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들이 말하는 회심이 어떤 개념인지 알려면, 그들의 회심이라는 신학적 개념과 씨름했던 우리 칼빈주의 선조들이 남긴 그 시대의 문서와 기록을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청교도들이 회심준비론 목회를 주장하기 직전 알미니안들이 같은 개념을 주장하면서 킬빈주의 신학과 신앙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돌트 신조 3.4번째 교리조항 12조는 다음과 같이 알미니안들의 회심 개념을 설명했다.

“이 회심은 성경에서 강력하게 말하는 바와 같이 중생이며, 새 창조이며,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며, 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중생은 하나님께서 우리 없이 홀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알미니안들의 회심 사상을 진지하게 연구하였던 우리 칼빈주의 선조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회심 개념이 칼빈주의 신학이 말하는 중생 개념과 같은 것이라고 정의했다. 중생이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가 없다고 인정되고 하나님과의 화해 속으로 들어가 영생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중생을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재창조’, ‘첫째 부활’, ‘다시 살려주심’이다. 칼빈주의 신학에서 재창조는 아담의 죄 속에서 처음부터 죽은 상태로 태어난 죄인에게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적용되어 죄가 없었던 것처럼 간주되어 다시 생명을 얻게됨을 의미한다. 속죄 사역으로 하나님의 공의에 만족을 드리시고 죽은 그리스도의 몸을 다시 살리심과 함께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이 시작되었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그것이 완성된다는 것이 칼빈주의 재창조 신학이다.

칼빈주의 신학에서 둘째 부활은 나중의 우리의 몸의 부활이고, 첫째 부활은 아담의 반역죄 속에서 죽은 상태로 태어난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의 공로를 적용받아, 즉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짐으로 다시 생명을 얻게 된 것, 즉 영혼의 거듭남이다. 다시 살려주심은 죽은 상태의 인간에게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의 능력을 적용하는 다른 보해사, 즉 그리스도를 대신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시는 성령이 복음을 통해 믿는 죄인에게 새 생명을 주심이다.

알미니안들과 청교도들의 사람을 회심되도록 준비시키는 목회, 즉 회심준비론 목회를 달리 말하면 다음과 같다.

중생을 준비시키는 목회
개종을 준비시키는 목회
부활을 준비시키는 목회
죽은 영혼들의 살게됨을 준비시키는 목회
죽은 자들에게 영적 출생을 준비시키는 목회
죽은 자들이 재창조(새창조)되기를 준비시키는 목회

화란의 우리 칼빈주의 선조들은 왜 이런 개념을 가르친 알미니안들을 이단으로 정죄했을까? 참된 신앙을 변질시켜 믿고 교회에 다닐지라도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의 이성으로 자기의 회심, 중생, 개종, 부활, 영적 출생을 준비하다가 드디어 구원을 얻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언제 회심(개종, 중생, 영적 출생, 구원, 살게 됨)을 체험했는가?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죽이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때였다. 청교도들의 회심준비론에 의하면, 사도 바울의 다메섹 사건이 하나님의 은혜와 바울 자신의 이성에 의해 준비되었다. 과연 바울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어떤 은혜에 반응하여 다메섹 사건을 준비했었는가? 그랬다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을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회심, 즉 중생, 구원, 개종, 부활, 재창조(새창조)의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기초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사람의 공로나 준비를 전혀 개입되지 못한다. 주께서 밤중에 찾아와서 회심에 대해 질문한 니고데모에게 무엇이라 대답했는가?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다. 자신이 거듭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이나 처방을 할 수 없으니 너무 답답한 니고데모는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니이까”(요 3:3)라고 반문했다.

회심, 즉 개종, 중생, 부활, 재창조, 영적 출생을 얻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기 위해 스스로 숨을 더 많이 쉬었는가? 스스로 심장 맛사지를 했는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회심, 즉 중생, 개종, 영적 출생, 거듭남, 재창조됨은 오직 하나님 홀로 하시는 은혜의 역사이다. 그래서 돌트 신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서 알미니안들의 회심준비론을 이단 사상으로 정죄하였다.

“모든 사람이 죄 중에서 잉태되며 진노의 자녀로 태어난다. 구원받을 만한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고, 항상 악을 행하며, 자기 죄 가운데 죽었고, 죄의 노예다. 사람은 성령님의 중생하게 하시는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거나, 타락한 본성을 고치거나,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새롭게 하시도록 내어드리려고 하지도 않으며 할 수도 없다” (돌트 신조 3.4번째 교리조항 3조).
 

12
신학부 임원들(왼쪽부터 박의서 총무, 한종호 부장, 임종구 서기). 

 

회심준비론을 '교류금지'에 처한 합동의 22년 총회의 결의는 지극히 옳고 성경적이다. 그런데 이제 관련된 사람들이 신학부를 접수하여 회심준비론에 대해 이단 해제를 시도하고 있다. 신학부가 계속 위험한 시도를 지속하면 교단이 운영하는 합법적 이단옹호 기관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