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은 기독교강요 4-14-12에서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돌려 주지 않으셨다고 했다. 아담에게는 이미 영원한 생명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The sacraments are confirmations of our faith in such a sense, that the Lord, sometimes, when he sees meet to withdraw our assurance of the things which he had promised in the sacraments, takes away the sacraments themselves. When he deprives Adam of the gift of immortality, and expels him from the garden,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fe, and live for ever” (Gen. 3:22). What is this we hear? Could that fruit have restored Adam to the immortality from which he had already fallen?” (기독교강요, 4.14.12).

“성례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강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주께서는 어떤 때에는 성례로 약속하신 일을 우리가 믿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성례 자체를 우리에게서 빼앗으신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다시 돌려)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번역 홍정환).

여기서 'gift'라는 단어를 넣어서 immortality가 영적인 의미인 영생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또한 칼빈은 기독교강요 1.15.1에서 타락 전의 아담에 대하여 영원한 생명(immortal spirit)의 거주지로 창조했다고 말한다.

“God having not only deigned to animate a vessel of clay, but to make it the habitation of an immortal spirit, Adam might well glory in the great liberality of his Maker” (기독교강요, 1.15.1).

“하나님께서는 진흙 그릇에 생명을 불어넣으셨을 뿐 아니라 이것을 영원한 생명(immortal spirit)의 거주지로 만드셨기 때문에, 아담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위대한 관대하심을 영광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번역 홍정환).

'immortal spirit'은 불멸의 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불멸은 영적인 차원의 영원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태초의 타락하기 전의 아담에게는 불멸의 영 즉 영생이 있었다. 여기에서도 'spirit'라는 단어를 넣어서 영적인 불멸 즉 영생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칼빈은 영혼 불멸을 양심의 증언, 하나님에 대한 지식, 그것이 지니고 있는 고귀한 능력, 수면 중의 활동과 놀라운 공상, 성경의 무수한 구절들이 입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독교강요, 1.15.2).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불멸의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라고 했다(기독교강요, 1.15.3).

칼빈은 1534년 25세였을 때, 그의 최초의 작품인 영혼수면설 논박(Psychopannychia)을 출판했다. 그는 그 책에서 초대 교회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를 다섯 번,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를 일곱 번 언급했다. 칼빈은 두 교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테르툴리아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가 모두 영혼불멸의 가장 큰 지지자였다. 칼빈은 '이마지오 데이(Imagio Dei)'(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진 인간)가 영혼불멸에 관한 신학적 논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비장의 카드라고 믿었다. 영혼불멸의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로 하나님의 형상을 꼽는다는 거 자체가 아담에게 영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A strong proof of this point may be gathered from its being said, that man was created in the image of God. For though the divine glory is displayed in man’s outward appearance, it cannot be doubted that the proper seat of the image is in the soul. I deny not, indeed, that external shape, in so far as it distinguishes and separates us from the lower animals, brings us nearer to God” (기독교강요, 1.15.3).

“이 문제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는 역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서 얻을 수 있다(창 1:27).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외형에서 빛나고 있지만, 그러나 그 형상의 본래의 자리(the proper seat of the image)가 영혼에 자리 잡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실로 나는, 인간의 외형이 우리를 동물과 구별하고 분리시키며 동시에 우리를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결합시켜 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번역 홍정환).

'seat of the image'는 성경에서 에스겔 8장 3절에서 'seat of the image of jealousy' 즉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라고 나온다. 여기서는 그 형상의 본래의 자리(the proper seat of the image)는 영원한 생명 즉 불멸의 영이 있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아담에게는 영생이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Three gradations, indeed, are to be noted in the creation of man; that his dead body was formed out of the dust of the earth; that it was endued with a soul, whence it should receive vital motion; and that on this soul God engraved his own image, to which immortality is annexed” (칼빈, 창세기 주석 2:7).

“실제로 인간을 창조할 때 세 단계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죽은 몸은 땅의 먼지로 형성되었고, 그것은 영혼을 부여받았으며, 거기서 생명력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영혼에 하나님은 불멸이 부가된 자신의 형상을 새겨 넣으셨다” (번역 홍정환).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3번째 단계에서 아담의 영혼에 불멸성 즉 영원한 생명을 새겨 넣으셨다. 여기서 immortality는 영혼에 새겨 넣었다고 했으므로 육신적인 의미가 아니다. 영혼이 영원히 불멸한 것은 영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아담이 처음에 받았던 그 완전함을 의미한다. 아담은 처음에는 바른 이해력을 충분히 소유하였고 감정을 이성에 종속시켰으며 일체의 감각을 적절한 질서에 따라 조절하였다” (기독교강요, 1.15.3).

칼빈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는 완전한 상태였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종류의 동물을 훨씬 능가하는 인간성의 탁월성 전체에까지 확대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형상에 대한 참된 본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된다고 말하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참되고 완전한 본래의 순전한 모습으로 회복시키신다는 이유에서 제2의 아담이라고 불려진다. 바울은 신자가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살려 주는 영"과 아담이 지음을 받을 때 받은 "산 영"을 대조하고(고전 15:45)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시는 것이 중생의 목적이다” (기독교강요, 1.15.4).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시는 것이 중생의 목적이라고 하는 다른 중요한 점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다른 곳에서,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10)고 가르치고 있다.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권고와 서로 일치하는 데가 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바울은 살아있는 영혼(living soul)과 그리스도가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에게 생기를 부여하는 영혼(quickening spirit)을 대조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중생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을 칼빈은 아담의 상태가 불완전하거나 영생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아담 안에 있는 인류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고린도전서 15:45에서 바울이 가르치고 있다고 확실하게 말을 했다1).

인류가 아담의 몸 안에서 완벽하지 못한 이유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되어서 영원한 생명이 거주하던 영과 육이 분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된 자들에게 아담에게 불어넣어 주셨던 생기(immortality spirit)를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바울은 이 갱신(하나님의 형상 회복)에 대하여 첫째로는 지식을 말하며, 둘째로는 순결한 의와 거룩함을 말하고 있다. 칼빈은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은 처음에는 지성의 빛과 마음의 바름과 모든 부분의 건전함에서 뚜렷이 빛나고 있었다는 점을 추론한다 (기독교강요, 1.15.4).

 

 

“그런데 위에서 말한 형상이 영적이며 영원한 생명에 관계되는 것을 모두 다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한은 그와 똑같은 사실을 다른 말로 단정하여, 태초로부터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 안에 있었던 "생명"이 바로 "사람의 빛"(요 1:4)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강요, 1.15.4).

그의 의도는, 인간을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특수한 은총을 찬양하는 것으로, 그는 인간이 평범한 생명을 부여받지 않고 지성의 빛이 결합된 생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동물들과는 구별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는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성의 완전한 탁월성으로, 이것은 타락 이전에는 아담 안에서 빛나고 있었으나 ...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성의 빛이 결합이 된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았고 아담 안에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칼빈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2),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이 영혼 안에 있다고 생각했던 플라톤의 정서를 반영한다 (기독교강요 1-15-6). 칼빈은 "영혼은 육체의 모든 부분에 생기를 넣어 주고.., 동시에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자극하고.., 인간이 천상의 생명을 묵상하도록 창조되었음에 틀림없듯이 하늘의 생명에 대한 지식이 영혼에 새겨져 있었음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기독교강요, 1.15.6)"라고 말했다.

칼빈은 아담에게 영생이 있었음을 이런 식으로 확신하고 있었고 영혼불멸에 관한 신학 논쟁에서 승리를 위한 트럼프 카드로 사용하였다.

“인간의 최초의 상태는 이와 같은 탁월한 은사들로 뛰어난 품위를 지니고 있었으며, 때문에 그의 이성과 지성, 분별력, 판단력은 지상생활을 지배하는 데 있어서 충분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eternal happiness)에 도달하게 했다3). 그 후 여기에 선택이 추가되어, 욕구를 조정하고, 모든 기관의 활동을 조정하며 그리하여 의지로 하여금 이성의 지도에 완전히 따르게 하였다. 이러한 완전한 상태에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인간은 자기가 원하기만 하였더라면 영생에 도달할 수 있었다” (기독교강요, 1.15.8).

아담은 완전한 상태에서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eternal happiness) 즉 영생을 가지고 있었다. 칼빈은 "아담은 항구적인 인내성을 받지 못했던 까닭으로, 그는 아주 쉽게 타락하였던 것이다... 그가 자신을 파멸시킴으로써 자신의 축복을 부패시키기 전에는 그의 마음과 의지는 최고의 공정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의 모든 유기적인 부분들은 순종할 수 있도록 바르게 조직되어 있었다 (기독교강요, 1.15.8)"라고 말을 했다.

칼빈은 아담이 항구적인 인내심이 부족했지만 완전한 상태라고 표현했다. 아담은 이미 영생을 가지고 있었기에 완전한 상태였고, 자유의지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영원한 행복에 도달했던 것이다. 선악과를 먹고 타락을 하여 영생에 도달할 수가 없었기에 처음부터 영생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그런데 스스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자처하면서 철학자들의 사상과 하늘나라의 교리를 절충함으로써 타락하여 영적 파멸에 들어간 인간에게서 여전히 자유 선택을 찾는 자들이야말로 분명히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자들이며, 하늘과 땅 어디에도 그들의 이 절충 사상은 접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는 앞으로 적당한 곳에서 보다 충분히 다루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그는 그의 모든 후손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며, 아담의 후손은 아담의 부패한 상태에서부터 기원하여 유전적인 오염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담의 영혼의 각 부분은 올바르게 형성되었으며 마음은 건전하였고 의지는 선을 선택할 자유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가 아담의 의지의 힘이 약했던 까닭에 그것은 불안정한 상태에 놓였다고 반론을 제기하면, 아담의 신분 그 자체가 어떠한 변명도 물리치게 해 줄 것이라고 나는 답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범죄 할 수 없거나 범죄를 원하지 않도록 인간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고 하나님께 강요한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실로 그러한 인간성은 한층 탁월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치 이런 본성을 사람에게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불평한다는 것은 매우 악한 행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뻐하심에 따라 자유롭게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인내의 힘을 주셔서 그를 붙들어 주지 않으셨는가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감취어 있다. 그리고 근신하여 이를 캐내지 않는 것이 우리로서는 지혜로운 일이다” (기독교강요, 1.15.8).

칼빈은 자유 선택에 집착하는 알미니언과 능동순종주의자들에게 어리석다고 말하고 있고, 아담의 인내심이 약하여 가변성이 있거나 불완전하다고 하는 알미니언과 능동순종주의자들에게 아담은 영생이 있었고 완전한 존재였다고 답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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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ul makes an antithesis between this living soul and the quickening spirit which Christ confers upon the faithful, (1 Corinthians 15:45) for no other purpose than to teach us that the state of man was not perfected in the person of Adam; (Commentary on Genesis - 2:7 by John Calvin)

바울은 이 살아있는 영혼과 그리스도가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에게 생기를 부여하는 영혼을 대조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태가 아담의 몸 안에게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한 것 외에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 (칼빈 창세기 주석 2:7, 홍정환 역)

2) Augustine- City of God, Book 8, Ch 5

3) Only the underlined part was partially translated by Hong Jeong

 

- 홍정환 성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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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