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곤 목사. 문희곤 목사는 1987년부터 예수전도단의 전임간사 및 서울지부 지부장으로 일하면서 예수전도단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 2002년에 예수전도단의 부대표로 임명되었고, 2003년에 홍성건 대표의 뒤를 이어 예수전도단의 대표가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 음성듣기를 매우 강력하게 예수전도단 대표 문희곤 목사의 주장이 성경적으로 옳은지 그른지 판단해야 한다. 그 설교가 옳고 그른지, 그 글이 옳고 그른지를 판별하는 것은 참으로 옳은 일이다. 우리도 베뢰아인들처럼 성경을 상고해 보자. 무조건 덮어 놓고 믿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직접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신다는 것을 확증하기 위해 요한복음 10:27을 근거 구절로 보여준다.

당신은 예수님이 어떤 방식으로 말씀해 주시기를 원하는가? 간접적으로 듣고 믿는 것과 직접 듣고 믿는 것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당연히 직접 듣는 쪽 아닌가? 그런데도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일부 사람만의 은사가 아니라는 사실, 음성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약속된 특권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다는 것은 약속된 특권이요 ‘진리’라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그 진리가 지금 나에게 하나님께서 목자가 양에게 이야기하듯 말씀하신다는 들린다는 그 뜻일까? 앞뒤 문맥을 살펴보자.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흑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24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당신은 잠잠한 우리를 왜 미혹케 합니까? 당신이 진정 그리스도란 말이요? 그렇다면 밝히 말해보시오’라고 외쳤다. 이에 예수께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 도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25-26절)

예수님께서는 ‘이미 전에 말하였고 너희들은 믿지 않았을 뿐’이라고 하셨다. 또한 예수님께서 아버지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당신 스스로를 증명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너희들이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27절이 나온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리라"(요 10:27)

내 양이면 내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나도 내 양을 알고, 내 양은 나를 따른다는 뜻이다. 즉, 질문을 던지는 너희 유대인들이 나의 양이 아니므로 그리스도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현재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귀로 듣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지금도 귀에 들린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희곤 목사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을 엉뚱하게 관련시켜 근거라고 제시하였다. 엉뚱한 결론을 내려 이것을 ‘진리’라고 단정 짓는다. 예수님의 양이라면 누구나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얘기다. 성경의 다른 내용을 살펴보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듣기를 원하노라)"(시 95:7)

이 구절에 대해서도 문희곤 목사는 강력하게 말한다.

"어떠한 혼란과 갈등이 찾아와도 ‘하나님은 내 목자시고 나는 그분의 양이며,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는 진리를 절대로 의심하지 마라. 이 진리에 늘 믿음으로 ‘아멘’을 외칠 수 있다면, 누구나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문희곤 목사)

문희곤 목사는 하나님 음성듣기가 “진리이니 절대로 의심하지 말고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무조건 믿으라고 하였다. 시편 95:7 이 확실히 직접 듣는다고 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 구절 또한 앞뒤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다"(9절)

"내가 사십년을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하는도다"(10절)

이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백성들을 모이게 하여 전한 것이다. 즉,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집 부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은 성경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도자들이 모든 백성을 모이게 하여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거나 기도하거나 율법책을 읽는다.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삼상 7:5)
 

요시아의 종교개혁

대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서기관 사만이 그 율법책을 요시아 앞에서 읽자 요시아 왕은 옷을 찢고 회개를 한다. 이윽고 모든 백성들을 모아 회개운동을 전개한다.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왕하 23:1-2)

학사 에스라가 백성들 앞에서 율법을 읽었다.

"수분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대"(느 8:3)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느 8:5-6)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느 8:8-9)

이것은 설교자가 ‘이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고 하며 설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문희곤 목사는 이러한 구절로 현재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라는 요구의 근거로 삼고 있다. 문희곤 목사의 주장을 좀 더 살펴보자.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 19:19)

이 구절을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음성으로 들린다고 한다. 다시 출애굽기 19장을 살펴보자.

"제 삼일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섰더니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출 19:16-18절)

음성에 대한 성경 구절이 아직도 더 필요한가? 이처럼 성경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데, 우리가 사용하면 문제가 될 이유가 있겠는가? 성경에서처럼 직접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주장하는데 객관적인 현현은 왜 나타나지 않는가? 교회 강대상에서 연기가 나고 그럼에도 강대상이 타지 않는 불이 임하는 놀라운 임재를 경험했는가? 구약의 하나님의 임재는 대부분 객관적이며,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지금 현대 교회의 하나님 음성은 지나치게 주관적이다. 문희곤 목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또 다른 예를 들고 있다.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신 28:13)

하나님은 이 사실을 매우 간절히 알려 주고 싶어 하신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특별히, 치열한 입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 땅의 십대들이 “너희를 높여주겠다”는 그분의 음성을 들었으면 좋겠다. 무슨 근거로 이 성경 구절을 치열한 입시 전쟁에 임한 수험생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직접적인 말씀으로 들으라 하는가? 이 모든 약속의 근거가 되는 28잘 2절 말씀은 생략하고 듣기 좋은 표현만 골라 아부성 발언을 한 것이다.

"네가 네 하나님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신 28:2)

복을 주겠다는 것, 높여주겠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들에게 도전 의식을 주기 위한 아버지가 ‘이번 시험에서 1등 하면 노트북을 사주겠다’라고 말한 목적은,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것이지 노트북을 사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이 말씀을 지금도 동일하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이야기 하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구절로 볼 수 있을까? 끊임 없이 지금도 말씀하시어 내 귀에 생생히 들려주신다는 것을 말하는 성경 구절인가?

신명기는 모세의 설교이다. 그러므로 13절의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에서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의 ‘내가’는 누구인가? 과연 여호와 하나님이실까?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 28:1)

1절을 보니 ‘내가’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인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직통 계시’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기록된 율법을 잘 듣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내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내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15절).

하나님의 말씀인 명령들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규례, 즉, 율법과 교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야 하는데 그러한 모든 것을 무시한 결과 직접적인 직통 계시에만 의존하게된 것이다. 신명기 28장 13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직접’ 말씀하신다기 보다는 오히려 말씀을 익히고 주야로 묵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직접 들으려 하지 말고 성경을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는데 열심을 내어야 한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내 길이 펑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문희곤 목사는 듣는다는 구절이 나타나면 크게 생각하지 않고 직접 듣는 것으로 해석해 버 린다. 사사기의 구절들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예를 또 보여준다.

"내가 또 너의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삿 6:10)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세상 신의 소리를 듣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야무 거리낌 없이 세상의 가치와 기준을 따라 살게 된다.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가 직접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들려준 소리를 가리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구절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택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7절, 8절을 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는 고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삿 6:8)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 백성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대언할 선지자를 보내신 것이다. 그 선지자가 8절부터 말하고 있으며 10절도 동일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이 구절도 선지자의 대언이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왕상 3:9-10)

솔로몬은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듣는 마음’을 구했다. 횬히 사람들은 그가 ‘지혜’를 구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구했다...솔로몬의 대답이 마음에 드신 하나님은 ‘듣는 마음’을 ‘지혜’라는 말로 바꿔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문희곤 목사가 자주 성경을 왜곡하거나 첨가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과감한 말을 쓰고 있다. 더욱이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듯이 ‘지혜’를 구했다는 사실이 성경 어디에도 없다는데, 왜 우리는 그동안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다고 했을까? 개역개정판이 아닌 다른 번역본을 좀 살펴보자. 개역개정판 나오기 전 대한민국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보았던 개역한글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다.

[개역한글]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그렇다면, 개역한글판에 문제가 있어 개역개정에서 바꾼 것일까? 다른 번역본을 좀 더 보자.

[표준새번역]
"그러므로 주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왕상 3:9)

[새번역]
"그러므로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많은 주님의 백성을 누가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왕상 3:9)

[공동번역]
"그러하오니 소인에게 명석한 머리를 주시어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수 있고 흑백을 잘 가려 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감히 그 누가 당신의 이 큰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읍니까?"(왕상 3:9)

[쉬운성경]
"저에게 주님의 백성을 다스릴 수 있도록 옳고 그름을 가려 판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주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면 이렇게 많은 주님의 백성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는 솔로몬이 지혜를 달라고 하자 기뻐하셨습니다."(왕상 3:9-10)

영어 성경의 표현들도 살펴 보도록 하자.

[KJV]
"Give therefore thy servant an understanding heart to judge thy people, that I may discern between good and bad: for who is able to judge this thy so great a people? And the speech pleased the Lord, that Solomon had asked this thing."

[NIV]
"So give your servant a discerning heart to govern your people and to distinguish between right and wrong. For who is able to govern this great people of yours? The Lord was pleased that Solomon had asked for this."

[CEV]
"P1ease make me wise and teach me the difference between right and wrong. Then I will know how to rule your people. If you don’t, there is no way I could rule this great nation of yours."

개역개정판에서만 지혜를 ‘듣는 마음’이라 번역했다. 사실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지혜를 달라고 기도 하지만 그 지혜(레브 쇼메아)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 1:8,9).

참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문희곤 목사는 성경 어디에도 ‘지혜’를 구했다는 것이 없다고 한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다고 한 것이 성경 어디에도 없다고 하는 것은 오류이다.

문희곤 목사는 ‘그러므로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분의 음성을 들으면서 지혜롭게 택할 수 있다.’라고 결론 내린다. 정말 엉터리 성경 해석이다. 결국 자기의 이론(지금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알고 있었던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에 대해 ‘솔로몬이 구했던 것이 지혜가 아니라 재판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이라고 바꿔 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가 ‘듣는 마음’이라면, 위의 성경 구절에는 무슨 의미가 담긴 걸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달라는 것이라면, 제 아무리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요청이라도 후히 주시겠다는 얘기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듣고 지혜롭게 되기를 몹시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분의 음성을 들으면 지혜롭게 택할 수 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이 있다면, 결정의 시간 전에 지혜로운 판별이 우선되어야 하고, 듣는 마음을 구한 것이 있다면 경청의 시간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문 목사는 후자가 성경적으로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을 살짝 왜곡한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대운 목사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을 중심으로 탁월하게 가르치는 뛰어난 교육목회 전문가이다. 정대운 목사는 “객관화(진리)의 주관화(신앙)를 추구합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교육목회 철학을 표현하기 좋아한다. 세종대, 개신대학원대학교(M.Div),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에서 공부했고, 현재 계속해서 국제신학대학원대학(석,박사 통합과정)에서 연구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원 교수(교회사)로 사역하고 있고, 고양시의 삼송제일교회의 담임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