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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종 박사의 귀한 연구의 아쉬운 점 하나는 ‘능동-수동 프레임' 자체를 배격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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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종 박사의 귀한 연구의 아쉬운 점 하나는 ‘능동-수동 프레임' 자체를 배격하지 않는 것
  • 정이철
  • 승인 2022.12.2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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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종 박사님께서 그리스도의 능동적-수동적 순종 교리에 대하여 애써 매우 귀한 논문을 작성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줄기차게 주장하고 강조한 내용들이 최갑종 박사의 논문에서 거의 그대로 나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제가 주장한 것들과 같은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율법준수로 영생의 의(자격)을 얻는다는 신앙은 비성경적인 신앙이다.

제가 지금까지 가장 강조했던 것은 율법 준수가 영생으로 가는 길이라는 거짓된 전제 위에서 전개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필연적으로 비성경적이고, 거짓 신앙이고, 거짓 신학이고, 또한 용납할 수 없는 이단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분들이 강조하는 내용, 즉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생을 주는 수단으로 율법을 제정하시고 사람에게 적용하셨다는 신학은 성경 66권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품과 조금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의 저의 일관되고 가장 중요한 주장이었습니다.

율법이 창세 때 아담과 함께, 즉 율법이 아담의 마음에 기록된 상태로 역사 속으로 도입되었다는 것이 능동적 순종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으로 잘못된 신앙입니다. 그런 내용의 율법관은 자연법 사상의 영향을 받은 신학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진리가 아닌 세상의 철학과 이론의 영향 하에서 기독교와 성경을 해석함으로 나온 잘못된 발상입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는 상태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올바른 신앙으로부터 나온 이론이 아닙니다.

율법은 인간의 타락 이후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 속으로 모시고 오기 위해 먼저 왔습니다. 율법도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했던 중요한 특별계시였습니다. 율법 그 자체가 구원을 주는 특별계시는 아니었습니다. 율법은 모든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의 저주 하에 있음을 알렸고, 또한 인간은 스스로 그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죄인을 대신하여 율법의 저주를 받아주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능동순종 교리의 근거가 되는 웨신서 19장에는 아담이 영생을 위해 지켰어야 할 법이 훗날 시내산에서 돌판에 기록되어신 십계명으로 왔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결국 아담은 십계명의 내용들을 지키지 못해 영생을 얻지 못했고, 그리스도께서 대신 그 십계명의 내용들을 다 지키심으로 아담과 우리에게,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영생의 의(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만들어 주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능동적 순종 교리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성경 66권의 말씀들과 그 속에 나타난 우리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들 어디에도 하나님이 율법에게 영생의 자격을 얻게하는 기능을 장착하여 우리에게 보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율법과 율법준수는 영생을 얻는 것과 하등의 직접적 상관이 없다는 것이 정상적 기독교 신앙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이것을 부정하고,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식을 크게 왜곡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심각한 이단사상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율법에게 영생의 자격(의)을 얻게 하는 기능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최갑종 박사님께서도 동일하게 지적하였습니다.

“즉 율법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의를 줄 수 있는 수단이 아니고, 오히려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3:21 이하의 문단에서 바울은 “그러나 이제는”이란 말과 함께 인간의 불순종과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율법과 무관하게 마련된 하나님의 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8 페이지, 최갑종).

“3:21-26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나타내신 하나의 의인 하나님의 의를 강조할 뿐, 소위 그리스도가 십자가 사건과 별도로 그 자신의 율법 순종을 통하여 획득한다고 하는 영생의 의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15 페이지).

“이처럼 레위기 18:5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세워진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마땅히 준수하여야 하는 언약 백성의 삶의 문맥에서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여기 동사 “살리라”는 문구가, 그 이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어떻게 다르게 해석되었든, 본래 문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 준수를 통해 기대하는 미래의 종말론적인 의와 영생을 가리키기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누리게 될 현 세상에서의 언약적 삶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2 페이지, 최갑종).

“바울은 의와 구원의 원리를 말할 때 율법이 결코 인간을 구원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과 관련하여, 율법을 ‘의’, ‘믿음’, 혹은 ‘성령’ 등과 날카롭게 대조시키면서, 율법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7 페이지, 최갑종)
 

2. 처음부터 완전하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치명적인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모든 율법 조항들을 다 지키시기 전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로서의 자격이 다 완성되지 못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부처 그리스도론’이라고 표현하면서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존 오웬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한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완전히 의로운 그리스도는 그의 적극적인 순종이 없어도 죄를 위한 희생 제물과 화목 제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므로 그가 적극적인 순종의 삶을 산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 순종이 그의 피 흘림과 몸을 드림의 준비였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의 죽음이 오로지 우리의 칭의, 우리에게 전가된 모든 의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순종은 순수한 순종의 행위로서 우리의 칭의의 원인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순종으로 간주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 [적극적]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면,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법에 순종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훨씬 일찍 죽었어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데 충분했다"(John Owen, 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 황을호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4), 151).

다음은 제가 그리스도께서 모든 율법 조항들을 전부 지키시어 율법의 의를 얻으신 후 십자가에 달리셨으므로 아담과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이 주어진다는 정승원 교수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알리고자 미리 보내신 자기 계시에게 스스로 지배를 받아야 구세주의 자격을 인정받는 것인가요? 그리스도가 지상의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구세주로서의 자격과 공덕을 쌓았다는 것인가요? 거룩하시고 구원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가 십자가 대속 사역만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지 못하신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이 총신 신대원장을 계속 해야 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태어나서 바로 죽으시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시는 30년 세월을 더 보내신 후 죽으심 당하신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함부로 말할 내용이 아닙니다. 구주세의 자격이나 공덕을 위해 그리하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죄로 죽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 속죄 사역을 감당하라는 성부 하나님께 완전한 만족을 드리기 위한 순종의 삶을 사셨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당합니다.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구세주의 공덕을 만들기 위한 순종이라고 하면, 그리스도와 석가모니 사이에 유사성이 생겨 버립니다. 그러면 부처 기독론으로 기울어집니다” (정이철).

저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완전한 생애(율법준수)에서 영생의 의가 비롯되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심에서 죄용서가 비롯되었다는 능동-수동순종 프레임을 비판했습니다. 대신에 처음부터 이미 율법의 모든 지시와 정신이 완전하게 구현된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심이 곧 우리의 구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모든 뜻에 대한 순종의 마지막 정점이 십자가의 죽으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능동적 순종을 반대하는 수동적 순종주의자가 아니고,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모든 요구와 뜻에 대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강조하는 사람입니다. 칼빈과 그 이전의 존경받는 모든 기독교의 스승들이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능동적-수동적 프레임은 종교개혁 직후 칭의의 원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타났습니다. 당시 유럽의 모든 유명한 대학들 속에서 칼빈과 루터가 배척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다시 유행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칼빈 이후 신학자들이 다시 로마교회의 스콜라주의 신학 방법으로 회귀하면서 능동적-수동적 순종 교리가 나타났습니다.

감사하게도 최갑종 박사님의 논문에서도 저와 동일한 이해가 나타나 있었습니다. 단지 능동적-수동적 프레임을 버려야 한다는 신학 사고가 보이지 않았고, 아쉽게도 저와 같은 사람들을 수동적 순종주의자로 이해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1:2-4에서 하나님의 의를 동반하는 복음(1:17)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포함하여, 다윗의 혈통으로 나신 그리스도의 전 생애와 전 사역을 복음으로 말하고 있는 점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가져오는 이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만이 아니라,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의 성육, 세례받음, 마귀로부터의 시험, 제자 선택과 교육, 치유사건과 이적, 죄용서와 하나님의 나라 도래 선포와 설교, 율법 순종과 성취, 성전청결, 마지막 만찬, 제자들에게 사랑의 새 계명 주심, 게셋마네 동산의 기도, 수난과 배척,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 등이 모두 복음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배척은 십자가 사건에서 비로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의 성육에서 시작되어 계속 수행되다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빌 2:6-9)” (8 페이지, 최갑종).

“그리스도는 십자가 사건에서 비로소 우리의 구원자가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출생 때부터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는 자였고(마 1:23),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었습니다 (요 1:29). 그리스도는 십자가 사건에서 비로소 죄 용서를 이루신 것이 아니라, 이미 공생애 기간에 죄 용서를 선언하셨습니다(막 2:5). 그는 십자가 사건에서 비로소 사탄의 권세를 정복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마귀의 시험을 물리침으로, 사람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냄으로, 하나님의 나라 도래를 선언하심으로 사탄의 권세를 정복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 사건에서 비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것이 아니라, 이미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음으로 모든 의를 이루셨습니다(마 3:15)” (8 페이지, 최갑종).
 

맺는 말

다음에 한 차례 더 저의 관점에서 최갑종 박사님의 논문에 대한 논평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최갑종 박사님께서 기독교와 성경 속에 율법이 영생의 자격(의)을 주는 기능이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신 것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주장하는 분들이 뻐저리게 받아야 할 교훈입니다. 기독교와 성경 속에 영생의 자격을 부여하는 율법이라는 것이 없다는 사실만 분명하게 세워지면, 아담이 자기의 영생을 스스로 획득하기 위해 율법을 지켰어야 한다는 행위언약,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행위언약의 성취자가 되시었다는 거짓된 신학, 즉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무너집니다.

최갑종 박사님께서 왜 초대교회의 교부들과 공의회들과 칼빈이 가르친 칭의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지 매우 아쉽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능동적-수동적 순종을 수행하셨다는 교리는 종교개혁 이후 이신칭의를 더 자세하게 설명하려는 당시 신학자들의 시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불행히도 그들이 학문을 배울 때 종교개혁 신학 정신과 반대되는 스콜라주의를 형성시킨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다시 율법의 학문의 세계를 지배하였습니다. 그 속에서 성장한 개신교 신학자들이 종교개혁의 이신칭의를 더 자세하게 가르치려는 선한 열심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만 나타난 잘못된 신학이었습니다.

최갑종 박사님께서 그 점을 지적하면서 능동적-수동적 프레임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은 점은 아쉽습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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