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에게 여러 번 성령이 오신다고 주장하는 오순절 신학이 중요한 근거로 삼는 내용을 하나 살펴보자. 그리고 그것이 반복적인 성령세례를 주장하였던 로이드 존스의 이론과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오순절 신학의 반복적인 성령세례 이론의 강력한 근거중의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신앙 여정에서 발췌되었다.

먼저 우리가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전에 이미 구원받았다는 사실이다. 다음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전에도 구원받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중략)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막 2:5-10)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인간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밝히시기 위해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여졌다고 일부러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도 죄를 사하여 주실 수 있는 자격과 권한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셨다. 실제로 중풍병자가 죄를 사하여주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걸어감으로 그의 죄가 사하여졌음이 증명되었다.

그러므로 제자들도 십자가와 부활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죄사함의 은혜를 통해 이미 구원받았던 것이다. 다음의 말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와 부활 이전에 이미 구원받았음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 13:10)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요 15:3)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아버지께 부탁하여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그 이전부터 성령이 특별하게 함께하시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에 제자들의 몸과 마음 안으로 성령이 임하시었으나, 그 이전부터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성령이 다른 형태로 함께하시고 계셨다. 다음의 말씀은 십자가 이전에 제자들이 이미 구원받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성령이 함께 일하시었음을 보여준다.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이 항복하였다는 사실로 인해 흥분하지 말고, 구원받은 제자들의 이름이 이미 하늘에 기록되었음을 인하여 기뻐하라고 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 10:19,20)

이상의 여러 내용들을 볼 때, 예수님으로부터 직첩 복음을 듣고 은혜를 입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은 십자가와 부활이 있기 전에 먼저 구원받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제자들은 지금 우리들과는 달리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시작할 일꾼으로 선발된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에게서 직접 배웠던 그 소수의 제자들은 이후 시대의 신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수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소수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강림이 있기 전에 이미 온존한 신앙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혀갈 때, 모든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버리고 도망쳤었다. 오직 베드로만 예수님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랐다. 그러나 곧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두 번 부인하였고, 세 번째에는 예수님을 저주하였다(막 14:71).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대부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가 피 흘리시며 죽으시는 현장을 지키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하였던 시간을 추억으로 여기고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 소수의 제자들은 비록 구원 받았을지라도 무능했고 너무도 나약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제자들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날 성령이 제자들의 몸와 마음 안으로 임하시는 역사상 최초의 성령세례가 일어났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오신 성령,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신 성령이 그들에게 인치심으로 임하시자, 제자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능력충만한 그리스도도인으로 변했다. 성령을 모심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성령을 받아 구원받은 신자에게 또 다시 성령이 임하시는 성령세례가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제자들의 이와 같은 신앙여정을 최대한 이용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이전에 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나중에 다시 오순절 날에 성령을 받아서 능력으로 충만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전에 성령이 함께하여 귀신도 물리치는 경험도 했으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 나약한 신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다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완전히 변했다.

오순절 신학자들은 이와 같은 제자들의 신앙여정이 성령세례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는 이론의 근거가 된다고 한다. 구원은 받았으나 헌신, 충성, 능력, 결단이 없는 사람들에게 다시 성령세례가 임하여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하는 신앙과정이 이미 예수님의 제자들의 신앙여정을 통해 나타났다는 것이다.

오순절 신학은 이런 논리를 동원하면서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이후의 특별한 성령세례 체험을 가지지 못한 신자들은 무능력한 신자들이라고 한다. 반대로 구원 받은 이후에 특별한 느낌과 현상을 동반하는 성령세례(?)를 경험한 사람들은 신앙의 높은 수준의 경지로 도약하는 사람들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올바른 신학을 모르는 목회자들이 밤에 산에 올라가 소나무를 흔들면서 이렇게 부르짖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주여! 이대로는 안 됩니다. 주여! 내게도 성령세례를 주옵소서!”

로이드 존스도 성령의 반복적인 세례를 주장한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과연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신앙여정을 어떻게 해석하였을까? 불행하게도 로이드 존스는 오순절 신학자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의 신앙여정을 해석하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여러번 받았던 것처럼, 우리 우리도 성령을 반복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똑 같은 사람들, 이미 신자들이고 거듭난 사람들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람은 주 예수님을 믿는 참된 신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동시에 성령세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제 주장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로이드 존스)

다음은 로이드 존스가 1959년부터 1978년까지 ‘웨스트민스터 청교도 연구회’(Puritan and Westminster Conference)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묶어 놓은 책 <청교도 신앙-그 기원과 계승자들>에서 발견한 내용이다. 로이드 존스의 신학사상을 잘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인 이 책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로이드 존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오순절이 이르기 전에 이미 성령을 모시고 살았으나 여러 모로 부족하였고, 나중에 다시 성령을 받음으로 크게 변화되었다고 가르쳤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은 단순히 소망 가운데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모시지 않은 영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모시고 있는 영을 더 간구했습니다. 기독교는 스스로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열흘 동안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셔서 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신령한 것들을 이해하는 영안을 주셨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주셨습니다.”(로이드 존스)

로이드 존스는 제자들이 성령을 받았으나 부족하였고,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을 더 받음으로 넉넉해졌다고 하였다. 로이드 존스의 이런 가르침의 문제는 무엇일까? 제자들이 사도행전 2장 이전에 이미 구원받았고 성령을 경험했다는 로이드 존스의 말은 맞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과 성령세례를 경험하기 전까지 제자들은 이미 구원받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했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순절 날에 성령을 받고 성령충만한 복음의 증인들이 되었다는 로이드 존스의 말은 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로이드 존스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소수의 제자들의 신앙 여정을 우리 모두에게 일반화시킨다는 것이다. 교회를 설립하고, 하나님나라 운동을 시작하도록 부르심 받은 특수한 소수의 사람들의 신앙여정과 그 이후의 일반 신자들의 신앙여정이 같을 수가 없다. 신약 시대의 초기에 특별한 역할을 했던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이 로이드 존스의 문제이다.

예수님은 지상의 3년 공생애 동안 먼저 소수의 사람들을 부르시고 사도와 제자로 삼으셨다. 그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셨다. 그러나 십자가 이전에 이미 구원받았을지라도 아직 십자가와 부활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신앙은 온전하지 못했다. 나중 십자가와 부활이 일어난 후 그들의 신앙은 지금 우리들처럼 온전해졌다. 온전해진 그들은 지상에 하나님의 교회를 설립하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증거하기를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십자가와 부활 이전에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훈련받은 사람들이었으므로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특별한 사람들의 신앙여정과 r 이후 시대의 일반 신자들의 신앙여정을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되는 것인데, 로이드 존스가 그러한 실수를 범했다.

신약의 하나님의 교회는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성도들이 나타남으로 시작되었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이전에도 성령은 지상에 계셨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은 함께하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전혀 권능있고 담대한 복음의 일꾼이 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지상의 신자들의 연합은 성령의 임재이다.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께 요청하여 자신을 대신하는 성령을 지상의 신자들에게 보내심으로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지상의 신자들의 신비한 연합이 이루어졌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신약의 성령은 구약의 성령과 같은 분이면서 동시에 다른 분이다. 본질적으로는 구약의 성령과 신약의 성령은 동일하나 일하심과 기능면에서는 다른 분이다. 신약의 성령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하나님 백성들에게 적용시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셨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는 성령이 ‘예수의 영’(행 16:6,7), ‘주의 영’(행 5:8,9). ‘그리스도의 영’(롬 8:9)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심지어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완전히 불신했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믿으면 하나님이 성령을 선물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어 주실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에서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리”(행 3:19.20)

구약 시대의 성령과 달리 신약의 성령은 하나님 백성의 몸 안으로 들어오신다. 예수님은 자신을 대신하기 위해 장차 오실 성령이 제자들의 몸 안으로 오실 것이라고 하셨다.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예수님을 대신하시는 성령이 믿는 자들의 몸 안으로 들어오시므로 지상의 믿는 자들은 하나님 보좌 우편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진다.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성령을 받으면 삶이 변하고 생각과 모든 것이 변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전에 이미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주님을 향한 신앙과 삶과 자세에서 매우 부족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서 자기를 대신하도록 그들에게 성령을 부으심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성령을 몸 안으로 모시니 즉시로 신앙과 삶이 변하였고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예수님을 죽인 자들 앞에서 예수님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로 변했다.

제자들은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을 더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때 제자들이 드디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을 몸과 마음 안으로 받은 것이다. 예수의 영을 받은 제자들은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것이다. 제자들의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의 세례 체험은 오순절 운동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결코 믿는 자들의 반복적인 성령세례 체험 이론의 근거가 아니다.

로이드 존스가 오순절 성령운동가들과 동일하게 구원받은 신자들도 다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의 신앙여정을 근거로 든 것은 큰 실수였다. 제자들처럼 성령을 추가적으로 더 많이 받아야 능력으로 충만해진다고 가르친 것은 중대한 실책이다. 로이드 존스마져 그렇게 가르쳤으므로 불건전한 은사주의자들이 더욱 힘을 내게 되었다. 우습지도 않은 성령운동가들에게 로이드 존스가 만만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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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