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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방언을 계속 하되 뜻과 의미를 구하지 말고 그 자체를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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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방언을 계속 하되 뜻과 의미를 구하지 말고 그 자체를 즐기면 된다?
  • 정이철
  • 승인 2021.10.06 0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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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의 은사에 대한 본문을 읽었다. 역시 우리를 혼동에 빠지게 하는 난해한 구절들이 많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1>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

이 구절은 표면적으로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께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기도하는 것이 방언의 은사라고 가르치는 것 같다.

그러나 모순되는 내용이 이 속에 들어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자”라고 하지 않고 “방언을 말하는 자”라고 하였다. 성경적으로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성령이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사람의 두뇌와 혀를 움직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게 하는 현상이다. 방언이 이방인들의 실제 외국어를 뜻하는 단어이므로 배운 적이 없는 이방인들의 외국어를 성령이 구사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 날의 방언기도는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께 은밀하게 기도하는 하늘의 언어라고 주장되고 있으므로 그것을 지지하는 본문이라면 “방언으로 기도하는 자”라고 해야 맞다.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하지 않고 방언으로 (사람에게) 말한다고 했다. 모순이다.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도 매우 난해한 내용이다.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한다는 내용은 인간에 대한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내용이다. 성경의 인간관은 육체와 영혼의 결합으로 작동하는 인격 중심의 인간관이다.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기 전까지 영혼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이 육신과 분리되어 별도로 작동하는 개념은 이방종교의 유체이탈, 그리고 불건전한 기독교 신비주의로 규정되는 입신 등의 현상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각각 창조하시고 둘을 결합시키심으로 인격이 되게 하셨고, 육신이 죽기 전까지는 인격으로 사는 것이 정상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인격이 아닌 영혼의 단독적인 활동에 대해 성경은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라는 내용도 모순이다.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께 자기에 관한 또는 복음에 관한 또는 세상사에 관한 어떤 비밀을 말한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는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땅이나 하늘에 대해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비밀이 있다면 무엇일까?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과 생각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눈앞에 있다는 것이 성경의 전체적인 가르침이다.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고전 14:44)

덕이라는 말은 곧 유익이라는 뜻이다. 방언이 개인의 유익을 위하는 은사라는 본문의 내용은 모든 성령의 은사들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다는 다른 성경의 가르침과 대치된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위 구절은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목적이 마치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공동의 유익을 위해서 성령의 은사들이 주어졌다고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 영어성경들 대부분이 공동의 유익(the commend good 또는 the profit of all)이라고 번역하였다.

성령의 은사를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은 없다. 그런 면에서 자기의 덕을 세우기 위해 방언이 주어졌다는 위 본문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3>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을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고전 14:14)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이 방언기도의 은사를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내용은 사도 바울 자신과 방언기도라는 것이 아무 연관이 없다는 전제 위에서 한 말이다. 이때 바울은 방언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더 맞다.

“혹시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게 된다면”(고전 14:14,쉬운성경)

바울이 자신의 신앙과 방언기도 은사라는 것의 관련성이 없다는 전제하에 한 말이다. 결코 바울이 방언 기도를 하는 사람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왜 이런 모호한 내용들이 들어와 있을까? 이런 이상한 내용을 이해하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는 당시 고린도교회는 이단이 가르친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속아 이미 심각한 신앙의 혼란에 빠져있는 상태였음을 감안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에 이어 곧 바로 쓰여진 고린도후서의 내용에 의하면 그때 고린도교회는 이단사상을 배운 후유증이 매우 심각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

고린도교회가 이미 이단이 전하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분별하지 못하고 받아드려 심각한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고후 11:13)

고린도교회에 잠입하여 방언의 은사 등에 대해 요설을 전파하여 교회를 크게 미혹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사도를 가장하는 거짓 사도들이라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4,15)

신자들이 이단들에게 속은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사도는 말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광명의 천사처럼 위장하기 때문에 쉽게 분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고후 11:20)

이단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들이 가르치는 것을 쉽게 수용하고 더 나아가 그들을 존경하고 후원하는 신자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고 있다.

고린도전서의 방언의 은사에 대한 가르침은 이와 같이 어렵다. 그러나 기독교의 방언은 하나님이 사람들(교회)에게 복음에 대해 말하는 특별한 계시적인 은사임을 분명히 이해하면 방언으로 인한 혼란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하다. 방언, 방언통변, 예언은 교회에 하나님이 직접 계시를 주시던 시절에 있었던 특별계시적인 은사들이다.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고전 14:28-30)

방언과 예언에 대한 논쟁이 지금 교회에는 해당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방언, 방언통변, 예언 등의 은사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교회에 전달하는 특별계시적 은사였다.

만일 지금도 하나님의 계시가 교회에 내려오고 있다면 더불어 방언과 예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 66권으로 계시가 종결된 후 새로운 계시가 없다는 것이 진리이면, 성경의 방언과 예언은 우리 시대의 교회와는 무관한 옛날의 은사이다. 성경의 방언과 예언에 대해 궁금하고 더 알고 싶으면 주변의 다른 목사들과 신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계시가 나타나고 있는지 보면 된다. 지금 더 이상의 하나님의 계시가 없다면, 방언과 예언도 이미 교회에서 사라진 것이다. 

성경은 예언이라는 말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하나는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계시로서의 예언이고 또 하나는 이미 주신 계시로서의 예언(성경 66권)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설명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후자의 예언은 새로운 계시라 아니고, 지금 교회에서 역사하고 있다. 

지금 계시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 직통계시자들이다. 그들에게서 방언, 방언통변, 예언, 환상, 음성, 입신 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거짓 영에게서 비롯되는 거짓 계시 현상들이다.

혹자는 방언을 하면서 그것의 뜻이 해석되어 계시가 되지 않도록 해석이나 의미를 구하지 말고 그냥 방언 그 자체를 즐기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독이 든 사발을 벌컥 마시지는 말고 냄새를 즐기고 손가락으로 조금 찍어서 혀에 바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최근 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Ph.D)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고,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2021년 5월 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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