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운 목사의 <길잃은 한국교회>(3)

예수님의 동생 유다는 아주 다급하게 편지를 쓴다.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유 1:3)

상황이 긴박했으므로 간단한 인사 이후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 1:4)

평화로운 초대교회에 이단들이 침투한 것이다. 이들도 역시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무리라고 속였다.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 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요 1:12)

문제는 배교자, 이단들이 공동체 내에 존재해 있는 것이다. 교회에 얼마든지 배교자들이 도사리고 있다. 초대교회뿐 아니라 현재도 이단들은 교회 속에 있다. 대부분의 교회 속에는 이단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최소한 교회에 이단이 존재할 가능성을 염두 해두고 있어야 한다. 이들을 가려내는 것은 과연 쉬운 일일까? 분별력의 능력을 키워 놓지 않으면 이들을 발견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단들은 자기의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마 7:15)

거짓 선지자는 존재하며, 이들은 양의 옷을 입고 있어 매우 아름답고 선량해 보이며 또한 찾아내기 힘들다. 오히려 확실히 이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거짓 선지자가 아닐 수 있고, 최소한 일등급 거짓 선지자가 아닐 수 있다. 양의 옷을 입은 이들은 얼마든지 위대한 사람으로 분장할 수 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11:14-15)

사단에게 절대적인 우군이 누구인가? 분별력을 상실한 사람이며 더 나아가 분별력을 상실하도록 꾸준히 가르친 자들이다. 인격이 훌륭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마귀의 좋은 종이 될 수 있다. 교회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항상 순수한 믿음을 주장한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이 말씀 또한 문맥과 상관없이 사용한다.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의존적인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일 뿐, 어린 아이의 어리석음까지 닮으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형제들아 지혜에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 14:20)

사단도 성경을 사용하지만, 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전반적으로 균형을 잃게 하는 것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삼는다. 이들을 분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교회 공동체 내에 있는 이단들도 성도들과 기탄없이 교제하며 기탄없이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똑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떻게, 어떤 무기로 이단을 구별해 낼 수 있을까? 사단이 우는 사자와 같이 덤비는 시기에 순수한 믿음으로 나가자고 소리 높이는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사도 요한은 어떤 자들을 칭찬하는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내가 드러낸 것과"(계 2:2)

사도요한은 거짓 사도를 시험하여 쫓아낸 것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교리의 기준을 제거한 이들의 모습은 종교개혁시대의 로마 가톨릭의 모습에 비해 결코 덜 심각한 것은 아니다. 로마 가톨릭은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읽는 것을 금했지만 현대 신복음주의 교회에서는 교리를 공부할 필요 자체를 부정하기에 그 책을 금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로마 가톨릭은 평신도가 진리를 아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나 현재는 무엇이 진리인지를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들이 난립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은 평신도가 진리를 연구할까 두려워하였지만 현재는 영성, 직감, 감동, CCM 등에 몰두하고 있어 두려워할게 없다. 중세의 기독교에서는 성경적이지 않는 교리들이 성도들을 파괴했지만 현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성경의 교리를 파괴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대운 목사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을 중심으로 탁월하게 가르치는 뛰어난 교육목회 전문가이다. 정대운 목사는 “객관화(진리)의 주관화(신앙)를 추구합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교육목회 철학을 표현하기 좋아한다. 세종대, 개신대학원대학교(M.Div),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에서 공부했고, 현재 계속해서 국제신학대학원대학(석,박사 통합과정)에서 연구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원 교수(교회사)로 사역하고 있고, 고양시의 삼송제일교회의 담임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