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성택 집사

택함 받은 자와 버림받은 자

성경은 야곱과 에서를 구별한 것처럼 구원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를 갈라놓았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멸망 받을 사람이라고 구분 짓는 것은 성경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청함 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성경과 관계없는 사람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구약은 이스라엘이 청함 받은 자들이며 오늘날은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청함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는 구원 받을 자들에 대해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으며, 바울도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모래 같을지라도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만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즉 성경은 교회 안에서 자신이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믿는 사람 중에서도 구원받을 자가 극히 적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문인 십자가 진리

구원과 멸망을 가르는 기준은 십자가 진리입니다. 예수께서 주신 십자가 진리는 멸망과 구원을 결정짓는 영원불변의 기준입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죄가 없으면 하나님나라에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보고 알 수 있도록 죄 사함의 진리를 쉽고 단순하게 계시하셨습니다. 쉽고 단순하게 보이지만 인간의 지적능력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좁고 협착한 길이며 성령이 열어주셔야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문입니다. 그 문은 남은 자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문입니다.(롬9;27 사10:22)

예수께서 몸 바쳐 세우신 십자가 진리의 좁은 문을 들어간 성도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의 품안에서 안식을 얻습니다. 예수께서 베풀어주신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며 평강을 누립니다. 십자가 진리를 깨달은 성도는 젖을 흡족히 먹은 아이처럼 더 이상 진리에 목마르지 않게 됩니다.

(사 66: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사자들인 삯군들에게는 십자가 복음의 좁은 문을 알 수 없도록 그 길을 혼잡케 하셨습니다.

(롬11:8) 기록 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 할 귀를 주셨다함과 같으니라.

▲ 설동주 목사가 그로벌 쉐마학당에서 강의하고 있다

십자가 진리를 성령으로 깨닫지 못한 삯군들은 기복신앙과 율법주의와 도덕적 선한 행위가 섞인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십자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현용수씨에게 쉐마교육 프로그램을 전수받은 과천약수교회 설동주 목사님은 아직도 유대주의 쉐마학당을 중단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쉐마학당 네트워크를 개설하고 교인들의 머리 숫자를 늘리기 위해 골몰하며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목사님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쉐마학당의 비진리들

진리에 눈이 감겨버린 눈으로 쉐마교육을 바라보면 매우 좋아 보입니다. 쉐마교육의 구성내용을 살펴보면,

1. 다음세대 말씀 전수
2. 삼대예배
3. 인성교육
4. 쉐마가정예배
5. 성경토론 및 암기
6. 탈무드지혜교육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진리에 열린 눈으로 바라보면 쉐마교육은 십자가 진리를 막는 독약 성분들입니다. 이 성분을 순차적으로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저들은 '말씀', '말씀'하며 다음 세대에 말씀을 전수해야한다고 외칩니다. 보기에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씀전수는 율법전수이며 뜻 모를 성경구절을 암기시키는 것입니다. 쉐마교육을 하는 분들은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말씀이신 것을 모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모릅니다.(요5:39) 그저 성경구절을 암기하게하면 말씀전수라고 믿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삼대예배'는 세상문명을 끊고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아미쉬 사람들'에게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현용수의 저서 참고)

세 번째, '인성교육'은 유교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유교는 예의범절과 효사상의 종교입니다. 조상제사는 효 사상에서 비롯되었으며 원불교에서도 인성교육을 매우 중시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쉐마가정예배'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준비하는데 하루나 이틀이 걸립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형식주의입니다.

다섯 번째, '성경토론과 암기'의 암기와 토론으로 결코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달달 외우는 유대인들이 진리를 대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드지혜교육'입니다. 설동주 목사는 프로이드. 스필버그 등 성공한 유명 유대인들을 내세워 탈무드 지혜교육을 선전합니다. 이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이 자녀를 마귀에게 인도하자고 미혹하는 위험천만한 교육입니다. 탈무드에는 예수가 사생아이며, 유대교를 전복시키려다 돌에 맞아 죽었고, 그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았다고 하며, 지금도 예수님이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다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탈무드교육은 반 기독교적 교육입니다.

▲ 현용수 씨의 책에 대한 서평과 독후감을 쓴 사람들이라고 쉐마 측에서 홍보하는 사진


쉐마교육의 중심은 율법성화에 바탕을 둔 율법교육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합니다. 율법주의자란 율법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자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으려는 자들은 교회 안에 있을 필요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교도이지 율법주의자가 아닙니다.

율법주의는 경건하며 광명한 천사의 얼굴을 합니다. 경건하게 보이는 율법주의자들이 더 참된 목사처럼 보입니다. 쉐마학당은 예수를 믿고 율법으로 성화되어야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성화될 수 있다면 예수께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성화는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십자가에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마침이 되신 십자가사역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자들이며 성령을 내쫓고 그 자리에 율법을 앉혀서 성령을 훼방하는 악한 자들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율법주의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에게 미혹된 교인들에게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호통 치며 율법 안에서 의롭다함(성화)을 얻으려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라고 꾸짖으며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꾸짖었습니다. 이처럼 율법주의는 초대교회부터 현재에 이르도록 긴 시간동안 끈질기게 복음을 훼방하였습니다.

마귀의 사주를 받은 신학자들은 반율법주의'율법무용론', '율법폐기론', '도덕폐기론'등의 신학용어를 만들어 순수한 십자가 복음만을 지키려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오히려 이단으로 몰았습니다. 지금도 이들은 도덕법인 십계명은 폐기되지 않는다며 생명의 성령의 법 대신 죄와 사망의 법을 끝까지 비호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도덕법이라고 말하는 율법주의 신학자들은 율법의 개념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초등학교 교과서인 도덕책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십계명은 모든 613가지의 율법을 대표하는 율법이며 지키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 크고 두려운 계명입니다. 이 계명을 받을 때 모세 외에는 아무도 시내산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가면 죽기 때문입니다. 이 크고 두려운 십계명을 도덕법이라고 평가 절하한 율법주의 신학자들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경이여기고 능멸한 자들입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 십계명 중 어떠한 도덕법을 지켜야하느냐?고 질문하면 대답을 못합니다. 율법이 없으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살인, 간음, 도적질 등의 범죄를 자유롭게 저지릅니까? 범죄 조항이 율법에 존재하니까 지키는 것입니까? 율법주의자들은 성령의 법을 막으려는 마귀의 사자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율법을 폐하셨다는 것을 끝까지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십계명에 나오는 살인, 간음, 도적질은 형사법 이상의 영적인 뜻이 담겨 있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십계명에서 613가지의 실천율법이 파생되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십계명의 도덕법이 살아 있다면 도덕법에서 파생된 수많은 율법조항도 지켜야하며, 또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할 율법이 남아있다면 예수께서 다시 내려와 한 번 더 십자가에 못박혀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를 다시 끌어내려 현저히 욕을(히6:6) 보이려는 사악한 자들이며 십자가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 세마 크리닉에 참가한 사람들이라고 쉐마 측에서 홍보하는 사진


십계명을 압축하면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이며 예수께서 이루셨습니다.

죄로 형성된 인성과 수시로 변하는 얄팍한 인간들의 감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목숨을 다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크고 두려운 십계명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예수께서 이루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피땀 흘리시기 까지 기도하시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셔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으로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신6:5)는 계명을 이루셨으며 또 죄로 인해 원수 되고 이웃되었던 자기백성들의 죄를 율법의 요구대로 율법의 일점일획까지도 남김없이 십자가에서 다 갚으셔서 네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웃사랑(레19:18)의 계명도 함께 이루셨습니다. 그리고"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십자가 대속은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전하게 이루시고 율법을 완성하셨으며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의 육체로 율법을 폐하셨다고(엡2;15)기록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믿는 자들에게는 율법이 폐해졌으며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증거하는 수많은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율법과 복음의 속성 및 원리를 파악할 수 있어야합니다.


메시아보다 율법이 먼저 온 이유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메시아가 오신 뒤에도 율법을 지켜야한다면 하나님께서 메시아가 오신 후에 율법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보내시기 전에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의 역할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죄가 더 크게 드러나게 하는 거울의 역할이며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메시아께로 데려가는 몽학선생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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