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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WEA 지지하는 목사들의 안수(기도)받은 정치인은 좋은 날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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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WEA 지지하는 목사들의 안수(기도)받은 정치인은 좋은 날 보지 못한다
  • 정이철
  • 승인 2021.09.16 2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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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명한 목사들이 조용기 목사의 장례식장에서 유력한 불신자 정치인에게 안수하였다. 그래서 큰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기독교에서 안수의 의미와 기능을 정리해 보자.

구약 시대의 안수에 대해 살펴보자. 구약에서 안수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선포하고 집행하는 특별한 의식이었다. 구약 시대의 안수는 주로 선지자, 제사장들에 의해, 그리고 그런 직분들이 등장하기 이전의 족장에 의해 집행되었다.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을 야곱이 자기 아들로 간주하고 안수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을 선포했던 것이 구약의 안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후에 등장하는 선지자, 제자상, 왕의 기능을 통합적으로 수행했던 족장 야곱이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을 선포하고 집행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야곱이 낳은 아들들과 요셉이 낳은 두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 12 지파가 결성되었다.

구약에서 안수와 기름을 붓는 예식은 병행되었거나 병행되지 않았을지라도 의미가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안수함으로 이스라엘 12지파의 족장되게 한 것이나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포한 것은 안수와 기름부음이 병행되었거나 그렇지 않았을지라도 같은 의미의 행동이었다.

하나님이 쓰시는 족장, 선지자 등에게서 안수 받거나 기름부음을 받는다고 하나님의 복이 기계적으로 임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이 특별하게 쓰시려고 작정하신 사람에게 선지자 등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안수하거나 기름을 부었다. 안수를 받거나 기름부음을 받으면 하나님의 신, 성령이 그 사람에게 역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신이 그 사람에게 역사하여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인도하기 시작했다.

왕이 될 의향이 전혀 없었던 사울에게 사무엘이 기름을 붓자 즉시 성신이 사울에게 임하시어 은혜를 베푸시고 역사하시기 시작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울을 버리고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역시 하나님이 신이 다윗과 함께 하시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다윗은 더욱 더 지혜롭고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신, 성령이 다윗과 함께 하신 것이다. 

이것을 표면적으로 간단히 이해하여 오늘 날에도 성공한 목사들이 안수하면 복이 임하고 성공하게 된다고 가르친는 것은 기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믿음이다. 특히 유명한 목사에게 안수받으면 하나님이 안수 받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게 된다는 소망(?)은 미신보다 어리석고 나쁜 것이다. 한국에서 매년 연말에 행해지는 수험생을 위한 안수기도, 송구영신 예배나 신년새벽기도회 때 행해지는 안수기도는 이런 그릇된 신앙의 산물이다. 또한 신앙의 더 어지럽히고 타락시키는 일이다.

오정현, 오정호, 김삼환, 김장환, 이영훈 등의 종교 제왕의 길을 넘보는 목사들이 조용기 목사의 장례식장에서 불신자 대권 정치인에게 손을 얹고 기도를 한 것도 이런 미신에 해당한다.
 

그러면 신약 시대의 안수에 대해 살펴보자. 신약의 초기에 안수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병든 자들에게 손을 얹어 기적을 일으키라고 명하시고 승천하셨다. 그것 역시 특별계시의 선포와 연관된 일이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대신 저주 받으신 메시야라는 사실을 선포하기 위해 병든 사람들, 불구의 사람들을 거룩한 이적의 도구로 활용하신 것이다.

그 시대의 신자들이라고 모두 임으로 안수하고 다닌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특별한 쓰임을 받는 제자들이 오직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병든 사람들에게 손을 얹어 그리스도가 구원자라는 특별계시를 선포하는 이적을 일으켰다. 그 일들의 주권은 언제나 그리스도에게 있었다. 제자들이 임으로 했던 일이 아니다. 

신약의 초기의 그런 이적을 일으키는 안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계시 위해 그리스도의 교회가 설립된 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후 여전히 안수하여 하나님의 이적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의 무지와 미신적인 일들이 이어지기는 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자들이 아니고 대부분 하나님으로 위장하는 사탄의 부림을 받는 이단들이었다. 현재 한국에서 손기철, 김기동 등이 그런 일을 잘하는데, 그들의 영적인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하나님과 무관한 안수는 오히려 사탄이 역사하는 기회, 수단, 통로로 작용한다. 특히 이단들의 세계에서 안수는 사탄의 거짓 능력과 은사를 전수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피터 와그너는 존 윔버에게서 안수받을 때 매우 특이한 신비적 체험을 했는데, 이후 전문적으로 짝다리를 교정하는 이상한 치유능력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의 신학과 신앙이 더 이상해지기 지기 시작했다.

빈야드-신사도 계열 이단들을 조사하면 영적 족보가 그려진다. 그냥 갑자기 거짓 능력이 생기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나 대부분 먼저 사탄의 거짓 은사를 받은 사람으로부터 안수를 받음으로 같은 영적인 능력을 얻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이전에 쓴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속에 그들의 안수 족보가 설명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 불법적인 안수는 안수 받는 사람에게 이익이 전혀 없다. 오히려 악신을 받는 저주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사진을 보니 안수한 목사들은 모두 WCC를 지지하는 목사들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자들이다. 정치인 윤석열의 대권에 대한 꿈은 이제 사라진 것과 같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자들의 안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신약시대의 안수는 세례, 선교사 파송, 목사 안수, 집사 안수, 장로 안수(모두 남자들, 절대 여자 아님) 등에 국한된다. 야고보서는 고침을 위해 성도들이 서로 기도하라고 한다. 야고보서의 가르침이 병고침의 은혜를 구하는 오늘 날의 성도의 신앙적 자세이다.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낳으리라"(막 16:18)

이 내용을 오늘 날의 신자들의 병고침을 위한 성경의 가르침으로 직접 적용하면 안된다. 만일 이 내용을 현대 교회에 직접 적용할 것이면 그 문장 속의 전체를 다 적용해야 한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18)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라는 특별계시를 선포하는 표적으로서 축사는 이제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기도에 대한 응답의 모습으로 귀신이 떠나는 은혜가 나타난다고 보아야 한다. 표적으로서 귀신추방과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의 긍휼로서 귀신이 떠나는 것은 모양이 다르다. 현실적으로 드라마틱하게 사람이 거품을 물고 쓰러지게 하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귀신추방, 즉 축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단이다.

새 방언, 즉 배운적 없는 이방인들의 언어를 성령의 역사로 구하면서 복음을 설명하는 현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뱀을 집어 올리고 독을 마셔도 죽지 않는다는 내용의 뜻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대로 시연하는 미국의 은사파 목사들 가운데 매년 죽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손기철과 같이 안수하여 병을 고치고 귀신을 추방하려는 사람들은 위의 모든 것들을 다 시도해야 한다. 그러나 위 성경의 내용은 지상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위에 교회를 처음 세우던 때에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하신 일이었다. 교회설립 완성과 성경 66권 완성 이후에는 사라졌다.

현대의 유명한 목사들이 손을 얹고 이적을 도모하거나 능력과 복을 빌어주는 행위는 우리의 신앙을 혼잡하게 한다. 조금 있으면 벌어지는 고3 수험생을 위한 안수기도 행사도 마찬가지이다. 담임목사의 영권강화 사역으로 전락할 뿐이다. 목사의 팔뚝을 타고 신령한 기운이 흐르는 것도 아니고 목사가 하나님께 속한 능력과 복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칼빈은 이단에 빠졌다가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안수했다. 다시 세례를 베푸는 것이 비성경적이므로 하나님의 교회가 그 사람을 환영하고 축복하는 뜻으로 안수기도를 했다. 그 전통을 따라 이단에서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재세례하지 않고 안수기도하는 것은 지금도 타당하다.

그러나 윤석렬이라는 정치인은 이단에 빠졌던 적도 없고, 현재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그리스도인도 아닌 사람에게 안수하는 것과 영혼이 없는 개에게 안수하는 것은 다른 일일까?

대체 왜 승하하신 종교 제왕의 장례식장에 모인 제왕의 길을 꿈꾸는 유명한 목사들이 그 정치인에게 안수기도 했던 것일까? 자신들이 하나님의 복을 부리는 영계의 거장들이라는 망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의 복을 부리는 능력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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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ㅕ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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