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가 종말론적으로 유보된 것”이라는 김세윤 교수의 주장은, 조금 자세하게 말하면 “십자가에서 칭의가 포괄적으로 시작했고 완성은 재림 때에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성경적으로 정확에 가까운 요약인 것으로 보였지만, 고경태 목사님의 비평에 의하면 세부적으로 사용된 개념과 설명을 보면 문제가 많은 것을 봅니다.

김세윤 신학에 대해서 고경태 목사님이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김세윤 신학에서 구원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무한, 충만에 참여하게 됨’이다(두란노, 칭의와 성화 57p ) 그래서 ‘구원의 결국’을 ‘하나님과 같이 됨’을 목표로 제시했다(두란노, 칭의와 성화 58p)

또한 임진남 목사님이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아포데오시스(apotheosis) 즉 인간이 참으로 하나님 같이 됨을 뜻하는데 그런 구원을 예수는 ‘하나님 나라’ 라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도란노. 주기도문 강해. 118p.)

사실 김세윤 신학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확연히 드러나는 주장은 임진남 목사님이 제시한 또 다른 자료에서입니다.

“인간의 피조물적 한계성을 극복하고 무한하고 영원한 하나님 세계에 참여하는 것, 신성을 입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 예수께서는 그러한 온전한 구원을 가져오는 메시아이다”.(두란노, 요한복음강해 54p.)

우리는 먼저 우리가 아는 기초적 교리를 확인해 보아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성자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인성을 입으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성자하나님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인성이 생겨나시고 취하신 것입니다. 성경의 표현으로는 성육신하셔서 말씀이 육신이 되심으로 참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한 인격 두 본성. 성자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셔서 참인간이 되심으로 이제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창조 전 영원 전부터 근본하나님의 본체이신 성자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위하셔서 지금은 동시에 참인간이십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계시록의 짐승은(적그리스도) 인간 속에 들어가 인간을 입지만 성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이제 영원하신 두 본성 중 하나이며 본성입니다. 그리고 루터파의 일부주장을 제외하고는 개신교 기초교리에서는 예수님의 인성은 영원히 신성과 혼합되지 않으시며 영원히 인성으로 존재하십니다. 당연히 신성은 영원히 신성으로 존재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인간이 되신 이유를 지식으로라도 알고 있습니다. 골로새서의 침례비유를 통한 설명으로 우리는 참인간이신 예수님과 합하여 죽었고 참인간이신 예수님과 합하여 살아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설명은 우리의 인성은 영원히 인성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십니다. 영지주의 사상가들이나 신사도 운동가들의 우리는 신이 된다는 주장처럼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성은 영원히 신성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신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에 임하는 충만으로 충만할지라도 우리는 신이 되지 않습니다. 쉬운 표현으로 얘기해볼까요.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더라도, 바로 하나님으로 충만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함께하시는 애초부터 하나님의 형상인 피조물입니다. 다시 말해볼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함께하시는 애초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피조물이며 이제 양자됨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는 신성을 입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안에 거하시는 피조물이며, ‘애초부터 영원히 피조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이제 기초교리 만으로도 우리는 김세윤 신학의 정체성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김세윤 신학이 개념만이 아닌 주장에서 영지주의적인 냄새가 나는 것은 고경태 목사님이 비평 중에 언급하신 것처럼 김세윤 신학이 중간기 유대인의 묵시문학을 사용해서 돌파구를 찾는데 따르는 당연한 결과로 보입니다. 목사님들의 신앙고백에 가까운, 분별에 근거한 비평이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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