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신서 속의 행위언약은 율법주의 가짜 복음이다. 사람에게 자신의 구원을 위한 공덕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하나님으로 왜곡하는 거짓 신앙을 전파한다. 웨신서를 통해 장로교회의 언약신학으로 공식화된 행위언약 개념은 구원을 위한 인간의 공덕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철저한 율법준수라고 가르치는 구라복음이다.

“2. 행위 언약: 사람과 맺으신 첫 언약은 행위 언약이었는데, 거기에서 완전한 개인적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과 그 안에서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 (WCF 7:2).

“1. 아담에게 주신 법: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행위 언약으로서 한 법을 주셔서 그것에 의해 그와 그의 모든 후손들을 인격적인, 완전한, 정확한, 그리고 영속적인 순종의 의무 아래 두셨고; 그것의 실행에 근거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그것의 위반에 근거하여 죽음을 경고하셨고; 그것을 지킬 힘과 재능을 그에게 부여하셨다. 2. 도덕법(Moral Law): 이 법은 그의 타락 후에도 계속 의(義)의 완전한 규칙이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에 의해 십계명에 그렇게 선언되었으며 두 돌판들에 기록되었는데; 처음 네 계명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그리고 그 나머지 여섯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담고 있다” (WCF 19:1,2).

하나님께서 아담이 자신을 구원하도록 완전한 의의 규칙이 되는 법을 주시며 그것을 지키면 영생을 주신다고 언약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담은 실패하였다. 그리고 그 구원을 위한 완전한 의의 규칙은 훗날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주어졌다고 한다. 아담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지켰어야 할 법과 모세의 율법이 같은 내용이라는 것이다. 아담은 모세의 율법과 같은 내용의 법을 지키지 못해 구원을 얻지 못하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율법주의는 사도 바울이 목숨 걸고 막았던 거짓신학이다. 율법주의란 무엇인가? 구원을 얻는데 율법이 직접 작용한다는 사상이 율법주의이다. 그리고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이 유지된다는 신앙이 율법주의이다. 위 웨신서가 가르치는 아담의 구원에 대한 내용은 정확하게 율법주의에 해당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아담에게 율법준수의 공덕으로 자기를 스스로 구원하라고 하셨다면 하나님은 율법주의자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이 율법주의자라면, 율법주의에 대항하여 목숨걸고 싸웠던 사도 바울의 신앙과 인생은 대체 뭔가? 이단이었는가? 사도 바울이 이단이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러면 웨신서의 저 내용은 대체 뭘까? 웨신서를 작성한 학자들이 매우 뛰어난 분들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도들처럼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정확무오한 저술을 남겼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사실 웨신서의 내용들 가운데 이것 외에 크게 잘못된 것이 없고, 나머지 내용들을 통해 우리가 너무도 소중한 교훈들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사람(들)이 쓴 글이 이 정도로 위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웨신서를 사랑한다. 매일 머리 맡에 두고 읽고, 성경보다 조금 더 읽는 편이다. 자고 일어나면 가장 먼저 웨신서를 가슴에 앉고 ‘내 사랑 웨신서! 나의 기쁨 웨신서! 내 인생의 길잡이 웨신서! 평생 머리에 이고 살고 이 세상 떠날 때에는 입에 물고 천국에까지 함께 가고 싶은 웨신서!’ ... 이렇게 노래하고 감사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웨신서 속의 이 행위언약은 율법준수를 구원의 길로 제시하므로 하나님이 원수로 여기시는 가짜 신학이다. 종교개혁 이후 율법이 구원과 직접 연관되는 거짓 신학 사상은 우르시누스에 의해 실질적으로 (처음으로) 개진되었다. 놀랍게도 우르시누스가 1563년에 저술한 대요리문답 36항에서 그 일이 시작되었다.

“율법에는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 인간과 맺은 자연 언약이 담겨 있으며, 인간은 자연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된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할 것을 요구하며, 그것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것을 약속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형벌이 주어질 것이라고 위협한다” (Ursinus, Larger Catechism, Q. 36. 존 페스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신윤수 역. 부흥과개혁사. 165).

하나님이 자연과 창조를 통하여, 아담이 율법을 준수하면(순종하면) 영생을 주실 것이라고 언약했다는 우르시누스의 자연언약 개념이 종교개혁 이후 율법과 구원을 직접 연관시키는 최초의 시도였다. 그 이전에 누가 또 비슷한 주장을 했는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우르시누스의 율법주의는 당시 그리고 이 20-30년 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우르시누스의 율법주의는 나중에 영국의 청교도운동과 결부되어 신학적인 큰 물결을 일으키게 되었다. 국교회 청교도 신학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가 새로운 방향의 청교도 운동을 점화시키기 위해 언약 개념을 크게 활용했기 때문이다.

1580년대 말에 이르러 국교회를 칼빈의 장로교회로 바꾸려는 청교도들의 개혁안은 완전히 좌절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후원을 받는 국교회 주교들의 박해로 인해 청교도들의 힘이 소진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는 청교도들에게는 영국을 떠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영국을 떠난 소수의 청교도들에 의해 훗날 신대륙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로 대표되는 청교도 회중교회 운동이 크게 일어나게 되었다.  

다수의 청교도들은 그대로 영국에 남는 길을 택하였다. 남는 길을 택한 청교도들은 다음과 같이 구분되어진다. 1)다수의 청교도들은 국교회에 남아 여전히 장로교회를 꿈꾸었다. 2)남은 청교도들 가운데 어떤 소수는 장로교회주의를 버리고 새로운 청교도 교회를 추구하는 노선으로 전향하였다.

윌리엄 퍼킨스가 2번 노선의 선두주자였다. 퍼킨스는 겉으로 체제와 제도에 대한 불만을 전혀 말하지 않고 오직 새로운 방향의 개혁운동 전략을 준비했다. 그것은 거짓된 국교회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일반 시민들의 무능하고 무기력한 영혼들이 스스로 각성되게 하는 것이었다. 의식과 신앙이 각성된 시민들로 인해 국교회가 타도되도록 도모하고자 일반 대중의 사상개혁을 추구하는 청교도 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퍼킨스는 그것을 위한 신학적 동력원으로서 다음과 같은 언약 신학을 개진했다.

“하나님의 언약은 어떤 조건하에서 영생을 얻는 것에 관한 인간과의 계약이다. 이 언약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약속과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약속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이행하면 당신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맹세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하는 약속은 그가 하나님께 충성을 서약하고 그들 사이의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William Perkins, "A Golden Chain: or the Discription of the theologie: Containing the order of the Causes of Saluation and Damnation, acording to Gods Word." The Works, vol 1, 32. 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47).

“행위언약은 완전 순종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언약이고, 이 조건은 윤리법으로 표현된다. 윤리법은 인간에게 그의 본질과 행동에서 완전한 순종을 명령하는 하나님 말씀의 부분이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금한다 ... 율법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순종을 요구하는 법과 그리고 순종과 결합되어 있는 조건이다. 그 조건은 율법을 완성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고,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이다. 십계명은 율법의 축소판이요 행위언약이다” (앞의 책, 48).

1563년에 나온 우르시누스의 대요리문담 36항의 자연언약 개념이 퍼킨스에 의해 행위언약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개진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구원을 위한 공덕을 만들라고 요구하셨고, 그것이 곧 순종 또는 율법준수였다는 점에서 우르시누스와 퍼킨스의 이론이 동일하였다. 

1563년 우르시누스가 처음으로 율법주의 언약 신학을 말할 때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으나 1591년 퍼킨스가 같은 내용을 말하니 영국 청교도들에서 폭팔적인 반응과 관심이 일어났다. 당시 영국에서는 사람들의 정신과 의식을 바꾸는 개혁운동만 가능한 상황이었고, 그것을 위한 신학적 깃발이 되기에 좋은 개념을 퍼킨스가 제시했기 때문이다.

퍼킨스가 제시한 아담과 하나님의 행위언약 개념은 순식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주류 신학으로 굳어졌다. 1590년대 중반에 나오는 스코클랜드의 신학자 롤록의 언약에 관한 글에서 퍼킨스의 사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잉글랜드의 청교도 신학자들은 더 앞다투어 퍼킨스의 신학을 흡수하였고 그것을 자기의 사상으로 발전시키고자 힘썼다. 

1602년에 사망한 퍼킨스의 신학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전체 영국에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모인 모든 청교도 신학자들도 퍼킨스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신학이 형성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작성한 신앙고백서에 퍼킨스에 의해 개진된 행위언약 개념이 기술되게 되었다. 우리는 존 페스코가 말한 것처럼, 웨신서의 내용이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한 것이 아니고 당시까지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견해들이 취합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존 페스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신윤수역, 155). 웨신서는 결코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한 문서가 아니다. 

웨신서가 말하는 창조 시 아담의 상태를 우리가 정당한 신앙 지식으로 받는다면, 참으로 심한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존 페스코 등의 대부분의 행위언약 신봉자들은 아담이 임시적인 육체적 생명으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담이 하나님의 법에 철저하게 순종하면 그 공로에 근거하여 하늘의 몸, 즉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과 같이 변하게 되었다고 설정한다. 페스코를 예로 들어보자. 행위언약 신봉자인 페스코는 완전하게 순종하면 아담의 육체가 영적인 몸으로 변하고, 임시적 생명이 영원한 생명으로 변하여 하늘의 영생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한다. 

“만일 첫째 아담이 시원론적 시험에 성공했다면 아담은 의로우면, 의롭다 선언 받고, 영화롭게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아담은 여호와의 영적이고 영원한 안식의 쉼에 영구히, 흠 없이 들어갔을 것이다 ... 성령이 아담의 육적인 몸을 영적인 몸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아담에게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죄와 죽음이 들어오기전에 아담에게 이 약속을 하셨다” (존 페스코, 삼위일체와 구속 언약, 전광규 역, 380).

페스코의 말은 아담이 율법에 완전하게 순종했다면 그의 육체가 하늘의 천사들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영적인 몸으로 변화되어 하늘의 영생으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바빙크도 똑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은 타락 전에 맺어진 첫 번째 언약 안에서 인간에게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셨고, 이 명령을 완전하게 성취한 후에 비로소 영생과 하늘의 구원을 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바빙크, 찬송의 제사, 박재은역, 26).
 


대체 이런 황당한 사변이 어디에 있을까? 웨신서를 통해 장로교회의 언약 신학으로 공식화된 행위언약을 신봉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사변적인 성경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담이 정말 율법에 순종하여 그 몸이 하늘의 몸으로 변하여 영원한 하늘의 영생으로 들어갔다면, 하나님을 찬송하는 거룩한 백성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나라는 어찌 생산되겠는가? 만일 아담이 정말 율법에 순종하는 일에 성공했다면, 하나님 백성은 달랑 한 명으로 끝나고 만다. 하늘의 영생을 누리는 사람들은 결혼하여 자식을 낳은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가?

웨신서가 가르치는 행위언약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변이다. 당시 신학자들을 지배했던 엉뚱한 사변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완전한 은혜와 영생하는 몸을 주시었고 만일 아담이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아담은 자신과 같은 의로운 자녀들을 낳아 하나님을 찬송하는 백성으로 양육하였을 것이다. 그 방식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거룩한 백성들이 충만한 나라가 건설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이지 않는가?

말도 안되는 행위언약이 들어섰으니 그 다음 일은 무엇인가? 행위언약에 합당한 구원론이 들어서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행위언약에 합당한 구원자로 각색하는 작업, 즉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이다. 행위언약이 성경적이지 못하니 그 짝이 되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도 성경적이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에 율법을 준수하여 칭의(하늘의 영생의 자격)를 준비하고, 십자가에 달려 죄의 형벌을 제거하신다는 가르침이 있는가?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0).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게 하셨느니라” (히 10:14).

“하나님이 그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 25,2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 1:30).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가 정죄받지 않으려면 율법이 칭의에 기여한다는 가르침이 성경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이 칭의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강조할 뿐이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 3:11).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 3:21).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 7:19).
 

맺는 말

학교에서 배웠으므로 행위언약-능동순종을 옳게 여기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많은 논의가 진행되었고, 스스로 숙고한 후에 더 진지하게 행위언약과 능동순종을 지지하는 자세를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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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