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행위구원론 논쟁을 접으려고 하는데, 누가 어떤 분의 글을 꼭 보라고 알려주었다. 무슨 글인가 보니, 장기영이라는 분이 링크를 걸어준 글이었다. 장기영이라는 분이 나에게 자신의 글을 꼭 읽어달라고 당부하는 글을 남겨둔 것을 보았으므로 이미 기억하는 이름이었다. 장기영 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보았더니, 서울신학대학 웨슬리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고, 평택대학교와 서울신학대학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명망있는 교수님이라고 한다.

내가 감리교 목사님들에게 부탁한 것은 웨슬리가 단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쳤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모든 종파의 목사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고 있으나 구원 이후에 대해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행위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시작은 '그리스도를 믿음'이나 그 이후에는 인간의 신앙적 행위, 즉 철저한 회개와 성화를 이야기한다. 회개화 성화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정착시킨다는 것이 행위구원론이다. 달리말하여 행위구원론은 인간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결단하여 그리스도를 믿으니 하나님이 구원을 주셨고, 또한 그 이후부터 인간이 회개와 성화의 발전으로 구원 안에 머무르기에 합당하게 살므로 하나님이 구원을 유지하여 주신다는 '신인협력구원'이다.

그리스도를 믿으니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되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법적으로 사하여 지고, 영원하고 완전한 칭의와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성경적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만 신자의 구원이 영원히 완성되었다고 본다. 구원 이후의 인간의 아름다은 신앙의 행위는 구원정착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은 신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라고 보아야 성경적이다. 결코 구원 이후의 신자의 신앙적 행위를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가르치면 기독교가 아니다. 종교개혁의 핵심도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자에게 덧입혀 주심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가 이미 완전하고 영원한 칭의과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교회가 아니고 신자가 기독교가 되지 못한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그리스도를 믿음에 회개와 신앙의 선행이 추가되어야 믿음으로 얻은 구원이 영구하게 지속되고 완전해진다고 가르친 이단에게 미혹된 갈라디아 교회에게 바울은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여 행위로 마치겠느냐? 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믿음과 행위를 구원유지의 근거로 가르친 그 이단을 향하여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끊어지고 떨어진 자들이라고 판결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

웨슬리는 행위구원론자였다. 웨슬리는 믿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구원이 유지된다고 가르친 행위구원론자였다고 온 세상이 알고 있다. 장기영 교수가 웨슬리를 많이 연구했다고 하니, 혹시 믿음 + 사람의 행위(회개, 성화)가 구원을 유지하는 근거라는 행위구원 사상을 자기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웨슬리를 많이 연구하면 분명히 그 웨슬리 행위구원론의 핵심을 지지하고 주장하는 내용이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기영 교수의 학위 논문을 보니 초반에는 웨슬리의 사상이 상당히 성경적인 것 같았다. 그의 논문에 이런 내용이 나왔다.

“웨슬리는 ‘믿음에 의한 칭의’(1746)라는 설교에서 칭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칭의란 무엇입니까? … 그것은 실제로 올바르고 의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화입니다 … 칭의에 대한 성경적인 명백한 견해는 사면, 즉 죄 용서입니다.’ 이처럼 웨슬리는 루터, 칼빈과 함께 성화가 칭의의 조건이라는 로마 카톨릭의 칭의론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성화는 칭의의 뿌리가 아니라 칭의의 열매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장기영 교수의 이 내용에 의하면 웨슬리는 실제로 올바른 존재가 되지 않았어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다고 가르쳤고, 인간이 실제로 의롭게 변화되는 성화를 칭으로 근거로 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웨슬리는 매우 성경적인 신앙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훌륭한 지도자였음이 분명하다.

“웨슬리의 칭의론은 이처럼 루터와 칼빈의 칭의론을 수용하고 맥을 같이 한다. 구원과 선행에서 죄인의 무능 및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통한 칭의, 그리고 칭의의 결과로서의 성화와 선행을 가르친다. 이제부터는, 루터와 칼빈의 가르침과는 맥락을 달리하는 웨슬리의 칭의론의 특징을 살펴보자.”

장기영 교수는 웨슬리가 매우 성령적인 칭의론 구원론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서서히 웨슬리의 우려스러운 사상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믿고 칭의받을 때 오직 그때가지의 과거의 죄만 용서

장기영 교수는 루터나 칼빈의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들에게 전가되고, 신자들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되는 ‘이중전가’(Double Imputation) 신학은 그리스도의 피로 신자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다고 보지만, 웨슬리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고 설명하였다. 바로 이 부분이 매우 위험한 내용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도 그 사람의 이후의 행위, 즉 회개와 선행으로 이루어가는 성화이 계속 유지되어야 처음 그리스도를 믿을 때 받은 구원이 유지되고 영구하게 정착된다는 행위구원론의 핵심내용이다. 강기영 교수는 웨슬리가 신자가 구원받을 때 그때를 기준으로 과거의 죄만 용서받았다고 이해하고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루터, 칼빈과 달리 웨슬리는 칭의에서 용서받은 죄를 ‘과거의 죄’로 제한하면서, 동시에 ‘죄를 자백’함으로 회개할 것(요일 1:9)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함’(마 3:8, 눅 3:8)을 강조했다.”

이것이 웨슬리를 많이 연구한 사람이 가르쳐주는 웨슬리 사상의 진면목이다. 웨슬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셨고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덧입혀주시어 ‘법적인 의인’이 되게하심을 믿지 않았던 사람이다.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되어 이미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진 구원백성이 된 것을 믿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 대신 웨슬리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정하고 믿고 구원받을 때, 그 순간을 기준으로 과거의 죄만 용서되었다고 가르친 심각한 거짓 선생이었다. 

그런 식이면 그리스도가 2,000년 전에 죽으셨으니 그 이전의 사람들의 죄만 용서되었고, 그 후에 태어난 사람의 죄는 용서되지 못했다는 말도 가능할 것이다. 참으로 유치하고 어리석은 말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이 우리를 완전히 거룩하게 만든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법적으로 사하였다고 믿어야 성경의 기독교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죄를 짓고 회개하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여 이미 거룩하게 하였으니 우리가 범하는 죄를 회개하여 주신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며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가르침이다. 웨슬리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까지의 죄만 용서되었고 그 후의 죄는 용서되지 않았다고 가르치면, 그 후의 죄를 어떻게 회개하느냐에 따라 구원이 흔들리게 된다. 웨슬리가 가르친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행위구원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앞에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말하고, 뒤에서는 구원받고 난 후에 범하는 모든 죄와 허물을 스스로 다 토하고 회개하여 지속적인 선행가 성화를 이루어가야 구원을 놓치지 않는다고 하니, 결코 성경의 구원사상이 아니다. 그런식의 비정상적 회개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디 이상한데 가서 그런 행위구원론, 율법주의 회개 사상을 접하였음이 드러난다.

웨슬리 역시 동일한 내용을 가르쳤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을 때까지의 죄만 그리스도의 피가 다 용서하였고, 그 후에 범하는 죄와 허물과 못된 행실을 신자 본인이 부지런히 회개하고 또한 선행으로 자신의 성화를 이루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아무 공로가 없음에도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전가받아 완전한 구원을 받고, 그리고 그때부터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실질적 새로운 피조물로의 변화, 즉 성화가 일어난다는 성경의 가르침인데, 웨슬리는 그 이전의 많은 거대한 신학이단들의 영향을 받아서 이와 같은 이단사상에 자신의 신앙을 건축한 사람이었다.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강기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웨슬리는 회개의 열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회개는 여러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죄로 인한 슬픔, 2)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겸손케 됨, 3) 죄를 미워함, 4) 죄의 고백, 5) 간절하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함, 6) 하나님께 대한 사랑 7) 죄를 멈춤, 8) 확고한 목표로서 새로운 순종, 9) 부정한 방법으로 취한 소유를 되돌려 줌, 10) 우리에게 지은 이웃의 죄를 용서함, 11) 자선 행위 등입니다.’”

또한 장기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웨슬리가 믿고 구원받을 때 신자의 그때까지의 죄가 용서되었으므로 이후 회개하고 성화를 이루어가야 구원이 보장된다고 가르친 웨슬리의 신학이 옳다고 강변했다.

“웨슬리가 죄 용서를 ‘과거의 죄’로 한정한 것은 그것이 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라고 말씀한다. 또 베드로도 베드로후서에서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벧후 1:9)라고 말씀한다.”

분명한 사실은 신자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이전까지의 죄만 사하여졌다는 주장은 지극히 자의적이고 위험스러운 성경해석이라는 것이다. 이런 자의적인 성경해석을 통해 기독교 신앙이 변질되고, 그릇된 구원관을 전하는 이단이 출현한다. 

더 이상 무슨 말을 더 하고, 무슨 증거를 더 구할 필요가 있을까? 믿고 구원받아도 이후의 삶이 엉망이면 다시 구원을 잃고, 구원받은 사람도 다시 믿음이 떨어지고 죄에 빠지면 다시 구원을 잃는다는 감리교 목사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장기영 교수 같이 웨슬리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분의 논문에서 그 내용이 그대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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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