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목사님, 성경에는 방언기도를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방언으로 사람들에게 말하라는 말씀은 있어도, 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목사님은 성경이 방언 기도를 가르친다고 하면서 자주 방언기도 은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말 이런 교회를 계속 다녀야 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방언 기도의 근거로 이야기하는 성경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고전 14:5)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 14:39)


답변>
바울이 신자들에게 방언을 대해 사모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그 사람이 성령의 역사를 따라 방언 은사를 활용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고 하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또한 방언 은사보다는 예언 은사를 더 사모하라고 말하면서 예언 은사가 방언 은사보다 더 교회에 유익하다고 가르친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언급해 주신 성경 말씀들이 그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이 근거로 드는 성경 구절들이 그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 목사님은 심각한 오류에 빠져있습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사실은 그 구절들은 아주사 거짓 부흥을 일으킨 미국의 이단들에 의해 퍼진 현대의 거짓 방언기도, 즉 옹알거리는 변태현상의 성경적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다 방언기도 하기를 원하나’라고 말하지 않고,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표현과 (사람에게 실제 언어로) ‘말한다’는 표현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같은 용법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방언에 관한 표현의 99%가 하나님이 방언을 통해 사람들에게 친히 말씀하신 것으로 표현됩니다. 방언으로 기도한다는 표현은 딱 한번 나옵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고전 14:14)

바울은 자신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가정법을 사용했습니다. 만일 자신이 고린도에 들어오는 이단들처럼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 사람들이 이 내용으로 바울도 방언기도를 했고, 방언기도는 기독교에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늘 논란이 되는 위 구절의 전후 내용을 비교하고 보면, 방언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고 거짓 영에 의해 교회에 들어온 이단현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들어와서 은사의 혼동을 일으킨 거짓 선생들을 신자들이 내치지 않고 수용한 것을 엄히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

하나님이 사람의 혀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직접 설명하셨던 매우 귀했던 성경의 방언 은사가 고린도에 잠입한 거짓 선생들에 의해 오도되었습니다. 성경의 방언이 하나님이 사람의 혀를 이용하여 하나님 자신에게 비밀의 언어로 기도한다는 웃기는 은사로 각색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이단들과 그들에게 영향받은 고린도 교회를 엄치 꾸짖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물리쳤던 이 거짓 방언기도 은사가 2,000년이 지나 미국의 이단들이 일으킨 아주사 거짓 부흥을 통해 다시 일어나서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아주사 이단들도 처음에는 자신의 방언이 외국어 방언라고 주장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주사 거짓 부흥을 일으킨 미국의 이단들이 처음에 자신들에게서 나오는 방언이 사도행전의 방언처럼 실제 외국어라고 믿었고, 그렇게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훗날 인도 등지에서 선교를 위해 원주민들에게 활용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자, 그들은 좌절하였고 선교를 위해서는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이론을 고쳤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서 나오는 방언은 외국어가 아니고 하늘의 언어라고 주장을 변경했습니다.

아주사 거짓 부흥을 통해 오순절 운동(Pentecostalism)이 일어났습니다. 오순절 운동의 핵심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현상을 개인적으로, 반복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오순절은 본격적으로 보리 추수를 시작하기 전 하루 동안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날이었습니다. 오순절은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하게 추수하게되었음을 감사하는 날이었습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성부의 허락을 얻어 지상에 성령을 파송하심으로 종말적 영혼추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하셨고, 그것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의 성령강림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구약의 오순절 축제의 의미가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완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의 지상 강림은 역사상 단 한번의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제사로 하나님이 친히 거하실 새로운 성전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의 은혜를 입은 신자들(교회)이 지상에 탄생하였으므로 하나님은 구약의 돌 성전을 버리시고 죄 사함의 은혜를 입은 신자들의 몸과 마음을 새로운 성전으로 삼으시기 위해 지상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이 일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입니다. 결코 시대마다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사 거짓 부흥으로 탄생한 오순절 교회들은 오순절이 이후 시대마다 개인적으로 계속 체험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말하는 것, 즉 오순절이 개인적으로 체험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란 무엇일까요? 그 대표적인 것이 거짓 방언기도, 즉 옹알거리는 변태적인 현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사도들에게서 방언기도 은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레네우스, 터툴리안, 오리겐, 어거스틴 등의 대표적인 초대교회의 위대한 믿음의 선조들에 그 누구에게서도 방언기도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칼빈, 루터, 쯔빙글리 등 중세의 위대한 신앙의 개혁자들에게서도 방언기도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죠지 휫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심지어 신학적인 문제가 많았던 존 웨슬리, 찰스 피니에게서도 방언기도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성경 시대 이후 거짓 방언과 방언기도는 초대교회의 몬타누스와 중세의 소수의 신비주의 그룹들, 그리고 근대에 이르러 영국에서 에드워드 어빙 등의 이단성있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났던 망조였습니다. 그리고 1900년대 초에 미국의 이단들에 의해서 오순절 체험의 증거라면서 다시 등장하여 본격적으로 퍼졌습니다.

오순절 운동가들은 거짓 방언기도 외에 쓰러지고, 달달 떨고, 드러누워 헤롱거리고, 몸이 마비되고, 영서라면서 끄적거리고, 방언찬양이라면서 해괴한 소리, 손으로 이상한 동작을 만드는 성령춤 ... 이런 우스운 행태들이 성령이 반복적으로 임하는 성령세례의 현상이라고 합니다.

오순절 운동이 껍질을 바꾸어 신사도 운동이란 명칭으로 지금 우리 시대에 횡횡하고 있는데, 신사도 운동에서는 이런 것들을 성령세례 현상이라고 부르지 않고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합니다. 오순절-신사도 운동가들은 이런 괴이하고 더러운 능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안수기도’를 자주 합니다. 거짓 영의 포로되어 거짓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안수기도를 받고 난 후 옹알거리는 현상과 점하는 현상 등이 나타나는 거짓된 능력자들의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방언은 하나님이 사람의 혀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은사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의 방언은 하나님이 한 사람의 혀를 이용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복음을 설명하는 은사였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쓰여지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일 지금도 하나님에 의해 그런 도구로 쓰여지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방언을 할 때, 그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종들이 듣겠나이다!”하면서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방언은사라고 믿으면서 마치 우리가 마치 게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오매 ... 이것이 방언이라네! 이런 것이 방언이구나!”하는 자세를 가지면 안 됩니다. 행여 하나님이 직접 말슴하시는 진짜 방언일 가능성이 0.000%라도 있을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방언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잘 들어보고, 도저히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는 것으로 볼 수 없으면 거짓 영의 사람으로 간주하고 단호하게 꾸짖어야 합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옹알거리는 변태현상, 즉 하나님이 사람의 혀를 이용하여 자기 자신에게 비밀의 기도를 한다는 괴이한 거짓 방언기도 현상을 성경적 방언으로 오도하면 안 됩니다. 현대의 거짓 방언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 하나님이 사람의 혀를 이용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는 고귀한 성경적 방언을 말하는 성경구절을 동원하여 혼란을 주는 방법을 거짓 선생들의 특기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사람의 혀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복음을 친히 말씀하시는 은사가 정말 지금 나타난다면, 저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시니 너무도 감사합니다. 부족한 이 종이 듣고 모두 준행하겠으니, 천천히 말씀하여 주옵소서!”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한 말씀계시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씀 계시가 종결되었다고 말씀합니다(히 1:1,2). 우리에게 기독교 신앙의 이해를 높여주기 위하여 현명한 믿음의 선배들이 연구하여 만들어 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도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의 계시 활동(예언, 방언, 꿈, 환상, 음성, 현현 등)이 성경으로 종결되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시기 위해, 또 육신의 죄성과 사탄과 세상의 악의(惡意)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 굳게 세우시고 위로하시기 위해 그 계시하신 내용을 온전하게 기록되게 하셨다. 이것이 성경을 가장 필요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이 지금 중지되었기 때문이다.”(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성 1-1)

지금 더 이상 성경의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기도와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지금은 성경 외 더 이상의 계시를 주시는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거짓 방언을 성경의 방언을 말하는 성경구절로 정당화시키려는 거짓 선생들의 수법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매우 곤욕스러운 질문에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방언기도하는 저 많은 사람들이 모두 거짓에 빠졌다는 것인가?"

노아의 방주에는 불과 8명이 승선했습니다. 한때 세상에는 교황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지금도 12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교황을 영적인 아버지라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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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