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글

(김효남 교수가 <총신원보> 279호(2022년 10월 18일, 화)에 실은 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왜 성경적이며, 필연적인가?”에 대해 연재하는 글입니다. 김효남 교수의 글 전문에 대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글입니다. 김효남 교수님을 괴롭히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나, 만일 그렇게 받아드려진다면 널리 용서를 바랍니다. 정이철 목사)

 

김효남 교수(총신 신대원, 여사신학)
김효남 교수(총신신대원, 역사신학)

 

“다시 행위언약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일반적으로 행위언약을 선악과의 열매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준 명령과 약속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깊이 연구한 많은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행위언약이 그 본질에 있어서 율법과 동일하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조건과 명령을 주시고 아담이 그 조건과 명령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약속과 벌을 주신 것을 행위언약이라고 하는데, 이 조건이라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뜻이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에 따른 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 혹은 속성에서 비롯되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이 율법은 무엇일까요? 사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원리를 만들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율법을 명문화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율법은 이 사람에게 다르고 저 사람에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또 이 시대에 다르고 저 시대에 다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율법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속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효남 교수).
 

김효남 교수가 위에서 언급하는 행위언약이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장 1-2항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행위 언약으로서 한 법을 주셔서 그것에 의해 그와 그의 모든 후손들을 인격적인, 완전한, 정확한, 그리고 영속적인 순종의 의무 아래 두셨고; 그것의 실행에 근거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그것의 위반에 근거하여 죽음을 경고하셨고; 그것을 지킬 힘과 재능을 그에게 부여하셨다. 이 법은 그의 타락 후에도 계속 의(義)의 완전한 규칙이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에 의해 십계명에 그렇게 선언되었으며 두 돌판들에 기록되었는데; 처음 네 계명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그리고 그 나머지 여섯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담고 있다” (WCF 19:1-2).

행위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완전한 생명을 가진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지 않았다고 전제하는 개념입니다. 아담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의를 성취하고, 그 공로에 의해 영원한 생명을 획득하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시험기간’ 안에서 아담을 창조했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을 믿는 사람들은 어린아이 수준의 생명으로 창조된 아담이 자기 마음에 기록된 십계명 율법을 정확하게 실천하여 어른의 생명, 즉 훗날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으로 도약하도록 하나님의 의도하셨다고 설명합니다.

행위언약 이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이론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담의 원죄가 바르게 설명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부족하게 창조된 아담이 자기 존재의 완성을 위해 스스로 성공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원죄이고, 그래서 하나님이 부족한 아담을 더욱 저주하고 영원한 죽음의 심판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하나님이 인간의 원죄를 심각하게 여기시는 이유, 즉 하나님께서 아담을 영원히 죽이시는 심판에 처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행위언약 이론에 의하면 아담의 원죄는 기껏 자기 완성을 위한 창조주의 지도를 성실하게 따르지 못한 것, 또는 피조물이 창조주의 권위와 질서를 힘써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로 격하됩니다. 이런 원죄 개념은 율법준수를 구원의 법칙으로 가르치는 유대교의 원죄 사상입니다. 행위언약을 성경적 진리로 받으면 행위언약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를 동시에 진리로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아담이 완수하지 못한 율법준수를 대행함으로 구원의 길을 여신 분, 즉 신 유대주의 종교의 메시야로 전락하게 됩니다.

웨신서의 행위언약 이론이 진리라면 아담은 처음부터 죽을 때까지 완전히 하나님 백성이 된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백성을 가지기 원하신 하나님에게는 다시 흙으로 다른 아담을 만드시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영원히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고, 죄로 죽은 아담을 다시 살려서 자기 백성되게 하시려고 성육신이라고 하는 특단의 방법을 선택하셨다고 가르칩니다.

왜 하나님은 첫 아담을 포기하고 다시 흙으로 다른 아담을 만드시 후 스스로 노력하여 자기 백성 되어 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왜 하나님은 첫 아담을 살리려고 스스로 거룩한 사람이 되어 친히 아담의 죗값을 자기 몸으로 갚으심으로 그를 살렸을까요? 왜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기 백성을 다시 찾아서 구원하려고 온 메시야라고 자기를 소개했을까요?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이러한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첫 아담이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 백성으로, 영원한 생명과 모든 하나님의 복을 이미 풍성하게 누리는 상태로 창조되었다고 순수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영생을 주는 십계명이 마음에 기록된 상태로 ‘시험기간’안에서 창조되었고, 아담이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해 영생과 하나님 백성의 자격 획득에 실패했다는 행위언약 이론과 그리스도를 행위언약의 성취자로 각색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우리를 성경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17세기 신학의 하늘을 지배했던 인간의 사조의 산물입니다. 

이러한 점을 참고하시면서 김효남 교수가 주장하는 내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한 많은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행위언약이 그 본질에 있어서 율법과 동일하다고 보았습니다” (김효남 교수).

1600년대 종교개혁 교회의 신학을 정립하는 작업을 했던 유럽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행위언약과 율법을 동일하게 보았다는 뜻입니다. 우리 일반적인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율법이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다시 자기 백성되게 하시려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몰아가기 위해 보내셨다고 믿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17).

사도 요한은 타락한 인류를 그리스도에게 몰아가는 율법과 율법의 의미와 요구를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비하면서, 율법이 모세를 통해 주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갈 3:17).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먼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내용을 성취하기 위해 430년 후 모세를 통해 율법을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롬 5:13).

사도 바울은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할 때에는 아직 죄를 죄로 지적하는 율법이 있지 않았을 때라고 명백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행위언약과 그리스도를 행위언약의 수종자로 각색하는 능동적 순종, 그리고 구원을 위한 복음전도를 행위언약-능동적 순종 도식에 맞게 각색하는 회심준비론을 합동과 총신 신대원 전도사님들에게 전파하는 김효남 교수는 십계명과 율법이 창조 당시 아담의 마음에 이미 기록되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조건과 명령을 주시고 아담이 그 조건과 명령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약속과 벌을 주신 것을 행위언약이라고 하는데, 이 조건이라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뜻이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김효남 교수).

“그렇다면 이 율법은 무엇일까요? 사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원리를 만들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율법을 명문화시킨 것이었습니다” (김효남 교수).

김효남 교수의 하나님이 창조 시 아담에게 이미 십계명과 율법을 주었고, 아담이 그것을 지켜서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획득하게 하셨다는 주장은 17세기 유럽의 개신교 신학자들을 지배했던 어떤 세상 철학이나 사조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후 400년이 지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우리의 정신과 사고를 지배하는 시대의 하늘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철학과 정신의 빛으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 설명하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나 성경 66권과 성령의 빛으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 전파해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신학자들의 사명입니다.

아담이 자기 마음에 기록된 십계명을 완전하게 준수하는 노력으로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시험기간 안에서 창조되었다는 웨신서의 행위언약과 율법 개념은 성경과 맞지 않습니다. 행위언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의 두 구절을 자신들의 창조 때부터 아담과 함께 있었던 율법 신학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 2:15)

사도 바울이 말한 모든 이방인들의 ‘마음에 새긴 율법’을 하나님이 창조 당시 아담의 마음에 기록하여 준 십계명으로 해석하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만일 사도가 말한 모든 이방인들의 마음에 새긴 율법이 아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그의 마음에 기록된 십계명과 같은 내용이라면,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계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의 소리를 따라 삶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 즉 구원의 특별계시가 모든 인류에게 주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인류가 자기 마음의 소리를 따라 완전하게 살지 못해 구원을 얻지 못하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대신 죽게하심으로 구원을 주셨다는 것이 됩니다. 이런 이론은 성경적 일반계시-특별계시 신학과도 맞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모든 이방인들의 ‘마음에 새긴 율법’을 구원을 주는 것은 아니나, 하나님을 흐릿하게 알게 하는 인간의 본성과 양심으로 이해해야 마땅합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롬 7:10)

웨신서의 행위언약-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말한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곧 창조 당시 아담의 마음에 기록되어 아담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었던 십계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내용도 전후 문맥에서 보아야 합니다. 즉, 성화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죄용서 받고 성령을 받은 신자는 이미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율법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입니다. 이후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성령의 은혜를 입어 계속 새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성령의 은혜로 죄를 이기는 삶을 살지 못하고, 다시 이전 죄로 돌아가면 어찌되는 것일까요? 죄를 지적하는 계명에 의해 다시 정죄를 당하게 됩니다. 성령의 은혜로 계명(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삶을 살지 못하고 계명이 지적하는 죄에 다시 걸려들는 삶을 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문맥입니다. 결코 율법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율법으로 영생의 의를 얻는 길이 원천적으로 열리지 않았다고 명시합니다.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 3:21).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 7:19).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히 10:1).

부족한 저의 생각으로는, 김효남 교수님이 <총신원보>에 올리신 글을 철회하시고, 신대원 전도사님들에게 사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교회앞에서 마땅하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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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