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현 목사(사랑의 교회)가 찬양 인도는 재능은 어지간한 복음송 가수의 수준을 능가한다. 어찌나 목소리가 좋은지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스마트 폰으로 오정현 목사가 찬양인도하는 영상을 들으면서 운전했다. 하나의 영상이 끝나면 곧 바로 오정현 목사가 인도하는 찬양 영상이 자동으로 이어졌다. 몇 곡을 듣다가 ‘나의 모습 나의 소유’라는 찬양 영상에서 급히 멈추게 되었다. 오정현 목사는 그 노래를 기름부음이 있는 찬양이라고 했고, 그런 찬양을 드리면서 거룩한 공간이동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게 뭔 소리지?"

의아해서 그 영상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급히 차를 도로 가에 세우고 나의 페이스 북에다 그 영상을 저장하였다.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여 확인해보니, 2017년 2월 사랑의 교회의 특별새벽기도회에서 오정현 목사가 찬양인도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었다. 특별새벽기도 인도하느라 육신이 지치고 피곤한 흔적이 오정현 목사의 얼굴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래서 오정현 목사를 신학적으로 비판하는 말을 하려니 인간적으로 나의 마음도 편치 못하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초대형 교회의 담임목사의 말은 그 영향이 너무도 크다. 특히 수 만명의 사랑의 교회 신자들에게는 그 내용들이 물이 마른 스폰지에 빨려들어 가듯이 들어간다. 그래서 그냥 넘길 수가 없다. 그것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으나, 이제라도 그릇된 것을 가르치는 오정현 목사의 말을 한 사람이라도 깨닫게 만드는 일은 의미가 있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기름부음이 있는 찬양은 우리로 하여금 공간이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 안에서는 늘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싸우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이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서는 육신의 생각을 성령의 생각이 지배해야 합니다. 성령의 소욕이 육신의 소욕을 패퇴시켜야 합니다. 우리에게 오염된 삶의 공간을 두고 있으면 안 됩니다. 이걸 정화할 수 있도록 영적인 공간이동이 가능해야 합니다. 부패한 곳에서 공간이동을 해야합니다. 이런 찬송을 통하여 우리는 영적인 공간이동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주님 앞에 기도할 때 주님은 응답하여 주시는 것이고, 주님을 닮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찬양을 통하여 거룩한 공간이동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오정현 목사)
 

구약시대의 기름부음

오정현 목사는 기름부음이 있는 찬양은 우리에게 영적인 공간이동을 가능하게 해 준다고 하였다. 아마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신자들은 이 부분에서 “뭔 소리지?”하였을 것이다. ‘영적인 공간이동’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름부음이 있는 찬양’이란 대체 어떤 노래일까?

먼저 기름부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기름부음은 구약 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거룩한 예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름부음을 통해 하나님을 위해 선별되었음을 표시하였다는 것이다. 성전에서 특별한 용도로 쓰여지는 물건에도 기름을 발랐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선택된 사람에게도 기름을 부었다. 주로 왕과 제사장이 될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름을 부었고, 선지자로 일할 사람들에게는 기름을 붓기도 했고 붓지 않기도 했다. 많은 선지자들이 기름부음을 받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하는 예언사역을 감당했다.

실제로 기름부음을 받은 적이 없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일을 수행하는 도구로 선택된 사람을 '기름부음 받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 시켰던 바벨론을 패망시키 하나님의 도구로 선택된 페르시아(성경의 '바사')의 건국 왕 고레스는 한 번도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사 45:1)

기름부음이 있은 후에는 하나님의 신, 성령이 그 사람에게 찾아가셨다. 소년 다윗은 사울 왕이 모르게 찾아온 은밀하게 찾아온 사무엘로부터 다음 왕이 될 사람으로서의 기름부음을 받았다. 성경은 그 후에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찾아오시어 감동하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삼상 16:13)

기름부으심을 받은 사람에게 성령의 감동하심이 시작되는 것을 그 사람을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을 위해 준비되게 하심이었다.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은 이후 더욱 더 믿음이 충만해졌고 지혜로워져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의 감동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들을 시편에 많이 남기게 되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인해 다윗이 선지자 사역도 감당하였던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행 2:29,30)
 

신약시대의 기름부음

요약하면, 구약 시대의 기름부음은 1)하나님이 특별하게 택하셨음을 의미하였고, 2)그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신(성령)이 그 사람을 감동하시게 되었다. 신약 성경에도 기름부음이라는 말이 나온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백성이 된 모든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은 것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신자들 속에 거하는 성령을 ‘기름부음’이라고 표현한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요일 2:27)

구약에서는 보이는 기름을 몸 밖에다 발랐고, 그 후에 하나님이 신이 그 사람의 몸 밖에서 동행하시면서 그 사람을 감동하셨다. 구약 시대에는 아담의 죄에 대한 책임과 그것으로 인한 오염을 치유하시는 그리스도의 피 공로가 없었기 때문에 성령이 하나님 백성들의 몸 안으로 임하시지 못했다. 그러나 죄를 속하시는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이 신자들에게 덧입혀지는 신약 시대에는 더 이상 기름을 붓는 예식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덧입음이 영적인 기름부음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기름부음, 즉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적용받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은 자기의 신(성령)을 부으신다. 구약 시대에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에게 곧 하나님의 신이 오셨으므로 구조적으로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덧입은 신약의 하나님 백성에게 오시는 하나님의 신은 구약의 하나님의 신은 같은 분이면서도 동시에 일하시는 모습에 있어서는 다른 분이다. 신약의 성령은 철저하게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대신하기 위해 오셨다는 측면에서 구약의 성령과 기능적으로 다르다. (진정한) 영적인 기름부음, 즉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을 혜택받은 하나님 백성의 몸과 마음 속으로 성령이 임하시니, 이 점에 있어서 신약의 성령은 구약의 성령과 매우 다르시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난 후에 자신을 대신하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오실 보혜사가 제자들의 몸과 마음 속에 거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사도 바울도 성령이 신자들의 몸과 마음속에 거하신다고 하였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요약해 보자! 신약 시대에도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말을 여전히 할 수 있다. 이 말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적용받음을 의미하는 말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할 직분자로 세우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기름부음'이라는 말도 사용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적용받아 죄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 하나님 백성에게 하나님 자신이 친히 오시어 내주하심을 기름부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성부, 성자와 같은 신적본성을 공유하시는 성령이 신자들 안에 임재하심을 기름부음이라고 한다. 모든 참 신자들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이고, 또한 기름부음이 거하는 사람들이다.

현대의 많은 이단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기름부음을 더 받는다고 한다. 유명한 사기꾼들은 자신이 사람들의 이마에 자기 손을 올리거나 건드리면 기름부음이 더 임한다고 한다. 이제는 좀 잠잠해진 것 같으니 무척 다행인데, 이 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주둥이만 벌리면 그런 류의 기름부음 타령을 아주 그럴싸하게 풀었다. 알파코스, G 12, 트레스디아스, 중보기도학교 ... 등등 기름부음을 더 받게 만들어 준다는 사이비 프로그램들이 한국 교회를 지지고 볶았다(볶고 있다).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적용받음이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 제사의 효력으로 죄가 없는 것처럼 된 신자들의 속으로 성부, 성자와 같은 신적본성을 공유하시는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 기름부음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말과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말은 같은 뜻이다. 다음의 성경 말씀을 보라!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요일 2:20)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말과 "기름부음이 우리 안에 있다"는 말은 같은 뜻이다. 다음의 성경 말씀을 보라!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요일 2:27)

그러므로 이 시간 이후 다시는 안수로 기름부음을 준다는 자들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자! 그들은 하나님을 모방하는 귀신의 악독한 사기꾼들이므로 실제로 그들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면 당장 병이 낫기도 하고, 옹알거리고, 점치는 능력이 생기는 등의 그럴싸한 귀신의 일들이 벌어진다. 그 자들은 그것이 기름부음의 증거라고 하는데, 그것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바로 그 악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령을 부리는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돈과 칭찬과 명예가 그들에게 아낌없이 주어지기를 시작하지만, 그들의 끝은 지옥의 불못이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그들과 그들의 영을 따르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다시 또 기억하자!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순간이 기름부음을 받는 순간이고, 그때 우리 속으로 오시는 성령이 기름부음이다. 성령은 우리 속으로 조금씩 나누어서 여러 번 오시는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입은 신자에게 한번에 완전히 오신다. 다윗은 눈에 보이는 기름을 세 번이나 받았다. 그때마다 의미가 달랐다. 그러나 신약 성도들의 영적인 기름부음은 영원히 한 번이다. 재주가 좋은 유명한 목사를 찾아가거나, 소문한 프로그램을 돌려서 얻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인 기름부음이 아니다. 그런 발상은 망령된 하나님 모욕이다.


공간이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름부음이 있는 찬양?

“이런 기름부음이 있는 찬양은 우리로 하여금 공간이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오정현 목사)

오정현 목사는 자신이 인도하는 그 노래를 '기름부음이 있는 찬양'이라고 하였다. 찬양에 기름부음이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성령이 찬양 속에 베여있다는 것인가? 그래서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스며든다는 것인가? 대체 왜 이런 그 많은 사랑의 교회 신자들, 특히 신앙에 열심히 있어서 새벽에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핵심 신자들 앞에서 하는 것인가?

“우리에게 오염된 삶의 공간을 두고 있으면 안 됩니다. 이걸 정화할 수 있도록 영적인 공간이동이 가능해야 합니다. 부패한 곳에서 공간이동을 해야합니다. 이런 찬송을 통하여 우리는 영적인 공간이동이 가능한 것입니다”(오정현 목사)

기름부음이 있는 찬양을 부르면 공간이동을 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대체 무슨 사상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일까? 성경은 타고난 우리의 죄성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말씀에 우리를 던지고, 기도에 힘쓰라고 말씀한다. 죄악된 우리의 삶이 변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죄의 오염을 치유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는다.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 사람이 변화됨으로 가능하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는 성령이 우리의 죄성을 다스리심으로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이다.

대체 무슨 기름부음이 있는 노래를 불러서 어떻게 영적인 공간이동을 하여 거룩한 삶을 살게된다는 것인가? 참 이상한 말이다. 만일 이 말이 우리가 모르는 어떤 계보있는 신학이나 사상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오정현 목사는 당장 이단시비 도마 위로 올려저 날카로운 진리의 칼 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오정현 목사가 그냥 노래 중간에 분위기를 잡기 위해 불쑥 나오는 대로 끼워 넣은 말이었던 것 같다. 만일 무슨 감추어진 사상이나 계보가 있어서 흘러나온 말이라면, 사랑의 교회 신자 수가 아무리 많아도 덮을 수 없는 문제이다.
 

아무데나 붙이는 기름부음 타령은 빈야드 사상

기름부음이라는 말을 그릇되게 활용하는 사람들은 오순절 운동이 등장하면서부터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비성경적인 기름부음 사상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만든 것은 미국에서 일어난 빈야드-신사도 이단 패거리들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입은 신자들에게 성부, 성자와 같은 신적본성을 공유하시는 성령의 임하심을 기름부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미국의 이단 패거리들은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힘과 권능'을 기름부음(anoiting)이라고 변개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이 섬기는 귀신들이 일으키는 더러운 일들에게 적용시켰다. 그리하여 예배 시간에 웃고, 헤롱거리고, 옹알거리고 ... 이런 귀신의 장난들이 기름부음으로 승격되었다.

오정현 목사는 미국에서 목회하는 동안 빈야드 이단의 기름부음 사상에 물들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이전에 누군가 오정현 목사의 어떤 책에서 오정현 목사 자신이 빈야드 운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기술하는 내용을 보았다고 말했으나, 그때는 관심이 없어서 더 다세한 내용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오정현 목사가 빈야드 사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하찮은 노래 하나에 기름부음이 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지금 한국의 여러 찬양가수들과 예수전도단 등의 찬양사역팀들이 자신들의 노래운동이 기름부음을 일으킨다고 홍보하고 있다. 찬양집회를 열고서 자신들의 노래를 통해 기름부음이 흘러넘친다는 내용의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 돌리기를 예사로이 한다. 오정현 목사도 그 중의 한 사람이고, 이처럼 노래와 기름부음을 연관시키는 사이비 사상은 라스베가스 유흥업소에서 음악가로 활동하다가 오순절 신학을 공부하고 거짓된 목사가 되고, 부인을 따라 퀘이커 교회를 섬기다가 나중에 빈야드 이단의 두목이 된 존 윔버로부터 시작된 사상이다.

“노래를 기름부음과 연관시키는 것 하나가지고 너무 심각하게 말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이렇게 가벼이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이것은 중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의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신자라면, 우리의 신앙은 반드시 성경의 가르침 안에서 표현되고 발휘되게 되어있다. 우리 속에 거하시며 우리를 지배하고 인도하시는 영이 성령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의 신앙이 성경적으로 진행되고 발전되도록 인도하시기 영이시다. 만일 신앙이 성경과 다르게 진행되고 표현된다면, 그 핵심적인 이유는 그 사람 속의 영이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신은 단지 성경의 하나님을 모방하는 거짓 신이다.

때로 진실히 성경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나 성경 이해가 부족하여 신앙 표현이 잘못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 경우라면 반드시 성령께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깨우쳐 주신다. 또는 성령의 쓰임을 받는 올바른 스승이나 친구의 도움으로 믿음의 진리를 배워 돌아서게 된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그 사람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영이 성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단들을 절대로 그렇지 못하다. 이단들의 신앙과 사상은 성경적 기독교 신앙과 비슷하지만, 언제나 조금씩 교묘하게 성경과 다르게 나아간다. 아무리 지적하고 가르쳐 주어도 바꾸지를 못한다(않는다). 그들을 다스리고 인도하는 영이 다른 영이고 거짓된 신이기 때문이다. 귀신은 처음부터 그렇게 되라고 그들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항상 신앙의 표현과 적용이 성경과 다른 사람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을 모조하는 악한 거짓 신이다.

지금 세상의 유명한 목회자들 중에 이런 류들이 부지기수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오정현 목사가 친분을 자랑했던 미국의 이단 목사 릭 워랜이다. 그가 성경의 하나님을 모신 사람이라면 기독교와 이슬람이 같은 종교이므로 기독교와 이슬람이 서로 교제하고 통합의 길을 모색하는 ‘크리슬람 운동’을 추진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우려하고 충고해도 릭 워랜이 그 길을 돌이키지 않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신이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릭 워랜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모조하는 다른 신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결코 거짓된 신앙의 길에서 돌아서지 못한다.

오정현 목사에게서 나타나는 우려스러운 증상들을 잘 보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실수와 허물이 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역자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것 한 두가기를 찾아서 목회를 못하도록 훼방하면 하나님이 나중에 그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성경과 다른 사상, 성경과 다른 신앙이해와 적용의 문제는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신앙의 중심이 성경의 하나님 위에 서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하나님을 모조하는 다른 거짓 신에게 지배되고 있음이 그런 것드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선교하고, 기도하고, 제자훈련하고 ... 결코 이런것이 성경의 하나님을 섬긴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모든 신들의 종교들에게서 이런 것들을 찾을 수 있다. 가르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전도하지 않고, 예배드리지 않는 종교는 어디에도 없다. 오직 성경이 말하는 것을 믿고 가르치는 것이 성경의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과 자신을 섬기는 방법을 성경을 통해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성경, 하나님, 성령, 선교, 기도, 예배 ... 이런 용어를 같이 사용하고 표방한다고 하여 모두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여기면 결국 낭패를 당하게 된다. 천주교의 교황, 오순절 운동의 황제 조용기, 크리슬람 운동 주창자 릭 워랜, 끊임없이 번영과 형통을 외치는 조엘 오스틴 ... 등의 거짓 복음의 사람들 가운데 성경, 하나님, 성령, 선교, 기도, 예배 등을 말하지 않고 중시하지 않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가?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