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믿음을 사랑하는 독자여러분,
오늘 저는 최근 시리아 내전과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IS(Islamic State)에 의해 자신이 살던 고향과 나라를 떠나 생존을 위해 주변 5개 나라로 피난 중에 있는 300만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의 비참한 삶에 대한 기사를 읽다 마음이 동해 이렇게 여러분과 제 마음을 나누길 원합니다. 

이 글을 읽는 저를 비롯한 우리들 대부분은 평안함 가운데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이 느끼는 평안함과 정반대로 우리와 동일한 시간대에 공포 가운데 생존 자체를 위협 당하는 이들이 수백 만명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최근 기사를 보니 이제 오는 3월 15일 이면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지 만 4년, 즉 5년 째 접어든다고 합니다. 이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 나라 전체 2천 만명이 조금 넘는 인구의 절반 즉 천 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도망자가 되어 고향을 떠나 인근 국가에서 하루 하루 생존에 허덕이고 있고, 그 곳에 남아 있는 760만 명도 죽음의 공포 가운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서 이미 22 만명의 시민들이 전쟁과 내전으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고통의 배경에는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않는 해당 국가 집권자들의 끊임없는 권력에 대한 탐욕과 집착 그리고 IS라는 종교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흉칙한 폭력배들의 난동과 그러한 세력들을 부채질하는 사악한 세상이 박자를 맞추고 있습니다. 연일 세계의 뉴스는 전 세계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IS와 이들을 타격하는 연합군과 인접국의 전쟁 소식을 무슨 최신 인터넷 게임처럼 흥미롭게 보도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보아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눈은 전쟁터가 아닌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하루하루 생존의 전쟁을 경험하는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들도 몇 년 전까지는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하루를 살았던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내일의 꿈과 희망을 가진 아이들인데 이제는 다음 날의 생존을 걱정하는 상황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현재 한국 엠네스티 지부에서 공개한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제공한 국가별 난민 거주지 현황을 보니 독일이 30,000, 캐나다가 11,300, 브라질 5,700, 프랑스 2,200, 영국 90, 일본 0 라고 합니다. 아마 한국도 사정이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이런 일에 앞장 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자신의 삶의 테두리 안에서만 무언가를 얻고 누리려고 하는 것은 성경이 보여주는 청지기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일상과 별 관계없어 보이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 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무언가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해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우리는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을 위해  주님이 가르쳐 주셨듯이 그들을 위해 기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얼마 되지는 않지만  우리의 마음을 모아 후원금 모금에 동참할 수도 있겠지요. 저 같은 경우에는 이번 주일에 시리아 난민들의 상황을 젊은이 예배에서 공유하고 함께 작은 모금을 시작해 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우리 독자분들 가운데 좀 더 영향력 있는 분들은 교회 차원에서 기금 모금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는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10:36에서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를 물으셨고, 대답은 우리 모두가 알듯이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오늘 우리의 자비와 긍휼이 필요한 곳이 우리 주변 곳곳에 넘쳐 나지만 오늘 저의 눈은 시리아의 난민들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혹 오늘 저와 같이 시리아로 가실 분은 안 계십니까? 강도 만난 자들이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들의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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