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현상인가? 성경의 방언인가?(4)

성경이냐? 체험과 현상이냐?
 

불행히도 오늘 날의 방언이라는 소리현상을 성경의 방언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불건전한 사람들 사이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나던 거짓된 소리현상이 100년전 미국의 이단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불과 백여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된 이 정체불명의 소리현상을 방언이라고 부르는 속임수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았다. 어이없는 이 소리의 헤프닝이 전 세계의 교회에 퍼져버렸다.

물론 이미 정통신학을 계승하는 대부분의 신학의 거장들이 이 사실을 정확히 연구하여 지적하였지만, 거짓된 방언 속임수를 중지시키지는 못했다. 너무나도 그럴듯한 현상을 체험하게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른 생각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할지라도 자신에게서 그 어떤 현상이 나타나면 그대로 맹신하는 보통의 사람들의 속성이다. 많은 사람들과 자신에게서 이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당연히 진리일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성경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도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면 그것이 결국 성경의 간섭을 받지 않게 되고, 그렇게 해서 그릇된 믿음이 교회에 가득하게 자리를 잡게되는 것이다. 역사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성경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교회에 가득하면 기독교가 아니다. 성경을 뒤로 제치고 나타나는 현상을 따라 가기로 합의를 보고서 기독교라는 간판도 내려야 할 것이다. 

요즘에는 희안한 방언찬양을 한다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다. 성경에는 방언찬양을 설명하는 말씀이 하나도 없는데,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니 이전보다는 이것도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언젠가는 이것도 성령의 역사로 인정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어쩌면 훗날에 어떤 여성도들이 찬양 시간에 시퍼런 식칼을 꺼내들고 멋지게 춤을 추면서 찬양을 부르면 그것도 새로운 성령의 은사라고 인정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성령춤이라는 것도 마음대로 추고, 입신과 환상이라는 것도 그냥 두고, 쓰러지고, 낄낄거리고, 금가루를 보고, 금이빨을 보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로 다 인정하고 그냥 두어야 할 것인가? 결국 우리가 운명을 걸고서 고민하고 결정을 지어야 마지막 결단은 이것이다. 

“성경을 좇을 것이냐? 체험과 현상을 따를 것이냐?”

기독교는 성경을 따르는 종교이다. 기독교의 원리와 기준은 성경이다. 성경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가르칠 것이면 기독교 안에 머물지 말고 떠나야 한다. 기독교와 유사한 다른 종교를 표방하면서 모여서 이상한 소리를 주절거리고, 이상한 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요상한 춤을 추고, 드러누워서 천국을 보면서 생방송으로 보고 중계한다면야 힘써 말리지 않겠다. 문제는 성경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며, 모든 신앙의 활동을 성경에 근거하는 기독교 안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문제이다.

최근에 한국 교회에서 일어난 방언열풍은 한국 교회가 얼마나 성경에 관하서 무지한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무속적인 영성에 점령당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신나게 도처에서 쏟아지는 이상한 방언들이 과연 성경을 통하여 검증될 수 있는지 상고하는 자세가 없었다. 나타나는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이며, 나타나면 그대로 받고 기뻐해야 하다는 식이었다. 한국 교회는 귀신의 놀이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에게서 어떤 현상이 나타나기만 하면 무조건 성령을 갖다가 붙여도 다 통한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 16:13,14)

성령이 오신 이유는 복음의 진리를 더욱 선명하게 깨우쳐주시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더욱 잘 설명하여 온전한 믿음을 가지도록 성령께서 도우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하심은 반드시 성경의 내용과 맞게 되어있고, 성령이 하시는 일이 성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상한 소리가 방언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왜 그런 소리가 성령의 역사인지 성경으로서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그 소리와 최면실습, 타종교, 정신질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같은 소리현상과는 어떻게 분명히 다른지를 설명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런 괴이한 소리에 현혹되게 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변질시키는 일을 무슨 배짱으로 계속하는지 모르겠다. 왜 사도 바울이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
 

무의미한 소리인가? 귀신의 장난인가?

자신의 괴이한 소리현상이 성경의 방언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다음의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잠시만이라도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지금 방언이라고 믿고 있는 소리현상은 아무 의미가 없는 현상일 뿐이다. 거기에 사람들의 종교적 감성이 추가되어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귀를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 이마와 두피 전체를 위 아래로 움직이는 묘기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영웅시하거나 우월한 인종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굳이 필요하지 않는 근육과 신경이 더 섬세하게 발달되어 있을 뿐이다. 성대의 신경과 근육이 필요한 언어를 구사하는 기능 외에 다른 소리를 내는 기능을 발휘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기독교, 타종교, 무종교를 가리지 않고 이런 분들에게서 이런 소리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착실한 성도에게서 나타나면 성령의 은사로, 타종교인이나 이단에 속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면 귀신의 장난으로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김우현 감독, Google Image에서 캡쳐

이 소리현상이 귀신들과 상관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귀신의 장난으로서 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소리현상이 특히 많이 나타나고 있는 곳에서 무당들처럼 점하는 예언, 쓰러뜨림, 기괴한 웃음, 금이빨, 금가루 등의 귀신장난도 더불어서 일어나고 있다. 괴이한 소리를 나게 하면서 ‘하늘의 언어’라고 미화하여 많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김우현 PD를 보면 이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김우현 PD는 수년 전 일본의 나고야에 있는 신사도운동가 다께모또 준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했었다. 그 때 집회를 마쳤을 때 예배 당 벽에 금가루가 나타났다고 했다. 다음은 김우현 PD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나고야의 신시로 교회에서 금가루가 나타났다고 소개하는 내용이다.

“주일 오후에 그들은 내게 집회를 인도해 달라고 했다. 나는 영상과 간증을 통해 바벨론에서 해방되는 70년에 대해 나누고, 그것을 여는 물꼬로서 사도행전에 오순절 성령님이 오셔서 부어 주신 '하늘의 언어'를 나누었다. 그 흩어진 유대인들에게..언어가 달라진 그들에게 동일하게 '하나님의 큰 일'(행2:11)을 듣게 하신 것은 그 유치해 보이는 '방언'을 통해서 였다. 누가 뭐라해도 방언은 바벨론의 영을 깨트리는 하늘의 권세다. 그냥 방언이 아니라 성령님과 진정으로 하나 되어(성령세례) 구하는 '불의 혀'를 의미한다. 부담을 가졌으나 일본의 지체들이 모두 나와 함께 구할 때에,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다. 수많은 이들이 방언을 말하며 감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 집회를 하는 것처럼, 그들은 모두 오랜 시간 강력한 기도를 토해냈다. 성령님과 더불어 기도하는 영이 부어져야 영적전쟁을 이길 수 있다. 내 지식, 생각, 전략으로는..대단해 보여도 어림도 없다. 이미 작년에 이 '하늘의 언어'는 일본을 위해 부어 주셨음을 응답하셨다. 그런데 신시로에서 그것을 처음 열릴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기도가 끝나고 우리는 더 놀라게 되었다. 집회 장소 정면 벽에 금가루가 가득 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환호와 그것을 만지려는 이들로 강단이 가득 채워졌다. 이것은 아버지의 이벤트였다.”(김우현)

김우현 PD를 통하여 역사하는 영의 정체가 성령이라고 볼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를 그 스스로 밝혀주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결코 금가루 장난을 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원하시면 뭐든지 금으로 변하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결코 성령님은 이유 없는 도술을 부리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이유없이 과시하시는 분이 아니고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의 십자가를 선전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과 존귀가 돌려지게 하시는 분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뒤에 오실 성령이 자기 자시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라 하셨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 16:14)

금가루가 나타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볼 수 없고 오히려 사탄의 장난의 도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는 비판이 자신에게 주어지자 김우현 PD는 마음이 무척 상했던 모양이다. 미국의 한 신사도운동 교회의 홈페이지에서 우연하게 김우현 PD가 남긴 이와 관련된 말을 발견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우리가 일본에서 집회를 하는 동안에 벽에 금가루가 뿌려진 것이 발견되었다고 저를 ‘금가루 사역자’라고 인터넷에 어이없는 글을 썼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런 것을 구한 적도 없고 그전에는 본적도 없으며 오히려 그것은 일본의 부흥을 경험했던 그 교회에 작은 응원처럼 부어진 것이라고만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교회의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즐거운 구경거리가 되고 이어진 바비큐 파티를 더욱 축제처럼 만드는 기쁨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에 사로잡히거나 그것을 마치 신비로운 무엇으로 지나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마치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현상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김우현)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의 흔적으로 금가루를 남기시는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증거도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신의 집회에서 하나님 노릇을 한 그 영의 정체가 무엇인가? 사탄이 아니라면 또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김우현 PD는 생각이 거기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금가루가 작은 교회에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응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글들을 보고서 후에 교제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금가루가 나타나는 것이 성경적이며 가능한가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천국에 황금길이 있는데...그것이 이 땅을 침투하거나 영광으로 나타났을 때 ... 금가루로 나타날 수도 있겠지요. 하나님의 영광을 무엇으로 인간이 판단하고 비판한다는 말입니까?’”(김우현)

금가루가 나타난 현상에 대해 어떤 신학자와 목회자에게 물었더니 천국에 황금길이 있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금가루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대체 어느 정신 나간 신학자가 그런 소리를 했는지 궁금하다. 천국에 황금길이 있어 하나님의 영광이 집회 중에 금가루로 나타날 수 있다면 왜 거짓 복음과 거짓된 이적을 선보이는 신사도운동과 관련된 사람들의 집회에서만 금가루와 금이빨이 나오는가? 왜 다른 복음적인 사역자들의 집회에서는 금이 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누런 금가루를 본 사람들에게서는 어떤 신령한 변화가 일어나서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의 말씀을 따라 잘 믿는 결과가 일어났을까? 기독교를 신기한 장난을 부리는 머털도사들의 종교로 전락시키는 것 외에 돌아오는 유익이 없다. 금가루가 나타나게 하는 현상이 성령의 사역이라고 한다면 기독교는 처음부터 더럽고 천한 우상종교였다. 금가루 현상은 가증한 귀신의 사술이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되고, 삶에서 신령한 변화가 일어나고,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져가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거듭하는 것을 그렇게 설명하셨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7,8)

혹시 많은 거짓 귀신의 방언들 중에서 어쩌면 진짜 성령의 방언이 있지는 않을까? 성령의 역사로 인한 진정한 방언이 지금도 누군가에게서 나타나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이유도 없다. 성경적인 방언은 한 번도 학습한 적이 외국어를 구사하면서 복음을 설명하는 현상이다. 외국어를 학원에 가서 배우고 난 다음에 그 언어로 복음을 말하는 것은 성경의 방언에 속하지 않는다. 지금도 성경의 초자연적인 방언 현상이 나타난다는 주장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다.

피터 와그너는 자신의 제 3의 물결 이론을 설명하면서 지금 이러한 방언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아르핸티나 선교사였던 제임스(James)라는 사람에게서 아르핸티나 현지인들의 언어가 저절로 구사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더 자세한 증거들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 비록 잠시이지만 그 사람이 학교에서 스페인어를 배웠고, 또한 이미 수년 동안 아르핸티나에서 선교하면서 현지어를 익히고 있었으니 더욱 더성경의 방언이라고 할 수가 없다.

또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2009년 10월경에 미국 미시간 주의 Ann Arbor에서 열렸던 인터콥의 비젼스쿨에 참여할 당시에 강의하였던 어떤 선교사님이 외국인에게서 한국어 방언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영국의 어떤 선교훈련센타에 있을 때에 한 흑인선교사가 한국의 경사도 사투리 방언으로 “하나님! 용서하여 주이소!”라고 기도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그 이상의 자세한 증거나 그 내용의 신빙성을 설명하여주는 다른 보충설명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외국인에게 한국어 방언을 주시려면 한국의 표준말을 주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왜 한국의 한 지역의 사투리를 주셨을까? 사탄이 장난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그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어 몇 마디의 한국어를 배운 적은 없었는지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짧은 한 문장이나 단어 몇 개가 나타났다고 성경의 방언이 나타났다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교회사를 보면 원주민들의 언어를 배우지 않고 원주민들의 언어 방언을 받아 쉽게 선교하려고 했던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공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례는 없다. 오순절 교회의 성령세례와 방언의 이론을 최초로 정립하였던 찰스 펄햄은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방언이 나타나자 그것이 곧 사도행전 2장의 지역 언어로서의 방언이 회복된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이제는 선교사들이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고 오직 성령세례를 받으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펼햄의 가르침을 받은 알프레드 가르라는 목사가 방언을 받고서 인도에 가서 원주민들에게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하였을 때에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방언이 인도 사람들의 실제 언어처럼 들렸지만, 인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실제 언어는 아니었다.

모세 시대에 바로의 술사들이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이적의 상당부분을 따라하였던 것을 보면 사탄이 하나님의 진정한 방언을 부분적으로 모조하면서 미혹할 가능성도 충분하니 미혹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 두 단어와 짧은 한 문장이 나타났다고 쉽게 사도행전의 방언이 나타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성경의 방언이 나타난다고 말 하려면 외국어 단어 몇 개가 아니라 완벽한 문장과 문단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태이어야 한다. 이러한 방언이 종결되었다고 보는 일반적인 이유는 초대교회의 방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 복음이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특별한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이 완성되기 이전 복음전파를 돕는 계시적인 은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계시가 다 나타나고 성경으로 기록되었으므로 방언과 같은 계시적인 은사가 필요하기 않다.
 

왜 많은 믿음의 거장들은 이 소리와 무관한가?

오늘 날의 방언이라는 것이 과연 성령으로 말미암은 은사이고 성경에 나타난 그 방언이라면 믿음이 위대한 사람들에게서 더욱 집중적으로 이 현상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오늘 날의 이 소리들이 하나님과 친밀성을 높여주는 방언이라면 많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이것의 도움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더 많이 선물로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 메튜 헨리 주석

어린 시절 중한 병을 앓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받은 이후 평생을 기도의 사람으로 살면서 스펄전, 조지 휫필드, 웨슬리 등의 믿음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훌륭한 성경주석을 남긴 메튜 헨리(Mattew Henry)의 저술에서도 이 괴인한 소리를 기도에 활용하라고 한 적이 없다. 삶이 곧 설교였다고 존경받았던 ‘주님은 나의 최고봉’(The Upmost for His Highest)의 저자 오스왈드 챔버스의 어떤 책을 보아도 이 소리현상을 영적으로 높이고 칭찬한 적이 없고, 오히려 이러한 체험을 추구하는 자세를 격렬하게 비판하였을 뿐이다.

▲ 찰스 스펄젼

하루 5시간 기도했던 감리교회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John Wesley)도 방언이라는 것을 하지도 않았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지난 세기의 최고의 설교자였던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이 남긴 수 천여 편의 설교 어디에도 이러한 소리가 영적으로 유익하다고 예찬한 내용이 없다. 미국의 대각성 운동의 주역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도 방언이라는 소리현상을 가르치거나 권장하지 않았다. 위대한 어둠의 시대에 진리의 말씀의 빛을 비추어 교회와 세상을 구한 종교개혁을 시작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종교개혁을 완성한 존 칼빈(John Calvin)의 어떤 책에서도 이런 소리를 성령의 역사라고 말한 적이 없다.

5만 번 기도의 응답을 받았던 기도의 성자 죠지 뮬러 (George Muller)도 방언이라는 것을 기도에 도입해야 한다고 가르친 적이 없다. 미국의 대각성 부흥운동을 주조하면서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이 체험하였던 조다단 에드워도 목사의 책 어느 곳에서도 요즈의 이상한 소리현상이 영의 언어라거나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말하는 단 한마디도 찾을 수 없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글 어디에서도 결코 방언기도라는 것을 사모해야 한다거나, 에드워드가 그런 것이 있다고 보았다고 볼 그 어떤 암시조차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복음주의의 거장 존 맥아더 목사는 가장 앞장서서 오늘 날의 소리현상이 성경의 방언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교회를 굳건하게 말씀 위에 세우며, 많은 영혼들을 구원한 위대한 사람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이 소리현상과 무관하게 살았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 날의 괴이한 소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영혼의 비밀기도이라고 할 수 있을가? 정말 그렇다면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 소리를 의지하여 신앙생활을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소리를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위험천만한 것인지 이 소리를 사랑하는 분들은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은 지나칠지라도 성경의 근거가 분명하지 않는 이 소리현상을 계속 즐기고 사랑할 것이라면 반드시 신앙이 지식의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릇된 영향을 주지 않도록 홀로 있을 때에만 해야 할 것이다.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마치 자신이 영적으로 특별한 사람이라도 되는 증거인 것처럼 이 괴이한 소리를 공개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참으로 무지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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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