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속의 행위언약의 내용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하고 괴이하다. 다시 찬찬히 읽어보자.

“하나님은 아담에게 행위계약으로서 한 법을 주셨다. 그 법으로 그와 그의 모든 후손에게 개인적이고 온전하고 정확하게 영구히 순종할 의무를 가지게 하셨다. 그 법을 성취하면 생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그 법을 위반하면 사망을 내리실 것을 경고하시고 그것을 지킬 힘과 재능을 그에게 부여하셨다” (WCF, 19:1).

아담이 율법을 지키는 노력으로 자기의 영생을 스스로 얻도록 창조되었다는 웨신서 속의 이 괴이한 내용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사이비 신앙이 개혁신학으로 정착되었다.

1) 아담은 생명 얻기 위한 '시험기간' 또는 '수습기간' 안에서 창조되었다.

2) 아담은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갖추어야 했다.

3) 하나님은 자기 백성도 아니고, 영원한 생명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지으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고 하신 이상한 분이다.

4) 삼위일체 하나님은 자기의 자식도 아니고 오래 살지도 못할 사람을 만드실 것이면서,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라고 하신 이상한 분이다.

5) 하나님은 자기 백성도 아니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드시고 자기의 소중한 피조 세계를 "다스리게 하자"(칭 1:26)라고 하신 앞뒤가 안 맞는 분이다.

6) 타락한 아담은 처음부터 영생을 누리기에 합당한 자격, 즉 의로움이 없는 상태로 창조되었다가 하나님께 범죄했으므로 비록 예수님의 십자가의 죄용서를 받을지라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율법을 지켜 영생을 위한 의로움을 얻어야만 하는 상태로 남는다. 

“이 율법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도 계속하여 의에 관한 온전한 법칙으로 남아있게 되었고 하나님에 의해 시내산에서 십계명으로 선포되어 두 돌판에 기록되었으니, 첫 네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른 여섯 계명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포함하고 있다” (WCF, 19:2).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이 영원한 의의 법칙(구원의 기준)으로 남았고, 그것이 훗날 십계명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웨신서 속의 이 괴상한 내용으로 인해 개혁신학은 다음과 같은 형편없고 가치 없는 논의와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다.

1) 원칙적으로, 이론적으로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키는 사람은 그것으로 구원에 이를 수가 있다는 것이 개혁신학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죄인이 자기의 죗값을 갚는 피 흘림 없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 없다고 한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

우리가 배운 웨스터민스터 계통의 개혁신학은 구원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내용, 즉 이론적으로 십계명 준수로 얻을 수 있는 구원의 길을 가르친다. 

2) 결국 아담도 우상숭배, 간음, 부모공경, 살인, 안식일 준수 등 십계명의 요구를 바르게 이행하지 못해 영생을 얻지 못했다는 추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십계명은 죄인으로 태어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들에게서 죄를 억제하고, 하나님 백성답게 살도록 만드는 가이드로 왔다는 것이 성경의 진정한 가르침이다. 

3) 아담과 아담 안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메시야는 필히 아담 대신 십계명을 철저하게 준수하여 의로움을 얻어서 우리에게 전가해야 한다는 비성적인 칭의론, 늑 개혁주의가 믿고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율법의 모든 지시와 요구가 완전하게 실현된 사람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의와 거룩을 가진 사람으로 성육신하시어 우리의 죗값을 대신 갚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는 이미 율법의 모든 지시와 요구가 이루어진 완전한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오셨으므로 지상에서 의를 추가하기 위해 무엇을 행해야 하는 분이 아니었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에게 자기의 의를 덧입혀 주시기 위해 율법의 정죄를 받는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율법으로부터 해방시키셨다. 그리고 의롭고 거룩하신 자기를 죄인들에게 연합시킴으로 자기의 의로움이 죄인들의 옷이 되게 하셨다. 그리하여 죄인들도 '하나님의 의'가 되게 만들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2).

웨스트민스터 19장의 행위언약 이론을 개혁신학의 원칙으로 삼으면 이와 같이 성경의 핵심에서 벗어나는 사이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알미니안 신학을 이단으로 정죄한 도르트총회의 문서를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도르트 총회가 이단으로 정죄한 알미니안들의 사상이 웨스트민스터 총회 신학자들에 의해 정통 신학이 되었다.
 


도르트신조 제 3,4 교리 조항의 1항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되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지성에서는 자신의 창조자와 여러 가지 영적인 일에 관해서는 참된, 그리고 가장 복된 일에 동참하게 하는 지식이, 의지와 마음에는 의가, 모든 감정에는 순결이 주어져 있었다. 인간은 온전하게 거룩한 자였다. 그러나 악마의 꼬드김에 의해, 또한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러한 우수한 은사를 상실해 버렸다” (도르트신조 제 3,4교리조항 속의 1항).

도르트 총회의 신학자들의 타락 이전의 아담에 대한 이해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신학자들과 완전히 달랐다. 웨신서를 작성한 신학자들 주류는 아담이 임시적으로, 가변적으로, 아직 영생을 우리기에 합당한 의인이 아닌 상태로 창조되었다고 보았다.
 

서창원 목사(합동,좌), 이승구 목사(합신, 우)
서창원 목사(합동,좌), 이승구 목사(합신, 우)

그래서 서창원, 이승구 등 한국의 사이비 개혁주의자들은 아담이 자력으로 영생을 얻어야 하는 '시험기간', 또는 '수습기간' 안에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은 자동적으로 그리스도가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십계명)을 완전하게 준수하여 자기와 우리의 영생을 확보했다는 능동적 순종 칭의신학이 따라 나오게 된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칭의론을 주장하는 서창원, 이승구, 김병훈, 김효남, 정승원, 신호섭, 유병훈 교수 등은 이와 같은 신학 노선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총회(1643-1649)보다 25년 먼저 알미니안 신학을 정죄하기 위해 열린 도르트 총회(1618-1619)의 신학자들은 처음의 아담에 대해 전혀 다르게 이해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처음부터 완전한 의인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는 하나님 백성으로 창조하셨으나 아담이 자유의지의 오용과 마귀의 꼬드김으로 인해 모두 잃은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도르트 신조에서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칭의신학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구원을 위한 행위계약, 행위계약을 완성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구원받기 전부터 시작되는 회심을 가르치는 회심준비론은 도르트 신조와는 전혀 맞지 않다.   


도르트 총회는 다음과 같이 구원을 위한 죄인의 율법준수의 효과를 부정했다.

“하나님이 ... 율법에 대해 완전한 복종을 요구한 것을 폐기하고 신앙 자체와 신앙의 순종을, 그것이 불충분하더라도 율법에 대한 완전한 복종으로 여겨주시고, 은혜로 영원한 새명을 보답하는 가치가 있다고 보아주시는 것이다 라는 (알미니안주의) 자들의 오류를 총회는 배척한다” (도르트신조 제2교리 조항의 오류에 대한 배척의 4항).

당시 알미니안들이 죄인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불완전하게라도 율법준수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완전한 율법준수로 여겨주시므로 구원을 원하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도르트 총회 신학자들은 구원과 율법준수를 관련시키는 율법주의를 이단사상으로 간주하고 거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웨신서의 행위언약은 아담이 율법준수의 공덕을 쌓으면 하나님이 그것에 근거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로 했다고 한다. 웨신서가 채택한 행위언약 개념은 알미니안들의 신앙 기조와 같은 내용이었던 것이다. 현재 웨스트민스터의 행위언약 이론을 성경적 진리로 믿는 사이비 개혁주의(청교도주의)자들은 원래 구원을 위해 사람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야 하는데, 사람이 그리하지 못하니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 대신 하시어 자신과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절대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왜 도르트 총회의 신학과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신학 사이에 이런 심각한 차이가 있을까? 그것은 영국에서 일어난 청교도운동과 깊은 상관이 있다. 국교회 신자들을 맹목적, 수동적 신앙자세를 능동적, 자발적 신앙 자세로 개조하여 내부로부터 영국의 국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하였던 윌리엄 퍼킨스로부터 시발된 청교도주의 신학의 폐단이다. 복있는 자는 이것을 깨닫고 연구할 것이다. 

행위언약, 능동적 순종, 회심준비론을 주장하는 교수들과 목사들은 도르트 총회가 이단으로 정죄한 알미니안 신학과 근본적으로 궤를 같이 하는 이단성이 농후한 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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