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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교수는 원죄와 피의 속죄를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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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교수는 원죄와 피의 속죄를 부정한다
  • 고경태
  • 승인 2016.06.12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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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의 칭의와 성화 4

김세윤은 로마서 1장에서 두 개의 복음의 정의를 제시한다. 로마서 1장 2-4절과 16-17절이다(95쪽). 전자는 하나님의 복음, 예루살렘 교회의 신앙고백(다윗의 씨)이다(97쪽). 바울은 예수가 ‘하나님의 주권을 대행하는 자’로 기독론을 제시했다(98쪽). 후자는 구원론적 복음이다(103쪽) 김세윤은 롬 1:2-4을 고전 15:23-28, 롬 8:31-39에서 다시 반복한다. 그러면서 논리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사도 바울이 구원론적으로 설명한 칭의로 제시한다.

하나님의 복음과 바울의 칭의 이해가 ‘동일’하다는 주장은 김세윤 신학에서 중요 개념 중 하나이다. 유대묵시문학 사상을 예수가 주장했고 바울이 반복해서 주장한다는 동일성 원칙은 21세기까지 변함없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묵시문학적 틀에서 나온 사상으로 하나님의 통치(가난과 억압이 없는)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동일성 원칙에서는 원죄 개념이 없다. 아담 원죄를 말하기는 하지만, 정통 기독교 신학의 원죄 개념은 없다. 원죄 개념은 5세기 펠라기우스가 아담을 모방한 죄의 방식을 제안하자, 아우구스티누스가 변호하여 교회에 확립한 것이다.

김세윤은 ‘악의 세력’, ‘사탄의 세력’을 제시한다(108쪽). 사탄의 세력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을 할 때 소멸되고 칭의가 완성된다(109쪽). 동일성의 원칙에 의해서 인류는 사탄의 세력 아래에 있었다. 예수는 사탄의 통치에서 승리를 십자가에서 선언했다(D-day). 그리고 마지막 때에 승리할 것이다(V-day). 현재는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 왕국으로 주권이 전이되는 묵시적 틀을 제안했다(111쪽). 김세윤은 예수를 주권 전이에서 죄용서와 회복하는 길을 가르친 선지자로, 바울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 구도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길을 가르친 선지자로 본 것이다(111쪽). 정통 신학은 사탄은 하나님께 반역한 종으로 본다. 사탄이 하나님께 반항 불순종하는 구도이지, 대결하는 구도는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김세윤에게 죄는 무엇인가? <칭의와 성화>에서는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구원이란 무엇인가>에서 인류가 죽음의 병에 걸린 상태로 제시했고 죽음의 원인을 죄라고 했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옳지 않는 태도’로 제시했다. 죄는 자기주장인데 스스로 하나님처럼 스스로 되려는 것이다(<구원이란 무엇인가?>, 12-22).

김세윤은 인간이 하나님을 의존해서 하나님처럼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아담적 실존). 김세윤은 <칭의와 성화>에서 죄를 사탄을 섬긴 행동으로 제시했다(113쪽). 서철원 박사는 죄는 ‘하나님을 반역함’이라고 규정했다(서철원, <인간: 하나님의 형상>, 263쪽).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소요리문답 14문에서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어기는 것으로 제시했다. 신학에서 죄는 실체가 없는 것인데 김세윤의 신학에서는 실체가 있는 것처럼 이해하도록 되어 있다.

김세윤은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의 전이를 구속, 죄사함/칭의로 제시했다(112쪽). 구속은 사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112쪽). 죄사함은 칭의의 부정적 표현(112쪽)이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은 칭의의 긍정적 표현이다(113쪽). 그래서 구원은 죄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회복된다(115쪽).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 나라가 사탄의 나라를 멸망시키는 묵시적 틀이다(115쪽).

죄인의 회복은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끌어 쓰는 것이고 그것이 영생이다(117쪽).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는 요구를 따라서 백성답게 사는 것이 제자도이다(117쪽). 그것은 이중사랑계명으로 윤리적 삶이고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118쪽). 이중사랑계명은 그리스도의 법이고,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보냈고(보냄의 형식) 통치로 넘겨준(넘겨줌의 형식) 것으로 제시했다(120-121쪽). 김세윤에게 지금은 하나님의 통치가 있지만 완전하지 않지만 칭의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시작하였다. 부활/승천을 통해서 칭의가 완성으로 가고 있다(124쪽). 김세윤의 유보적 칭의 이해는 결국 칭의 시점이 십자가에서 시작해서 종말에 완성된다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선취적과 포괄적 이해 방식).

김세윤에게 죄에서 전이시킨 구속은 하나님의 아들이 옮긴 것이다. 이런 구도는 묵시문학적 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구원이란 무엇인가>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제시한다. 제사, 화해 등을 그림언어로 설명했다(<구원이란 무엇인가?>, 54-58쪽). 그림언어는 몽학선생 기능과 관련 없다. 그림언어는 깨닫게 하는 방식이고, 몽학선생은 메시아를 기다려 믿도록 하는 방식이다. 김세윤은 십자가의 죽음을 ‘내’가 사탄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통치로 주권이 전이되는 사건(복음)으로 깨닫고 수용하면 된다. 김세윤에게 ‘믿음’은 듣는 자가 자발적으로 결정하는 자기의식이다.

김세윤의 <칭의와 성화>는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전제하고 쓴 것으로 보인다. 사상의 일관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김세윤의 주권 전이 사상에서 문제점은 ‘원죄’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묵시문학의 틀에서 등장하는 사탄의 통치가 실제적인지도 의문이다. 문학과 실재를 자유롭게 왕래한다. 문학 작품의 감화력이 실재에 영향력을 주기는 하지만 성경의 감동과 비교할 수 없다. 김세윤은 1970년대 자유주의 후에 확립된 현대신학 기반에서 신학을 했다. 현대신학 기반을 전혀 부정하지 않고 편승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교회 신학 수준은 유럽에 비교해서 매우 보수적이다. 보수적이란 것은 하나님의 성육신, 성경의 축자영감, 무오 등을 정확하게 믿는 것이다. 독일에서 하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칼 바르트 신학을 꼴통 보수라고 평가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신학 논쟁 중인 수준이라 후진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세계 신학계는 새관점 학파까지(예수 3탐구/현자 예수) 나갔지만 한국은 아직 김세윤 신학(구관점, 예수 2 탐구/인자 예수)도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 신학교에서 칼 바르트 신학을 거의 수용하였고 허용하면서 김세윤의 신학도 대세로 정착하고 있다. 김세윤의 신학이 칼 바르트 신학을 매우 쉽게 접근하도록 하는 앞잡이일 것이다. 바르트는 현대 철학에 근거해서 신학했는데, 새관점 학파는 주전 2세기와 주후 1세기 문헌을 근거로 신학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신학은 한국 교회에 너무 생소한 학문 지식이다. 한국 신학계가 신진 신학에 대해서 무작정 선망이 있는데, 계몽철학과 실존철학으로 유럽 교회가 파괴되었고, 새관점 학파의 환경에서는 더욱 심한 지경에 있다. 윤리 운동으로 기독교는 무너졌고, 신비주의 운동으로 무너짐의 지경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 김세윤의 신학은 예수의 계명을 윤리 운동으로 평가하고 그것을 의의 열매라고 한다. 하나님의 주권 전이를 윤리적으로 세울 수 있도록 투쟁까지 제안한다. 윤리 운동으로 교회를 파괴한 역사는 있지만 세운 역사는 없다. 지구상에 가장 발달한 윤리 공동체는 유럽이지만 한국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해야 할 지경이다.

김세윤에게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한국 일부 교회는 악(사탄)의 세력이다. 그 교회는 아담의 원죄를 믿고 고백하며, 제 2의 아담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의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택자를 부르는 것을 칭의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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