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운 목사의 황금사슬 설교 9회에 대한 소감 6

정대운 목사(이후 정대운)의 황금사슬 설교 9회에 대한 소감을 이어가겠습니다. 
 


13:02~14: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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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이 죄 때문에 절망한 사람 ... 이 절망한 사람들은요, 내 노력으로 이 죄를 극복할려고 하는게 아니라, 예수님에게 극복할려고 달려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 계속 설교를 들어도, 또 그 죄를 짓고 ... 너무 너무 두려워요. 그럼 목사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나는 어찌하오리까? ...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말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내 죄를 어찌하오리까?’, ‘나의 구원의 문제를 어찌하오리까?’라고 간절하게 외치는 사람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네와 네집에 구원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간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사도들이나 우리 주님이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없어요.

그러면 복음을 선포하기전에 간절하게 만들라! 그러면 율법으로 얼마나 조사놔야(해설: 쪼아놔야) 사람들이 그냥 긴장하고 두려워서 주님한테 찾아가냐 이 말이에요.” (정대운)
 

그리스도의 죄용서 복음을 선포하기 전에 먼저 구약의 진노와 저주의 율법으로 사람들을 쪼아놔야 죄인이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스를 찾아 나선다고 하시네요. 신약 성경의 핵심을 거스리는 그릇된 설교입니다. 신약의 사도들의 행적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진노와 저주의 율법을 먼저 전하여 사람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스스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한다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사역은 어떠했는지 봅시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행 8:4)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행 8:2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행 8:35)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행 8:40)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행 14:7)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행 14:21)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 16:10)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행 20:24)

사도들은 시종일관 그리스도의 죄용서와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힘을 다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잘 먹히게 만들기 위해 먼저 율법으로 신자들의 마음을 쪼아놓아야 한다는 정대운의 설교는 거짓된 주장입니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말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내 죄를 어찌하오리까?’, ‘나의 구원의 문제를 어찌하오리까?’라고 간절하게 외치는 사람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네와 네집에 구원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간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사도들이나 우리 주님이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없어요.” (정대운)

정대운은 신약의 사도들이 먼저 사람을 율법으로 쪼아 놓은 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러한가 보기 위해, 정대운이 말한 사도행전 16장의 그 말씀이 나오는 부분을 찾아보았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찾아보니, 그 간수는 전혀 율법으로 쪼아지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발이 착고에 채워진 상태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바울을 구출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지진으로 감옥을 흔들어 버리셨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지진 때문에 놀라 깨어서 보니 감옥의 문이 열러 있었습니다. 간수는 이미 죄수들이 모두 도망한 것으로 착각하고 그 사태를 책임질 수 없으므로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자신이 여전히 감옥 속에 있다면서 급히 자결을 만류하였습니다.

간수의 마음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간절한 상태가 되게 한 것은 율법선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감옥 문을 열어 버린 하나님의 지진, 즉 사도 바울이 그 지역에서 선포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하나님께서 친히 확증하여 주시는 놀라운 이적 때문이었습니다. 간수는 하나님이 지진까지 일으켜서 복음 전하는 바울 사도를 보호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간절하게 사모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간수와 사도 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행 16:30)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17:24~17:27분>
“회심하지 않은 자에게 율법은 회초리고, 회심한 자에게 율법은 걸어가는 지팡이다.” (정대운)

정대운이 말한 회심이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을 회심이라고 여기고 말 해 보겠습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율법이 죄인에게 회초리 역할을 하고, 구원 받은 후에는 갈 길을 안내하는 지팡이 역할을 한다고 정대운은 설교했습니다. 매우 성경에 반하는 가르침입니다.

구약 성경 어디를 보아도 구원 받지 못한 사람에게 율법이 회초리 역할을 한다는 증거나 흔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정대운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율법이 하나님 믿고 죄를 짓지 말도록 만드는 회초리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구약 시대에 율법이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믿지 않은 상태에서 율법의 회초리를 맞으면서 하나님 앞으로 인도되어진 사람을 하나라도 찾아오면 제가 제일 맛있는 짜장면 사 드리겠습니다. 그런 적이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하나님 백성의 삶의 원리인 율법을 지키도록 요구받았습니다. 구약 시대 동안 율법을 지켰던 모든 사람들은 장차 성육신하시어 우리의 죄를 친히 자기 몸으로 속죄하실 계획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 이미 구원을 받은 하나님 백성이었습니다.

정대운이 성경 어디를 보고 율법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 회초리 역할을 했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구약 시대 동안 율법은 하나님을 믿어 구원 얻은 사람에게 하나님 백성 답게 살도록 촉구하는 회초리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율법을 지키지 않자 바벨론 군대를 보내어 예루살렘을 멸망시켜버리시기까지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죄악된 삶을 사는 자기 백성을 향한 율법의 회초리였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 대신 율법의 회초리를 죽을 정도로 맞으신 사건입니다. 우리의 죄가 너무 심각하였으므로 율법의 회초리가 변하여 율법의 몽둥이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율법의 몽둥이 타작을 당하여 모두 죽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대신 그리스도에게 율법의 몽둥이질이 가하심으로 그리스도가 대신 죽고 우리는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율법의 몽둥이질을 넘치도록 당하여 죽으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약 백성에게는 더 이상 율법의 회초리나 율법의 몽둥이질이 없습니다. 만일 지금도 율법의 회초리와 몽둥이질이 남아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대해 완전하게 죽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대운의 율법이 우리의 길을 안내하는 지팡이라는 설교는 복음을 내팽개치는 거짓 주장입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율법의 요구와 정죄를 자기 몸으로 다 받으시고 죽으시는 순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약 백성은 율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율법과 성도의 관계가 마치 마당의 소와 초가지붕 위의 닭과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로 직접적인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회심한 자에게 율법은 걸어가는 지팡이이다” (정대운)

정대운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약의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이 율법의 요구대로 죽었을지라도 아직 율법에게서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정대운의 기독교 신앙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 한번 죽어서는 아니되고 두 세 번 정도 더 죽어야 되는 모양이네요.

구원받은 성도를 인도하는 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신약의 성도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율법의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함께 성령이 역사하시면 더 이상 이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구약의 율법을 전혀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구원 받으면, 신비하게도 율법이 하지 말라는 나쁜 일을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율법이 하라고 하고 강권하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일을 위해 힘쓰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성령에 의해 적용되므로 죄짓는 것을 즐거워하는 옛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의를 기뻐하는 새사람 살기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6)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24)

정대운의 오매불망 율법, 자나깨나 율법, 기승전결 율법, 전후좌우 율법 ...정말 심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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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