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김갑수 님의 “내가 기독교인이 아닌 이유”에 대한 기독교 변증의 두번째 글이다. 붉은 색 부분이 그의 주장이다.)
 

3. 죄책감의 종교

기독교는 모든 인간을 죄인이라고 선포한다. 본능대로 사는 것을 죄라고 단정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밖에 없다고 강요한다. 죄책감을 주어서 교회에 복종하게 만드는 것은 기독교의 사업 전략이다. 찰라를 살다가 흙으로 소멸하는 짦은 세상에서 프라이드를 갖고 살기도 힘든데 원죄를 주장하며 위축시키는 기독교는 인간에게 해롭고 사악하다.

하나님이 있다면 인간을 만들 때 왜 본능을 주었는가? 단지 본능대로 사는 것 뿐인데 그것이 왜 죄가 되는가? 성욕을 예로 들어보자.

기독교는 순결이라는 미명으로 성욕을 억압한다. 김명진 목사의 교회에서는 본능을 억제해야 한다며 똥물을 먹이고 벌금도 물린다. 교인들은 이 가학적인 명령을 따르면서 스스로 가장 거룩하고 성결한 기독교인이라고 착각한다. 결혼도 오직 같은 교인들과만 이루어지고 있다. 폐쇄된 집단에서 억압받고 사는 가장 불행한 인간들이 스스로 행복하다며 최면을 걸고 있다.

탄트라 종교는 집단적 난교로 열반에 이르게 한다. 내가 아는 스님들과 신부들도 비밀스런 애인이 있다. 프랑스 좌파의 잡지에는 신부와 수녀가 섹스하는 만화도 있다. 이것이 인간의 정직한 본능이다. 인간은 본능이 억압될 때 다른 방법으로 분출해야 하기 때문에 변태가 된다. 기독교는 금욕을 강요하며 변태인간을 양산하고 있다.

기독교는 어떤 노래나 영화나 철학이나 사상들을 사탄적이라며 금지한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다양하게 생각하는 것을 금지하고 오직 하나의 것만 강요한다. 교양있고 지식있던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자기 의지가 없어지고 단순 무식하게 변하고 있다. 그리고 착한 척하는 연기를 배우고 있다. (김갑수 씨의 말)

기독교가 모든 인간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 죄악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본성은 어떤가?

미움받을 때 나도 미워한다. 모함받을 때 화나고 흥분한다. 손해를 당하면 억울해한다. 성공하면 행복하고 실패하면 절망한다. 내가 가진 좋은 것은 자랑하고 싶고 남이 가진 좋은 것은 시기하고 질투한다. 높은 사람들 앞에서는 주눅들고 낮은 사람들 앞에서는 교만해진다. 남의 행복을 축하하면서도 은밀히 불행감을 느끼고 남의 불행을 위로하면서도 은밀한 행복감을 갖기도 한다.

이전에는 이런 본능이 당연한 것이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는 이것이 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 죄가 될까? 나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을 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 늘 문제와 고통과 불행이 있는 이유는 본능을 따라서 살았던 죄 때문이었던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잘 표현해주는 “악마의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여기서 주인공인 변호사는 본능과 양심 사이에서 고민하는데 그때 악마가 나타나서 원하는대로 살라고 유혹한다. 그리고 본능을 억제해야 한다는 하나님을 비웃는다.

“하나님? 그런 새디스트를 숭배하라고? 인간에게 본능을 주고나서 본능대로 행하지 말라구? 먹음직한 선악과를 보여주고나서 그것을 먹지 말라고? 그것을 탐할 만한 시각과 후각과 미각을 인간에게 주고나서 만지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니 그런 심술장이가 어딨니? 나, 악마? 나는 최고의 휴머니스트야. 인간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다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인류 최고의 휴머니스트이자 인간의 영원한 팬이지. 나는 언제나 인간의 편이야…”

주인공은 악마의 지지를 받고 본능을 따라 질주하며 원하는 재물과 명예를 얻는다. 주인공이 원하는 것을 다 얻고 성공을 즐기는 가운데 아내는 외로움으로 알콜 중독에 빠지다가 자살한다. 그가 본능을 따라서 살았던 결과에 대해서 사탄은 책임져 줄까? 물론 아니다. 사탄은 이렇게 말하며 내뺀다.

“내가 유혹하기는 했지만 강제한 것은 아니야. 자유의지를 가진 너 자신이 선택한 것이야. 그것은 네 선택이었으니까 네가 책임져야 해.”

주인공은 악마를 따라가며 가장 성공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극도로 절망하며 아내를 따라서 자살한다.

하나님이 우리가 본성을 따라서 사는 것을 죄라고 말씀하시며 금지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조건 금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책임지시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보시고 아시고 허락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공급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낙심하거나 복수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믿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게 그렇게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믿음이 조금씩 자라난다.

우리가 만족과 불만,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것은 외부적인 사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해석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은 외부에서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나도 크게 요동하지 않는다. 놀라운 성공을 쟁취해도 교만해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으므로 환경에 의해서 희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못하는 사람들은 환경에 의해 요동한다. 낙심하거나 교만하거나 슬퍼하거나 잘난척 하면서, 그것이 본능이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이 인생에서 긍정적인 근거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훈련하거나 자기 최면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불교인이 그러하듯이 고행과 명상과 극기훈련과 강한 의지를 통해서 죄된 본능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실하심을 경험하면서 그렇게 변화되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가장 분명하게 존재하시고 또한 개개인의 삶에서 아주 세심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은 기독교가 도덕이 아니라 믿음을 강조하기 때문에 비도덕적으로 되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믿음은 단연코 최고의 도덕을 가져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기 때문에 기꺼이 양보하고 주고 용서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어떤 기독교인도 믿음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경에 따라서 자주 슬퍼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복수하고 절망한다. 교만하고 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기독교인과 다른 점은 그럴 때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다시 회개하며 기도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소서.”
 

4. 맹목의 종교

우리는 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웠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식을 갖고 있다. 인류 역사는 성경과 전혀 상관없이 진화의 법칙에 따라서 흘러 왔다. 목사들은 직업을 잃지 않으려고 유신론자인 척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분명하다. 교인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의식이나 판단이라고는 전혀 없이 목사들의 거짓말에 세뇌된 자들이다.

그들은 제도화된 사고에 묶여서 정상적인 사고를 못하게 된다. 어떻게 처녀가 애를 낳을 수 있는지? 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일 수 있는지?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 라는 합리적 의심과 정직한 질문을 해봤는가? 그럴 때 기독교인은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었으니 그냥 믿으라고 말한다.

그들은 친구가 차려준 음식을 먹으면서도 수고한 친구에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한다. 내가 노력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인데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한다. “왜?”라고 질문하면 “하나님이 해주셨으니까”라고 답변할 뿐이다. 자기 생각이 없는 자들이라서 정상적으로 대화할 수가 없다.

지적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은 언어다. 교회는 성경이 사용하는 제한된 언어만을 무한반복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인들을 지적으로 둔화시키며 무지하게 만들고 있다. 지적이고 풍요롭고 다채로운 언어 대신에 앙상한 몇개의 단어만 사용하면서 인간의 내면 세계를 파리하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이다.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거짓되고 자아도취적이다. 없는 하나님에 대해서 거짓말을 해야 한다. 테레사 수녀는 일생동안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자 소원했으나 듣지 못한 것이 원통하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가장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그녀조차 평생 한번도 듣지 못했다는 예수님의 음성을 노상 듣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다. 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우러러 보고 영웅시한다.

북한은 김일성을 신으로 여긴다. 북한주민들은 “내 심장이 뛰는데 수령님이 없다면 어떻게 내 심장이 뛰겠느냐”고 반문한다. 북한에게 김일성이 하나님인 것처럼, 기독교도 수퍼스타를 하나 만들어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숭배한다.

이제 우리들은 무속신앙과 같은 기독교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독교는 무속신앙을 무시하지만 산신령이라는 용어 대신에 예수라는 용어를 사용할 뿐 둘은 유사하다. 그래도 무당굿은 인간의 심리를 위로라도 해주지만 목사들은 그런 것도 못한다. 오히려 죄의식만 심겨줄 뿐이다.

기독교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종이라고 주장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이므로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개개인의 생각과 철학과 의지와 신념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즉 목사의 말만 들으라는 것이다. 신옥주 교회에서는 목사의 말을 거역할 때 타작마당을 열어서 부모자식 간에, 부부 간에 서로 따귀를 때리게 한다. 상대방의 의식을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이런 행위는 명백한 사기며 가스라이팅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정답을 강요하며 교인들을 영적인 노예상태로 그루밍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교회의 존재는 가히 사회악이다. 교회는 제도에 길들여진 노인들로만 채워지고 젊은이들에게는 외면받고 있으므로 결국 멸망할 수 밖에 없다. (김갑수 씨의 말)

목사의 말이 성경의 말씀은 아니다. 목사들이 비성경적인 설교를 하면 당연히 배척한다. 그럼 성경은 무슨 권위가 있어서 절대 복종하는가?

불경은 인간의 철학과 사상을 말하므로 반박하거나 비난할 것이 없다. 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며 수천년의 역사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허구라는 끊임없는 의심과 반박을 받아왔다. 그리고 1,600년 동안 40여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기록한 66권의 책을 엮은 것이므로 내용상 서로 모순이 된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기독교는 처음에는 마음의 감동으로 갖게 된 신앙이었지만 사방에서 맹공격을 받으며 이것이 정말 사실인가를 검증해야 했다. 고고학, 역사학, 지질학, 천문학, 생물학, 언어학, 법학, 철학 등의 학문이 발달하면서 치열하게 연구한 결과, 성경에는 모순도 오류도 없다는 것을 계속 확인할 수 있었다. 기독교는 모든 분야에서 치열하게 검증받은 종교다.

기독교의 진리는 유치원생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쉽고 단순하면서, 또한 최고의 석학들도 탄복하고 경탄할 수밖에 없는 깊이의 진리가 있다. “기독교는 사기다”고 생각한 세계의 무신론자 석학들이 그 허구성을 폭로하기 위해서 연구를 시작했다가 하나님을 믿게 되고 전도자로 변화된 경우가 많다. 겉으로 볼 때는 허무맹랑한 것이었지만 깊이 연구할수록 부인할 수 없는 진리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하버드 법대 사이몬 그린리프 교수는 예수 이야기가 단순한 전설에 불과하다고 확신하며 역사기록을 파헤쳐 갔다. 하지만 연구를 계속할수록 그가 죽었다가 살았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너무나 분명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무신론자에서 기독교인으로 회심했다.

금세기 최고의 철학자이자 무신론자로서 반기독교의 아이콘이었던 앤토니 플루도 81세의 나이에 예수께로 회심했다. 그는 “증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라는 소크라테스의 법칙을 충실하게 따랐다”며 자신이 회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어떤 종교의 경전도 인류 역사의 시작점과 종착점을 말해주지 못했다. 오직 성경만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사이의 인류역사도 정확하게 말해준다.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나라인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제한된 지역과 제한된 시대를 말하고 있지만, 기록된 모든 것이 정확한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세속역사는 기원전 500년 경 바벨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왕부터 기록되기 시작했다. 성경도 느부갓네살이라는 이름으로 그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 인물을 통해서 세속역사는 이전의 역사와 연대를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모세, 힛타이트, 앗시리아 등의 존재도 성경을 통해 알게 되고, 유물과 유적지를 통해서 확인받을 수 있었다.

고고학과 역사학과 지질학과 언어학 등은 성경 속의 인물, 도시, 나라, 사건들이 실제 역사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넬슨 글루엑 등의 저명한 고고학자들은 발굴된 유물과 유적들 중에서 성경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단언한다.

또한 성경은 바벨론 이후로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 대제국의 출현과 몰락을 예언했는데 세속역사와도 일치한다. 상세한 내용이 너무 정확해서 제국들의 출현 이후에 기록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지만 고문서 연대추정에 의해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처녀가 애를 낳을 수 있는가? 어떻게 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일 수 있는가? 어떻게 죽어서 냄새나는 상황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왜냐면 그는 수퍼 인간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그런 기적이 왜 불가능하겠는가?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면 하나님이라고 숭배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도 예수님에 대한 관점이 다르면 기독교, 로마가톨릭, 이슬람, 유대교 등으로 갈라진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인간이 되어 오신 예수님이 죄인된 인간들을 대신해서 심판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믿는다. 오직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을 때만 용서를 받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에 간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의 하나님이시라고 확신한다. 무조건 맹신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학술 자료가 증거해주고 있기 때문만도 아니고, 매일의 삶을 통해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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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옥 선교사는 서강대에서 신문방송학, 산호제바이블컬리지에서 신학, 산호제주립대대학원에서 소셜웤을 전공했다. 서울과 산호제에서 다년간 직장을 다녔고 산호제에서는 교회에서 전도사로도 일했다. 현재는 예수님과 성경과 기독교에 대해 세상이 갖는 수많은 오해들에 대해 답변하며 인터넷을 통해 전도하고 있다.
저서 <예수신화?예수실화!>는 성경은 신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안목에서 기록된 역사서며, 예수님은 성인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변증한다. <시대읽기>는 기독교를 왜곡하거나 혼합해서 파괴하려는 반기독교적 세상의 정체와 그것의 반인륜적인 역사를 폭로한다. 이들 내용을 요약하고 추가해서 <예수는 실화다>와 <성경적 시대읽기>를 다시 출간했다. 최근 출간된 <다시살다>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된 개인 이야기를 간증한다. 번역서로는 <당신은 괜찮습니까?>와 <회복프라소>가 있는데 성경적 회개와 용서와 예수 안에서의 치유와 회복을 주제로 한다. joookkim@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