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항상 있어야 할 가장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요소

현대 교회에 추수감사절이라는 절기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좋은 점이기도 하고, 동시에 나쁜 점이되기도 합니다.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기독교 신앙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연습하는 집중적인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추수감사절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신앙이 망각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중시되고 각성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물론 뭐든지 평소에 꾸준하게 지속되고, 자기의 삶 속에서 안정되게 진행되어 습관이 되어야만, 그것이 그 사람의 삶, 가치, 인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때로는 단기간의 집중적이고 압축된 고강도의 훈련과 연습이 효과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일반들보다 더 강인한 정신과 헌신이 요구되는 군인들도 365일 고난도, 고강도의 군사훈련을 지속적으로 받지는 않습니다. 군인들에게 평소의 생활과 천리행군, 유격훈련 등의 단기간 시행되는 고강도의 혹독한 훈련 시간이 따로 있습니다. 한국의 해병대의 특수부대 UDT의 수준은 가히 세계의 모든 나라들의 특수부대들 가운데 최강의 수준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TV에서 거기에 들어가고자 지원하는 병사들이 맨 처음에 경험하는 ‘지옥훈련’이라고 불리우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5주간 진행되는 지옥훈련의 마지막 과정은 5일 동안 잠시도 잠 자지 않고 계속 뛰고, 달리고, 헤엄치는 너무도 가혹하고 초인적인 인내와 체력을 요구하는 훈련이었습니다.

아마 열흘 동안 그렇게 병사들을 가혹하게 돌리면 다 죽을 것입니다. 그런 훈련은 반드시 단기간 동안만, 그리고 생명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전문가들의 조언과 경험자들의 안전한 지도 안에서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를 위해 용기를 내어 특수부대에 자원한 소중한 젊은이들이 적을 만나보기도 전에 다 죽게될 것입니다.

UDT 대원이 되기 위해 '지옥훈련'을 경험하고 있는 병사들

왜 단기간 그와 같은 강도 높은 훈련을 경험하게 하는 것일까요? 단기간의 그 혹독하고 집중적인 그 경험이 UDT 대원이 될 병사들의 체력, 정신력, 임무에 대한 헌신과 충성도 ... 모든 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고난도의 기술, 정신력, 체력이 요구되는 특수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우수한 전투요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수임부를 부과받는 부대의 병사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더 강도있는 단기간의 훈련코스들을 많이 경험하게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과 경험하지도 못하고 통과하지도 못한 사람의 정신력과 체력이 같지 않는 것입니다. 

정해진 추수감사주일 절기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에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감사의 중요성, 필요성을 확인하고 각인시키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에 정착한 초기 청교도들에 의해 시작된 추수감사절을 교회가 계속 지키고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추수감사절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이라는 행사가 교회에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나타나는 큰 부작용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예배드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마땅히 일평생 시지 않고 해야 할 일입니다. 결코 하나님을 향한 구원받은 성도의 감사표현은 특별히 시간을 정하고, 때를 따라서 할 일이 아닙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어렸을 적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 언제나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감사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고,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없으면 기독교가 되지 못하고, 감사와 거리가 멀면 기독교 신앙이 반드시 붕괴됩니다. 구원받은 신자와 복음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로마서에서 이것을 선명하게 지적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자세가 영생얻은 기독교 신자들의 특징이고, 하나님 알만한 자연계시 속에서 살면서도 하나님을 무시하여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는 불신자들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느니라.”(롬 1:21)

신자와 불신자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태도입니다. 교회에 다녀도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없거나, 감사를 모르거나,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신앙이 없으면 불신자입니다. 결코 그런 사람을 구원받은 신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교회 안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는’ 불신자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는 가짜 신자들이 많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이라는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림이 벽별한 때의 교회행사로 전락되게 만드는 위험성을 따르게 합니다. 심지어는 다른 일반 주일 예배 때, 감사에 대해서 강력하게 설파하는 설교를 하면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전에 골로새서 본문을 읽고 사도 바울이 감사를 이야기하는 부분을 설명하는 설교하면서 저는 실제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추수감사절이 아닌데 ... 이런 설교는 추수감사절 때에나 하는 것이 아닌가?”

왜 늘 감사드려야 하는지, 감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길게 설명하는데, 마음 한편에서 이런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이라는 절기 행사가 교회에서 성대하게 진행되면서 이런 부작용이 동시에 동반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참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감사입니다. 감사가 없는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감사가 사라졌다는 것은 기본적인 구원의 감격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감사가 테마가 되는 특별한 예배는 우리의 신앙에 좋은 효과과 의미를 가지게 되고, 동시에 감사를 행사로 변질시키는 또 다른 부작용을 동반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금받았으나 타락한 우리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하시고, 다시 하나님의 복된 자녀로 삼아 천국의 기업을 누리게 하나님께 일평생 감사드리는 마음, 자세, 의지가 없으면 어찌 그리스도인이겠습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신앙의 근본입니다. 형통할 때나 어려울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 성도는 언제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감사가 넘치지 못하면 참 성도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을 더 달라고 기도하며 지속적으로 떼 쓰고, 원하는 것을 얻었기에 더 감사하면 또 정성을 다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바른 성도의 신앙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현재의 모습 속에서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 죄인들을 여전히 사랑하셨고, 친 아들의 피로서 구원하셨고, 감사하게도 친 아들과 다를 것이 없는 양자로 삼아 천국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2014년 추수감사절 설교의 일부)

 

정이철 목사 / 앤아버 반석장로교회 담임
                 '바른믿음'(good-faith.ne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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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