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의 신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통신학에서 사용하는 신학적인 용어들을 파괴하는 것이다. 예수를 “그 사람의 아들”이라고 한다. 또한 예수가 창조 때 하나님의 일을 시행하는 시행자로 활동하였다고 하며, 칭의를 예수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의롭다고 칭함 받는 것은 유보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구원이 유보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가 중보자가 아닌 중계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김세윤이 말하는 중계자는 무엇인가? 김세윤에게 있어 예수가 중계자라고 하는 것은 그가 예수에 대한 이해를 아주 단순하면서도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단어이다.

한마디로 말해 중계자란 ‘중간에서 받아 이어주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영어에서 mediator가 중재인, 중재자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 단어가 중보자라는 뜻을 의미할 때는 단순히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해주는 의미만을 함의하는 것은 아니다. 중보의 의미는 중재, 또는 중계의 의미보다 더 포괄적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화해시키는 차원을 뛰어넘어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여 살펴주시며 함께 하신다. 이것이 진정한 중보자 개념이다. 이 중보자의 개념 속에 예수의 삼중직분이 다 들어 있다. 그리고 중보자속에 신인양성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김세윤은 예수가 중계자라고 하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유대문학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한 속성으로 말한다. 그리고 이 지혜가 하나님의 실행자로 점차 실체화하고 인격화 했다고 한다. 바로 예수가 이렇게 하나님의 지혜로 중계자 역할을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통신학에서 말하는 중보자는 오직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자이시며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여 주시는 분이 바로 중보자인 것이다. 중계자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중보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자신의 택자들을 끝가지 보호하여 주신다. 중계자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천상에서 무엇을 하는지 김세윤은 과연 말할 수 있는가?

유대묵시문학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속성의 하나인 지혜가 실체화 된 것을 사도 바울이 예수를 그렇게 인식하였다고 김세윤은 주장한다. 유대문학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딸이다. 특히 히브리어에서나 헬라어에서 지혜는 여성으로 많은 다른 사상들을 표현할 수 있지만, 예수가 남성이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을 더 심오하게 하였다고 한다. 김세윤은 사도 바울이 유대문학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심오한 신앙고백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창조 전부터 성부 하나님에게서 나시지 않고 단지 성부의 사역을 실행하는 중계자로 택함 받은 아들이다.

“구약과 유대의 묵시문학에서는 하나님이 나타나심에 대한 환상들이 하나님을 사람의 형상으로 본 것으로 자주 기술되어 있다. 선자자들이나 묵시가들은 하나님께서 인간 같이,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본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출현사건이 일어날 때 보이는 것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중계하는 그의 실행자, 곧 하나님의 계시의 중계자인 것을 깨달았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가 중계자를 통해 나타난다고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중계자들을 ‘하나님의 형상’ 또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불렀다고 김세윤은 주장한다. 그래서 바울이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고백하게 한 것이다.

“이런 배경에 비추어 우리는 다메섹 도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출현 때 바울이 높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남을 보았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때 예수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밝은 빛살들로 둘러싸여 아주 영광된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같이, 또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예수와 바울. 「바울 복음의 기원」 두란노, pp.349-363)

김세윤은 사도 바울이 예수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을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중계자로 나타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구약과 유대문학에서 천사도 하나님의 중계자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 단지 천사와 같이 또는 특별하게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내시는 인간일 뿐이다.

또한 김세윤은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환상을 통해 예수를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 복음의 기원은 다메섹 도상에서 계시이지 다른 무엇도 아니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의 복음이 과연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의 계시라고 하는 주장에는 심각한 독소가 숨어 있다. 그것은 신, 구약 성경의 통일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복음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유대 율법주의 사상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와는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구약에서부터 줄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조상들에게 고난 받는 그리스도를 말씀하여 주셨다고 하는 것을 가르쳤다.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이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가지고 강론한 내용들이 무엇이었나? 그것은 바로 구약 성경에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 받고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살아나신 다고 하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계시가 아니라 이미 구약성경 전체에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이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유대 묵시문학에 영향을 받아 예수를 이해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구약에서부터 계시된 메시아를 바르게 이해하게 된 것이다. 유대인인 사도 바울이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구약성경을 가지고 강론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세윤의 신학은 예수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신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품속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아니다. 결국 인간 예수이며, 인간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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