 강조하고 촉구하는 개인적 신앙개혁 운동을 펼쳤다.

그러므로 웨민총회에 참여했던 독립파 청교도들의 사상이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강조하는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에서 벗어났고, 더 나아가 신약의 사도들의 가르침에서도 벗어났다는 비판이 멈추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총회 당시 상당수의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은 다른 점들보다는 같은 점들이 더 많으므로 독립파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이면서 그들을 포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엄격한 칼빈주의 청교도들은 그들의 사상과 주장이 잉글랜드의 교회에 재앙이 되고 있다고 우려하였다.

독립파에게서 먼저 시작되어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에게 전파된 행위언약-능동순종 교리에 대한 논의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신학적 작업의 가장 어려운 고비였다. 반대하는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은 그것이 신약의 사도들과 공교회의 가르침과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에서 퇴보하는 사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국교회 군대를 물리친 청교도 군대의 대장이 독립파 신자였고, 그의 명령을 받는 군인들 대부분이 독립파 청교도 신자들이었다는 것이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독립파 청교도 올리버 크롬웰에게 최고의 군권과 권력이 집중되었고, 전쟁이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그와 장로교회파 청교들 사이의 신학적-정치적 투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크롬웰과 그의 군대는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때까지 웨민총회와 모든 중대사를 주도했던 잉글랜드 의회를 두 번이나 무력으로 장악해 버렸다. 의회의 대부분의 의원들이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이었는데, 그들을 추방해 버림으로 이후 잉글랜드에서 장로교회 운동이 말살되어 버렸다.

크롬웰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스코틀랜드까지 군사적으로 두 번 이상 점령하여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 큰 타격을 가했다. 독립파 청교도들에게 칼빈주의(개혁신학)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왕을 살려두느냐 죽이느냐의 정치적 문제 외에도 칼빈의 장로교회 사상과 제도에 대하여 독립파들이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 부분에 대해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크롬웰과 그의 병사들 대부분은 독립파-회중교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장로교회 제도를 자신들에게 강요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D. M. LLoyd - Jones, The Puritans: Their Origins and Successors, 225.)

존경하는 합신의 신학위 교수님들은 이런 성향의 독립파 청교도들의 신학적 흔적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들어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들이 수적으로 적었을지라도 탁월한 논쟁 실력으로 자신들의 핵심적인 사상을 어떻게 관철시켰는지에 대해 모르시는 모양이다.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있다는 지적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웨신서와 웨신서를 중심으로 하는 청교도 신학에 칼빈과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있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런 주장들을 생각나는 대로 여기에 소개하고 한다.
 

1. 독립파 청교들의 핵심신학 '행위언약' 사상이 대두되자 홈즈 롤스턴 3세를 비롯한 엄격한 칼빈주의자들은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칼빈의 개혁신학으로부터 벗어나고 있고, 개혁신학의 은혜의 신학에서 벗어나 율법주의로 기울어지고 있다고 크게 비판하였다(Robert Letham, The Westminster Assembly, 229).

2. 독립파 청교도들의 핵심신학 능동순종 문제가 대두되자 웨민총회의 엄격한 칼빈주의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의 율법준수 칭의론이 성경과 공교회와 교부들의 가르침이 아니라면서 크게 반발했다(앞의 책, 81).

3. 서철원 박사는 웨스트민스터 총회 신학자들이 다음과 같이 큰 신학적 결함을 가졌다고 지적하였다.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이 창조경륜을 몰랐으므로 선악계명이 하나님 섬김을 하느냐 거부하느냐로 결정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사람은 율법을 지켜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중략) 이 구원섭리를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했어요. 히브리서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언약의 계명을 지키므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으로 여겨 오늘의 참상을 이루어냈습니다."(서철원, 왜 웨민(WCF)의 구원론과 아브라함의 구원이 맞지 않습니까?(바른믿음, 2019년 7월 1일)

4.  웨신서와 어떤 내용이 칼빈의 신학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서구의 신학자들이 적지 않다. R. T. Kendall과 미국의 Charles Bell 박사, 그리고 전 에버딘 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였던 J. B. Torrance 목사 등은 칼빈의 신학이 베자에 의해 왜곡되었고, 윌리엄 퍼킨슨와 윌리엄 에임스 등의 영국 청교도들이 그것을 배워서 영국에 전파함으로 웨신서와 칼빈의 개혁신학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서요한, <청교도유산>(그리심, 2006), 100).

5.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역사신학)는 자신의 소논문 <칼빈은 칼빈주의자인가?>에서 이미 많은 학자들이 칼빈의 신학이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바르게 계승되지 않고, 단절되었음을 지적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들 대부분의 학자들은 17세기 돌트신경(1619)과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서(1647) 속에 요약된 후대의 개혁주의 신학은 칼빈 자신의 사상과는 다른 다양한 측면들이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그 변화는 이미 베자(Theodore Beza)의 사상 속에 뚜렷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이상규, "칼빈은 칼빈주의자인가?"(교회와 신앙, 2003년 2월 12일)

6. 이승구 교수도 자신의 소논문 <조직신학에서 본 청교도 사상>에서 청교도 내부에는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였고, 모든 청교도들이 칼빈주의 신학을 발전시겼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결국 '비록 청교도주의와 칼빈주의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청교도적인 이상은 칼빈주의자들 내에서 볼 때 가장 잘 이해되었다'는 오웬 채드윅의 표현에 동의하면서, 청교도 사상 가운데서 가장 칼빈주의적인 사상과 실천을 이끌어 내어 그 함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다시 말자면, 이 논문의 일차적인 목적은 청교도 사상 가운데서 가장 칼빈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측면을 잘 드러내어 그것의 의미를 밝히는 일을 하려는 것이다. 청교도가 모두 칼빈주의적이 아니었음을 다시 말한다."(이승구 교수의 논문, <조직신학에서 본 청교도 사상>)

->이승수 교수의 말은 독립파 청교도들의 신학이 정통 칼빈주의와 달랐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7. 배현주(예장 합신, 고양 주개혁장로교회)도 독립파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신대륙의 회중교회가 신대륙의 자유주의 신학의 통로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신학이 처음부터 정통신학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회중교회주의자(독립파 청교도)자들은 교회 제도에 대한 분리주의적 입장으로 인하여서 17세기에 이미 신대륙에 정착해서 퓨리턴 정신을 심었지만 18세기 초에 신대륙에 세워진 장로교회보다 더욱 빨리 급속도로 정통 교리로부터 이탈하였다. 

무엇보다 회중교회가 신대륙에 자유주의 신학의 첫 유입지가 되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신학이 19세기에 회중교회 구빛파(Old Light)를 통하여서 신대륙에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회중교회 구빛파는 신대륙에 자유주의 신학의 교두보였다. 이렇게 회중교회가 정통신학으로부터 이탈이 빠른 것은 회중교회 교리가 처음부터 정통 교리로부터 이탈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1967년 미합중국 주류 장로교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폐기시켰을 때에 미합중국 안에 정통 신학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훨씬 이전에 회중교회주의자들은 정통 개혁 교리로부터 아주 쉽게 이탈하였다." (배현주 목사(예장 합신, 고양 주개혁 장로교회), "사보이선언과 회중주의자".)

->배현주 목사의 말도 회중교회 사상을 가졌던 독립파 청교도들의 신학이 정통 칼빈주의로부터 벗어났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있다.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웨신서 속에 신약의 사도들과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변질시키는 요소가 있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사람들에 의해 제기된 상태이다.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보다 개혁신학을 연구하는데 있어 더 권위있고 중요한 자료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고 보아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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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