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만 교수의 '웨슬리가 본 칼빈주의'(1)

1. 선택(유기),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최종적 견인

웨슬리는 칼빈주의자(calvinist)를 만나서 그와 상담한 사례들을 싣고 있다. 아주 가깝게 지내던 칼빈주의자가 웨슬리를 찾아왔다. 그는 선택과 유기에 대한 교리를 웨슬리에게 가지고 왔는데, 그 사람뿐만 아니라 대부분 같은 견해를 가진 많은 칼빈주의자들이 실망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웨슬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였는데, 그들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선택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십니다’라고 그들이 대답하였다고 말한다. 이렇게 웨슬리는 선택과 유기 교리가 사람들로 실망을 주는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모순되는 가르침으로 이해하였다.

웨슬리는 칼빈주의자와의 논쟁에서 특별히 다음의 3가지에 관심을 두었다. 1)무조건적 선택, 2)저항할 수 없는 은혜, 3)최종적 성도의 견인 (final perseverance) 이었다. 웨슬리는 선택의 교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선택되지 않은 자들이 영원한 정죄를 피할 길이 없이 반드시 영원한 멸망으로 빠지는 것이 때문이라고 하였다.

웨슬리는 저항 할 수 없는 은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믿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로 저항할 수 없는 은혜가 없는 자는 반드시 정죄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세 번째인 최종적 견인에 대해서 자신은 믿는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삶에서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는 상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의 무조건적 선택과 저항할 수 없는 은혜, 그리고 최종적 성도의 견인의 교리는 인간의 책임을 완전히 무시하는 가르침으로 이해하였으며, 마지막의 성도의 견인 교리는 자신의 완전 성화의 가르침에 비추어서 믿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1751년 웨슬리는 성도의 견인에 대한 심각한 사고들(Serious Thoughts upon the Perseverance of the Saints)에서 진정한 신자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 영원히 멸망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웨슬리는 칼빈주의가 인간의 책임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으로 여기고, 그것에 대한 대응으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칼빈주의에 대해서 맹공을 펼치게 되는데 다음과 같다.

“심령의 거룩함의 교리, 즉 메도디즘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칼빈주의이다. 지난 50년 동안, 사탄의 모든 궤계는 하나님의 사역을 중단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했는데, 다름 아닌 바로 이 교리 ‘칼빈주의’이다. 이것은 죄로부터 구원이라는 가르침을 공격하였고, 그것을 아주 다른 문제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이 교리가 매력적으로 보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탐욕스럽게 삼키도록 만든 것은, 1)이것은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리스도를 헛되이 죽으신 것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절대적으로 선택된 자는 그리스도 없이 반드시 구원받으며, 선택되지 못한 자는 그리스도에 의해서도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2)특별히 최종적인 견인 교리는 육신과 혈육을 최고로 즐겁게 만든다.”

계속해서 웨슬리는 이렇게 잘못된 칼빈주의로부터 메도디스트를 보호하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는데, 모든 설교자들이 메도디스트의 글과 플레처(Fletcher)의 책자들을 주의 깊게 읽으며, 설교자들로 진리를 자주 그리고 명확히 설교하고,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사람들이 칼빈주의자들의 말을 듣지 않도록 매우 자주 충고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웨슬리는 선택교리와 견인교리가 인간이 아무것도 안 해도, 구원받을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며,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결국 어떤 노력이 있어도 구원 받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2. 예정

웨슬리는 ‘예정’의 제목에서의 설교에서 예정론에 대해 반대하였다. 웨슬리가 예정을 반대하였던 가장 주된 이유는 예정론을 가지고 남용하여 육신적 안일함에 빠져있으면서도, 자신은 구원백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웨슬리는 ‘예정’의 설교에서 하나님의 뜻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아들을 믿는 모든 자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에 맞추어서, 내적인 죄와 외적인 죄로부터 구원 받고, 내외적인 성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예정 교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는 것과 내외적인 성결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는 교리로 본 것이다. 1740년 브리스톨에서 설교한 값없는 은혜(Free Grace)에서도 예정론에 대해서 반대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자에게 거져 주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설교의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인데, 이러한 설교가 선택되지 않은 자들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것이기 때문에, 예정론은 설교를 무효화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웨슬리는 예정론은 하나님의 교리가 아닌데, 그 이유로서 하나님은 스스로에게 나뉘어질 수 없으며, 이 교리는 하나님의 계명의 모든 목적인 성결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성향이 있다고 하였다. 계속해서 예정론은 신앙의 위로를 파괴하는 성향을 가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유기된 자로 믿도록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예정론은 선한 일에 대한 열심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성향을 가졌으며, 기독교 전체 계시를 내버리는 성향이 있어서 결국 신성을 모독하는 가르침이라고 하였다.

한편으로 1751년에 존 길과의 논쟁은 ‘선택’이었는데, 1752년부터 ‘예정’으로 옮겨간다. 웨슬리는 예정에 대한 고찰 (Predestination calmly considered)에서 1559년의 프랑스 신앙고백서 12장, 돌트 신조 6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장과 기독교 강요 3권 21장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웨슬리는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선택 교리만 믿고 유기 교리를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칼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들은 어리석고 유치한 자들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웨슬리는 선택은 믿지만 무조건적 선택은 믿을 수 없다고 하였고, 자신은 유기 교리에는 결코 동의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웨슬리는 예정론을 독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웨슬리는 그 당시 오류가 가득한 가르침은 과거의 전통 속에서 내려 온 것이 아니라 절대 예정론을 주장하는 칼빈주의자들에 의한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웨슬리가 존 길과의 논쟁에서 예정론에 대해서 반대하였는데, 웨슬리는 예정론이 육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교리를 근거로 해서 자신은 구원 받았다는 헛된 확신을 갖게 만드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예정론의 남용으로 인한 이러한 잘못된 확신은 사람들로 성결의 삶을 살도록 도전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결의 삶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을 웨슬리는 주목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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