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4 13:09 (금)
모세의 율법을 지켜 의를 얻은 者(놈)라면 기독교의 그리스도가 아니다
상태바
모세의 율법을 지켜 의를 얻은 者(놈)라면 기독교의 그리스도가 아니다
  • 정이철
  • 승인 2021.08.17 0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
김재성 교수가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지켜 의로움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하고 유투브 영상으로 홍보하는 모습.

[김재성 교수가 여전히 해어 나오지 못하는 거짓 신학(행위언약)에 의하면 기독교는 참 우스운 종교이다. 청교도들이 고안하여 웨신서에도 들어간 행위언약을 믿는 모든 분들은 다음의 질문에 답해 보라!]

필자가 김재성 교수의 책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한 소감 두 번째 글에서 한 말이다. 그랬더니 한 독자가 답변을 보내왔다. 그런데 그 내용이 정말 엉터리이다. 청교도 신학에 대한 필자의 공개적인 질문들을 그대로 쓰시고 답하신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면서 필자의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

항목 6>

“[6.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 의롭답고 인정을 받았다고 주장하시는데, 모세의 어떤 율법들을 그리스도가 얼마나 많이 지켰습니까? 어디에서 그런 고급 정보들을 알 수 있나요?(정이철 목사의 말)]

목사님은 분명히 예수님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동물원의 원숭이도 아는 사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순종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라’는 명령에만 순종하셨습니까? 아니면 율법에도 순종하신 것입니까? 예수님이 도덕법을 지키셨습니까, 안 지키셨습니까? 멕체인은 로마서 5:19 설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외에는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으셨습니다(1계명). 어떤 우상에게도 절하지 않으셨습니다(2계명). 아버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않으셨습니다(3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셨습니다(4계명). 나사렛으로 내려가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셨습니다(눅 2:51).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5계명). 살인하지 않으셨고(6계명), 간음하지 않으셨고(7계명), 도둑질하지 않으셨고(8계명), 그 입에 거짓이 없으셨고(벧전 2:22)(9계명), 탐내지 않으셨습니다(10계명).

십계명을 둘로 간추린다면, 예수님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자기 이웃을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하셨습니다(눅 10:27). 하나님을 향한 꺼지지 않는 사랑이 예수님 가슴속에서 타올랐습니다. 그 하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존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상하게 하시고 질고를 당하게 하시며(사 53:10),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슥 13:7) 말씀하실 때에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하고 외치셨습니다. 자기를 치신 그 손에 입을 맞추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자기 이웃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시 109:4).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예수님은 이들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머리를 흔들며 자기를 모욕하고(막 15:29), 자기한테 신 포도주를 줄 때에도(눅 23:36),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하고 외치셨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롬 13:10)!”

이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부정하십니까? 예수님의 순종에는 필히 이 율법에 대한 순종이 포함됩니다. 왜냐? 이 율법도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사람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셨다고 하면 신성모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율법을 안 지키셨다고 하면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

 

 

정이철 목사의 답>

저는 예수님이 율법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저의 주장은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 조항들 하나하나에 대한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면서 구약의 성도들의 방식으로 지키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그리스도에게는 전혀 없었습니다.

청교도들의 이론대로 하자면, 구약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 전에 율법 준수를 강하게 요구받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누구도 구원받기 전에 율법 준수를 요구받지 않았고 그냥 하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후에 율법대로 살도록 요구받았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구약 백성들 가운데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먼저 은혜로 구원하시고 나중에 완전하게 지킬 수도 없는 율법을 지키도록 요구하셨을까요?

죄인으로 태어난 그 누구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는 모세의 율법 조항들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고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삶의 원칙이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하나님 백성이 되었으면 마땅히 그 정도로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제시한 것입니다. 전문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구약의 율법은 은혜로 구원 받은 후 하나님을 섬기기로 언약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삶의 원칙들입니다.

처음부터 구약의 율법은 구원의 기준(수단)으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은혜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나님과 언약한 백성들의 언약 실천 사항들이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아담의 원죄에 사로 잡혀있는 죄인들로서는 절대로 지킬 수 없는 내용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지켜야 할 언약의 실천사항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구약의 율법은 죄를 해결하여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실 하나님-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식을 미리 보여주는 특별계시였습니다. 구원자는 율법의 모든 요구와 지시 사항들을 갖춘 완전한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어야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특별계시였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로서 먼저 온 것이 율법이었습니다. 

구원자가 되기 위한 완전한 요건을 갖추기 위해 그리스도의 인성은 죄와 무관하게 성령잉태 방식으로 창조되시었습니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이 자기의 인격을 그 사람에게 일치시키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죄 없는 사람으로 오시었습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인격을 가졌다는 것의 핵심은 그 분이 본래 창조주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요구하고 지시하는 하나님 백성의 자격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벽하게 실현되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이 미리 율법으로 계시된 것입니다. 죄와 관련이 없는 사람으로 출생하셨으므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는 완벽하게 의로우시고 거룩하시니 율법이 지적하는 죄와 아무 관련이 없으셨습니다. 죄를 지적질 하는 율법의 요구가 다 구현된 완벽한 하나님 백성으로 오셨으므로 율법 앞에서 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출생하실 때부터 성령을 모시고 오신 유일한 하나님 백성이셨고, 처음부터 하나님 나라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분에게 죄인들이 지켜야 할 모세의 율법을 지켰느니, 안 지켰느니 하는 논쟁을 한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모욕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자기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미리 주신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였습니다.

구원 받아야 할 죄인들이 먼저 그림자를 보고 나중에 올 그 실체인 그리스도 자신을 고대하라고 보내신 것이 모세의 율법입니다. 구원 받지 못하고 저주 가운데 죽게 만드는 죄의 근본과 증상들을 먼저 모세의 율법들을 통해 드러내시었습니다. 후에 모세의 율법 앞에서 아무 흠이 없는 자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율법의 정죄로 인해 신음하는 죄인들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으로 자기를 믿는 죄인들이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구원입니다.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지켰느니,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의로움을 얻었느니 ... 이런 소리를 밤낯으로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그는 이단보다 더 저질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모세의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특이합니다.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하나씩 지키신 것이 아니고 모세의 율법 앞에서 아무 흠이 없는 자신을 모세의 율법의 정죄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속의 제물로 드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는 완전히 의로우신 그리스도가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할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고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서 율법의 정죄와 요구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표하여 율법대로 확실하게 죽으셨으므로 더 이상 죄를 지적하는 율법이 하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인이므로 영원히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날 수 없으나 그리스도가 대신 정죄를 받고 우리를 해방시키셨으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과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6, 57)

그리스도는 율법에게 순종한 것이 아니고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정죄하는 율법의 모든 요구를 자기의 몸과 영혼으로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모두 지켰다고 말하지 않고 ‘율법의 마침’이 되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 4)

왜 성경에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지키시려고 노력하시는 모습들이 나오지 않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지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육신의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 죄와 무관한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오시어 우리 대신 모세의 율법의 요구대로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율법의 요구대로 죽으신 그리스도의 속죄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지켰느니 어쨌느니 하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준수 의의 획득 사상을 이단사상입니다. 모세의 율법 따위를 지켜서 의로움을 얻은 놈은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 직후에 다시 사탄이 교회의 신앙을 유린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온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셨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성육신으로부터 십자가의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의 순종입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그리스도 자신에게 없는 의를 획득하기 위한 순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져버린 아담의 반역에 대한 배상으로서의 순종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아담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하셨으나 시종일관 완전하게 순종하신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만족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만족하시고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받으시고 우리의 반역죄에 대해 완전히 마음의 진노를 푸셨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에게 반역죄를 묻지 않기로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칭의입니다. 반역죄와 이후의 모든 죄들에 대해 하나님이 더 이상 죗 값을 묻지 않으시니 의로운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니 완전히 의로운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이미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부터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종은 우리의 죄용서와 연관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한 우리의 칭의를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원래 자신에게 없었던 의로움을 얻었다면, 그는 기독교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 우리 죄인들을 의롭게 만드시려고 죄 없는 사람으로 오셨는데, 무슨 의가 부족하여 모세의 율법을 지켰다는 것인가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전에 먼저 자기에게 찾아나온 자기 백성에게 죄용서와 구원을 선포하신 것을 보면, 그리스도의 시종일관의 순종의 삶이 우리의 죄를 사하는 것과 연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 2:5)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