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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에 대한 정윤석 기자의 비판은 마틴 루터를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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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에 대한 정윤석 기자의 비판은 마틴 루터를 소환한다!
  • 이창모
  • 승인 2022.12.13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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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신서 7:2, 19:1-2항은 쥐약 그 이상으로 대단히 위험한 진술
이창모 목사(제자들경배와 찬양교회 담임)
이창모 목사(제자들경배와 찬양교회 담임)

 

글을 시작하며

정윤석 기자는 자신의 Facebook에, ‘웨민고백서’라 할지라도 성경에 어긋나는 것은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정이철 목사의 글에 대해 어쭙잖은 비판 글을 올렸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전략)......합동측 목사님들은 정이철 목사의 논리대로라면 심각한 쥐약의 원리를 담은 위험한 원리를 기초로 신앙고백을 하고 순종한다는 얘기가 돼버리는 것이다. 참으로 능멸도 이런 능멸이 없다” (정윤석).

이 글은 마치 1514년 종교개혁 당시의 거의 모든 교회들이 무오한 진리라고 믿었던 로마 교황의 교서와 가르침에 정면으로 도전한 마틴 루터를 소환하고 있다. 왜냐하면 웨민고백서의 완전무오를 굳게 믿는 정윤석 기자가 웨민고백서의 잘못된 부분들을 비판하는 정이철 목사를 공격하는 것은 로마 교황의 완전무오를 믿는 어떤 이들이 로마 교황의 교서와 가르침을 비판한 마틴 루터에 대해 “교회의 통일을 파괴하는 반란자요, 주님의 포도원을 짓밟은 산돼지요, 수도원주의의 기초를 파괴한 반항심에 가득 찬 수도사로서의 묘사였다”(Justo L. Gonzalez, The story of Christianity, p. 27)라고 공격한 것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정윤석 기자의 Facebook 글에 대하여

정윤석 기자가 정이철 목사를 비판하는 Facebook의 글은 마치 기자였던 정치인 김ㅇㅇ의 ‘청담동 술자리’ 가짜 뉴스를 보는 듯 했다. 왜냐하면 기자였던 김ㅇㅇ의 ‘청담동 술자리’ 가짜 뉴스를 보면, 그가 자신 있게 말한 ‘청담동’은 실제로 서울 강남에 있는 팩트였지만, 나머지 모두는 펙트가 아니었듯이, 정윤석 기자의 Facebook의 글을 보면, 정 기자가 힘주어 언급한 ‘쥐약’은 정이철 목사의 글에 실제로 있었던 팩트지만, 나머지 모두는 펙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윤석 기자는 “쥐약”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마치 정이철 목사가 웨민고백서 전체를 쥐약으로 취급하며, 장로교를 능멸하는 것처럼 보이게 독자들을 유도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나쁜 버릇은 나쁜 기자들의 공통된 DNA인 것 같다.

정이철 목사는 웨민고백서의 잘못된 부분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하기 위해 “쥐약”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한 것은 펙트이다. 그러나 정 목사는 그 뒤에 아무리 강력한 경고를 위한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쥐약”이라는 단어가 부절절하다고 판단하고, 곧 “심각한 내용”으로 수정했다. 그럼에도 정윤석 기자는 정이철 목사의 수정 사실까지 언급하면서, 마치 정이철 목사가 자신의 주장에 대해 비겁하게 한 발 물러선 것처럼 독자들을 오도하려는 듯 했다.

그러나 정이철 목사가 “쥐약”을 “심각한 내용”으로 수정한 까닭은 표현상의 지나침을 겸손하게 인정한 것이지,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거나 약화시킨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정이철 목사는 그 동안 웨민고백서의 우수함과 위대함을 깊이 인정하고 찬양하면서도, 시종일관 웨민고백서의 1%의 문제점을 경고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능동순종을 인정하는 것처럼 진술하는 웨민고백서 7장 2항과 19장 1,2항일 것이다. 필자도 정이철 목사의 주장에 목숨을 걸고 동의한다. 왜냐하면 정이철 목사의 주장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의 성패가 달려 있는 중요한 문제이며, 그러므로 주님의 교회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윤석 기자의 글 <“웨민은 ‘쥐약’ 의 원리 따르는 위험한 문서” 망발 파문>에 대하여

정윤석 기자는 Facebook에 이어, 자신의 개인 웹싸이트(기독교포털 뉴스)에 <“웨민은 ‘쥐약’ 의 원리 따르는 위험한 문서” 망발 파문>이라는 제목으로, 정이철 목사의 ‘능동순종’에 대한 엉터리 비판을 쏟아냈다. 아래는 그 중 일부이다.

“문제는 정이철 목사가 장로교 목회자, 게다가 예장 합동측 소속이라는 점이다. 특히 합동의 경우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및 대소요리문답을 신구약 성경의 도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믿을 信 따를 從: 믿고 따라 좇음)한다고 선서해야 목사, 강도사, 장로가 될 수 있다. 정이철 목사도 그렇게 선서를 하고 안수를 받았다. 그런 점에서 정이철 목사의 ‘웨신서–쥐약’ 발언은 심각한 파장을 일으킬 조짐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자신은 물론 모든 합동교단 사역자들이 쥐약이 담긴 교리를 신종한다고 매도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정윤석, 기독교포털 뉴스).

 

 

정윤석 기자는 “합동의 경우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및 대소요리문답을 신구약 성경의 도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믿을 信 따를 從: 믿고 따라 좇음)한다고 선서해야 목사, 강도사, 장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서 정이철 목사가 “자신은 물론 모든 합동교단 사역자들이 쥐약이 담긴 교리를 신종한다고 매도”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는 정윤석 기자의 교묘한 말장난으로, 오히려 정윤석 기자가 자신의 기사를 읽는 독자들과 웨민고백서, 그리고 웨민고백서를 놓고 선서하는 장로교 사역자들과 이를 공부하고 신봉하는 장로교 신자 모두를 매도하고 있다.

정이철 목사가 웨민고백서를 1%의 쥐약 원리라고 비판한 것은 능동순종을 지원하는 것처럼 진술한 웨민고백서 7장 2항과 19장 1,2항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럼에도 정윤석 기자는 마치 정이철 목사가 웨민고백서 전체를 쥐약으로 매도하는 것처럼, 또한 장로교 합동은 쥐약으로 도배가 된 웨민고백서를 그대로 신종한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장로교가 웨민고백서를 놓고 선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로교는 성경을 하나님의 완전무오한 말씀으로 믿지만, 웨민고백서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동일하게 완전무오한 것으로 믿는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장로교가 웨민고백서를 놓고 선서할 때에는 암묵적으로 인간이 작성한 웨민고백서에 하나님의 완전무오한 말씀인 성경에 반하는 오류가 발견된다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이 전제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서 하는 신성한 선서의 자리에서 인간이 작성한 웨민고백서에 있을지도 모르는 오류까지 신종한다고 선서하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맺어주신 배우자를 만나는 결혼 예배 때, 신랑 신부는 성경에 손을 얹고 엄숙하게 부부됨을 서약한다. 그러나 이들이 손을 얹고 서약하는 성경은 번역 성경이다. 번역 성경에는 비록 1%에 해당한다 할지라도 여러 가지 오역들이 있으며, 드물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 교리에 반하는, 그래서 영혼에 쥐약 같은 심각한 오역도 제법 있다. 그럼에도 번역 성경에 손을 얹고 서약하는 신랑 신부는 번역 성경에 있을지도 모르는 쥐약 같은 1%의 오역까지 신종한다는 고백으로 결혼 서약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정윤석 기자는 마치 정이철 목사가 그렇게 유도하고, 장로교는 바보같이 정이철 목사가 유도한 것처럼 1%의 쥐약 같은 오류까지 신종한다고 선서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정윤석 기자의 이런 말이야말로 웨민고백서의 1%의 비성경적 오류를 지적하는 정이철 목사와 성경에 부합하는 웨민고백서를 신종하는 장로교를 싸잡아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정윤석 기자는 아래와 같이 유명한 신학교수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정이철 목사가 이들의 명성을 모르는 채, 겁도 없이 이들에게 망언을 서슴지 않은 것처럼 비판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자신과 같은 교단 소속인 합동측의 서창원 목사와 이웃 교단인 합신의 이승구 교수를 향해 “하나님과 기독교 신앙과 교회를 위해 속히 청소되어야 할 이단들이다”라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정윤석, 기독교포털뉴스).

이 비판은 또 다시 마틴 루터를 소환한다. 왜냐하면 1514년 종교개혁 당시의 마틴 루터가 로마 교황을 비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마틴 루터를 향해 하늘같은 로마 교황에게 감히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비판을 쏟아낸 것이 정윤석 기자의 비판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는 비록 당시 하늘 아래서 가장 높은 로마 교황이라 할지라도, 하늘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교황의 망언에 대해 참지 못하고 95개 조항의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정이철 목사도 이름 꽤나 알려져 있는 교수들이 쥐약 같은 ‘능동순종’을 옹호하는 망언에 대해 참지 못하고 성경대로 망언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정윤석 기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로마 교황도 서창원, 이승구 교수도, 웨민고백서를 작성한 사람들도 하나같이 허점투성이인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또 정윤석 기자는 아래와 같이 합동 총회와 정 목사가 속해 있는 소속 노회에서 정이철 목사에 대해 제재를 가하도록 은근히 부추기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정윤석 기자가 Facebook과 기독교포털 뉴스에 정이철 목사의 비판 글을 실은 숨겨 논 목적이 아래에 진술한 내용인 것 같다.

“이런 과격하고 무례한 발언을 중단하지 않는 정이철 목사에 대해 합동측은 물론 그가 소속한 노회가 차후, 어떻게 이 망언을 바라보고 대응할지도 관심사이다” (정윤석, 기독교포털뉴스).

이는 마치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민주당 차원에서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를 진지하게 다루도록 유도한 전직 기자였던 김ㅇㅇ을 보는 듯하다. 따라서 필자는 합동 총회와 소속 노회에 부탁한다. 김ㅇㅇ이 퍼뜨린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에 놀아났던 민주당처럼, 정윤석 기자가 퍼뜨린 ‘능동순종’ 가짜 기사에 합동 총회와 소속 노회가 놀아나지 않기를 말이다.
 

롬5:19은 범죄 전의 아담이 영생하는 존재였음을 확인해 준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5:19).

‘능동순종’ 교리를 주장하는 자들은 위에서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로 묘사된 예수님의 순종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신 ‘능동순종’과 십자가에서 죽으신 ‘수동순종’ 모두를 의미한다고 이해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방법에 십자가 외에 ‘능동순종’을 더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자신들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능동순종’ 교리를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에 억지로 우겨넣은 터무니없는 해석이다.

롬5:19에서 바울은 “διὰ τῆς παρακοῆς”(디아 테스 파라코에스/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에서 “παρακοῆς”(파라코에스/순종하지 아니함)를 단수로 표기했다. 이는 많은 사람의 죄인 됨이 아담의 단 하나의 불순종,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행위임을 가리키기 위함이다. 동일하게 바울은 “διὰ τῆς ὑπακοῆς”(디아 테스 휘파코에스/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에서 “ὑπακοῆς”(휘파코에스/순종하심)도 단수로 표기했다.

이 또한 많은 사람의 의인됨이 예수님의 단 하나의 순종, 즉 십자가의 죽으심을 가리키기 위함이다. 바울은 빌2:8에서도 죄인들의 구원이 예수님의 단 하나의 순종, 즉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았음을 더욱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8).

여기서도 바울은 “ὑπήκοος”(휘파코오스/복종)를 단수로 표기함으로써,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하신 복종이 단 하나의 복종, 즉 십자가의 죽으심임을 분명히 한다. 바울은 뒤이어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또 다시 이를 언급함으로써, 이 “복종”(ὑπήκοος/휘파코오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이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능동순종’ 교리가 개혁파의 정통 교리라고 주장하는 자들과 이를 추종하는 청교도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계시한 성경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자들이다. 이런 까닭에 ‘능동순종’ 교리와 이를 추종하는 ‘청교도주의’는 대단히 위험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능동순종’ 교리는 유일하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나타난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이철 목사가 <바른믿음>을 통해 ‘능동순종’ 교리에 대해, 때로 “쥐약”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사용해 가면서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능동순종’ 교리는 십자가를 부인하는 이단적인 사상이며, 그러므로 이를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없는 쥐약보다 더 무서운 이단 교리이다.

롬5:19(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에 의하면, 예수님의 죽으심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모든 사람의 죄인 됨(아담도 포함됨)을 의인되게 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아담의 범죄의 삯(사망)을 제거하심으로써, 아담과 아담 안에서 범죄한 죄인들을,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으로 되돌려 의인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아담의 죄의 삯(사망)을 완전히 제거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은혜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아담의 범죄로 인한 영사의 존재에서 영생의 존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죽으심으로 인해 아담의 죄의 삯(사망)이 제거된 결과로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졌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범죄 이전의 아담은, 아담의 죄의 삯(사망)을 제거 받은 우리와 동일하게 영생의 존재였음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웨신서 7장 2항(사람과 맺으신 첫 언약은 행위 언약이었는데, 거기에서 완전한 개인적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과 그 안에서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에서처럼 아담이 영생하는 존재로 창조된 것이 아니어서, 개인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영생이 약속된 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아담의 죄의 삯(사망)이 제거되어 하나님에 의해 ‘이신칭의’된 우리들도 범죄 이전의 아담처럼 개인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영생이 약속된 자들일 수밖에 없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러므로 ‘능동순종’ 교리는 결국 알미나안주의가 부활하여 변신한 이단 교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능동순종’ 교리를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웨민고백서 7장 2항과 19장 1,2항은 쥐약 그 이상으로 대단히 위험한 진술이므로, 마땅히 장로교회들은 머리를 맞대고 성경에 부합하게 웨민고백서 7장 2항과 19장 1,2항을 반드시 수정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완전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에 비해 웨민고백서는 완전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근거로 하나님의 교회가 믿어야 할 중요한 교리들을 이해하기 좋도록, 인간들이 일목요연하게 작성한 신앙고백서이다.

우리가 웨민고백서를 장로교회의 귀중한 신앙고백서로 삼는 까닭은 이전의 어떤 신앙고백서들보다 웨민고백서가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가장 바르게 작성되었기 때문이지, 성경처럼 완전무오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정윤석 기자는 성경을 근거로 웨민고백서에서 발견되는 비성경적인 부분들을 지적하며 비판하는 정이철 목사를 향해 웨민고백서를 모독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정윤석 기자는 알아야 한다. 자신이야말로 인간이 작성한 불완전한 웨민고백서로 완전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판단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오히려 성경과 웨민고백서을 모독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성경을 기록케 하신 성령 하나님은 완전하시지만 성경을 토대로 웨민고백서를 작성한 인간들은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들이 작성한 웨민고백서를 완전무오한 성경처럼 무비판적으로 신봉할 것이 아니라, 웨민고백서의 불완전함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완전무오한 성경에 비추어 오류가 발견되면, 계속 수정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완전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유일한 진리로 믿는 개혁주의 신학을 수호하는 길이며,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큰 유익을 가져다 준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피땀 흘려 작성한 웨민고백서를 더욱 사랑하는 길이 될 것이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잠12:13).

이창모 목사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한국 교회를 신물 나게 체험하며 갈등하다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는 교회를 꿈꾸며 1999년 김천에서 ‘제자들 경배와 찬양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창모 목사는 한국교회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이 단지 성공주의, 황금만능주의, 도덕적 윤리적 타락 등이 아니고 이미 한국교회에 만연된 잘못된 신학에 있음을 확신하고서 무엇이 바른믿음인지 신학적으로 깊이 고민하는 목사이다. 이창모 목사는 자신이 중2때 수련회에서 방언을 받았고, 대부분의 목사들이 그것을 ‘영의 기도의 언어’라고 가르치므로 의심없이 수 십년 동안 옹알거리는 방언현상으로 기도(?)하였던 대표적인 방언기도자였다. 김우현, 김동수 등이 저술한 거짓 방언을 미화하는 한심한 서적들을 접한 후 방언에 관한 깊은 신학적인 성찰을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오늘 날 방언이라고 알려진 소리현상과 성경의 참된 방언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되었다. 이전의 자신처럼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다른 목회자들과 신자들을 진정한 복음으로 돌이키기 위해 <방언, 그 불편한 진실>(밴드오부퓨리탄,2014)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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