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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부터 WEA와 교황청의 교제와 관계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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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부터 WEA와 교황청의 교제와 관계가 형성되었다
  • 서철원
  • 승인 2020.12.1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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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부터 시작된 가톨릭과 WEA의 교제의 개요

1) 1970년대, 1980 년대에 들어 복음주의자들과 가톨릭 간에 긴밀한 접촉이 시도되었다.

2) 1974와 1984 사이에 가톨릭과 복음주의자들 간에 선교에 관하여 국제적 대화 진행되었다. 

3) 1980년 기독교 통일 증진을 위한 교황청 장관직의 한 대표가 WEF(후에 WEA로 개명)의 총회로부터 초청받아 총회 앞에 인사하였다. 이 인사를 받고 WEA는 에큐메니칼 문제를 위한 17인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4) 17인 위원회는 1988년 로마 가톨릭교회(Roman Catholicism): 현금 복음주의의 전망 (Contemporary Evangelical Perspective, Paul G. Schrotenboer, 바울 스크로텐보어 편집)을 발표하였다.

5) 1985년 가톨릭과 복음주의자들이 처음으로 구원, 복음화, 종교적 자유, 개종 작업 등을 토론하다. 그리스도인 세계 교제 협의회를 연례행사로 모이기로 하였다. 이 연례모임에는 WEA와 그리스도인 통일의 증진을 위한 교황청 협의회가 모였다. 가톨릭과 WEA의 대화를 위해 더 직접적인 관계의 설정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다. WEA가 에큐메니칼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업무 담당팀을 창설하였다.

6)1988년 예루살렘에서 기독교 세계 교제단이 모였을 때 개신교회 대표들과 기독교 통일 증진을 위한 교황청 사무국 대표가 대화하였다.

개신교회의 대표들: 대화자들은 WEF의 국제담당 감독자인 다윗 하워드 (Rev. David Howard), 개혁파 에큐메니칼 총회 (Reformed Ecumenical Synod)의 사무총장과 WEF의 대책본부 (WEF Task Force)의 의장인 바울 스크로텐보어 (Dr. Paul Schrotenboer)가 개신교를 대표하였다.

로마교회의 대표들: 기독교 통일 증진을 위한 교황청 협의회 사무장 삐에르 듀프레 (Rev. Pierre Duprey), 기독교 통일을 위한 교황청 협의회의 대주교 요한 라다노였다. 이들은 현재 문제점들을 토론하기 위해 짧은 모임을 갖기로 했다.

7) 1990, 10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모임이 열렸다. 이 모임에는 폴 스크로텐보어와 죠오지 반데르벨드 (George Vandervelde 와 로마교회 측에서는 교황청 협의회를 대표하여 케빈 맥도날드 대주교와 죤 라다노가 참석했다. 2일 간 충분한 토론을 했다고 한다. 토론으로 밝혀진 것은 두 공동체 간에 차이점들이었다.

8) 1993년 뒤프레 주교의 초청으로 다시 베니스에 모여 협의하였다. 그래서 잘 준비해서 길게 협의하기 위해 베니스에서 다시 만나도록 피에르 뒤프레 주교가 초청하였다.

9) 1993년 이래 WEA와 가톨릭 교회간의 국제적 협의 본격 시작되었다. 베니스 회담 후 여러 차례 국제적 모임이 이루어졌다. 일반적 목표는 더 큰 상호이해와 더 나은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서였다. 베니스 회담에서 토론한 문제점들은 성경, 전통과 교제로서 교회의 본성에 관한 것이었다.

10) 1997년 로마교회의 에이브리 덜레스 (Avery Dulles, S.J.)와 세계 복음주의자 연맹의 앙리 브오허와 죠오지 반데르벨드 (Dr. Henry Blocher et Dr. George Vandervelde)간의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토론으로 나온 문건이 복음주의 신학 평론지에 실렸다(Evangelical Review of Theology).

이 교리가 두 교제 공동체를 나누는 논제였으므로 이 문제의 중요성을 다 공감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와 함께 선교의 본질과 실제와 복음주의 혹은 전도에 관한 문제도 함께 다루었다. 이 선교문제는 다음 논의에서도 논의되었다.

11) 1999년 11월 같은 성격의 3차 모임이 위스콘신, 윌리엄스 베이 (Williams Bay, Wisconsin)에서 열렸다. 그간 서로간의 신뢰가 더욱 커져서 다시 모여 토론이 진행되고 결과물로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이때 정규적으로 모이기로 합의하였다. 이때 토론의 주제는 교제로서 교회라는 주제를 논하였다.

가톨릭 편에서 에이브리 덜레스와 복음주의 편에서는 앙리 브로허가 같은 주제를 토론하였다. 또 다른 주제인 종교적 자유문제로 토마스 스타란스키 (Thomas Stransky)와 다니엘 카롤 로다스 (Daniel Carroll Rodas)와 개신교 측에서는 죠오지 반데르벨드 등이 발표와 봉사를 하였다.

각각의 측에서 논문을 제출하였다. 이 기간 동안 각각의 대표들이 휘이턴 대학 (Wheaton College)과 트리니티 삼위일체 복음주의 신학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과 빌리 그러햄 박물관을 방문하고 그들과도 토론도 하였다. 또 로마교회의 쉬카고 대교구 신학교도 방문하였다. 그런 과정들로 상대방을 서로 깊이 이해하고 중요한 문제들을 함께 대화하기로 작정하였다.

12) 2000년 5월 7일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열린 20세기 신앙에 대한 에큐메니칼 공동기념회에 WEA 대표들이 교황 요한 바울 2세의 초청으로 참석하였다.

13)2001년 2월 18-24; 일리노이 먼델라인 (Mundelein, Illonois)에서 4차 대화회의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교제로서 교회에 관한 논문이 공동으로 작성되어 채택되었다.

14)2002년 2월 17-26 영국 스완스윜에서 제 5차 대화 회의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공동보고서가 채택되었다. 이 보고서는 교제에 관하여 두 진영 간의 차이점을 모았고, 둘째 부분은 교제와 복음화의 관계에 대해서 합의점들을 담았다. 그리고 가톨릭과 WEA 간의 협의를 계속하기로 합의하였다.

* 위의 제시는 WEA의 신학분과위원회에서 발행한 ‘교회, 복음화와 교제의 끈 ’Church, Evangelization, and the Bonds of Koinonia‘을 따라 제시한 것임)

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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