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W.E.A.란 「세계 복음주의 연맹」의 영어 약자이다. 이 기구 안에는 국내의 알만한 학자들이 많이 관여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교단에서는 W.E.A.에 총회가 가입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젊은 목회자들이나 학자들은 "복음주의 하자는데 뭐가 문제인데?"라고 하면서 상당히 적극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에 한국 교회와 관련되거나, 한국 학생이 유학한 신학대학교들과 함께해야 국제적 유대관계를 갖게 될 것이고, W.E.A에 가담하지 않으면 국제관계도 끊어지고, 장차 후학들이 그 학교에 공부할 기회마저 없어진다는 논리를 세웠다.

참으로 기막힌 묘한 논리다. 하지만 그러한 논리적 설득에 별 생각 없는 목사, 장로들이 많이 기울어지고 찬성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먼저 W.E.A.의 실체를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W.E.A.는 간판으로 보면 멋지다. 세계적으로 복음을 사랑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연합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교회를 세워가자는 뜻은 매력적인 말이다. 그런데 W.E.A.의 출현 과정과 그들의 신학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믿는 개혁주의 신학의 흐름을 간단히 몇 마디로 요약 정리하면 이렇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하나님 형상대로 지으셨다. 하지만 인간은 타락해서 허물과 죄로 소망 없게 되었고, 인간 스스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아시고, 하나님이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완성하셨다. 그래서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이것이 복음이고 성경의 맥이다. 예수 그리스도 사건(Christ event) 자체가 복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구속사역을 이루기 위해서 역사에 친히 개입하셔서 <이적>과 <기사>, <초자연적> 사역을 통해서 구원 역사를 이루셨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가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었고, 구원의 중보자인 것을 선포하신 것이 그의 생애였다. 우리의 신학과 신앙의 근거는 성경이고, 그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정점은 바로 그의 십자가와 부활이었다. 이것이 복음이고 칼빈과 종교 개혁자들과 그리고 아브라함 카이퍼와 바빙크 등이 지켜온 역사적 개혁교리이다. 이런 교리의 틀은 <돌트신경>,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벨직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등에 명명백백하게 명시되었다. 칼빈의 개혁신학은 <말씀>과 <성령>이 더불어 역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18세기와 19세기에는 자유주의 사상이 일어나 이런 칼빈의 개혁주의 신학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특히 <계몽주의>, <자유주의>, <합리주의>, <진화론> 등이 교회의 설교단, 대학 교단을 점령하여 태풍을 일으키자, 교리가 무너지고 유럽교회도 다 무너졌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유럽은 전쟁을 통해 서로 물고 죽이고 파괴하고 망가지고 비참하게 된 것에 반성이 있었다. 그즈음 1919년 스위스에서 33세의 천재적 젊은 목회자 칼 빨트(Karl Barth가 일어나 <로마서 강해>란 책을 썼는데, 이 책이 절망적 유럽의 교회와 사회의 큰 희망의 불을 지폈고 그의 영향은 지금까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우리는 이를 가르쳐 <신정통신학>이라 부르는데, 정작 본인은 <복음주의>라 불렀다.

1차 대전의 파괴로 절망의 늪에서 유럽교회는 칼 빨트에게서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발견한 셈이다. 하지만 빨트를 비롯해서 함께 출현했던 부르너, 불트만, 폴틸리히, 니버형제 등은 모두 30대 초반의 학자들이었는데, 그들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과거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의 영감을 부정하고, 성경에 나타난 모든 이적과 기사와 초자연을 부정했는데, 자기들은 성경의 영감이나 이적, 기사나 초자연을 아예 언급하지 말고, 그냥 그 성경의 이야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Meaning)가 무엇이고, 교훈이 무엇인지만 알면 된다고 했다. 참으로 기가 막힌 발상이었다. 그들은 성경의 역사(History)나 사건(Fact)는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빨트는 성경의 대부분을 Gechichte 즉 <전설>, <만담>, <설화>로 보고, 그 이야기 속에 담겨진 뜻을 실질적으로 파악해서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얻자는 것이다. 결국 <신정통주의>도, <자유주의>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러니 오늘의 빨트주의 사상에 열광하는 세계 교회는 <성경의 영감>도 믿지 않고, 성경의 초자연적 이적이나 기사도 안 믿고, 동정녀 탄생, 예수의 육체적 부활도 전혀 믿지 않으면서도, 성경에 나타난 좋은 이야기를 교훈 삼아 신앙생활 하는 것이 기독교라고 믿고 있다.

또 한편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발로 미국에서는 <근본주의>운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자유주의자들은 기독교의 핵심진리를 지키려는 자들을 향해 <근본주의>로 매도하고 공격했다. 또 하나의 그룹 중에서 근본주의 교리가 미처 말 못했던 것 즉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대사회문제나 선교에 대해서 관심을 갖자고 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이른바 <신복음주의>였다. 미국에서는 <오켕카>, <헨리>, <카이넬>같은 학자들이 앞장섰다. 영국에는 <스토트>, <페커>가 동조했다. 이들이 만든 것이 W.E.A이다. 
  
그런데 W.E.A.의 신학적 입장은 포용주의요, 두 말 할 필요 없이 그것은 칼 빨트의 사상이다. W.E.A.는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빨트주의 신봉자들이다. 즉, <신정통주의>이나 <신복음주의>는 결국 같은 말이 되었다. 그러므로 W.E.A.의 신학은 <신복음주의>인데, <신복음주의>는 <신정통주의>가 그 핵심이다. 이들은 자유주의자들처럼 성경의 영감을 부정하면서,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육체 부활과 초자연적 사실을 아예 믿지도 않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어물쩍 넘어가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니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가진 교회는 변질된 W.E.A에 들어가서 <신 복음주의>자들과 함께할 수 없다. <신복음주의>는 <신정통주의>와 함께 <다른복음>을 주장한다. 

 

 W.E.A.와 함께 안하면 고독하고, 고립된다고? 

이것은 진리냐? 비 진리냐? 문제이고, 성경이냐? 비 성경이냐? 의 문제이다.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받아들이는 교회와 지도자들은 성경의 영감과 초자연을 믿지 않는 이런 운동에 아예 휘둘리지 않았으면 한다. 만에 하나 한국교회가 성경의 영감과 초자연을 믿지 않는 <신 복음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W.E.A.에 가입한다면, 우리 교회는 이제 더 이상 개혁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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