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합신의 신학위 교수들이 필자가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청교도들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후 웨신서)보다 더 중요하고 권위를 가지는 개혁신학의 문서라고 말하는 내용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 최근에 또 어떤 목사가 또 그 부분을 시비한다는 내용이 들려온다. 그 목사가 정확하게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시비하는 지는 모른다. 들려오는 말만 들었고, 굳이 찾아보고 싶지도 않다.

개혁신학에서 <기독교강요>가 웨신서도보다 더욱 권위있는 신학적 저술이라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왜 그러한지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도르트 신경, 웨신서 등의 신앙고백들이 출현한 시대를 ‘개신교 정통주의(Protestant Orthodoxy) 시대’라고 한다. 개신교 정통주의는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이 신앙고백 등의 형태로 유럽의 개신교회에 정착되던 시기의 신학이다. 요즘 한국 교회에서는 ‘후기 개혁주의’ 신학이라고도 하는데, 이 용어의 의미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언제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실정인 것 같다.

리차드 멀러(Richard A. Muller, 1948-현재)는 1725년 이전을 개신교 정통주의 전기라고 하고 그 이후를 개신교 정통주의 후기라고 하였다. 한국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후기 개혁주의가 혹시 1725년 이후 개신교 정통주의를 말하는지, 또는 그 이전의 개신교 정통주의 시기의 신학을 말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개신교 정통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는 1640년대, 즉 웨신서가 작성되었던 때에 그 절정에 이르렀다. 웨신서는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이 유럽의 개신교회들 속으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개신교 정통주의를 대표하는 문서이다. 웨신서를 작성했던 영국의 청교도들의 최고의 관심은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영국의 개신교회의 신학과 교리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유럽에서 중세 천주교 신학에 큰 영향을 미쳤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다시 유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루터와 칼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학의 방법으로 삼는 중세 천주교의 스콜라주의 신학을 매우 경계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대표하는 그 두 사람이 죽고 난 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다시 유행되었고, 당시 개신교 신학자들이 다시 천주교의 스콜라주의 신학 방법으로 기울어졌다.

청교도들의 행위언약-능동순종 교리는 가장 대표적인 개신교 스콜라주의 신학의 산물이다. 신학이 성경이 가르치는 명백한 내용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논증과 유추의 과정을 통하여 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개신교 스콜라주의 신학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행위언약-능동순종을 지지하는 청교도주의자들도 이 두 교리가 성경에 직접적 근거를 가지지 못하고 교리와 교리의 관계에 대한 논리적 유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리차드 멀러는 행위언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위언약 교리는 17세기 개혁주의 신학 체계 속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교리로서 단순히 성경에 밝히 언급된 교리가 아니라 연관된 성경적 논제들 혹은 교리의 항목들을 조사하고 비교한 결과로 산출된 교리의 사례를 보여 준다.”(멀러의 말/ 칼빈 이후 개혁신학, 429 페이지)

18세기의 장로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 윌리엄 커닝햄도 능동순종-수동순종 개념이 칼빈의 책에서 공식적으로 등장한 개념이 아니라고 했다. 칭의 교리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신학자들의 섬세하고 구체적인 사색의 산물이라고 했다. 즉, 능동순종 개념도 역시 개신교 스콜라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커닝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죄 용서의 근거가 되는 수동적 의 개념과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아드려지는 능동적 의 개념은 칼빈의 책들을 통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칭의 교리의 뒤를 따르는 더 섬세하고 구체적인 사색으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구분이 지극히 합당한 신앙적 유추라고 믿었고, 명확하고 분명한 개념 형성을 돕기 위해 유용할 수 있었다.”(William Cunningham, The Reformers and the Theology of the Reformatiom (Carlisle, PA: The Canner of Truth Trust, 1979), 404.)

능동순종 사상이 스콜라주의와 연관되었다는 증거를 칼빈의 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칼빈은 그리스도가 의를 얻기 위해 율법을 지켰다는 주장과 유사한 사상을 가졌던 그 시대의 스콜라학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롬바드(Lombard)와 스콜라학자들(the Schoolmen)처럼 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해 어떤 공적을 쌓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 대체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자신을 위해 자신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지상에 내려오셔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기독교강요, 2.17.6)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행위언약-능동순종 교리가 당시 개신교 신학자들이 개신교 스콜라주의로 기울어지면서 탄생된 스콜라주의 신학(철학적 사변신학)의 결과물인 것이 분명하다.

다시 개혁신학에서 웨신서와 <기독교강요>의 권위의 서열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이 둘이 동일한 권위를 가진다고 보아야 할까? 그것은 아니다. 웨신서 작성의 주된 목표는 칼빈을 통해 완성된 종교개혁 신앙을 교회에 정착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의 국교회는 여전히 로마교회 신학을 답습하였으므로 청교도들은 국교회를 물리친 후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영국에 정착시키고자 잉글랜드 전역의 개신교 신학자들을 선발하여 웨신총회를 개최했다. 국교회를 제거한 후 다시는 신앙과 교리의 차이로 인한 내분을 겪지 않으려고 웨신서를 작성했다.

그렇다면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집대성한 <기독교강요>와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영국의 개신교회에 정착시키려고 작성한 웨신서, 이 두 개의 문서 가운데 무엇이 더 권위를 가질까? 당연히 웨신서보다 <기독교강요>이다. 웨신서의 목적이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영국에 정착시키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에 근거하는 수 천 종류의 문서들보다 성경 그 자체에게 최고의 권위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웨신서는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영국의 개신교회(청교도 교회)에 뿌리내리게 하려고 만들어진 문서이다. 이것은 곧 웨신서에서 <기독교강요>의 신학과 불일치 하는 내용이 나온다면 심각한 결함이 된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웨신서를 중시하는 청교도주의자들은 웨신서의 논란이 되는 내용들, 특히 행위언약 개념이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신학과 매우 일치하는 신학이 아니라는 지적에 대해 정색을 하고 반발한다. 칼빈의 신학 속에 이미 행위언약 사상이 있었다고 죽기 살기로 우긴다. 그러나 이미 신학적 양심을 가진 많은 학자들이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했다.

“왜 칼빈의 신학과 칼빈주의자들의 신학이 다를까요?”

그 원인은 칼빈의 신학을 계승하였던 17세기의 영국과 유럽의 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학의 방법으로 삼는 개신교 스콜라주의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칼빈은 스콜라주의 신학을 극히 경계했으나 불행히도 후대의 칼빈주의자들이 스콜라주의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바르게 계승하고 발전시키지 못하는 부분들이 나타났다. 행위언약-능동순종 교리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다시 중요한 사실로 돌아가자! 17세기 영국의 청교도들이 웨신서를 작성한 이유는 칼빈의 종교개혁 신앙을 영국의 교회에 정착시키고자 함이었다. 웨신서가 탄생된 목적은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정신과 신학을 영국의 개신교회에 정착시키기 위해서였다. 필자의 이 말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역사와 신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개혁교회에서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영국의 청교도들이 작성한 웨신서보다 더 높은 신학적 권위를 가진다는 주장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무조건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그러나 다음과 같은 범위 안에서 그러하다.

첫째, 칼빈의 주장이 성경 66권의 가르침과 일치하고,

둘째, 칼빈의 주장이 교부들과 공교회가 결정한 교리들과 일치하고,

셋째, 칼빈의 주장이 앞선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형성된 성경적 신학과 일치하는 범위 안에서이다.

칼빈의 말이라도 만일 성경과 공교회의 가르침과 앞선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적인 교훈에서 벗어나면, 당연히 우리는 거부하고 재고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 웨신서의 신학자들이 더 성경적인 주장을 한다면, 그 부분에 한하여서 웨신서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도르트 신경이나 웨신서 등은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영국과 유럽의 종교개혁 교회에 정착시키려는 목적 하에 탄생되었으므로 웨신서보다 칼빈의 <기독교강요>에게 더 개혁신학의 권위가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웨신서의 가르침이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신학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기독교강요>를 더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철원 박사는 개혁신학과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관계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신학은 개혁교회의 신학, 즉 개혁신학이므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을 규범과 근본으로 삼는다. 그리고 칼빈의 신학을 기초로 삼는다. 특히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신학 전개와 그의 주석에 나타난 성경이해를 준거해서 신학한다. 물론 고대교회이 교리를 기본 진리로 받아서 신학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신학서론,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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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