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첫 강림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에 모인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people group에 이해되어 지게 하기 위해 당시 사용되고 있던 다양한 언어들로, 더 정확히 말해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여든 흩어진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의 언어들로 복음이 통역되었다는 사실에 오순절 방언의 선교적, 선교역사적 의의가 있다.

오순절 성령 강림시 나타난 방언의 기적은 바벨탑 사건시 있었던 언어를 혼잡케 한 하나님의 심판의 영향력을 뒤집는 거대한 사건이었다. 이는 각 복음서 후반부에 다양한 형태로 기록된 지상명령과, 사도행전 1:8에 예수님의 의해 전망된 것처럼, 장차 복음이 모든 언어적, 민족적(혈통적), 종교적, 문화적 경계선을 뛰어 넘어 전파될 것이라는, 즉 모든 언어로 예수님의 복음이 온 세상 각 문화권에 증거될 것에 대한 예언 성취적 표적이었다.

성령강림시 있었던 방언은 당시 실제로 사용되고 있던 언어였기에 외국어로서의 이해가 가능했다(행 2:5-13). 이 방언은 단순히 외국어였던 것뿐만 아니라, 특정지역의 지방어(사투리) 차원으로 그 특정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낼 만 했다. 대부분 갈릴리 사람들인 사도들에 의해 말해지는 방언은 예루살렘에 온 유대인들의 각 출신지역(15개 이상이 기록됨)에서 사용되던 바로 그 언어들이었다. 그것도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똑같은 차원의 본토 발음 그대로였다. 이런 기적을 어디서 또 재현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방언의 내용은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에 대한 증거였다(행 2:11). 하나님으로 부터 무엇을 구하고자 드린 간구적 내용이나 병 치료를 위한 기도 내용이 아니었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 일’(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 사역이 중심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을 알게 하려고 증거한 것이다. 즉 그 방언은 외국어로서 직접적으로 전도(선교)를 위한 것이었고, 그 목적대로 많은 사람들이 그 전도에 응답하였는데 무려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 방언 말함은 베드로의 설교처럼, 선지자 요엘을 통해 하신 예언의 성취였다.(행 2:16) 선지자 요엘이 장차 임할 말세에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에 대해 예언한 그 예언이 성취된 것이었다. 초대교회 계시의 통로였던 사도들, 그 중에 베드로를 통해 해석되고 의미가 부여된 것이므로 우리는 베드로의 해석, 곧 요엘서의 ‘종말에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줄 것’에 대한 예언이 오순절 방언 사건으로 성취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 바르고 정당한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또한 오순절 성령강림시 일어난 방언 사건은 성령세례의 증거가 곧 방언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 오순절 주의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은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에게 임한 이 사건을 바탕으로 신자가 받아야 할 2차 성령세례를 통해 방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사도행전 2장을 통해서는 방언을 말한 사람들이 몇 명인지 정확히 알 수 없기에[9] 이 방언 사건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회심 후 2차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개인적 차원의 사건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제자들과 불신자들을 위하여 성령강림의 증표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한 표증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를 것이다.

그 날 성령강림의 표증으로 나타난 현상들은 방언만이 아니었다. ‘바람소리’(청각적), ‘불의 혀’(시각적)도 동시에 나타났다. 그것은 하나님이 특정한 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놀라움 속에 성령이 오셨음을 확실히 인식하게 하기 위해 허락하신 다감각적 특별계시 차원의 일이었지, 개인적 차원의 덕으로서 모든 신자들이 경험해야 할 사건으로 주어진 일은 아니었다.

사도행전 8장의 사마리아인 회심시 있었던 방언 사건이나, 사도행전 10장의 이방인 고넬료 회심시 있었던 방언 사건이나, 사도행전 19장의 에베소의 세례요한 제자들에게 있었던 방언 사건도 예수님의 복음이 예루살렘 > 유대 > 사마리아 > 땅끝을 향해 지역적으로 확산되어 나갈 때, 인종적으로 유대인 >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 > 이방인으로 초문화권 선교에 진일보 할 때마다 동일한 성령을 주셨음을 나타내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의 완성을 위해 특별히 허락하신 역사, 사도행전 2장 사건에 부속된 성격의 하위 사건들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또한 사도행전 2장의 방언과 고린도 전서 12-14장의 방언이 서로 성격이 다른 방언이라는 오순절 주의자들의 주장은 성경적 지지를 조금도 얻지 못한다. 자신들이 경험하는 방언 현상이 성경에서 말하는 그 은사임을 주장하기 위해 그 양자의 구분을, 하나는 일반 언어(외국어)로, 또 하나는 일반인들이 이해, 통역할 수 없는 ‘신령한 언어’로 구분하고 있을 따름이다.

설사 오순절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들의 방언 현상이 성경에서 말하는 그 방언이라고 인정한다 해도, 그 방언을 공적인 모임에서 사용하는 규칙, 바울사도의 가르침(고전 14:27-28,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여러 명이 있다면 반드시 통역을 두고 한 사람씩 차례대로 할 것, 방언 통역자가 없으면 방언 말하는 사람은 잠잠할 것 등)은 마땅히 교회 안의 질서를 위해 지켜져야 하지만, 오늘날 그러한 규정이 지켜지는 예는 거의 없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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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명 선교사는 합동신학교에서 공부하였고, OMF를 통해 파송되어 1995년부터 태국 선교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 선교사 훈련원(GMTC), 말레이지아 침례 신학교(MBTS, 선교학 박사)에서 타문화권 선교를 위한 전문적인 연구를 하였으며, 최근 선교지에서도 크게 일어나고 있는 신사도운동 등의 성경을 곡해하는 거짓된 방언 등의 그릇된 성령운동과  은사주의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참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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