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설교에서 구약 시편을 폄하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 저의 진정한 의도를 전하기 위해 부연설명하는 내용의 글입니다) 

과거 청교도들이 시편 찬송을 많이 불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칼빈도 그랬다고 합니다. 지금도 청교도 신학을 추구하는 교회들은 시편 찬송과 십계명 찬송을 주로 부르고 있습니다.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나쁘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에는 두 가지 면에서 십계명 찬성과 시편 찬송 중심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첫째, 신약 성도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노래를 더 많이 노래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제사가 있기 전 구약 성도의 노래를 여전히 예배의 중심으로 삼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시편의 가사는 성령이 직접 지은 가사입니다. 성령이 나쁜 내용의 가사를 만들었을리가 없습니다. 성령이 제일 좋은 내용의 가사를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그 당시 상황에서 제일 좋은 성도의 노래였습니다. 그때는 아직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대속의 죽으심이 일어나지 않았던 때입니다. 여전이 동물의 피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강조되었던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의 성도의 찬송의 중심은 다음과 같은 내용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1)죄인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2)악인을 벌주시는 하나님

3)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내리시어 자기 백성을 먹이고 살리는 하나님

4)하늘의 태양도 자기 백성들을 위해 멈추시게 하는 하나님

5)요단강을 멈추게 하시는 하나님

6)십계명과 율법준수를 성도의 신실함으로 인정하고 기뻐하시는 하나님

구약시대 성도의 찬송은 이런 내용의 노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이 일으키신 기사와 이적 중심의 찬송이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루는 시편 찬송에만 거의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청교도 목회 교회들의 예배는 조금 부적절합니다. 그들이 더 중요한 것을 찬송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죄에서 해방되고 영원한 영생을 누리는 신약의 성도에게는 구약의 성도들이 알지 못하여서 부를 수 없었던 새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를 부르면서 예배드리는 것이 신약 성도의 마땅한 신앙입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이 신약 성도의 의무입니다.

시편 찬송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피 제사의 공로를 찬송하는 새 노래를 부르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진정한 신약 성도의 찬송이라는 것입니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9절)

왜 천국의 성도들이 성자 하나님을 새 노래로 찬송한다고 했을까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는 이전에 없었던 새 노래, 구약 성도들이 알지 못했던 새 노래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새 노래의 핵심은 죄로 죽은 자기 백성을 다시 살려내시기 위해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자기의 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셨다는 내용이 신약 성도의 가장 중요하고 영원한 찬송이어야 합니다.

제가 시편 찬송 6개를 골라서 각각의 1절의 가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 기울이시사 곤고한 내 심사를 통촉하옵소서”

“주의 이름이 어찌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 하늘위에 높이 두셨도다”

“세상 나라 군왕들은 왜 분노하는가 어찌하여 헛된 일을 왜 경영하는가”

“여호와여 언제까지 날 잊으십니까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겠나이까”

“여호와여 도우소서 이인생중에서 경건하며 충실한자 없어지나이다”

“내가 누워자고 깸은 주가 붙드심이요 천만인이 나를 쳐도 두렵지 않으리”

성령이 지은 가사이니 오죽 좋은 내용입니까? 그러나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과 죽으심과 부활이 일어나기 이전 상황에서 가장 좋은 최고의 노래였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영원히 구원받은 신약의 성도에게는 이런 내용들 이상의 더 중요한 노래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아직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자기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어 영원히 하나님 백성으로 회복시키신다는 명료하고 선명한 찬송의 가사가 없습니다. 그런 내용의 신학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명료한 표현과 문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의 내용을 가사로 하는 노래들만으로 매 주일 예배를 드리고, 시편 찬송 이상의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을 찬송하는 새 노래 중심으로 찬송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계명 찬송의 가사도 보았습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고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매 주일 십계명의 내용을 가사로하는 노래를 부르면 그리스도의 피 제사 중심의 찬송, 신약의 성도의 핵심적인 노래를 언제 해보겠습니까? 십계명 찬송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모두 동등하게 중요하지만, 구약을 신약의 관점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빠집니다. 찬송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구약의 내용을 신약과 그리스도 중심으로 다시 조명하지 않고 구약의 정신 그대로 노래하면 부적절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리스도를 감추는 음모가 될 수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 친히 사람이 되시어 자기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 백성으로 회복시켰다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찬송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표현하는 노래입니다. 그것이 신약 교회의 찬송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시편과 십계명 가사를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음악적 기법이 500년 전 중세 유럽 사람들의 문화와 예술입니다. 500년 전 중세 유럽 사람들이 발전시킨 문화와 예술이 저급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202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하고 특별하여 특별한 자세로 배우지 않으면 소화할 수 없는 음악이고 예술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우리가 하나님 믿으면서 계발하고 발전시킨 문화와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옳습니까? 우리에게 없는 것, 마치 방언기도 은사라는 것을 받아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처럼, 우리에게 너무도 생소한 500년 전 중세 유럽 사람들의 문화와 예술을 배워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는 것이 맞습니까?

장차 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도 우리가 예수님 믿으면서 발전시킨 문화와 연관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아담에게 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고 관리하라는 사명을 주셨으나 아담이 실패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우리에게 주신 사명도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믿으면서 거듭난 이성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발전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가 거듭난 이성과 의지로 하나님 안에서 발전시킨 문화의 일부도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의 일부로 편입된다고 봐야 합니다. 많은 개혁신학자들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완전히 생소한 새하늘과 새땅이 어느 우주에서 내려온다고 보지 않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계발하고 발전시킨 우리의 문화와 예술로 하나님을 섬기고 노래해야 마땅합니다. 우리에게 너무도 생소한 왜 500년 전의 중세 유럽 사람들이 발전시킨 음악을 지금 우리가 어렵게 배워서 찬송을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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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