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9 03:17 (수)
정대운과 그 집단 속에 저주받을 (갈 1:9) 율법숭배가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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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운과 그 집단 속에 저주받을 (갈 1:9) 율법숭배가 넘칩니다
  • 정이철
  • 승인 2022.01.06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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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정대운 목사(삼송제일교회)의 황금사슬 설교 9회입니다. 계속 부탁드립다.

답변>
오늘 내용은 정말 심각합니다. 몇 번에 걸쳐서 연재하겠습니다. 

 

4:50~5:33분>
“그 죄를 회개할 때 기준이 뭡니까? 율법을 어기는 거에요.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리스도를 어기는 게 아니라 잘 생각해보면 율법을 어기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뭡니까? 그리스도의 죽음은 뭐냐 그러면 율법을 만족시키는 것이 그리스도 죽음의 의미에요. 맞잖습니까?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는 율법을 만족시키는 것이고, 칭의는 뭡니까? 율법에 입각한 판결이 칭의입니다. 성화는 뭡니까? 율법을 지켜 나가는 게 성화인거에요. 우리가 실질적으로 이 땅에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의 핵심적인것 중에 하나가 율법이란 말입니다.” (정대운)

율법이 인간과 우주가 창조될 때부터 영원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의의 기준으로 인류의 역사 속에 등장했다는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서 설교하는 내용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율법은 인간과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난 후 죄로 인해 죽은 하나님 백성을 다시 살리고자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롬 3:19)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기 아니 하느니라.” (롬 5:13)

인간은 자기의 행위로 자신을 의롭게 만들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고 율법을 보내셨습니다. 율법에게는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 자체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 그렇게 되기 위해 먼저 율법을 보내셨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니라.” (롬 3:21)

이와 같이 성경은 율법이 인간의 범죄 이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죽은 인간을 살리기 위해 먼저 율법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대운이 추종하는 청교도들은 율법은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가르쳤습니다. 청교도들은 사람이 율법과 함께 창조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율법으로 구원하려고 사람과 율법을 동시에 창조했다고 가르쳤습니다.

정대운 목사가 초청하여 설교하기도 했던 카나다 사람 코르네리스 프롱크도 청교도주의자인데, 그는 자신의 책 <도르트신조강해>에서 아담이 율법과 함께, 율법 안에서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태초에 율법이 아담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고, 아담을 그 율법을 잘 지켜 자기를 구원받게 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것은 율법이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프롱크, 도르트신조강해, 257)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율법을 마음에 새겨주셨습니다.” (프롱크, 257)

그리고 아담의 마음에 기록되었던 그 율법이 나중에 시내산에서 모세에 의해 돌판에 기록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청교도들의 율법 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시내산에서의 율법조차도 이스라엘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 율법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차이는 돌판에 새기셨다는 것입니다.” (프롱크, 258)

청교도들에게 율법은 하나님의 완전한 의의 기준이었습니다. 창조 때 그것이 아담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었고, 아담은 그것(율법)을 지켜서 자신을 구원받게 했어야 했다고 모든 청교도들이 믿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에 율법을 완전하게 실천하여 자신과 우리의 영생의 자격, 즉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인 의를 얻어 우리에게 전가했다는 능동순종 신학이 나온 것입니다. 청교도들에게 능동순종 사상을 절대로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우리에게 의를 선사하였으므로 그리스도가 십자가로는 우리게 줄 수 있는 더 좋은 것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십자가로는 단지 우리가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게 만들었다는 둘러치기 신학을 만들었습니다. 십자가로는 단지 지옥형벌에서만 구원되고 천국에 못간다는 사상은 이만희 등의 이단사상보다 더 악한 이단사상입니다. 

율법이 태초부터 아담과 함께 세상에 왔었는지, 아니면 아담이 범죄하고 난 후 죄로 죽은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비하고자 먼저 보내셨는지에 대한 이해의 문제는 정말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속하는 내용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율법과 함께 창조했다는 주장은 성경을 파괴하는 이단사상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지적하고 죄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게 만드는 율법과 함께 아담이 창조되었다면, 그것은 곧 아담이 율법의 지적과 정죄를 받아야 할 죄성을 가진 죄인으로 창조되었다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율법이 아담의 죄가 벌어지고 난 후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어 다시 살게 하려고 보내신 것으로 확신하고 믿어야 합니다. 아담과 모든 백성들이 죄로 인해 죽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용서 받는 길을 내시기 위해 먼저 율법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또 다른 모양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어 죄용서를 받아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어 자유한 그리스도의 자녀들이 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그리스도에 대해 이와 같이 바르게 성경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진리들을 우리가 자연스럽게 소유하게 됩니다.

1)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있는 의의 기준은 아담의 범죄 이전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범죄 후에는 그리스도를 믿어 죄용서 받은 상태입니다. 율법 그 자체, 또는 율법을 완전하게 실천하는 것이 의의 기준이 아닙니다.

2) 회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처음에 주신 과분한 은혜에 만족하고 즐거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교만과 욕망에 사로잡혀 선악과를 범함으로 자기의 인격으로 하나님께 반역을 시도한 죄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용서받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께 반역하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대신 저주 받으심으로 우리를 더 이상 죄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또는 처음부터 죄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만들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4) 칭의는 그리스도가 대신 저주받으심으로 우리에게 더 이상 죄가 남아 있지 않는 것으로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5) 성화는 죄용서 받은 사람에게 내주하시며 죄를 이기는 십자가의 권세를 적용하는 성령의 사역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가는 것입니다.

율법에 대해, 그리고 복음과 율법의 관계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면 이와 같은 중요한 진리들이 저절로 우리 속으로 들어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대운은 모든 중요한 하나님의 진리를 비틀었습니다. 전부 율법을 위한 것으로, 율법 중심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정대운이 뭐라고 설교했는지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이 땅에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의 핵심적인것 중에 하나가 율법이란 말입니다.” (정대운)

“죄를 회개할 때 기준이 뭡니까? 율법을 어기는 거에요.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리스도를 어기는 게 아니라 잘 생각해보면 율법을 어기는 거란 말이에요.” (정대운)

“그리스도의 죽음은 뭡니까? 그리스도의 죽음은 뭐냐 그러면 율법을 만족시키는 것이 그리스도 죽음의 의미에요.” (정대운)

“칭의는 뭡니까? 율법에 입각한 판결이 칭의입니다.” (정대운)

“성화는 뭡니까? 율법을 지켜 나가는 게 성화인거에요.” (정대운)


이와 같이 율법 중심으로 우리의 신앙을 설명하고 평가하는 것이 왜 이단사상인지 설명하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롬 7:1)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만 우리에게 미치는 힘을 가집니다. 우리가 죽으면 율법은 더 이상 우리에게 힘을 미치지 못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롬 7:4)

구원 받은 성도는 이미 율법 앞에서 죽은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말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율법의 저주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할 때,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이미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오직 산 사람에게만 힘을 미치므로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율법의 저주를 받고 죽어버린 성도들에게는 율법이 더 이상 맥을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천국의 영혼들이 율법 준수하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을 아무리 보아도 천국의 영혼들이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지키면서 산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천국의 영혼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을 때 이미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이 다시 부활할 때 함께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율법에 대한 이미 한번 죽어버린 사람들에게 율법은 더 이상 말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이미 무덤에 들어갔다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 사람으로 탄생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요구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롬 6:4)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5)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살아난 성도는 율법의 권세와 통제권 밖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 율법을 지켜야 한다느니,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느니 ... 하는 말들은 아무 해당사항이 없는 말들입니다. 율법의 요구대로 그리스도의 몸이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정대운이나 그 추종자들은 우리를 무율법주의자로 몰라는 마귀의 영감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율법의 권세 아래 있었던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과 함께 죽고 다시 그리스도의 몸이 부활되실 때 우리는 새 사람으로 재창조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재창조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지배 하의 옛 사람이 아니고 새 사람입니다. 새 사람으로  재창조된 성도는 더 이상을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마음대로 죄짓고 욕망을 추구하면서 살 수있는 자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육신과 이성의 힘으로 율법 준수하던 옛 사람 시절에 비하면 상상할 수없는 거룩함과 신령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 (in the new way of the Spiri)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롬 7:6)

육신과 이성의 힘으로 율법 준수하던 것이 성령의 새로운 방식으로 대체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그리스도인들 속으로 임재하셨습니다. 성부께서 성령을 십자가를 지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십자가의 능력이 적용되므로 율법의 조문보더 더 근본적인 하나님의 요구와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율법 조항들을 지키게 하시는 정도가 아니고, 율법의 정신을 성취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십니다. 신약 성도에게 내주하시는 성령이 하시는 일을 구약 성경은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겔 11:19)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6)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으로 율법준수를 했던 옛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방식, 즉 성령의 힘으로 율법의 정신과 요구를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구약의 율법의 갑질을 대신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갈 5:18)

정대운처럼 지금도 율법 중심으로 신앙생활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목사들은 마귀에게 속한 거짓 선생입니다. 자신도 지옥으로 떨어지고 다른 사람들도 천국에 가지 못하게 막는 악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고 동시에 율법을 중시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자들을 저주 받을 이단(갈 1:9)이라고 선언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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