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그리스도의 부활이 새 언약의 완성을 보증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신 몸의 부활이 우리의 죄용서와 하나님의 양자되었다는 사실만 보증한다고 이해하면 부족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에게 새 언약 백성의 복된 신분을 보장한다는 사실까지 이해해야 충분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크게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는 구약이고 또 하나는 신약입니다. 구약이라는 말은 오래된 약속, 옛날의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이라는 말은 새로운 약속, 새로운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경이라고 부르는 기독교 신앙의 근거인 66권의 책은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오래된 약속’, ‘이전의 약속’이라는 뜻의 구약이고, 또 하나는 ‘새로운 약속’, ‘새로운 언약’이라는 뜻의 신약입니다.

구약을 영어로 old testament라고 합니다. testament라는 영어 단어는 언약(약속)이라는 말이기도 하고 유언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유언은 유언을 남기는 사람이 죽어야만 그 효력을 발휘합니다. 재산을 물려준다는 아버지의 유언은 아버지가 죽어야 효력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는 유언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성경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신 언약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이 그 중심에 있었으므로, 오래된 하나님의 언약의 시대라는 의미로 구약시대라고 하고, 영어로는 Old Testament(오래된 언약, 오래된 유언)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구약시대의 중심에는 어떤 오래된 언약이 있었을까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옛날의 언약’, ‘시내산 언약’, ‘모세의 언약’, ‘율법의 언약’이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모든 구약 백성들은 그 언약 안에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사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영원히 너희의 하나님이 되겠다. 너희도 나를 섬기는 내 백성으로 전 세계 모든 민족들을 위해 나의 제사장이 되겠느냐?”라고 중재자 모세를 통해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쁜 마음으로 그리하겠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십계명과 율법들을 주시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의무라고 하셨습니다. 언약 백성이 되어 그것을 성실하게 지키겠냐고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영원한 언약을 주신 것에 감동하여 마땅히 십계명과 율법들을 지키겠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중재자 모세가 미리 준비해둔 많은 양의 죽은 짐승들의 피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뿌렸습니다. 그것이 언약식의 완성이었습니다. 그 언약식의 완성을 위해 짐승들이 피 흘리고 죽었고, 그 피를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뿌림으로 그 ‘시내산 언약’, ‘옛 언약’, ‘모세의 언약’이 완성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언약’이라는 말은 곧 ‘유언’이라는 말이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구약은 영어로 old testament인데, testament가 언약이라는 뜻이고 동시에 유언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 언약’, 또는 ‘옛 유언’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유언이 유언하는 사람이 죽어야 효력이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도 죽음이 있어야 그 효력이 시작됩니다. 이 언약을 완전하게 이행하지 못하면 제가 죽을 것입니다! 라는 뜻의 피의 맹세, 죽음의 맹세가 동반되어야 언약의 효력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바로 모세가 그 언약식을 위해 죽은 짐승들의 피를 여러 양푼에 담아두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그 피를 하나님께 언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뿌리는 절차였습니다. 언약을 파괴하는 자에게 임할 저주와 죽음 미리 보여주는 짐승들의 죽음으로 그 언약이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시대를 지배한 언약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하나님의 구원이 주어졌으니까 이스라엘 민족만 이 언약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언약으로 인해 육신적으로 전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엣날의 언약 백성에게는 십계명과 다른 율법들을 완전하게 지켜야 할 의무가 따랐습니다.

만일 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어찌됩니까? 하나님의 모든 저주를 받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모세가 양푼들에 담아 둔 죽은 짐승들의 피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뿌림으로 옛날의 언약이 완성되었습니다. 언약백성의 의무인 십계명과 모세의 율법들을 완전하게 지키지 않으면 그 짐승들처럼 저주를 받고 죽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모든 죄악을 범하고 율법을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어찌되었습니까? 이 민족들에게 나라가 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성전까지 없어져 버렸습니다. 옛날의 언약,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언약은 사람이 십계명과 율법들은 완전하게 지켜야만 사람이 그 혜택을 보는 언약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났고, 죄를 짓는 것이 죄를 안 짓는 것보다 모든 사람에게 자연스럽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죄에 오염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게 십계명을 완전히 지키고 다른 율법들은 완전하게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율법을 몰랐을 때에는 죄가 죄인지 몰랐으니 죄를 짓지 않은 것인데, 율법이 금하는 것이 죄인 줄아게 되고 그것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점점 죄를 더 많이 범하는 죄인으로 드러났습니다.

만일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옛날의 언약에 속하여 십계명과 다른 율법들을 완전하게 지켜야 복을 주신다고 그리하지 못하면 모든 저주로 괴롭게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영혼으로 천국에 가기야 하겠지만, 살아서는 다리 몽댕이가 남아나지 않습니다. 매일 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절대로 지킬 수 없는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맨날 하나님으로부터 두들겨 맞아서 다리와 종아리가 남아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가고 살아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복을 누리며 살게하는 새로운 언약을 준비하셨습니다. 옛 언약을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받아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렘 31:31)라고 하셨습니다. 시내산에서 맺은 옛날의 언약을 대신할 새로운 언약을 만드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새로운 언약의 특징은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도록 하나님이 보장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7). 새로운 언약, 즉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신이 우리 마음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 마음이 즐거이 하나님의 십계명과 율법들을 실천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영구하게 누리게 보장하는 언약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십계명과 율법들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혹시 정이철 목사는 십계명과 율법들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면, 지금 저를 바르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 십계명과 율법들을 지켜야 한다는 신학이 틀렸고, 그것이 심하게는 이단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얻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구약의 백성들은 옛날의 언약의 의무를 지게되는데, 그것이 바로 십계명과 율법들을 자기 힘으로 지켜서 자기를 의롭고 거룩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자연적 인간들은 죄에 오염된 마음을 가진 상태로 태어나므로 절대로 하나님의 십계명과 율법들을 완전하게 지켜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합니다. 계속 율법을 어기고 죄를 범하면서 사는 것이 죄인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망한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의 백성들, 새로운 언약의 백성들인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우리도 역시 구원을 얻기 위해 십계명을 지키고 율법들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도 역시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십계명과 모든 율법들을 지켜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열매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힘으로 십계명과 율법들은 완전하게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검증이 끝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가 그 증거입니다.

새로운 언약 시대, 신약 시대의 성도에게 자기 힘으로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종교 독재자들의 사기입니다.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행 15:10). 율법을 모르는 사회에서 태어나 예수 믿는 이방인 성도들에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유대인 출신 사도들은 “우리 율법주의 조상들도 능히 하지 못했던 것을 어찌 이방인 성도들에게 요구하려고 하느냐?”하면서 물리쳤습니다.

그러면 이방인 출신 성도들은 믿음으로 구원만 받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고쳐서 하나님의 율법을 실천하게 살도록 보장해 주는 새 언약 속에 답이 있습니다.

“내가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7). 하나님의 신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마음을 고치고 움직여서 즐거이 하나님의 율법을 실천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거룩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모든 뜻을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처럼, 예수의 영으로 오신 성령이 우리 죄악된 마음을 고쳐서 즐거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도록 보장하는 것이 새 언약의 특징입니다. 이것이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의 가장 분명한 특징은 구약의 바리새인들처럼, 사도행전의 사도들과 제자들처럼 그 입으로는 율법 타령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변화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면서 즐거이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것은 육신의 힘으로 율법과 십계명을 지키는 수준을 천 배로 뛰어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전 11:25). 예수님을 새 언약을 완성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지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영원히 새 언약 백성이 되어 복을 누리도록 새 언약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자기의 피를 우리들에게 뿌리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영원히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새 언약의 중재로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에게 중보기도 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이 새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드리고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그리되지 않고 있으면 그리스도의 부활의 최고의 유익을 우리는 아직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순종하지 못하고 거룩하게 살지 못한다고 스스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새 언약은 내 힘으로 그리하라는 언약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대신 죽고 그 피를 뿌림으로 우리가 그리될 수 있도록 보장해주시는 언약입니다. 우리 속으로 오신 성령을 의지하지 않으므로 새 언약 백성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우리 모두에게 새 언약 백성의 능력이 풍성하게 나타니기를 축원드립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