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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규 교수 반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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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환
등록일
2023-09-09 17:03:12
조회수
185
<2> http://repress.kr/24025/ 개혁교회의 율법과 언약 이해에서 이남규 교수가 쓴 글이다. 필자는 이 부분을 반론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을지라도 아직 하늘에 속한 상태는 아니었다. 창조된 아담의 생명을 하늘에 속한 생명으로 묘사하면 이 말씀과 어긋난다. 아담은 이 땅에서 자란 식물의 열매가 필요했으며, 그 몸은 영화롭게 된 몸이 아니었다. 따라서 아담의 상태는 ‘온전한 상태’(status integritatis)였으나 ‘영광의 상태’(status gloriae)는 아니었다."


고린도 전서 15장 47~49 개역개정 한글 번역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칭의 등을 부각하다 보니까 아담에 대한 세심한 번역을 하지 않은 느낌이 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47~48의 말씀을 NIV버전 영어 성경으로 보면 무슨 의미인지 보다 명확하게 이해가 된다.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다. 하지만 쉽게 이해를 하기 위하여 NIV버전 영어 성경을 필자가 번역을 해보았다.​

(1Corinthians 15:47~48 NIV)
47The first man was of the dust of the earth, the second man from heaven
48As was the earthly man, so are those who are of the earth; and as is the man from heaven, so also are those who are of heaven
47첫 번째 남자는 흙의 먼지였고, 두 번째 남자는 하늘 출신이다.
48그 흙의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땅에 있는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온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하늘에 있는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아담의 상태는 타락 전과 후로 구분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 타락 후는 영생이 없어진 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영광의 상태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타락 전의 아담은 영광의 상태였다1).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지 않았다면 에덴동산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았을 것이기에 'the earthly man' 그 흙의 남자(흙에 속한 자)라고 표현했다. 칼빈은 아담이 흙에서 왔기 때문에 이는 사람의 죄나 잘못이 아니라 자연적인 속성이기에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그의 몸은 그의 영혼으로부터 분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 추가적인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 형상의 훼손은 죄 때문에 왔고 아담 안에서 인류가 죽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이 삶을 얻을 것이라는 고린도전서 15:22장의 바울의 말을 인용하면서 아담이 똑바로 있었더라면 영혼과 육체의 분리도, 타락도, 어떤 종류의 파괴도, 간단히 말해서, 폭력적인 변화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2).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5장 47~49절을 바울이 말을 하는 거 자체가 이미 바울도 아담을 단순히 자연적인 속성만 가진 흙에서 온 필멸의 존재가 아닌 죄를 짓지 않고 똑바로 있었다면 영원히 에덴동산에서 살았을 영생을 지닌 존재로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15장 47~49절의 이 갱신(하나님의 형상 회복)이 바로 칼빈 신학의 중생 즉 재창조 신학이다. 이런 개념은 아담을 자연적인 속성만 가진 흙에서 온 필멸의 존재이며 율법을 지켜야 영생을 얻게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논리와 부합하지 않고 이들에게는 회심준비론이 중생의 개념일 것이다. 칼빈은 창세기 주석 3장 19절에서 바로 이런 점을 명확하게 지적하면서 아담은 영생을 지닌 불멸의 존재이고 고린도전서 15장 47~49절의 하나님의 형상 회복 재창조가 부합함을 강조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5장 48절은 아담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땅에서만 기동 할 수 있었다면, 예수는 영원한 존재로 하늘에 속한 분이시다는 의미이고,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아담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타락 후 단지 이 땅에 살아있는 영혼(living soul)이 되었을 뿐이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으로써 우리를 살려주는 영(quickening spirit)이 되셨음을 말하고 있다. ​

바울은 이 갱신(하나님의 형상 회복)에 대하여 첫째로는 지식을 말하며, 둘째로는 순결한 의와 거룩함을 말하고 있다. 칼빈은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은 처음에는 지성의 빛과 마음의 바름과 모든 부분의 건전함에서 뚜렷이 빛나고 있었다는 점을 추론한다.

(기독교강요 1-15-4)
"그런데 위에서 말한 형상이 영적이며 영원한 생명에 관계되는 것을 모두 다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한은 그와 똑같은 사실을 다른 말로 단정하여, 태초로부터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 안에 있었던 "생명"이 바로 "사람의 빛"(요 1:4)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의도는, 인간을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특수한 은총을 찬양하는 것으로, 그는 인간이 평범한 생명을 부여받지 않고 지성의 빛이 결합된 생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동물들과는 구별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는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성의 완전한 탁월성으로, 이것은 타락 이전에는 아담 안에서 빛나고 있었으나..4)"​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성의 빛이 결합이 된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았고 아담 안에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첫 번째 아담은 땅에서 흙으로 창조되었고 두 번째 아담은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의 육신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자라고 했고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가 우리를 아담에게 주셨던 본래의 순전한 상태로 회복시킨다는 의미이다. 요한복음 1장 4절처럼 지성의 빛이 결합이 된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았으므로 타락 전의 아담은 영광의 상태였고 완전한 상태였던 것이다.​

하늘에 속한 생명은 무엇인가? 존 파이퍼 목사는 "하늘의 형상"을 취하는 것은 썩지 않고(고전 15:42), 영광스럽고(고전 15:43), 강력하고(고전 15:43), 영적인 것(고전 15:44)이라고 했다5). 이렇게 하늘에 속한 하늘의 형상을 취하는 것은 바로 율법 준수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서 중생(하나님의 형상이 회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 후 아담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믿음이 있었다면 하늘에 속한 생명으로 부활될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아담의 사후 세상까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성경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4)라고 말하고 있다. 아담과 우리 모두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았다고 한다. 타락하여 영원한 죽음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아담과 우리의 죗값을 성자 하나님이 대신 갚으시기로 하셨고6) 그리스도를 통해 부활시키심으로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력하고, 영적인 하늘의 형상으로 영원히 살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을 하늘에 속한 생명으로 묘사하면 고린도전서 15장 47~49절 말씀에 부합한다. 그러나 능동순종주의자들의 주장은 이 말씀과 부합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생명과 어긋남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율법 준수로는 하늘에 속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하고 있다(갈 2:16, 고전 15장 1~3절).










1) 칼빈 기독교강요 4.14.12 the gift of immortality, 영생의 은사, 칼빈 기독교강요 1.15.1 the habitation of an immortal spirit 영원한 생명(immortal spirit)의 거주지, 칼빈 기독교강요 1.15.3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불멸의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라고 했다. 영혼불멸의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로 하나님의 형상을 꼽는다는 거 자체가 아담에게 영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칼빈 창세기 주석 2:7 이 영혼에 하나님은 불멸이 부가된 자신의 형상을 새겨 넣으셨다. 여기서 immortality를 영혼에 새겨 넣었다고 했으므로 육신적인 의미가 아니다. 영혼이 영원히 불멸한 것은 영생이라고 할 수 있다. 칼빈 기독교강요, 1.15.8 인간의 최초의 상태는 이와 같은 탁월한 은사들로 뛰어난 품위를 지니고 있었으며, 때문에 그의 이성과 지성, 분별력, 판단력은 지상생활을 지배하는 데 있어서 충분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eternal happiness)에 도달하게 했다.칼빈의 기독교강요와 칼빈의 창세기 주석에는 이렇게 아담에게 영생이 있었다는 구절이 많다. 칼빈은 영혼불멸의 증거로 하나님의 형상을 결정적인 증거로 삼아 신학 논쟁에서 승리를 하려고 했던 사람이고, 이런 흔적이 기독교강요와 칼빈 주석 창세기 등 기타 자료에 남아 있고, 이는 아담에게 영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2) Co on Genesis 3: 19 - Volume 1 by John Calvin
For dust thou art. Since what God here declares belongs to man’s nature, not to his crime or fault, it might seem that death was not superadded as adventitious to him. And therefore some understand what was before said, ‘Thou shalt die,’ in a spiritual sense; thinking that, even if Adam had not sinned, his body must still have been separated from his soul. But, since the declaration of Paul is clear, that ‘all die in Adams as they shall rise again in Christ,’ (1 Corinthians 15:22,) this wound also was inflicted by sin. Nor truly is the solution of the question difficult, — ‘Why God should pronounce, that he who was taken from the dust should return to it.’ For as soon as he had been raised to a dignity so great, that the glory of the Divine Image shone in him, the terrestrial origin of his body was almost obliterated. Now, however, after he had been despoiled of his divine and heavenly excellence, what remains but that by his very departure out of life, he should recognize himself to be earth? Hence it is that we dread death, because dissolution, which is contrary to nature, cannot naturally be desired. Truly the first man would have passed to a better life, had he remained upright; but there would have been no separation of the soul from the body, no corruption, no kind of destruction, and, in short, no violent change.
칼빈 주석 창세기 3: 19
너는 흙이니. 여기서 하나님이 선언하신 것은 사람의 죄나 잘못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적인 속성(본성)에 속하기 때문에 죽음이 그에게 우발적인 것으로 여겨져서 더이상 추가적인 의미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그의 몸은 그의 영혼으로부터 분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앞에서 말한 것(너는 죽을지어다)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합니다.; 그러나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린도전서 15:22) 라는 바울의 가르침이 명확합니다. 이 하나님 형상의 훼손(죽음)도 죄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지에서 창조하신 자를 다시 먼지로 돌아가라고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신령한 형상의 영광이 그 안에서 빛나자마자 그가 너무나 큰 위엄으로 드높아져서 그의 몸의 지상적 기원은 거의 지워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자신의 신령하고 천상의 탁월함을 멸한 후에, 바로 타락 전의 삶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신을 땅이라고 인식해야 한다는 것 외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연과 반대되는 해체는 당연히 바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가 똑바로 있었더라면, 진정으로 첫 번째 사람은 (현재의 타락한 상태보다) 더 나은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과 육체의 분리도, 타락도, 어떤 종류의 파괴도, 간단히 말해서, 폭력적인 변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필자가 직접 변역을 했습니다.
3) 기독교강요 1.15.4 한국출판사 김충호 번역
4) Article by John Piper March 1, 1971
In the fifteenth chapter of 1 Corinthians, verses 35 to 50 answer the questions, “How are the dead raised? With what kind of body do they come?” (1 Corinthians 15:35). After discussing in detail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Paul gives the summary statement: “And as we have borne the image of the earthy, we shall also bear the image of the heavenly” (1 Corinthians 15:49, ASV). The context makes it clear that Paul is thinking in personal terms: Adam is the earthy and Christ is the heavenly. We must ask what the “image of the heavenly” involves. The answer is found in noting what specifics verse 49 summaries. The “image of the heavenly” has to do with the nature of the resurrection body. “It is sown in corruption; it is raised in incorruption:it is sown in dishonor; it is raised in glory: it is sown in weakness; it is raised in power: it is sown a natural body; it is raised a spiritual body” (1 Corinthians 15:42–44, ASV). Thus, to take on the “image of the heavenly” is to be incorruptible, glorious, powerful, and spiritual.
5) 정이철 "아담을 그렇게 보는 사람에게 구원의 신앙이 들어서기 어렵습니다(2022.06.09)" 바른믿음 기사
작성일:2023-09-09 17:03:12 125.190.119.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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