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보기도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믿음이 연약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것이 중보기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보기도라는 말과 개념을 퍼뜨린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의 엄청난 심각한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보기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하나님을 위해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것이 가장 대표적인 중보기도라고 알고 있다.

성경적 근거가 없는 중보기도 사상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는 누구에게서 남을 위해서 하는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배웠는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셨는가? 사도 바울이 그렇게 가르쳤는가? 전혀 아니다. 물론 성경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한다. 사도 바울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고 자주 요청했다. 그러나 그 말씀들 속에 ‘중보’(intercede) 또는 중보기도 사상의 핵심 요소인 ‘중재’(mediate))라는 개념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 ‘철야기도’ ... 등의 용어도 성경에는 없으나 지금 무탈하게 교회들이 잘 하고 있으니 중보기도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중보기도는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중보기도 운동은 70년대부터 시작되어 90년대에 들어 세계 교회에 널리 퍼졌다. 이제 중보기도라는 말을 안 쓰는 교회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므로 중보기도 사상이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곤란하다고 한다. 분명한 사실은 신약 성경에서 중보기도의 개념이나 사상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중보기도 사상을 퍼뜨리고 있는 중보기도 운동가들이 이 사실을 더 잘 알고 있다. 다음은 중보기도 운동을 대표하는 미국의 신디 제이콥스(Cindy Jacobs)의 말이다.

“중보기도의 은사는 성경에서 그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였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음악의 은사나 교회에서는 안내 봉사의 은사, 혹은 음향기기를 직접 다루는 은사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신디 제이콥스)

스스로 중보기도의 장군임을 자처하는 신디 제이콥스도 중보기도에 대한 가르침이나 중보기도 은사가 성경에 없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중보기도 은사를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신약의 교회에 중보기도 사역(ministry)이 필요 없다는 것이고, 중보기도의 은사를 발휘하는 중보기도 직책(직분, office)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날 사도의 직분(office of apostle)이 교회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계시를 수납하여 성경을 저술하여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사도의 은사가 이미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날 선지자라는 직분(office of prophet)이 교회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성경이 완성되었고,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아 성경을 교회에 가르치고 적용할 장로, 즉 오늘 날의 목사의 직분이 세워짐으로 초대교회의 단회적이고 임시적이었던 선지자의 은사가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214년에 신디 제이콥스가 방한하여 '주의 길을 예비하라'라는 주제의 신사도 집회를 인도하면서, 하나님께서 한국에 세례 요한과 같은 선두주자의 기름부름을 주셨고 한국은 지금 대부흥의 문턱에 있다고 거짓된 예언적 설교를 하고 있는 모습)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성도를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성령의 다양한 은사가 소개되어 있는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장의 은사들의 목록 어디에도 중보기도 은사는 없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구약 시대에는 모세, 사무엘, 다니엘 등의 인간에게 중보기도의 은사가 주어졌었으나 신약 시대에는 그 누구에게도 중보기도 은사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최종적이고 완전한 중보자로 오시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중보의 사역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신약 시대는 십자가를 지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사역을 완성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미 확립된 하나님의 사죄의 은혜, 하나님의 자녀 됨의 은혜, 성도에게 주신 영원한 행복과 영생을 누리는 시대이다. 구약 시대처럼 불완전한 인간 중보자를 통하여 은혜를 누리고, 그 인간 중보자의 대리기도에 의존하는 시대가 아니다.

지금 신약의 교회 에서는 누구도 다른 누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할 수가 없고, 할 필요도 없다. 오직 완전한 중보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누릴 뿐이다. 그러므로 신약 성도의 삶과 기도를 ‘중보적’이라는 말로 표현해서도 안 된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를 완성한 참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누릴 뿐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작은 수고와 고난을 감당할 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작은 수고와 기도를 '중보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가 않다. 

유명한 중보기도 장군들(운동가들)은 있지도 않는 중보기도를 스스로 잘 하는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신디 제이콥스라는 미국 여자인데, 중보기도 사상에 대한 그녀의 논리는 좀 이상하다. 신디 제이콥스는 교회음악(찬양), 예배안내, 음향기기를 조작하는 은사도 성경에 열거되어 있지 않으나 지금 교회에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교회음악에 대한 성경의 여러 형태의 말씀들은 많다. 성경에 딱히 교회음악에 대한 은사가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교회의 음악을 위해 성령이 주시는 은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음악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나도 혼자서는 테너, 베이스의 음을 내지 못하지만, 잘하는 사람 옆에 앉으면 어느 정도 따라할 수가 있다. 미국의 고등학교 학생들은 모두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연주하도록 교육받는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의 교회에서는 음악이 더 발달되어 있다. 교회음악0을 위해 반드시 특별한 성령의 은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배안내도 그렇다. 꼭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만 예배안내를 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일꾼이 부족한 개척교회를 인도하고 있다. 교회 나온 지 불과 6개월 된 사람에게 예배 안내를 맡겼더니 그런대로 잘 하셨다. 일본식 레스토랑을 운영하시는 분인데, “어서오세요~!”라면서 주보를 나누어 주셨다. 꼭 식당에 오시는 손님을 맞는 분위기와 목소리였다.

그렇다고 예배를 망치거나 못 드리겠는가? 사람들에게 주보는 나누어 주며 인사를 하는 예배 안내가 교회의 기초와 사활을 좌우하는 그렇게 중대한 문제인가? 안내가 없어도 각자 주보를 찾아가면 되는 것이고, 안내를 맡은 사람이 막대기처럼 서서 주보만 내밀어 준다하여 예배를 교회와 예배를 망치는 것도 아니다. 음향장비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교회의 음향장비는 매 주일 스위치를 켰다 껐다하고 볼륨과 몇 가지를 조작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 아무리 예배당이 크고 장비가 커도 한 시간 연구하면 나도 어지간히 다룰 수 있다. 어찌 이런 것들과 고도의 영적 전쟁을 수행한다고 저들이 홍보하는 중보기도의 은사를 비교하겠는가?

중보기도 은사가 성경에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중보기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영적인 중재자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보기도의 은사가 성경에 없다면, 지금 일어난 중보기도 운동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헛된 일이 되는 것이다. 전 세계의 수 많은 교회들이 거짓된 중보기도 사상가들이 허황된 이론에 속절없이 말려들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정말 성경에는 중보기도 은사와 중보기도 직책이 신약의 교회에 주어진다는 내용이 한 줄도 보이지 않는다.

성경에 중보기도 은사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엄청난 것들과 관련되었다.

1)중보기도 사상은 종말의 대 부흥과도 상관되었다. 중보기도 운동가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종말의 대부흥이다. 그들은 종말에 일어날 대 부흥과 영적인 추수를 감당하기 위해 중보기도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늘 말하고 있다.

2)중보기도 운동은 사탄을 결박하는 특별한 사람들의 능력과 연관된 문제이다. 중보기도 운동가들은 자신들이 기도로 사탄을 결박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중보기도 운동가들은 자신들에게 영적인 툭별한 힘과 권세가 주어졌다고 한다.

3)중보기도 사상은 하나님의 직통의 예언과도 연관되어 있다. 유명한 중보기도자들은 거의 대부분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환상을 보고, 하나님이 직접주시는 음성을 듣고 계시를 받는 사람들이다. 만일 중보기도의 은사가 성경에서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중보기도 운동가들이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고 ... 하는 모든 것들이 함께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거짓 영들의 장난으로 증명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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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