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신학의 선구자 윌리암 퍼킨스의 책 <황금사슬>(1591년, 라틴어)에서 최초로 조직화되어 도입한 거짓 행위언약 개념이 1647년에 완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둘을 비교해 보자.

“행위언약은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언약이고 ... 그 조건은 율법을 완성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고,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이다. 십계명은 율법의 축소판이요 행위언약이다.” (William Perkins, "A Golden Chain:..." The Works, vol 1, 32. 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48에서 재인용)

“2. 행위 언약: 사람과 맺으신 첫 언약은 행위 언약이었는데, 거기에서 완전한 개인적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과 그 안에서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2)

창조 당시 아담이 하나님의 자녀였다는 사실, 또한 영생과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상태였음을 부정하는 행위언약 개념은 명백한 이단사상이다. 그것이 처음 출현하고 약 50년이 지났을 때에는 불행하게도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신학자들 대부분이 그 이단사상에 물들어 버렸다.

그래서 1640년대에 개최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참석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신학자들 가운데 이단적인 행위언약 사상이 신앙고백에 삽입되는 것을 기를 쓰고 반대한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사탄이 종교개혁자들의 수고를 다시 비웃어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기독교 신학이 크게 망가져 버렸다. 행위언약 사상이 들어서면 반드시 행위언약을 완성하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식이 주장되게 된다.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이 따라오게 된다. 웨신서에 행위언약 사상이 기술되었으므로 원죄를 해결하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식, 즉 능동순종 개념도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다. 

과연 웨신서에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이 기술되어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답이다. 청교도주의자들은 웨신서 11장에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에 관한 진술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의 이 내용이다.

“3. 전적인 은혜성: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순종과 죽음으로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얻는 모든 자들의 빚을 완전히 갚으셨고 그들을 대신하여 그의 아버지의 의를 정당하게, 실제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만족시키셨다.”(웨신서 11:3)

능동순종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완벽하게 실천하여 천국 영생의 자격인 의를 획득하여 먼저 자신에게 적용하고 이후 우리 믿는 자들에게 적용하여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 내용 어디에도 그런 내용이 없고, 단지 그리스도께서 순종으로 성부 하나님의 의의 기준을 완전하게 만족시키셨다는 내용만 있다. 지극히 성경적이고, 칼빈적이고, 서철원적이고, 정이철적이다.

능동순종 개념은 잉글랜드 내전이 끝난 후 회중주의 청교도 올리버 크롬웰로 인해 모든 주도권을 장악한 회중주의 청교도들이 웨신서를 버리고 자신들만의 신앙고백으로 작성한 <사보이 선언>속에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전체 율법에 대한 능동적 순종과 그리고 그들의 전체 의로움을 위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의 전 가에 의해 그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 그 믿음 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Savoy Declaration(영문) 11장 1항 번역)

그리스도의 모세의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과 십자가의 고난, 이 두 개를 믿는 신자에게 칭의가 주어진다는 것이 회중주의 청교도들의 능동순종의 핵심적 개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는 죄가 용서되고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로는 의가 우리에게 덧입혀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웨신서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천국 영생의 자격인 의를 획득했고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용서했다는 진술이 없다. 왜 청교도주의 이단성을 가진 사람들은 웨신서에 능동순종 개념이 있다고 우기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단지 ‘순종’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순종과 죽음으로”(웨신서 11:3)

청교도주의 이단성을 가진 자들은 길을 걷다가, 성경을 읽다가, 밥을 먹다가 순종이라는 단어가 보이면 무조건 능동순종으로 연결시키는 병증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순종과 죽으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는 웨신서의 진술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삶으로 아담의 반역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만족을 내내 드리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칭의를 얻기 위한 순종이 아니었다. 이미 의로운 분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반역죄(또는 하나님 섬기기를 거부한 불순종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고 만족을 드리는 차원의 순종, 즉 죄용서를 얻기 위한 순종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를 흘리시기 전에 성부께서 자기에게 맡긴 백성의 죄의 용서를 선포하실 수가 없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으로 인해 내내 만족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의 죗값으로 그리스도가 자기의 생명까지 드리니 하나님께서 완전히 만족하시고 더 이상 우리의 죄를 묻지 않기로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순종과 죽음으로”(웨신서 11:3)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는 웨신서의 진술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칼빈은 그리스도가 순종생활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죄의 간격을 제거했다고 가르쳤다. 서철원 박사도 그리스도의 순종생활이 아담의 불순종을 하나님께 속상(배상)하여 죄인들을 의롭게 만들었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는 복종(순종)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는 이를 위해 평생 동안 복종을 실행하셨다(소제목).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묻기를 그리스도는 어떻게 죄를 없애 버리며,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없애며, 의를 얻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하여 은혜와 친절을 품으시게 만드셨느냐고 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데 곧 그의 복종(순종) 생활 전체에 의하여 우리를 위해 이 일을 성취하셨다는 것이다.”(기독교강요, 2.16.5)
 

“그는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아담의 불순종을 속상하여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만들었다 (롬 5:17-19) 그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사망에서 돌이켜 생명 곧 영생에 이르렀다 (롬 5:21).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이 의이기 때문이다.”(서철원, 교의신학전집 4: 그리스도론, 165)

그리스도께서 순종과 죽으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만들었다는 웨신서의 진술은 율법 순종으로 의로움을 만드시고 십자자의 죽음으로 죄용서를 만들었다는 청교도 이단사상과 아무 연관이 없다.

또한 이 표현이 웨신서에 삽입되게 된 과정을 보면 그리스도가 율법으로 의를 얻어 전가했다는 이단사상을 우리의 올바른 청교도 믿음의 조상들이 얼마나 혐오했는지 알 수 있다. 행위언약 개념이 거의 만장일치 분위기 속에서 수용되니 자연히 그리스도가 행위언약을 성취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방식인 능동순종 구원론이 대두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인 의를 획득했다는 가르침이 성경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올바른 청교도들이 많았다. 행위언약 개념 삽입과는 달리 능동순종 부분에서는 격론이 이어졌다. 어리석은 청교도 조상들은 여전히 이단적인 능동순종 사상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 소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다수는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순종과 죽으심이 우리를 의롭게 했다는 성경적인 신앙을 확실하게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능동순종 개념을 거부하는 올바른 청교도들이 이전의 국왕 제임스 1세 시대에 있었던 어떤 사례를 제시하였다. 패트러스 몰리나이우스(Petrus Molinaeus, 1568–1658)와 틸레누스(Tilenus), 이 두 사람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들의 논쟁이 매우 컸으므로 당시 국왕 제임스 1세가 직접 나서서 정리하였다. 제임스 1세는 자신이 다스리는 영토 안에서 이후 다시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사상을 주장하지 말고, 토론하지 말라는 칙령을 선포하였다 (Lobert Letham, The Westminster Assembly, 39).

제임스 1세가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능동순종 개념은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고, 공교회의 어떤 종교회의에서도 다룬 적이 없는 내용이고, 어떤 교부도 가르치지 않은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능동순종은 사이비 사상이니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청교도 조상들 다수가 이단적인 행위언약 개념에 속아버렸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능동순종 개념의 사이비 성을 분별하는 청교도들이 많았다. 만일 우리의 청교도 조상들이 능동순종마져도 웨신서에 도입했으면, 지금 우리는 마귀에게 멱살 잡혀서 끌려다니는 비참한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는 이런 저런 청교도들이 모두 뭉쳐 국교회를 대적하여 이겨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능동순종을 주장하는 이단성있는 청교도들과 단절하고 쫓아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처음부터 국교회와 입장을 달리하는 모든 종교개혁 세력이 하나로 뭉치기 위해 소집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죽으심으로”라는 표현 안에서 능동순종 이단사상을 신봉하는 청교도 조상들이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며 스스로 만족하도록 방임하는 느슨한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이 표현이 다시 수정되어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으심으로”라고 변하여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이단성있는 청교도 조상들은 그것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였고 마음에 두고 있었다. 탁월한 군대 지도자이며 자신들과 같은 노선의 청교도인 올리버 크롬웰이 군권과 정권을 장악하자 그들에게 유리한 세상이 도래하였다. 그들은 웨신서를 버리고 자신들만의 신앙고백 <사보이 선언>을 따로 작성하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음과 같이 능동순종 신앙을 정확하게 표현하였다.

“그리스도의 전체 율법에 대한 능동적 순종과 그리고 그들의 전체 의로움을 위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의 전 가에 의해 그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 그 믿음 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Savoy Declaration(영문) 11장 1항 번역)
 

 

김재성 교수 등 청교도주의 이단성있는 자들은 웨신서에 능동순종이 기술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거짓말이다. 합동에서는 서문강, 서창원, 김효남 교수 등이 공개적으로 능동순종을 주장한다. 능동순종 사이비 사상을 배격하는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때 능동순종을 옹호하기 위해 2021년에 출간된 김재성 교수의 책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공개적으로 지지및 옹호 의사를 기술하는 장문의 추천사를 작성했다. 

2021년 106회 합동 총회가 청교도들의 능동순종 칭의-구원론 신학의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이대위 보고를 수용했으므로 이 분들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치가 수행될 것으로 보인다. 능동순종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을 때 긴급하게 김재성 교수의 이 책을 출판하여 보급한 정대운 목사에게도 어떤 조치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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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