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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라는 용어: WEA의 실체를 밝힌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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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라는 용어: WEA의 실체를 밝힌다 (1)
  • 임진남
  • 승인 2021.08.25 0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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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메레이의 ”분열된 복음주의“를 바탕으로

 

1525년 윌리엄 딘테일을 비롯한 종교개혁주의 자들은 복음에 대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받아들였다. 따라서 개혁주의자들은 복음주의자라는 용어를 따로 사용할 필요가 없을 만큼 복음주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0년이 지난 이후 교회는 복음에 대한 신앙이 왜곡되고 급기야는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서 정통신앙에 대한 바른 신앙이 나타나지 않았고 그런 교회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 때문에 복음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일으키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는데 바로 “복음주의자”이다.

19세기 영국 성공회에서 정식으로 복음주의파가 등장하였다. 다른 개신교파 보다 복음을 강조하므로 복음주의로 불리고 그 그룹들이 형성되었다. 1846년 영국에서 복음주의 연맹(EA)가 창설되었다. 새로운 교단과 교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호 교제와 신앙적인 연합을 추구하였다. (2001년 쿠알라룸푸르에서 WEA명칭으로 개명됨)

한편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등장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이 시작되었고, 결국 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성경적 색깔이 점점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1910년 에든버러에서 에큐메니칼 대회가 열리게 되었는데(세계선계대회) 이 계기로 인해 1948년 WCC도 결성이 된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모든 교회는 같은 교회이다!라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슐라이어마허는 모든 인간 안에 종교적인 감각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떤 종교를 믿는 사람과도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인간 외부에서 오는 구원은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인기를 끌었고 독일 사회는 그의 사상을 우호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슐라이어마허는 이렇게 주장했다.

“정통적인 믿음을 가졌다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문제가 많을 때도 있고, 실제로 더 나쁠 때도 많다. 내 주변의 불신자 중에는 정말 좋은 사람도 많다. 하나님이 없는 종교가 하나님이 있는 종교보다 더 좋을 수 있다. 기독교를 유일하게 참 종교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정통 기독교의 교리와 그리스도인의 정의에 대하여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게 되었다. 그는 인간 감정이 영원한 진리를 감지할 수 있다면 기독교의 교리로 씨름할 필요가 없고 지역교회에서는 교리를 설교하지 말라고 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에 따르면, 후세대가 규정한 신앙고백에 근거해서는 진정한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알 수 없다. 진리는 신학과 상관없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켄터베리 대주교를 역임한 윌리엄 템플(1886-1960)은 “불신자도 사랑으로 살았다면 구원을 받는다. 불신자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인했다고 해도 실제 삶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과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이 신학교에서도 가르쳐지기 시작하였다. 에든버러 신학 대학교수였던 존 베일리도 그렇게 주장하였다.

자유주의에 대한 영미권에서는 복음주의 교회들이 이런 가르침을 거부하였고, 프린스턴 대학에서도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복음주의자들은 비복음주의 자들과 연합을 거부하였다. 결국, 프린스턴의 좌경화로 인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신자의 삶은 신앙고백에 의해 결정이 된다.”(핫지, 메이천)

하지만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메이천을 전적으로 지지한 것이 아니다. 일부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신앙만이 전부라고 말하는 즉, 근본주의들이 메이천(근본주의자가 아님)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를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불렀다.

메이천과 그의 동료들은 근본주의 신학의 일부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자신들이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불리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근본주의자들은 시대적 상황에만 급급했고, 분리주의적인 성격이 아주 강했다. 그들을 “따로 살림을 차리는 주의”(come- out –ism)이라 불렀다. 구 장로교회와 근본주의는 완전히 다른 신학이다.

이때 웨민에서 메이천과 함께 옮겨 공부한 오켄카와 카넬이 복음주의 신앙으로 함께 등장하게 되는데, 오켄카는 감리교, 카넬은 침례교 출신이었다. 오켄카는 피츠버그에서, 카넬은 보스턴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웨민에서 배운 교리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들이 속해있던 자리에서 정통 장로교회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활동을 좁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이들은 풀러신학교를 세워 같이 활동을 하고 복음에 대한 폭을 넓혀가기로 한 것이다.

풀러 신학교의 비전을 나타내기 위해 “신복음주의”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들을 비판하는 자들이 이 단어를 왜곡하자 카넬은 교수들에게 이 용어를 더 사용하지 않도록 지시했지만 이를 막을 수 없었다. 원래 이 용어는 기독교 정통주의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려고 만들었지만 왜곡되어 사용된 것이다.

카넬은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거부하였다. 풀러의 후원자인 찰스풀러도 근본주의적인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켄카와 카넬은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웨민과 다른 포용적인 복음주의신학으로 풀러신학교를 성장시키기를 바란 것이다.

이들은 근본주의 신학이 배움에 있어 방해가 되는 요소로 보고 십자가의 메시지는 분열을 일으키게 된다고 보았다. 카넬은 더 넓은 포용적 정책을 받아들이는 것을 원칙으로 삼게 되었다. 이들은 새로운 교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비록 다른 지역에서 신자가 있다면 즉 믿음과 회개의 증거가 있다면 복음이 역사하는 것을 보며 이때 다른 신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모두 사랑해야 하며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또한, 기성교단이 자유주의 신학과 잘못된 가르침을 전한다고 해도 이들 교단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결국, 신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정통교회의 신학을 버리고 포용주의를 통해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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