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신의 특기 ‘이단조작’ 수법으로 정이철 목사를 저격하려다가 일찍 단념한 정윤석 기자(이후 정윤석)의 또 다른 교묘한 수법 하나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것은 종교개혁과 개혁신학을 대표하는 칼빈에게서도 능동적 순종 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거짓말이다. 정윤석이 어떤 방식으로 개혁신학의 대표 칼빈에게서 능동적 순종 교리를 찾을 수 있다고 속였는지 살펴보자.
 


“칼뱅도 <기독교강요>에서 능동순종으로 볼 수 있는 개념을 설명했어요. 문론 칼뱅이 명시적으로 ‘능동순종이다’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칼뱅은 <기독교강요>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을 세분화해서 설명합니다. 그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능동 순종의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칼빈은 그리스도의 순종을 십자가에 국한하지 않고 전 생애에 걸친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이게 <기독교강요> 2권 46페이지, 문병호 역 <기독교강요> 2장 16절 5항에 담겨있어요. 이를 전제로 칼빈이 그리스도께서 아담과 같은 인성을 취하여서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했다고 표현할 때, 이것은 전 생애적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칼빈을 따르면, 그리스도의 순종은 아담과 같은 인성을 취하셔서 행하신 순종이었고, 십자가 순종만이 순종이 아니고 전 생애의 순종이었다는 거예요.

왜 그래야 되냐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제물로 바쳐지셔요. 그런데 희생제물이 되려면 그의 인생에 흠이나 점이 있으면 안되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전 생애, 탄생부터 죽으심까지 온 생애를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생애를 사셨다는 겁니다. 이것이 능동순종 포괄적 개념이예요. 이것이 칼뱅과 무관하게 뚝 떨어져서 볼 수 없다는 거죠. <기독교강요>를 자세하게 읽어본 분이라면 동의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윤석).

정윤석은 문병호 교수가 번역한 칼빈의 <기독교강요> 2장 16절 5항을 근거로 1564년에 사망한 칼빈에게서도 이미 능동적 순종 교리의 내용이 발견된다고 주장하였다. 정윤석이 근거로 주장한 칼빈의 <기독교강요>원문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는 복종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는 이를 위해 평생 동안 복종을 실행하셨다(소제목).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묻기를 그리스도는 어떻게 죄를 없애 버리며,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없애며, 의를 얻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하여 은혜와 친절을 품으시게 만드셨느냐고 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데 곧 그의 복종 생활 전체에 의하여 우리를 위해 이 일을 성취하셨다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2.16.5).

정윤석이 능동적 순종 교리가 출현하기 전에 사망한 칼빈에게서도 같은 신학 개념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려면, 더 그럴싸한 칼빈의 다른 내용을 찾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능동적 순종 교리는 칭의 신학,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떤 방식으로 의인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이다.

정윤석이 근거로 주장한 위 칼빈의 말은 칭의론을 설명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 능동적 순종 칭의론은 아담이 자기 영생 획득을 위한 율법 준수에 실패하여 죽음에 이르렀고, 그리스도께서 대신 십계명과 모세의 율법들을 완전하게 지키심으로 영생의 자격을 얻으시어 자신과 우리들에게 적용시켰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왜 이단사상인지 우리는 확실하게 정리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의가 되어 주심으로 칭의가 일어났다고 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을 그대로 유지하는 특별한 방식 안에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우리의 죗값으로 희생하고, 성령과 믿음 안에서 자신을 우리에게 연합시켜 자기 속의 하나님의 거룩이 우리의 의가 되게 하심으로 칭의가 일어났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2).

이와 같이 성경은 거룩하신 하나님 자신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도 하나님의 의로 인정되어 칭의를 얻었다고 한다. 율법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능동적 순종 칭의론의 근거를 성경에서 전혀 찾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와 연합하시어 자기의 거룩으로 우리의 옷을 삼아주시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죄의 담이 무너져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육신자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기의 몸을 우리의 죗값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 성경은 칭의의 원인을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과 죄용서로만 설명한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해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0).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게 하셨느니라” (히 10:14).

“예수도 자기 피로서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 13:12).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찾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갈 1:4-6).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 5: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창세 전에 성부 하나님께서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성자 하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작정하셨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시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헌신하시어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를 얻으신다(이루신다)는 개념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능동적 순종 주장자들은 그리스도의 모세의 율법 조항들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의 의를 얻으시는 방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마 3:15).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세례 요한이 자신에게 물 세례를 베풀도록 명하셨다. 하나님의 의가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지킴으로 얻어지는 것이라면, 예수님이 요한에게 물세례 받는 것이 모세의 어느 율법 조항 속에 명시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모세의 율법 조항에도 예수님이 요한에게 물세례 받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었다고 볼 근거는 없다.

예수님이 얻으셔야 할(이루셔야 할) 하나님의 의는 자기를 지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었다. 성부는 성자에게 아담의 죄와 무관한 거룩한 사람으로 성육신하여 아담의 죗값을 대신 갚으라고 부탁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아담과 우리의 죗값을 대신 갚는 일은 단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만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아담과 달리 어떤 상황에서도, 특히 조롱과 모욕과 멸시와 천대를 당하면서도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공생애 그 자체가 속죄 사역에 포함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기의 몸을 범죄한 아담과 우리의 죗값으로 드리심으로(배상하시므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에 완전한 만족을 드리심으로 그리스도는 죄인을 위한 완전한 하나님의 의가 되시었다.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 받음으로 공생애가 시작되었으므로 예수님은 요한에게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자기에게 물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이루시어야 할 하나님의 의는 공생애 동안의 순종과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의 죽음의 순종을 통해 다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후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

정윤석이 인용한 칼빈의 말은 바로 이것을 설명하는 내용일 뿐이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갚아 자기 백성이 있게 하라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전적으로 순종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여 얻으신 율법의 의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율법주의 이단 사상과 칼빈이 연과되었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인가?

"만일 하나님께서 무죄 방면과 사죄로 우리를 의롭다 하지 않으신다면 바울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라고 말한 것은(고후 5:19)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21). 우선 나는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들이 의롭다고 인정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에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심으로써 의롭다 하신다는 뜻이 포함되었다" (기독교강요, 3.11.11).

칼빈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다 갚으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어 이루신 죄용서가 곧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하나님의 의라고 분명하게 가르쳤다. 정윤석은 악하다. 신천지의 모략을 비판하는 정윤석은 어느 새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모략을 구사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정윤석은 거짓 이단사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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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