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신효철 목사 (미시간 장로교회 담임)
고) 신효철 목사 (미시간 장로교회 담임)

 

제 마음 속에 남아있는 신효철 목사님에 대해 여러분들과 잠시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미시간에서 산지 20년이 넘어갑니다. 지금까지 미시간 지역의 모든 행사에는 언제나 신효철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미시간의 교회 모임에서 신효철 목사님을 뵙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우울해집니다.

신효철 목사님은 저에게 단순히 미시간 지역의 동료 목회자 또는 선배가 아니었습니다. 신 목사님은 자신이 저에게 형 같은 분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저에게 행동하셨습니다. 제가 어떤 모임을 잊어버리고 가지 않을 때에도 많았는데, 신 목사님은 미리 전화해서 “정 목사야! 내일 어디서 무슨 모임있다! 온나! 함 보자!”.... 이렇게 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 해 초에는 신 목사님이 코로나일지 모르는 상황이 의심되어 주일 아침에 갑자기 설교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일 아침 한 시간 전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정 목사야! 니 설교 원고 있나! 빨리 온나! 나 대신 설교해라!”라고 하셔서 예배 중간에 도착하여 대신 설교하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 해 12월 마지막 주에도 함께 예배드리고 같이 우거지 떡국 먹자고 하시면 오라고 하셔서 그리했습니다. 1월 첫 주에는 아내에게 특송하라고 하셔서, 금년 1월 첫주에 또 가서 함께 예배드리고 신 목사님의 사무실에서 다른 목사님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제가 목사인데, 주일에 자기 교회 예배는 어쩌고 왜 신 목사님의 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는가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설명드립니다. 코로나 중간부터 인터넷 라이브 예배로 완전히 전환 했습니다. 서서히 한국에서 참여하는 가정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한국 시간으로 주일 오전에 예배를 드리다 보니, 미국에서는 그 시간이 토요일 밤입니다. 그래서 미국 주일에는 제가 시간이 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조부께서 임종하시는 모습, 염하는 모습, 입관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켰습니다. 제가 장남이라고 ... 그때 한 노인이 주저 않아서 “행님! 이제 나는 누구를 행님이라고 부를 것이오!” ... 라면서 통곡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그 분이 일제 시대에 함께 징용에 끌려갔다가 함께 살아서 오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제 미시간에서 더 이상 신효철 목사님이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저의 돌아가신 조부를 염하고 입관하던 날에 그 앞에서 통곡하던 그 노인이 생각납니다.

제가 20년을 여기서 살다가 보니, 저와 신 목사님이 함께 목회를 은퇴하고 편히 살 곳으로 떠나시는 목사님들을 보면서 배웅했고, 다른 도시의 목회지로 떠나는 목사님들도 많이 배웅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신 목샤님이 사모님과 자녀들을 남기고, 사랑하셨던 미시간 장로교회 성도님들을 남기고 홀로 하나님께로 떠나시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황망하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의 온 몸이 그것이 무슨 말인지 체험하고 있습니다. 어제 밤에 미시간 장로교회에서 추모하는 시간을 가진 후 앤아버 집으로 운전을 하는데, 제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를 몰랐습니다. 평소에 눈을 감고도 찾아다녔던 길을 세 번이나 헤멨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가 “당신이 이렇게 많이 우는 것은 처음 보는데 ... 당신이 이렇게 남의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이었어? 그런 사람이 아닌데 ...”라고 했습니다.

신효철 목사님이 저를 이렇게 만드시는 것을 신 목사님께서 한 인간으로서 매우 아름답게 사신 분이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신효철 목사님에 대해 제 마음에 있는 두 가지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마치겠습니다.
 


1) 신효철 목사님은 목회하다가 겪는 고통을 모두 속으로 삭이는 넓은 어머니의 마음을 가졌던 분입니다. 수년 전에 우리 가족이 앤아버에서 큰 맘 먹고 이쪽으로 식사를 하러 왔습니다. 그 날이 제 생일이었습니다. 가려고 하는 식당 주인이 신 목사님 교회의 교인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는 길에 신 목사님에게 “목사님, 어떤 식당에 우리 가족이 밥 먹으로 갑니다. 앤아버 정이철 목사가 생일을 맞아서 가니, 잘 해 주라고 하세요”라고 전화 했습니다. 신 목사님은 저에게 매우 자연스럽게 “가서 오다해라!”라고 말 하셨습니다. 미리 전화해서 저에게 파전이라도 하나 특별 서비스를 하게 하시는 줄로 알았습니다.

식당에 도착해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아무도 “앤아버에서 오신 정이철 목사 가족입니까?”라고 묻지를 않는 것입니다. 똑 같은 평범한 서비스만 받았습니다. 저는 신 목사님이 잊어버리고 전화를 안 하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신 목사님에게 “왜 전화 안 했습니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라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잊어버렸습니다. 몇 달 뒤에 우연히 제가 아는 미시간 장로교회의 아는 성도에게서 그 식당하시는 분이 교회를 떠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신 목사님이 그 일로 무척이나 괴로움을 당했고, 크게 마음의 고통을 당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에 대해 저에게 말을 안 하신 것입니다. 자기 속으로 다 삭이고 겉으로 괴로움을 토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아마 저 같으면 그속의 괴로움과 고통을 말로 풀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인 아니다! 가서 내 이야기하지 말아라!”

그러나 신 목사님은 아무 일이없다는 듯이 “가서 오다해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래된 고목나무를 보면, 속이 텅비었고 색은 시커멓습니다. 은퇴를 앞둔 어떤 목사님이 그 고목나무를 보시고, “어쩌면 나의 속과 너의 속이 이렇게 닮았냐?”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신효철 목사님의 속이 고목나무와 같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세상에서 제일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은 목사입니다. 특히 한인 이민교회 목회자들이 당하는 스트레스는 그중에서는 탑이라고 생각됩니다. 미시간 장로교회가 신효철 목사님과 함께 35년 이상을 함께 지내면서 교회가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은 신효철 목사님에게 자식들이 일으키는 모든 괴로움과 아픔을 다 속으로 삭이는 어머니의 성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 목사님의 그런 성품이 없었다면, 지금의 미시간 장로교회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미시간 장로교회 성도님들과 우리 모두는 신 목사님의 어머니 같은 성품을 본받고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 저의 마음에 남아있는 신효철 목사님에 대한 또 하나의 기억은 ‘설교연구’, ‘복음선포’ ... 이런 것입니다. 이런 말들이 신 목사님에게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신 목사님은 부단히 노력하고 연구하셨고, 항상 책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들도 계속 읽으셨습니다. 저에게 “처음에는 정 목사 당신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알겠다. 정 목사 당신은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당신은 전국구이다!”라고 말하면서 격려해 주셨습니다.

신 목사님은 복음 선포를 잘하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멈추지 않고 노력하셨습니다. 신 목사님이 이 땅에서 복음선포를 얼마나 잘했는지, 부족하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상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신 목사님처럼 복음을 선포하기를 즐거워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께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찬송하는 백성을 가지시려고 아담과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우리는 하나님 섬기는 것을 싫어하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께 반역한 죄인들에게는 영원히 죽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히 죽은 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어 반역한 죄인들이 받아야 할 모든 하나님의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단지 그 사실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으면,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의 죗값으로 저주받고 죽었을 때,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함께 죽은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죗값을 다 갚은 것으로 간주되어 죄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성령 안에서 사람이 되신 성자 하나님의 거룩하신 인격에 우리가 동참되어집니다. 우리가 무슨 행위를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거룩하신 성자 하나님의 인격에 동참되어 거룩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아 구원받고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신 목사님은 이 복음에 감격하고 복음을 위해 일생을 살다가 먼저 가셨습니다. 신 목사님 자신이 이 복음의 은혜를 덧입어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홀로 되신 사모님과 자녀들, 미시간 장로교회 성도님들,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이 신 목사님이 가장 위하면서 살았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