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합동 측 목사이다. 1999년도에 안수를 받은 20세기 목사이다. 세기가 바뀌었지만 아직 20세기와 21세기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1992년, 1999년 등은 밀레니엄 광풍이 불기도 했었다. 1999년 12월 31일의 태양과 2000년 1월 1일의 태양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이단 집회, 이단적 집회, 이단으로 단죄될 가능성이 있는 집회, 위험성이 있는 집회... 공통점이 있는데, 그곳은 ‘열정과 열광’이다. 신학교에 다닐 때 한 교수님은 절로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말씀했고, 신학생들은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당황했고 불만이었고 기분 나빴다. 목사 20여년,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어쩔 수 없이 사는’ 혹은 ‘돈만 위하는 목사를 많이 보셨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목회는 인생에서 가장 긴 마라톤이다. 정년이 70년이기 때문에 그렇고, 목사에서 목사로 40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회장, 총회장 단계를 만들어서 차이를 느껴야 할까? 목사는 목사로 살기만 하면 된다. 훌륭한, 유명한, 좋은, 탁월한, 영성있는, 차세대 등의 형용사를 좋아하지 않아야 한다. 목사는 목사일 뿐 그 이상이 될 수 없고, 그 이상이 되면 안 된다.

그런데 그 형용사를 붙이고 싶어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또 자기 확신이 없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은 자기 부족분을 외부에서 도움을 받으려 한다. 도움을 받으려는 자세는 좋지만, 그 도움의 형태에 문제가 있다. 부족한 부분이 보충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쉽게 이루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쉬운 과정으로 보충이 어렵다는 설정을 고액(高額)의 수강료로 합리성을 유지하려는 웃지 못할 상활도 있다. 목사로 만족한다면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믿음 공동체이기 때문에, 지도자에게 강한 믿음을 요구한다. 그런데 비-그리스도인 목사들은 그 믿음의 강력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외부 도움(충전)을 받아야 한다. 효력이 다하기 때문에 재충전을 해야 한다. 같은 것으로 충전 받으면 그래도 강한 모습이 될 것인데, 만족하지 못하는 두려움과 교만이 있어 다른 모양으로 충전을 받는다. 1995년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제자훈련이 왕성했고, 영성훈련, G12, D12, 가정교회, 셀교회 수 없이 많은 프로그램이 유행했었다. 그것이 마치 사역의 전부 인양했지만 새로운 트렌드는 계속 발생했다. 한 술 더 떠서 베뢰아, 관상기도 등 위험성이 확인된 집회에도 참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을 취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며 자기 능력을 뽐내기까지 한다. 좋고 나쁨을 구별할 줄 아는 비-그리스도인은 없다.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절대로 나쁜 것에서 보배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금광석에서 금을 찾으려고 해야지, 좋은 화려한 해수욕장 모래에서 사금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해운대 백사장에 사금(砂金) 하나 정도는 있겠지. 아니면 누가 잃어버린 금반지 하나가 있을지도 모른다. 금이 좋으니 해운대에서 금을 찾자고 하고, 누군가가 금 한 알맹이를 찾았다고 쳐들고 외치기도 한다. 그런 행동을 그리스도인은 하지 않지만, 금에 미친 사람은 할 것이다. 정선, 마카오, 라스베가스에 왜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그리스도인(?)이 그곳에서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라바를 당겼다는 것이 뉴스로 나왔을 때 국민들이 웃었다. 그런데 그 행동을 지금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한다. 그런 그리스도인-목사가 외국에서 라바를 당기고 돌아오면 수고했다고 기뻐해주는 성도는 양인가? 염소인가? 늑대인가?

목사들이여! 이단 집회에 참석하지 말라. 성도들이 이단 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막고 경계해야 할 파수꾼이 그곳에 참석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목사를 좋아하는 성도는 무엇이겠는가?

자칭-그리스도인-목사는 자기 궁핍을 채우기 위해서 반드시 외부 충전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방전되면 다시 충전해야 한다. 금할 방법이 없다. 방전되면 죽기 때문에 충전해도 죽을 줄 알지만, 조금이라도 사는 방편이 그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충전해야 한다. 선한-그리스도인-목사들이 방전(영적침제)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동료들과 함께 동역하라고 권면하고 싶다. 다른 무엇을 찾지 말고 옆에서 조용히 주의 길을 가는 동역자와 어깨동무를 하라. 그것이 가장 좋고 안전하고 효과적인 충전이다.

필자는 목사에게 기대하지 말고,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참 목자를 분별하라고 촉구했다. 목사들은 수 없이 쏟아지고, 교회는 수 없이 세워진다. 홍수에 먹을 물이 없듯이 많은 목사와 교회에 들을 복음이 없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에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은, 곡식이 희어졌으니 추수할 일군을 구하라는 것이다. 목사가 프로그램 전수를 위한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신학을 연마하는 세미나에 참석하라. 특히 보수적인 성경 세미나에 참석해 보라. 거북이가 목표를 향해서 앞으로 정진하면 반드시 꾀많고 게으른 토끼보다 먼저 정상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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