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자유주의자들과 교회연합운동가들과 또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넓어진 선교관’은 정당한가? 교회의 사명(mission)은 복음 전도 외에 사회정치활동을 포함하는가?

‘교회의 선교’란 무슨 뜻인가?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얻은 성도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즉 교회는 하나의 단체이다. 또 선교(宣敎)란 문자적으로는 ‘교(敎)를 선전하는 것’이라는 뜻이지만, 영어의 미션(mission)은 ‘특수한 임무’ 즉 ‘사명(使命)’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교회의 선교란 단체로서의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이다. 성도들의 모임인 단체로서의 교회의 사명이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뿐 아니라 사회정치활동도 포함하는가? 이것이 문제의 초점이다.

전통적 신학의 정리대로, 교회의 삼대 임무는 예배와 영적 건립과 전도이다. 예배는 교회가 하나님을 향해 가지는 기본적 임무이다. 교회 즉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과 경배를 드려야 한다(요 4:23; 엡 1:14).

영적 건립은 교회가 자체를 향해 가지는 임무이다. 교회는 교인들을 영적으로 성장시켜 온전케 해야 할 임무를 가진다. 이를 위하여, 주께서는 교회에 직분자들을 주셨고, 교훈, 기도, 권징, 교제, 봉사, 구제의 일을 하게 하신다(마 28:20; 행 2:42; 엡 4:11-12). 특히 초대 교회에서 헌금의 용도인 구제는 교인들 중에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다(행 6:1-2; 고전 16:1-2; 고후 8:4; 9:1).

전도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세상을 향해 가지는 임무이며 이것이 주께서 세상에 남겨두신 제자들 즉 교회에 주신 특수 임무, 즉 사명(使命, mission)이었다. 마태복음 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마가복음 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요한복음 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또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의 계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전도의 일이었다. 마태복음 9:13,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전통 본문).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3: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6:38-40,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마가복음 1:38,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어떤 이들은 주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일이 사회봉사활동에 해당하며 그것이 주의 사명의 일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은 그의 가르치심과 전파하심의 일과 분리된 것이 아니고 그 일에 종속된 부차적인 것이었고, 더욱이 주께서는 병자들을 고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단지, 긍휼과 능력이 많으신 구주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실 때 불쌍한 병자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고쳐주신 것이었고, 또 그러한 치료의 기적들을 통해 자신의 신성(神性)을 증거하셨던 것이다.

또한, 병고침을 받은 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믿음을 가지고 예수께 나아왔던 자들이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병자들을 고치기 위해 찾아다니신 것이 아니고 그에게 찾아온 자들을 고치셨고, 또 그에게 나아왔던 자들은 대부분 그를 믿었던 자들이었다(마 8:2, 5, 10, 16; 9:2, 22, 29). 그러므로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일은, 오늘날 교회가 교회 안에 병든 성도들을 돌아보는 일이나 혹은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병자들을 치료하는 행위에 해당하지, 독립적인 의료 활동이나 교회의 사회정치활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자신의 사명 즉 선교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J. 그레셤 메이천은 말하기를, 선교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한 분 하나님과 인류의 보편적 죄악성과 하나님의 진노, 그리고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로버트 홀 글로버도 이렇게 말했다: "교회의 참 사명은 주님의 사명과 동일한 것, 즉 국내에서나 먼 나라에서나 간에 잃어버린 자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서나 그들을 찾아 구원하는 것이었고 또 언제나 계속 그래야 한다. . . . 초대교회는 오늘날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는 사회적, 도덕적, 정치적 상황들과 문제들을 직면하였지만, 사회 복음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고, 오직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어떤 변명도 없이 개인 구원의 유일한 복음을 전파하였다."

해롤드 린젤은 “선교와 전도는 중심에서 동의어이다”라고 말했고, 알랜 티펫도 선교를 “잃어버린 자들을 그에게로 인도하여 구원얻게 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이라고 정의하였다. 또 1970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선교가 영원한 구원을 증거하고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선언의 초안자 피터 바이엘하우스는 “고전적, 전통적 선교 개념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사회정치활동이 교회의 임무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첫째, 주께서는 사회정치활동에 관여하지 않으셨다. 도리어 그는 형의 유업을 나누어 달라는 어떤 이의 요청을 거절하셨고 자기를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을 피하셨다. 누가복음 12:13-14,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요한복음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또 그는 빌라도 총독 앞에서 그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증거하셨다. 요한복음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둘째,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회정치활동을 명령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그는 그들에게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를 명령하셨다. 복음서들의 마지막 부분들과 사도행전의 첫부분은 이 사실을 밝히 증거한다(마 28:19; 막 16:15; 눅 24:47-48; 요 20:21; 행 1:8).

셋째, 주의 제자들 즉 초대 교회는 사회정치활동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이 확증하는 바다. 사회정치문제에 대한 신약성경의 교훈은 소극적이고 온건하다.

신약성경은 성도들이 사회의 질서를 존중하고 위정자들에게 복종하고 규정된 세금을 바치고 또한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칠 뿐이다(롬 13:1-7; 엡 6:5-9; 골 3:22-4:1; 딤전 2:1-2; 벧전 2:13-20).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의 대 사회적 말씀들은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에게 해당되었던 것이므로, 오늘날의 세속사회에 직접 적용되지 않고 일차적으로 교회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宣敎, mission)는 주 예수께서 교회에 명하신 전도의 사명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주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얻게 하는 사명이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에서 수행해야 할 가장 귀하고 중대한 임무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 가운데서 선교에 대한 이 전통적이고 성경적인 개념이 변질되었다. 선교를 단지 죄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활동으로 보지 않고, 교회가 세상 속에서 행해야 할 사회적, 정치적 책임과 활동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소위 넓어진 선교 개념은 잘못된 개념이다.

그것은 교회의 사명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다. 이와 같이 많은 교회들이 자신의 사명을 이해함에 있어서 성경적, 전통적 입장에서 크게 이탈하였다. 교회의 사명에 대한 개념의 변질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에 무엇을 첨가하려는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서 이탈하는 중대한 오류이다.

많은 순진한 성도들이 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선교를 위한 후원자가 되지만, 우리가 선교에 대한 순수한 성경적 개념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고 역사적 기독교가 믿고 행해온 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파함으로써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다 구원해내어야 한다.

사회정치활동은 아무리 좋은 일일지라도 주께서 주신 이 숭고한 전도의 임무에 첨가될 수 없다. 교회가 어린이집, 학교, 병원, 고아원, 양로원, 교양강좌, 노인대학 등을 설립하고 경영하는 것도 옳지 않다. 교회의 사명은 오직 이 한가지, 즉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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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목사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총신대학 신학연구원, 훼이스(Faith) 신학대학원(Th.M. in N.T. 미국 필라델피아), 밥 죤스(Bob Jones) 대학교 대학원 졸업(Ph.D. in Theology,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공부했다. 계약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합정동교회(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담임목사이다. 신구약 성경을 주석하여 인터넷(http://www.oldfaith.net/01exposit.htm)을 통해 보급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견실한 설교를 준비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신학자이다. J. G. 메이천, 『신약개론』을 비롯하여 많은 10권 이상의 외국 신학자들의 좋은 저서들을 번역하여 한국 교회에 보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