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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민 총회 당시 능동순종 문제에 대한 총대들의 주장과 결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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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민 총회 당시 능동순종 문제에 대한 총대들의 주장과 결의 내용
  • 임진남
  • 승인 2021.10.14 11: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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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문서는 로버트 레담이 지은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기술한 자료이므로 사적이거나 사변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로버트 레담,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역사. P&R)

1643년 9월 6일 제47차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칭의에 대한 부분에서 능동순종을 제기한 것 때문에 1643년 9월 6일 (수) 47차 회기부터 1643년 9월 12일 (화) 제52차 회기끼지 총대들의 논의가 계속되었다. 웨민의 원래 11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나 공덕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우리의 주되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것은 대단히 건전한 교리이며 지극히 넘치는 위로가 된다. 더 상세한 것은 칭의에 관한 교리서에 표명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총대들의 제안된 개정안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의롭게 된다. 즉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겨지는데, 죄 사함을 얻는 것은 우리 자신의 행위나 공덕에 대해서도 아니고, 그러한 것들에 의해서도 아니라 값없이 오직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우리의 주되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분의 온전한 순종과 만족이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가되고, 자신의 의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오직 믿음으로 이해되고 의지된다는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의 교리는 건전한 교리이며 지극히 넘치는 위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계속해서 자신들의 죄악을 행하고 있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39개 신조에 대한 제안된 개정이 검토되고 있었을 때 명확한 차이점들이 칭의에 대한 광범위하게 토론에서 표면화되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칭의로 우리에게 전가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46p)

리차드 바인드는 자신은 능동순종을 가르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가 표면적으로 일곱 번이나 논의되자 스코틀랜드 위원들의 요구로 응하여 열리게 되었다. 결국, 승인된 개정안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만족이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가됨”으로 진술되었다. 이러한 진술은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의 전가를 고수하는 자들을 만족시켰다.

(필자는 “whole”이라고 하는 이 단어의 번역을 현재 능동순종을 주장하는 일부교수들의 번역처럼 우리말 “모든”이라고 하는 것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모든 율법을 문자 그대로 다 순종하였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온전한 순종이라고 하는 번역보다는 “모든 순종”이 더 능동순종주의자의 주장에 부합된다고 여겨진다. 능동순종주의자들은 “온전한 순종”을 “모든 순종”이라고 계속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은 그리스도의 순종이 나뉜다는 개념, 즉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의 전가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을 피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진술은 또한 그리스도의 순종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충족시키는 것과 동일시되도록 했다. 이러한 진술은 양측으로 하여금 그것을 그들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하는 타협안이었다. (46p)

칭의에 대한 이러한 타협은 신앙고백서과 대요리문답 양쪽에 적용됐다. 그러나 “온전한”(whole)라는 말은 신앙고백서와 대요리문답 양쪽에 빠졌다. 이 총회의 문서들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에 관한 언급이 없게 되었다. 왜 이 말이 빠졌는지에 대한 이유는 여전히 불확실한 채로 남았고, 역사적으로 확고한 판단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 웨민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된 칭의에 대한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만족으로 이루신 의가 그들에게 전가시키심이다.” (웨민신앙고백서 11장 칭의)

그러나 회중파 청교도들- 존 오웬과, 토마스 굿인을 비롯한 사람들이- 1658년 사보이 선언을 통해 자신들이 주장했던, 웨민문서에 빠졌던 능동순종을 첨가하여 칭의 개념을 만들게 된 것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웨민문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 능동순종을 찬성하는 자들과 반대하는 자들의 주장을 서로 살펴보면서 과연 이 신학적 토론이 오늘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능동순종을 찬성하는 자들과 그들의 주장.

-호일, 워커, 배서트, 헐-

이들은 그리스도는 그분의 수동적인 순종(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라 능동적인 순종에 의해서 성취된 율법의 종국, 곧 완성하는 종국이시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하나님께 빚지고 있었으며, 오직 반율법주의 자들만이 그것을 의문시할 것이다 (헐의 주장).

-토마스 굿인-
굿인은 처음에 능동순종을 반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지만 결국 존 오웬과 함께 사보이 선언에 동참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스도는 신인 위격이시기 때문에 율법을 준수할 의무가 없으시다”(토마스 굿인)

토마스 굿인은 아담의 죄와 그리스도의 순종의 대조 때문에 능동순종이 롬 5:12-19에 나온 것으로 여겼다.
 

능동순종을 반대하는 자들과 그들의 주장

대표적으로 가테이커와 바인즈이다. 바인즈는 칭의는 오직 죄사함에 있다고 주장했고, 성경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피에 칭의를 결부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카테이커는 그리스도의 수동적인 순종이 전가되며, 죄 사함은 칭의 다음에 오는 별개의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함께 동조한 사람들은 프란시스 우드콕, 테일러였다.

가테이크와 바인즈, 우드콕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완전히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서 율법을 성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하는데 그가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바인즈는 능동순종의 의의 전가를 의문스럽게 생각했다.

다니엘 휘틀리는 “그리스도는 인간 위격이 아니시고 율법은 자연들에 부여된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부여됐으므로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위해서 율법을 성취하셨으며, 그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으셨다.”

독자들의 이해와 지면상 능동순종 찬.반의 주장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루기로 한다. 왜냐하면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는 자들의 논의는 총회에 기록된 대로 총회가 이 일로 어수선했다고 보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이 구속의 중심에 있다는 합의가 있었다고 총회는 보고한다.

이 능동순종의 찬.반 논의에 참여한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처음에 능동순종을 반대한 사람이 나중에 능동순종을 찬성하는 쪽으로, 그리고 찬성한 사람들 가운데 반대자들의 의견에 간혹 동조하고 서로 발전시켜 나간 것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입장을 말하는 것을 맞다고 일방적으로 여기면 사변에 빠질 염려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쪽에 있지만, 간혹 잘못 주장하는 내용이 발견되면 그것에 대해서는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때론 격렬하게 논쟁하면서 능동순종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반율법주의라고 비난하는 화살도 쏟아부었다는 것도 발견된다.

성경을 보면 전통적인 개혁교회의 칭의는 롬3:24, 5:9-10, 갈3:13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칭의를 직접적으로 다룰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피 흘림이었다. 성경은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구약 율법에도 모든 것은 피로 말미암아 정결하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심지어 성례도 죽음을 말씀하시고 있다.

최근에 한국교회 안에서 특히, 합동교단이 능동순종에 대하여 성경적이지 않다고 한 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율법을 지켜 자신도 의롭게 되어야 하며 영생을 얻을 권리를 획득하였다고 하는 것을 주장한 능동순종을 주장한 사람들에게 내려진 결정이었다.

우리가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과거 웨민에서 능동순종을 주장한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사변적이고 이단적인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이다. 가테이크는 자신이 능동순종을 비판하는 주장을 너무 심하게 하여 이단적이라고 지적을 받자 다음날 바로 사과하였다. 이런 자세가 오늘 우리가 신학을 논의하고 서로의 주장을 배려하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필자는 능동순종이 과연 성경적인 근거에서 세워졌는지 묻고 싶다. 웨민총회에서 논의되고 있었던 상황속에서 능동순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언제는 그것이 과연 성경에 근거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능동순종을 지지하는 일부 교수나 목사들은 합동의 서철원 교수님께서 이상한 주장을 한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이미 우리 모든 조상들이 능동순종에 대하여 서로 이견을 나누었기 때문에 그것은 서로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후대에 더 바른 신학의 유산을 남기기 위한 노력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주 분명한 것은 장로교 신앙고백서와 문서들에서는 능동순종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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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훈 2021-10-15 03:30:10
원래 칼빈주의나 알미니안주의 에서는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칼빈주의 에서는 일단 A가 선택을 받으면 A는 반드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A가 선택되었는지 이 세상에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주장하기를, “A가 선택(구원) 받았다면 A는 선택받은 자처람 살아야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면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것인가를 논함에 있어서 율법이 필요한 것을 칼빈은 역설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칼빈은 제네바에서 신정정치를 구현함에 있어서 율법주의자, 유대주의자로 불릴만큼 율법에 철저했습니다. ‘A가 예수를 믿고 단번에 의롭게 되어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칼빈주의가 아닙니다. ‘내가 선택받은 자인가 ?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가 ?’를 주님 앞에 설때까지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에게 구원은 과정이지 사건이 아닙니다. 필자가 능동순종을 전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율법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율법의 창시자이시고 구원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의의 대상으로 구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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