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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를 주시는 분은 반드시 성화를 이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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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를 주시는 분은 반드시 성화를 이루신다
  • 정이철
  • 승인 2016.09.2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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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교회에서 칭의, 성화에 대한 그릇된 주장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플러신학교 김세윤 박사와 백석대학교 총장 최갑종 박사께서 매우 위험스럽고 비성경적인 칭의신학을 주장하였다고 들었다. 성경과 신학에 관하여 어느 정도 이해를 가진 분들이라면 이 분들의 주장이 너무도 비성경적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분은 나에게 이 두 분의 주장이 루터가 1517년에 시작한 종교개혁(‘신앙회복’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됨)을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음모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매우 심각한 주장이라고 하였다. 김세윤 박사와 최갑종 박사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의 의미를 믿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였음이 영구한 효력을 가지는 것임을 부정하였다는 많은 사람들의 비판이 사실이라면, 이 두 신학박사들은 현재의 성경적 기독교를 종교개혁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악한 학자들이라고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성화’에 관해서도 잘못된 이론이 팽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에게 영원하고 완전한 칭의를 선언하시는그 순간에는 그 사람에게 실질적인 내적인 변화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이다. 성경적 칭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에 근거하는 하나님의 법정적인 선언이지, 그 사람에게서 이루어진 실질적 성화에 근거하는 실질적 칭의선언이 아니다.


칭의을 입은 자에게는 성령의 재창조 사역이 시작된다

칭의의 은혜를 입은 신자에게는 그와 동시에 성령이 임재하신다. 성령께서 임재하심으로 그 사람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 백성으로 재창조되는 은혜가 시작된다. 마귀의 흑암에 눌려 영원히 죽어야 할 죄인이었고, 아담의 죄로 말미암은 마음과 이성의 오염과 부패로 인해 죄와 마귀의 종노릇을 아니할 수 없는 상태였으나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죄를 이기 수 있는 사람으로 성화되기를 시작된다.

먼저 그 사람에게서 성화가 진행되었으므로 칭의를 얻은 것이 아니다. 단지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를 얻고, 그 순간부터 성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성화가 따르지 아니하는 칭의의 은혜는 기독교에서 존재할 수 없으니 일평생 성화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사람은 칭의를 입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칭의와 성화에 관한 성경적인 설명이다. 칭의를 얻은 사람은 자동적으로 성화의 과정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요즘 최근 칭의와 성화에 대한 비성경적인 다음과 같은 이론들이 팽배하고 있다.
 

1) 중보자의 의가 이미 영원 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에게 전가되었다는 견해

영원전에 중보자 그리스도의 의가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에게 전가되어 이미 의인이 되었다는 이론이 있다. 만일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영원 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에게 전가되었다면, 그들은 복음전도를 받지 않도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성립될 수 있다. 이는 전도의 미련한 것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성경의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되니 수용할 수 있는 칭의 사상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믿는 자들에게 칭의를 주었다는 견해

요즘 춘천한마음교회의 김성로 목사의 부활교(부활구원론)에서도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칭의를 주었다는 사상이 나타나고 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김성로 목사와 그의 부활교 사상을 옹호하는 일부 이단전문가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들면서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부활칭의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의 전체 사상을 볼 때,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뜻은 그리스도가 먼저 우리의 죄를 전가받으심으로 스스로 죄인이 되시었고, 죄를 짊어진 죄인으로, 모든 죄인을 대표하는 죄인의 대표로서 대신 저주받으시고 죽으신 그리스도가 자신의 무죄하고 흠 없는 속죄의 피를 흘리심으로 자신에게 전가된 우리의 죄를 사하셨고, 우리를 대표하여 죄 사함을 받으셨음이 부활을 통하여 증명되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이미 의로워졌음을 그리스도의 부활이 증명하였다는 사실을 말했다. 결코 그리스도의 부활 그 자체가 우리에게 칭의를 주었다는 부활칭의론을 바울이 가르친 것이 아니다.
 

3)성화가 진전되고 발전되면서 칭의가 더욱 증대된다는 견해

어떤 사람들은 성화가 발전되고 진전되면서 칭의가 더욱 분명해지고 증대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것이 요즘의 새로운 신학의 흐름이라고 말하면서, 마치 이전의 믿음으로 단 번에 얻는 법정적 칭의 사상을 고수하면 새로운 신학에서 뒤처지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주장의 이면에는 성화가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서 얻은 칭의는 미약한 칭의이고, 성화가 퇴보되면 이미 얻은 칭의도 소실될 수 있다는 그릇된 이론이 내포되어 있다.

이런 주장은 매우 비성경적이고 위험하며, 동시에 행위구원론의 근간이 되는 고약한 누룩을 순결한 복음에 더하고 섞는 죄악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의 은혜에 연합된 우리들에게 이미 완전하고 영원한 칭의를 주셨기 때문이다.
 

4)처음 믿을 때 칭의를 얻었으나 완전한 칭의선언은 최종 심판의 때로 유보된다는 견해

이것이 요즘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김세윤 박사가 주장하는 소위 ‘유보적 칭의’ 사상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처음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를 얻은 신자라 할지라도 이후 믿음의 열매와 합당한 행위, 그리고 성화의 발전이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칭의를 잃고 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행위구원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감리교회와 천주교회의 구원론과 매우 유사한 내용이다.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의와 율법의 행위의 의가 합해져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던 예전의 갈라디아 교회에 잠입한 이단들의 사상과 유사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중보로 말미암은 영원한 칭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성경적 칭의 신학의 핵심을 다시 짚어보도록 하자. 성경은 우리의 어떤 행위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선언하셨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아담이 첫 언약을 파기한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당하셨으므로 우리가 아담의 죄에 대한 연대책임과 형벌에서 면제되었다. 아담의 언약 파기의 죄에 대한 연대책임과 형벌에서 면제받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온갖 죄성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흠없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담의 언약 파기 죄를 대신 짋어지소 피 흘리심으로 죄를 용서하셨고, 의로운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연합되었으므로 의롭다고 여겨주셨다. 성경적 칭의는 여전히 죄의 부패와 오염의 상태를 가지고 있는 실질적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법정적 선언이다. 또한 하나님의 법정적 칭의 선언의 효력은 완전하고 영원하여 결코 변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칭의 선언은 신자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대신 죽으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중보기도를 드리시니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리스도의 십자로 의롭다하시고 자녀로 입양하신 우리들을 다시 버리지 못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얻은 칭의는 우리의 연약함이나 범죄에도 불구하고 결코 변개되지 않는다. 
 

죄의 오염과 부패가 치료되는 일평생의 성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칭의는 우리의 속 사람의 변화와는 무관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여전히 온갖 죄의 가능성과 죄의 오염이 우리 속에 가득한 상태에서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음에 근거하여 법적인 선포 형식로 칭의가 이루어졌다. 옛날의 왕이 어떤 죄인에 대해서 더 이상 죄를 추궁하지 않지 않겠다고 선포하면 아무도 더 시비를 걸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렇다면 전혀 행동과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가? 기독교에서는 이것도 있을 수 없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의롭다하신 자에게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새로운 피조물 되도록 재창조를 행하시는 성령이 임하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믿음으로 의롭다 선언하신 백성에게 실질적인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갖추게 만드는 성화를 이루어가신다. 


인간의 자세가 영향을 미치지만 성화의 주체는 성령

사람의 태도와 자세가 성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힘써서 기도하고, 매일 성경을 읽고, 예배를 중시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성화의 과정이 같은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화의 주체가 성령이 아니고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왜냐하면 성화의 주체는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임재하신 성령이시고,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각종의 하나님의 섭리적인 요소들을 통해 죄를 이기를 사람으로 변화시키시기 때문이다.

성화에 관해 더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은 완전한 성화는 지상 생애 동안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생 동안 죄와 싸우면서 성화의 과정을 지속하는 것이지, 결코 어느 시점에 성화의 완전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펠라기우스, 반 펠라기우스, 알미니우스, 웨슬리, 퀘이커, 찰스 피니, 성결부흥운동(Holiness Movement) 등의 신자의 완전성화를 추구하는 운동이 교회사에서 일어났으나, 이러한 것들은 더욱 더 심각한 부작용을 교회사에 남겼을 뿐이다.


한국 교회의 칭의, 성화에 대한 혼란

얼마 전에는 어떤 분이 한국 교회가 성화를 강조하지 않고 칭의만 강조하였으므로 한국 교회의 복음이 싸구려로 전락했다고 우려하는 설교를 하였다고 언론에 소개되었다. 상당히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의 내용이 그러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한국 교회의 또 다른 서글픈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칭의를 주시는 분과 성화를 이루시는 분이 같은 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칭의가 있었다면 반드시 삶이 복음적으로 변하는 성화가 뒤 따르게 되어 있다. 이것이 성경적 복음의 원리이다. 그리스도를 믿어 칭의를 얻게 하시는 분과 의롭다고 인정하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삶을 변화시키시는 분이 같은 하나님이다. 칭의를 얻은 분에게 성화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칭의를 주신 분과 성화를 이루시는 분이 다른 신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신자들에게 칭의만 강조하고 성화를 덜 강조했다는 것이 현재 한국 교회의 문제라고 진단하시는 유명한 목사님들은 복음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다. 아마 그래서 그런 분들이 관상기도, 여성안수 ... 등의 문제들과 이미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많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삶의 변화, 즉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성화를 이루시는 성령이 그들 안에서 일하시지 않는 다는 증거이다. 교인들은 많아도 성화를 이루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것은, 동시에 칭의를 얻었다고 자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착각에 빠져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칭의를 얻은 자들에게는 반드시 성령의 성화의 사역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성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이 일하실 수 있는 근거, 성경적 복음이 온전하게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한국 교회의 칭의와 성화에 대한 논쟁은 과연 한국 교회에서 성경적인 복음이 선포되었는지를 점검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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