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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대한 사람 배후에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 ... 여성들이여 하나님이 주신 귀한 직무 잘 감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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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대한 사람 배후에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 ... 여성들이여 하나님이 주신 귀한 직무 잘 감당하라!
  • 김효성
  • 승인 2022.08.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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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들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중대한 문제는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세우는 일이다. 세상의 남녀평등주의 사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고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세우는 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커버넌트 신학교 변증학 교수요 프란시스 쉐퍼 연구소 소장인 제람바즈 교수는 1997년 라브리 청년대학생 수양회에서 “세상 속의 일그러진 성”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하면서,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남성이 해야 할 일과 여성이 해야 할 일에 관해 구분하고 있지 않으며, 돕는 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성경말씀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하는 의미가 아니고 동등한 위치의 남성과 여성으로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며, 남녀는 동등한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 S. News & World Report) 1998년 8월 10일자는 “하와에 의한 성경”이라는 특별 기사에서 말하기를, “여성들은 약 80개의 기독교단들에서 목사직에 그리고 보수파와 개혁파와 재건파 유대교에서 랍비직에 용납된다. 여성들은 신학교 과정들 안에 있는 모든 학생들의 3분의 1에 이른다”고 하였다.

미연방노동청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 자신을 ‘성직자’라고 묘사하는 여성들의 숫자는 1983년과 1996년 사이에 27,134명 증가하였다. 1983년에는 그 숫자가 16,408명이었으나, 1996년까지 여성 ‘성직자’의 숫자는 43,542명으로 늘었다. 이것은 여성이 미국의 모든 성직자들의 12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7년에, 229개의 북미 신학대학원 학생들의 30퍼센트는 여성이었는데, 그것은 1972년의 10퍼센트와 비교할 때 크게 증가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개신교 감독교회 신학교와 디스트릭에 있는 연합감리교회 웨슬리 신학교는 학생들의 절반이 여성이다.

1994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는 701대 612로 여성 안수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예장통합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와 더불어 한국에서 자유주의적 교회들의 노선을 다시 한 번 더 드러내었다. 2003년 4월,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는 여목사 안수허용 문제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그 교단은 예장통합, 기장, 기감, 기하성, 성공회와 더불어 여목사 안수를 인정하는 교단이 되었다. 2004년 6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는 여성 안수 문제에 대해 총대 665명 중 559명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것은 그 교단의 자유주의적 경향과 입장을 다시 한번 더 분명히 확인시킨 일이다.

그러나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에 대한 주장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세속사회의 영향이다.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복음주의 신학교들 안에서 가르쳐지고 기독청년들에게 퍼진다는 것은 대단히 슬픈 현상이다.

여성 안수를 주장하는 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점들을 든다:

1)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여성 사역자들이 있었다는 점, 예를 들면, 여선지자 미리암(출 15:20), 여선지자 드보라(삿 4:4), 전도자 빌립의 예언하는 딸들(행 21:9) 등,

2) 갈라디아서 3:28의 말씀(“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이 남녀 평등의 원리를 가르치는 것 같다는 점,

3) 세속 사회도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데 하물며 교회가 시대 조류를 역행할 수 없다는 점,

4) 교회 내의 여성들의 은사를 활용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점.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모든 생각들을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생각하고 믿고 행동해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임시적으로, 예외적으로 허용하신 것과 교회의 영속적 규범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성경은 여성 직분자 문제에 대해 밝히 가르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성경을 믿는 교회들은 그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인간적, 시대적 생각을 버리고 과연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창세기에 증거된 사람의 창조 기사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그를 위해 돕는 배필 즉 돕는 자를 지으셨다(창 2:18).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남녀를 동시에 만드셨거나 혹은 여자를 만드신 후 그를 위해 남자를 만드신 것이 아니고, 남자를 만드신 후 그를 위해 여자를 만드셨다는 사실이다. 즉 여자는 남자를 위해 돕는 자가 되도록 창조된 것이다. 여기에 남녀의 역할의 구분이 있다.

물론 이것이 남편이 아내를 마음대로 지배하고 학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 둘은 한 몸이요 참 사랑의 관계이다. 남편은 자기 아내를 아끼고 사랑해야 하며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그 둘의 관계는 또한 한 편이 다른 편을 위하며 순종해야 하는 관계이다.

이런 원리에 일치하게, 신약성경은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허용하지 않는다. 디모데전서 2:11-14과 고린도전서 14:34-37은 이 문제에 대해 가르치는 주요 구절이다. 이 두 구절은 여자 목사직과 여자 장로직을 금하는 다섯 가지의 이유를 제시한다.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딤전 2:11-14).

이 구절은 여자의 가르치는 일(목사직)과 다스리는 일(장로직)을 명백히 금하고 있다. 이렇게 금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 이유는 창조의 질서 때문이다. 즉 여자는 남자의 협력자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돕는 자)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8).

둘째 이유는 범죄에 대한 징벌 때문이다. 즉 인류의 타락 시 여자가 남편에게 선악과를 주어 먹게 함으로 범죄케 하였기 때문이다. 창세기 3:6,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러므로 이제 여자는 또다시 나서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제약을 당한다는 뜻이 있다. 이 두 이유들은 다 어떤 시대적, 환경적 요인들이 아니고, 역사적, 불변적 사실들이다.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너희의 아내들]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고전 14:34-37).

이 구절도 여자들이 교회 앞에 나서서 말하고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이유는 율법의 말씀 즉 성경말씀 때문이다. 34절, “율법에 이른 바와 같이.” 어떤 말씀을 가리키는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일 것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창 2:18).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창 3:16).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창 18:12).

둘째 이유는 주의 명령, 즉 성경에 주신 주의 명령 때문이다. 37절, “주의 명령인 줄 알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2).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벧전 3:1, 5-6). 사도들의 교훈은 곧 주의 교훈이다.

셋째 이유는 교회의 보편적인 규례 때문이다. 34절,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이러한 규례는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지역의 교회의 풍습이 아니고 모든 시대, 모든 교회의 일반적 규례이다.

위의 두 성경 구절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문제에 대한 성경 교훈을 옛 시대의 사고방식과 풍습에 제약을 받은 인간 바울의 말로 보는 것은, 그 교훈에 제시된 다섯 가지의 이유들의 정당성을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글인 신약성경의 신적 권위에 대항하는 큰 오류이며 큰 죄악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살후 2:15).

그러므로 박형룡 박사는 여성에 대한 이러한 규례가 2천년 전의 한 지방 교회의 풍습이 아니고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와 디모데전서에서 여자의 교회 교권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2천년 전의 한 지방교회의 교훈과 풍습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만고불변의 진리다" (박형룡, 교회론, 145-148).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들을 자주 인용한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고전 11:11).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그러나 이런 구절들은 앞에서 증거한 성경의 명백한 진리와 교훈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성경 구절들은 직분에 있어서의 남녀 평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은혜와 구원의 복을 받음에 있어서 남녀가 동등하다는 뜻이다. 신약성경에 계시된 만인제사장 진리(벧전 2:5, 9)도 가정과 교회 안에서 남녀 역할의 차등의 진리와 배치되게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도시대에 여성도들은 복음 사역에 큰 역할을 하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예수님과 12제자들]를 섬기더라” (눅 8:2,3).

또 로마서 16장에는 뵈뵈, 브리스길라, 마리아 등 복음을 위해 많이 수고한 여자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여성도들에게는 복음을 위한 이러한 봉사와 수고의 일뿐 아니라, 또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이라는 큰 일이 있다. 그것은 남자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이며 여성에게만 주어진 귀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다스리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고 교훈한 후 덧붙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 2:15).

이 구절은 여자가 해산을 통해 그의 낮은 지위가 회복된다는 뜻일 것이다. 훌륭한 남자의 배후에는 대체로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 여성들은 이 고귀한 직무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김효성 목사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총신대학 신학연구원, 훼이스(Faith) 신학대학원(Th.M. in N.T. 미국 필라델피아), 밥 죤스(Bob Jones) 대학교 대학원 졸업(Ph.D. in Theology,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공부했다. 계약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합정동교회(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담임목사이다. 신구약 성경을 주석하여 인터넷(http://www.oldfaith.net/01exposit.htm)을 통해 보급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견실한 설교를 준비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신학자이다. J. G. 메이천, 『신약개론』을 비롯하여 많은 10권 이상의 외국 신학자들의 좋은 저서들을 번역하여 한국 교회에 보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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