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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106회 총회(2021년), 미주세이연과 이인규씨 이단성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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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106회 총회(2021년), 미주세이연과 이인규씨 이단성 규정
  • 교회와 신앙/장운철
  • 승인 2021.11.15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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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회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보고 그대로 채택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에 대한 연구보고서

I. 연구 경위

“미주 세이연의 이단성”과 “이인규 씨의 이단성에 대해 답해 달라는 충남노회장(주명갑 목사)의 헌위안을 제104회 총회(2019)가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 이첩함으로써 이 연구에 착수하였다.

본 연구는 2018~2019년에 이단 연구 기관인 미주 세이연(세계한인기독교 이단대책연합회, 대표회장 김순관 목사)과 한국 세이연(진용식 목사) 사이에서 일어났던 삼위일체론 논쟁'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감리교 평신도 이단 연구가인 이인규 씨(예레미야 이단연구소)는 미주 세이연의 연구위원이다.

이 논쟁과정에서 한국 신학계에서 권위가 있는 한국장로교신학회와 개혁주의신학자들은 미주 세이연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한국 세이연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Ⅱ. 연구 보고

1.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의 삼위일체론 요지

1) 미주 세이연의 삼위일체론
①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다.” “예수님은 신적 존재로서 하나님이시지만, 예수님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인 흔적이 성경에는 없다.”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을 일컫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②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아니시다.”

③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아니시다.”

④ “만일 '예수가 여호와다' 라고 한다면, 양태론적 삼위일체로서” “성부수난설'을 만들게 된다.”

2) 이인규 씨의 삼위일체론
① “예수는 여호와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리스도는 여호와라고 할 수 없다.”

② “어떻게 그리스도가 여호와가 될 수 있는가?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라고 표시된 명칭이 단 한번이라도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경우는 없다. 만약 그렇게 대체시키면, 보낸 자와 보내심을 받은 자가 동일 인격이 되고 만다.”

③ “예수가 여호와와 동일한 인격임을 말하는 사람들은 단일론자들과 양태론자들이다.

2.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의 왜곡된 삼위일체론

1)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하여
① 예수 (혹은) 그리스도는 여호와가 아니다.
미주 세이연은 예수와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지만 예수와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인규 씨는 예수는 여호와라고 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는 여호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여호와'라는 이름은 성부 하나님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에게 있어서 예수 (혹은) 그리스도를 여호와라고 하면 삼위일체론 이단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한 정통신학에서는 여호와라는 단어는 성경의 문맥에 따라 해석되어야 하는데, 두말할 나위 없이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이다.

구약에서 히브리어 ‘야웨' 혹은 ‘아도나이’는 ‘여호와'를 대신하여 사용된다. 신약에서 그리스도가 주’ (퀴리오스)로 불리는데, 이는 구약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되심'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마 15:22; 눅 2:11; 고전 2:8; 빌 2:11; 행 10:36; 계 4:8, 11.).

이런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시편 68편 18절을 에베소서 4장 8절과, 이사야 45장 22~24절을 빌립보서 2장 9~11절과 관련시키면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한다. 즉, 사도 바울은 구약에서 여호와는 주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가리키고, 동시에 신약에서 주로서의 '여호와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한다. 이처럼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와 달리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주’(여호와)시다.

게다가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 이사야 44장 6절의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하나님과 요한계시록 1장 8절의 “주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즉, 구약의 주님으로서의 여호와는 신약의 주님으로서의 그리스도와 동일하시다.

그런데, 미주 세이연은 요한계시록 1장 8절의 “주 하나님”을 성부하나님이라고만 단정한다. 정통신학에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계 1:8)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마침”(계 22:13)을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한다.

또한, 미주 세이연은 칼뱅의 “기독교 강요 어디를 찾아보아도 ‘그리스도는 여호와다' 라는 메시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뱅의 신학적 사유는 전적으로 미주 세이연의 주장과 달리한다:

“이 예언자가 앞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참되신여호와시요, 의의 원천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기독교강요」, 1. 13. 9);
“그러므로 결국 그리스도께서 바로 여호와 이신 것이다”(「기독교강요』, I. 13. 13);
“모세와 선지자들이 여호와라고 증거한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사도들이 주장하였다” (「기독교강요」, I. 13. 20.);
“여호와라는 명칭은 어디서나 그리스도께 적용 된다"(「기독교강요」, I. 13. 23.). 더 나아가 칼뱅은 “여호와라는 이름이 어떤 특별한 설명 없이 그리스도에게 적용된 것을 바울이 밝히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고린도후서 12장 8절의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에서 “주'라는 말은 '여호와'라는 말 대신에 사용되고 있음이 확실하다”(「기독교강요』, I. 13. 20.)라고 말하고 있다.

② 예수와 그리스도는 분리된다.
정통신학의 기독론에 따르면, 예수와 그리스도는 분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인격의 단일체 안에 신성과 인성 모두를 소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의 기독론은 네스토리우스처럼 '하나의 인격'이 아닌 '두 인격을 주장함으로써 심각한 신학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그들은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해서 사유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여호와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리스도는 여호와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인규 씨나 예수와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다”는 미주 세이연의 주장은 칼케톤 신조(451)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성은 “혼합됨이 없고, 변화됨이 없고, 분리됨이 없고, 분할됨이 없다.” 달리 말하면, “온전하고 독특한 두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을 끊을 수 없게 한 인격 안에 결합되어 변경되거나 혼성이 되거나 혼동될 수” 없다(눅 1:35; 골 2:9; 롬 9:5; 벧전 3:18; 딤전 3:1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8장 2절).

어떻게 예수와 그리스도가 분리될 수 있는가? 특히 이인규 씨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함으로써 예수는 신성이고 그리스도는 인성이라는 교리를 만든다. 이러한 이인규 씨의 접근은 그야말로 비성경적이요, 이단적 사슬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가 곧 그리스도요, 그리스도가 곧 예수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로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③ 예수 그리스도를 여호와라고 하면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다.
미주 세이연은 그리스도를 여호와라고 주장하는 자나 예수를 여호와라고 주장하는 자를 양태론주의자로 간주한다. 이렇게 미주 세이연은 “구약에서는 여호와로 나타나셨던 분이 신약에서는 예수로 나타났다면 이 말은 결국 양태론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예수는 여호와시다' 혹은 '그리스도는 여호와시다' 라는 말은 결국 성부수난설을 만들어내는 사상이요, 보내는 자나 보냄을 받은 자를 하나의 인격으로 만듦으로 양태론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동시 이인규 씨도 그 궤를 같이 한다.

과연 미주 세이연와 이인규 씨의 주장처럼 예수 (혹은) 그리스도를 여호와라고 주장하면 양태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근거로 복음서의 저자들(마 3:3; 막 1:3; 눅 3:4; 요 1:23)은 세례 요한을 소개하면서 이사야 40장 3절 말씀을 인용한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이와 관련하여 4복음서에서는 세례 요한이 '여호와의 길’ 곧 예수 그리스도의 길’ 내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등장한다. 이처럼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의 논리대로라면 4복음서의 저자들도 불가피하게 양태론주의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주 세이연을 비롯한 이인규 씨와의 삼위일체론 논쟁 과정에서 한국 세이연에 힘을 실어 주었던 한국장로교신학회와 개혁주의신학자들에 따르면, 예수 (혹은)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으로 간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여호와라고 해도, 혹은 그리스도를 여호와라고 해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의 개체성을 드러내는 데는 아무런 오류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여호와라고 부른다고 해서 인격적 구별이 되지 않는 양태론이라 할 수 없다. 여기서 만약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의 주장이 옳다고 가정하다면, 정통 삼위일체론은 불가피하게 일신론 이단인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에 빠지게 될 것이다.

④ 예수 그리스도의 자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주 세이연은 “성경에는 예수가 여호와로서 '스스로 있는 자' (자존자)라고 말씀하는 내용이 없다”고 하면서,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으로서 성부 하나님(만)을 가르킨다”고 단정해 버린다. 미주 세이연은 구약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출 3:14)는 말씀을 신약의 '나는 ~이다' (에고 에이미, 요 6:35, 8:12, 10:7, 9, 10:11, 11:25, 14:6, 15:1, 5.)와 연속선상에서 조명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자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주 세이연의 주장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자존자가 아니라면, 불가피하게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자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책 『삼위일체론』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자라고 말하기 위해서 '삼위일체론적 창조론'을 전개한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도 삼위일체론적 창조론을 제시한다: “성부, 성자, 성령이 되시는 하나님은 (...) 태초에 무에서 모든 것, 즉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을 지으시기를 기뻐하셨다” (제4장 1절). 그와 동시에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381)에서도 “만물은 그(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고백한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자존성(출 3:14)과 관련해서 칼뱅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여호와라는 명칭은 어디서나 그리스도께 적용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존재는 신격(신성)에 관한 한 자존하시는 분이되기 때문이다”(『기독교강요」, I. 13. 23.).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자존성은 성자의 영원한 '신성'을 인정하는 것으로써 성자의 영원성을 의미한다.

2) 성령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하여
미주 세이연은 정통신학이 “예수님을 여호와라고 한다면 성령도 여호와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함으로써, 여호와라는 명칭은 성부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결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과 칼뱅을 비롯한 개혁신학의 전통에 따르면, 여호와라는 이름은 성부 하나님만의 이름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공동의 이름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여호와 되심과 성령의 여호와 되심은 부인될 수 없다.

따라서 미주 세이연과 달리 칼뱅에 따르면, “모든 예언의 저자이신 성령이야말로 참되신 여호와라고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I. 13. 15.).
 

Ⅲ. 연구 결론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에 따르면, 구약의 '여호와' 라는 명칭은 단수이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만의 이름으로 간주된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예수와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며(미주 세이연), 그리고 '예수는 여호와이지만 그리스도는 여호와가 아니라 (이인규 씨)고 주장한다.

동시에 그들에 따르면, '성령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의 이름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는 여호와라는 명칭과 관련해서 구약의 지평에만 머물러 있어서 신약의 지평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의 삼위일체론 및 기독론은 정통신학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칼뱅을 비롯한 개혁자들의 신학은 교회사에 나타났던 '양태론적 군주신론' 내지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으로 환원될 것이다.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의 주장은 정통신학보다는 오히려 아리우스적 삼위일체론 내지 네스토리우스의 기독론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주 세이연과 이인규 씨의 삼위일체론 및 기독론은 정통신학과 상당히 다른 것으로써 '이단성'이 있다고 사료된다.
 

Ⅳ. 참고 문헌

권성수,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이신가?」. 기독교포털뉴스(2018. 11. 5.).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5.
미주 세이연, 「진용식 목사에 관한 연구 보고서」, 2018. 9. 20..
--------------, 「 진용식 답변에 대한 반박문」. 2018. 10. 1.
이인규. 「여호와의 명칭 문제」. 예레미야 이단연구소. 2019. 3. 10.
, 「하나님의 다른 예수의 이름」. 예레미야 이단연구소. 2019. 1. 30.
진용식. '미주 세이연'의 천박한 연구에 답한다」. 2018. 9. 27.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서울: 크리스천다이제스트, 1993.
칼뱅, 존, 「기독교 강요-상』.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8.
벌코프, 루이스, 『벌코프 조직신학』. 서울: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7.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교회와신앙> 장운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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