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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과 김세윤의 '하나님의 의(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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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과 김세윤의 '하나님의 의(義)'
  • 고경태
  • 승인 2016.06.28 22:02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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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과 김세윤 2
▲ 한국교회의 세계적인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조직신학, 전 총신대신대원장(은퇴))

신학자들은 신학을 진행할 때 반드시 개념화, 신학화한 단어를 사용한다. 김세윤도 가르치는 선생이기 때문에 개념화가 나름 되어 있다. 그 개념을 잘 이해하면서 자기 개념을 확립하는 것이 학도의 자세이다. 반면 서철원 박사도 선생이기 때문에 개념화가 되어 있다. 서양 신학자자들의 개념은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국 신학자들의 개념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서철원 박사나 김세윤의 신학 개념도 저술과 강연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전편에서는 두 신학자의 신학 여정에 대해서 비교했고, 이번에는 두 신학자의 ‘의(義)’ 개념에 대해 제시하려고 한다.

첫째, 서철원 박사는 ‘의(義)’를 ‘하나님 앞에서 생존권’이라고 한다. 김세윤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라고 한다. 칭의에 대해서는 서(徐)는 하나님께서 생존권을 법적으로 주시는 행동이고, 김(金)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돌입하는 것이다. 서(徐)는 하나님께서 법적으로 생존권을 부여하였지만, 실제에서는 완전하기 못하기 때문에 믿음의 정진, 성화를 진행해야 한다. 김(金)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들어갈 필요성을 자각(自覺), 깨닫고 진행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자각해야 한다. 진행방법은 유사하다.

서(徐)는 성화의 진행방법에서 “나는 주 예수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가르치고, 김은 “예수는 주이십니다”라고 고백하라고 가르친다. 두 문장이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서(徐)는 믿음의 대상을 자기 고백으로 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고, 김(金)은 믿음의 내용을 자신이 고백하는 것이다.

서철원 박사의 고백을 따르면 믿음의 대상을 밝히고, 기도의 대상을 고백하며, 에배의 대상을 고백한다. 김세윤의 고백을 따르면 믿음의 내용을 인지한다. 다만 믿음의 내용이 ‘예수의 주입니다’라는 선에서 한정되고, 윤리에서 확장을 추구한다. 그러나 서철원 박사에게서는 믿음의 대상과의 영적 관계에서 확장성을 추구한다.

둘째, 서철원 박사는 의를 생존권이라고 하면서 모든 영역에서 생존권이 확장되기를 가르친다. 김세윤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올바른 관계로 세울 수 있기를 가르친다. 두 신학자가 신학과 삶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동일하고, 동일개념을 확장시키는 것도 동일하다. 그러나 방법과 내용에서는 전혀 다르다. 서(徐)는 모든 영역에서 생존권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생존권의 활성화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개념화한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관계에 대해 김(金)은 자기 정의로 형성하여 가르친다. 올바른 관계가 노예 제도 폐지라고 한다. 노예 제도는 19세까지 유지하던 상식이었다. 사회 양극화에 대한 문제성에 대한 인식도 전혀 다른 개념이다. 두 선생 모두 사회 양극화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것이다.

서(徐)는 생존권을 위협하기 때문에 바르지 않고, 김은 노예화하기 때문에 바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자살의 문제에서는 서(徐)는 생존권을 없애기 때문에 바르지 않으며, 김은 이혼이나 사기보다는 가벼운 죄라고 말한다. 김세윤은 사회의 다양한 문제 순위에서 자살은 이혼이나 사기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김(金)은 양성 평등을 주장한다는 미명 아래서 여성 성직안수를 주장한다. 또 자기주장이 성경적이라고 하면서 여성에 대한 부정적 견해로 인식될 것 같은 성경 본문은 후대에 삽입되었다는 주장을 자연스럽게 한다.

▲ 복음주의권에서 넒은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의 세계적인 신학자 김세윤 박사(플러신학교)

그렇다면 김세윤은 양성 평등의 가르침이 성경에 근거한 것인가?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위해서 성경을 조각하는 것인가? 성경의 가르침은 ‘양성평등’이 아니라 ‘올바른 관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양성평등을 주장하면서 양성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오히려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파괴를 넘어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개념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칼 맑스적 개념(공상주의)이고 정치신학(해방신학)의 개념과 맥을 같이 한다.

한국에 세계적인 신학자가 있는 것은 한국 교회에 복이다. 그리고 두 선생의 가르침이 다른 것도 매우 유익한 것이다. 독자들은 두 선생의 가르침을 명확하게 비교하여 바른 가르침을 합리적으로 분별하여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마땅한 살길을 준 것이다.

개혁신학은 맹목적 신학은 우상숭배로 판단한다. 아무리 바른 가르침이라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비인격적이다. 기독교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칼 맑스는 종교(기독교)를 아편이라고 정의했다. 그것은 맹목적인 신앙과 윤리화는 되어 있지만 경제적으로 불균형된 기독교 사회를 비판한 것이다. 두 신학자는 동시대 한국 사람이고 지역은 다르지만 유럽에서 공부하였다. 다만 서철원 박사에게는 적은 수의 학도(學徒)가 있고, 김세윤에게는 다수의 학자와 목회자들과 학도들이 추종하고 있다.

필자는 두 가르침이 너무나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에 한 신학자의 가르침을 선택하여 가르침을 명확하게 이해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두 신학자의 가르침이 명확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한 가르침은 기독교 구원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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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2017-12-21 17:37:22
김세윤교수 사단의 거짓복음을 쫓는 기독교인이라는 가면쓴 사람이다 그런사람을 좋아하는 서로사랑님 박.대.영. 씨 맞죠

바울처럼 2017-12-21 02:50:06
서로 사랑님,
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신진모님께서 인용하신 김세윤 교수의 저서에 쓴 글이 반박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아니면, 저 글이 가짜라는 것인가요?

서로사랑 2017-12-21 00:05:35
고박사님의 루터의 칭의론에 대한 글에서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예리한 통찰로 저의 고민을 덜어 주셨습니다. 감사하고요~.

비판이 있기에 발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목회자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을 것 같아 글을 올려 봅니다.

서철원, 김세윤 박사님, 두 분 모두 존경받는 교수님들이십니다.
그런데, 서교수님은 독일에서 공부하셨고, 교의학을 가르치셨고,
김교수님은 영국에서 공부하셨고(후에 독일에서도) 성경신학을 가르치셨습니다.
학자이기에 자신의 (교의, 성경) 학문적 언어로 인해 "때로 대립하고 충돌하고, 상충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신학적 입장을 나면 아버지와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분은 아버지의 언어로 가르치고, 한분은 어미니의 언어로 가르칩니다.
아버지는 경상도 분이고, 어머니는 전라도 분입니다. 용어가 다르고 못알아 듣지 않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상충되는 듯 하면서도 전혀 그 내용을 소화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글을 잘 쓰는 학자여도 다 표현(담아낼 수)할 수 없는 것이 한계이겠지요.
또 각자마다 견해의 차이나 주장이 있습니다.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두 분 다 세계적인 석학이요, 탁월한 학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수용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의학에서의 신앙고백은 뼈와 같이, 성경신학에서의 신앙고백은 살과 같음을 느낍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사도신경의 옛번역과 새번역처럼 말입니다.
이전에 외었던 사도신경은 지금도 그냥 입어서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새번역 아직도 어색합니다.
새로 번역된 사도신경은 지금도 보고 읽고 있습니다.
두 분의 해석 방식과 용어, 관점을 대결 구도가 아니라 각각의 색깔있는 신학적 특색으로 보면 더 풍성한하고 하모니를 경험합니다.
아래의 글 중에는 교수님들께 이 글만 읽고 쓰신 분들은 종자연에 계신 분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두 교수님 모두 정통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분들입니다.
지나친 표현은 삼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지나친 표현에 대해서 두 분 교수님께 정중한 사과를 부탁드립니다.
비판을 하려면 근거와 내용을 찾아서 반박의 글을 올려 주시면 됩니다.
목회자라면 더 더욱 조심해서 표현해야하지 않을까요.

양성평등 2016-06-30 21:50:37
이건 인본주의의 표본이죠.
젠더이론에서 발생한 거.
안수 문제는 약과죠.
성별에 대한 구분도 없애버리는 것이 소위 성평등..

신진모 2016-06-29 15:21:15
임진남목사님께서 올리신 글을 참조하였습니다.
아래 글은 김세윤교수의 저서에 나온 김세윤교수의 글입니다.

“원래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이 이끄는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복음서에서 모두 그 흔적을 볼 수 있는데, 특별히 요한복음1장 19-51절까지 본문이 그것을 잘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는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고, 때문에 요한의 부흥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다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이후 요한의 운동으로부터 점차 독립하여 하나님 나라 운동을 새롭게 시작한 것으로 사복음서들은 모두 그리고 있습니다. 사복음서 모두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마3:13-17, 막1:9-11, 눅3:21-22, 요1:29-34). 여기에서 우리는 세례 요한과 예수의 관계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는 세례 요한의 운동에 동참한 분으로, 일단 세례 요한이 선포한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 도래를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이어 받았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스스로를 헌신해야 한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세례 요한의 가르침을 이어받습니다.” (김세윤. 두란노. 주기도문 강해 16p)

위글을 읽어보면 할 말을 잃습니다.
예수가 세례요한의 운동에 동참하고 그 메세지를 이어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란 사람이 우리나라의 최고의 신학자입니다. 그리고 그를 두둔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씁쓸합니다.
예수께서 직접 세례요한을 어떻게 편가했는지 성경도 안 읽어본 모양입니다.
성경은 무시하며 신학박사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례요한은 켜서 비치는 등불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스스로 빛이신 예수가 켜서 비추는 요한의 가르침을 이어 받았다고 말하는 엉터리 신학자가 최고의 신학자???

세례요한은 말년에는 예수를 의심하기 까지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끝까지 예수를 가리키는 사역을 다하지 못하고 헤롯의 잘못을 꾸짖다 죽었습니다.
헤롯만 율법에 불순종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죄인이었습니다.
그 죄인들을 회개시켜 예수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세례요한의 임무였습니다.
예수를 임무를 다하지 못한 세례요한의 제자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에 대한 신성모독입니다.
김세윤교수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는 신학자입니다.
김세윤교수의 저런 교훈을 배운 제자들도 깨우치지 않으면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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