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원과 김세윤 2

▲ 한국교회의 세계적인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조직신학, 전 총신대신대원장(은퇴))

신학자들은 신학을 진행할 때 반드시 개념화, 신학화한 단어를 사용한다. 김세윤도 가르치는 선생이기 때문에 개념화가 나름 되어 있다. 그 개념을 잘 이해하면서 자기 개념을 확립하는 것이 학도의 자세이다. 반면 서철원 박사도 선생이기 때문에 개념화가 되어 있다. 서양 신학자자들의 개념은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국 신학자들의 개념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서철원 박사나 김세윤의 신학 개념도 저술과 강연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전편에서는 두 신학자의 신학 여정에 대해서 비교했고, 이번에는 두 신학자의 ‘의(義)’ 개념에 대해 제시하려고 한다.

첫째, 서철원 박사는 ‘의(義)’를 ‘하나님 앞에서 생존권’이라고 한다. 김세윤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라고 한다. 칭의에 대해서는 서(徐)는 하나님께서 생존권을 법적으로 주시는 행동이고, 김(金)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돌입하는 것이다. 서(徐)는 하나님께서 법적으로 생존권을 부여하였지만, 실제에서는 완전하기 못하기 때문에 믿음의 정진, 성화를 진행해야 한다. 김(金)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들어갈 필요성을 자각(自覺), 깨닫고 진행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자각해야 한다. 진행방법은 유사하다.

서(徐)는 성화의 진행방법에서 “나는 주 예수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가르치고, 김은 “예수는 주이십니다”라고 고백하라고 가르친다. 두 문장이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서(徐)는 믿음의 대상을 자기 고백으로 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고, 김(金)은 믿음의 내용을 자신이 고백하는 것이다.

서철원 박사의 고백을 따르면 믿음의 대상을 밝히고, 기도의 대상을 고백하며, 에배의 대상을 고백한다. 김세윤의 고백을 따르면 믿음의 내용을 인지한다. 다만 믿음의 내용이 ‘예수의 주입니다’라는 선에서 한정되고, 윤리에서 확장을 추구한다. 그러나 서철원 박사에게서는 믿음의 대상과의 영적 관계에서 확장성을 추구한다.

둘째, 서철원 박사는 의를 생존권이라고 하면서 모든 영역에서 생존권이 확장되기를 가르친다. 김세윤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올바른 관계로 세울 수 있기를 가르친다. 두 신학자가 신학과 삶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동일하고, 동일개념을 확장시키는 것도 동일하다. 그러나 방법과 내용에서는 전혀 다르다. 서(徐)는 모든 영역에서 생존권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생존권의 활성화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개념화한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관계에 대해 김(金)은 자기 정의로 형성하여 가르친다. 올바른 관계가 노예 제도 폐지라고 한다. 노예 제도는 19세까지 유지하던 상식이었다. 사회 양극화에 대한 문제성에 대한 인식도 전혀 다른 개념이다. 두 선생 모두 사회 양극화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것이다.

서(徐)는 생존권을 위협하기 때문에 바르지 않고, 김은 노예화하기 때문에 바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자살의 문제에서는 서(徐)는 생존권을 없애기 때문에 바르지 않으며, 김은 이혼이나 사기보다는 가벼운 죄라고 말한다. 김세윤은 사회의 다양한 문제 순위에서 자살은 이혼이나 사기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김(金)은 양성 평등을 주장한다는 미명 아래서 여성 성직안수를 주장한다. 또 자기주장이 성경적이라고 하면서 여성에 대한 부정적 견해로 인식될 것 같은 성경 본문은 후대에 삽입되었다는 주장을 자연스럽게 한다.

▲ 복음주의권에서 넒은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의 세계적인 신학자 김세윤 박사(플러신학교)

그렇다면 김세윤은 양성 평등의 가르침이 성경에 근거한 것인가?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위해서 성경을 조각하는 것인가? 성경의 가르침은 ‘양성평등’이 아니라 ‘올바른 관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양성평등을 주장하면서 양성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오히려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파괴를 넘어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개념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칼 맑스적 개념(공상주의)이고 정치신학(해방신학)의 개념과 맥을 같이 한다.

한국에 세계적인 신학자가 있는 것은 한국 교회에 복이다. 그리고 두 선생의 가르침이 다른 것도 매우 유익한 것이다. 독자들은 두 선생의 가르침을 명확하게 비교하여 바른 가르침을 합리적으로 분별하여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마땅한 살길을 준 것이다.

개혁신학은 맹목적 신학은 우상숭배로 판단한다. 아무리 바른 가르침이라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비인격적이다. 기독교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칼 맑스는 종교(기독교)를 아편이라고 정의했다. 그것은 맹목적인 신앙과 윤리화는 되어 있지만 경제적으로 불균형된 기독교 사회를 비판한 것이다. 두 신학자는 동시대 한국 사람이고 지역은 다르지만 유럽에서 공부하였다. 다만 서철원 박사에게는 적은 수의 학도(學徒)가 있고, 김세윤에게는 다수의 학자와 목회자들과 학도들이 추종하고 있다.

필자는 두 가르침이 너무나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에 한 신학자의 가르침을 선택하여 가르침을 명확하게 이해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두 신학자의 가르침이 명확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한 가르침은 기독교 구원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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